61화
아기의 눈을 가린 채로 이동하고나서 부신 눈을 깜빡거리며 뜨자마자 악, 소리가 나더니 우르르, 여럿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새야!!!!!!!”
엘큄이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면서 달려 나와 내게서 아기새를 받아갔다. 나는 보이지도 않나보네… 엘큄이 아기새가 예쁘고 귀엽다며 뽀뽀를 쭉쭉 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 왜 이렇게 꼬질꼬질해?”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요….”
생각해보니 이게 무슨 난리였나 싶다. 잘 있던 극장이 폭발하지를 않나, 머리가 타질 않나.
“고생 좀 했나보네, 얘 구하느라.”
엘큄이 조심스레 둥지 같이 만들어놓은 곳에 아기새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실제로 한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타딘이 고생 다 했지, 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이들에게 정보력을 좀 건네준 것 뿐이라, 생색을 내기도 좀 그랬기 때문에.
“머리도 완전 그슬렸네… 갈아입을 옷 좀 줄까?”
고개를 끄덕였다. 엘큄이 물을 건네줘서 손을 씻었는데, 웬 거지가 여기 있나 싶을 정도였던 거였다.
한숨이 절로 나올 꼴이라 엘큄에게서 옷을 받아들어 갈아입었다. 조족 특유의 옷이라 특이하기 그지없었는데, 천이 팔랑팔랑 몹시 가벼웠고 활동하기 편하라고 그런 건지 무릎 윗부분에서 사선으로 잘려있었다.
특이하고 야하다… 하지만 인간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굳이 그런 개념을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꽤 잘 어울리네. 머리도 좀 잘라줄까?”
“아, 그슬린 부분 조금만….”
그러자 엘큄이 가위를 들고 오더니 앉으라고 했다. 앉았더니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바치려고 내게 무언가를 씌웠다.
가죽으로 된 특이한 거였는데, 하긴 조족치고 머리가 긴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상당히 많이 머리를 자르나 보지. 쓸모 없는 안경을 엘큄에게 맡기고 앉아서 가만히 그가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째 좀 많이 자른다. 기분 탓인가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우연히 떨어진 길이를 봤더니 이건 절대로 기분탓이 아니었다.
“잠깐!!!! 엘큄, 잠깐만. 얼마나 자르는 거야?!!”
“응? 왜 이 정도는 다들 자르잖아?”
“조족이야 그렇지! 잠깐 거울… 아니면 물이라도!”
당황한 내가 반말을 내뱉자 엘큄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지만 일단 내게 물을 가져다줬다. 나는 말 그대로 경악했다. 어깨에 간당간당할 정도로 짧아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단발이 한때 유행했다지만, 그래도 드레스에는 단발이 안 어울린단 말이다!
“왜, 잘 어울리는데.”
“이 옷에야 잘 어울리겠죠… 근데 제가 입고 온 옷에 이 머리 스타일이 괜찮겠냐는 말이에요오.”
진짜 울고 싶어서 거울에서 눈을 못 떼고 징징거리자 엘큄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왜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넌 얼굴이 지나치게 화려하게 생겨서 머리카락이 너무 길거나 화려하면 오히려 얼굴을 죽여. 오히려 단발이 낫다고.”
“…엘큄 남자 아니에요? 왜 이렇게 잘 알아요…?”
“우린 성 없어. 그리고 난 머리 자르기 담당이라고. 내가 불을 다루지 못해서 좀 아쉽긴 한데, 다음에 컬을 넣으면 그럭저럭 예쁠 거야. 어차피 잘린 거 다시 붙이지도 못하니까 그냥 내가 마무리하게 해줘.”
딱히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하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좀 미안한지 아까보다 엘큄은 훨씬 정성들여 머리칼를 잘라줬다. 내 머리카락… 엄마가 할 수 있는 스타일이 훨씬 많다고 절대 자르지 말라고 했는데…. 머리칼이야 기르면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쉽기 그지 없었다.
반평생을 길렀건만 이렇게 순식간에 잘리다니.
“하아…”
“그렇게 아쉬워?”
“오랫동안 기른 거라… 솔직히 좀 그래요.”
한숨이 푹푹 나왔다. 엘큄은 그제야 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에이, 그냥 받아들여. 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화내봤자 소용이 없으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타딘은 언제 와요?”
“글세… 조금 더 걸리긴 할 걸. 그보다 사례로 뭐 받기로 했어?”
“무슨 사례요?”
“아기새를 이렇게 배달해줬잖아. 그걸로 뭐 받기로 한 것 아니야?”
역시 그거에 대한 사례인가. 나는 피식 웃고는 타딘이 말 안해줬어. 라고 대답했다. 엘큄이 그래? 하고 아기새의 코를 만지작대면서 웃었다.
“귀엽지?”
“네. 진짜 새네요, 새.”
“얼마 후면 날개가 돋을 거야. 많이 피곤했나봐. 이렇게 곤하게 잠들다니. 너무 귀여워..”
아주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말 좋아하나보네, 아기를. 엘큄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뭘 주실거 같아요?”
엘큄은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글쎄,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시선을 맞추더니 물었다.
“뭘 받고 싶은데?”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그냥 선물은 좋은 거니까 일단 받겠다고 한거라서….”
“금 같은 거 아닐까. 우린 그런 거 많거든.”
“뭐, 금도 좋죠.”
내가 말하자, 엘큄이 웃더니 왜 그렇게 시큰둥한 반응이냐고 물었다.
“뭐랄까, 하는 일 없이 받는 거라 뭘 받아도 기쁠 것 같지가 않아요.”
“왜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한 거라고는 그냥 정보를 제공해준 것 뿐이라… 일도 거의 다른 사람들이 다 한 거고. 그래서 사실 좀 찔리기는 해요.”
그러자 엘큄이 가만히 턱을 괴고 내 말을 듣고 있다가 말했다.
“너처럼 상식적인 사람들만 살고 있다면 우리도 인간들과 교류를 그만두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이런 아기를 팔아버리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 아기새를 운반하려면 원래는 엄청난 고생이 뒤따라야 해. 아기새를 든 채로는 괴력이나 빠른 속도를 낼 수가 없어. 자연스럽게 근육이 강화되는데 그 과정에서 손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면 그대로 죽어버리니까. 그렇다고 안고 들고 다니는 건 눈에 너무 뜨이고. 산맥까지만 와서도 산을 좀 올라가야하는데 그게 보통 일도 아니고….”
엘큄이 조용조용, 까르르 웃는 아기 새를 어르더니 씩 웃어보였다. 둘이 참, 귀엽다.
“네가 대단치 않게 생각했던 정보나, 그리고 네가 우리에게 베풀어진 그거, 우리한텐 굉장히 소중하고 대단한 거야. 절대 얻을 수 없는 걸 얻었으니까, 우린 보답할 의무가 있는 거라고. 네가 얼마의 힘을 들였건, 내게 가치가 있었다면… 나는 그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고마워할 이유가 있는 거야.”
그 말은 맞는 걸까. 어째서 그들이 인간과의 교류를 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들이 만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러한 곧은 심성을 이용하고 마치 과금을 하듯이 요구했겠지. 그리고 고마움은 모두 사라지고, 쇠락해갔을 것이다.
“당신 말이 맞아요.”
“…알았으면 됐어. 고마웠어, 도와줘서.”
“아니에요. 도움이 되어서 기뻐요.”
하지만 그들이 과연 틀린 걸까. 이것이야말로 신들이 인간을 이 땅에 내렸을 때 가진,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을 소중히 하고, 남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소중히 하고…. 타인의 노력을 고마워하고 인정해주는 것. 미소를 지으며 결심했다. 앞으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들을 공식문서에서 지워주는 등의, 노력을 해야겠다고. 그들의 호의를 나또한 고맙고, 정당하게 받아들이겠다고….
“근데 왜 머리를 염색한 거야?”
“들키면 좀 곤란하거든요. 좀 유명한 사람을 닮아서… 얼굴이 눈에 뜨여서 좋을 게 없고.”
“넌 그 얼굴로도 충분히 튀는데.”
“나름대로 안경으로 가린 건데.”
“하긴 귀족인 게 들키면 거치적스러우니까. 그 안경 쓰니까 확실히 좀 죽어보이긴 해. …그래도 기왕 예쁘고 화려한 얼굴을 타고났는데, 아깝잖아.”
그 말에 좀 민망해졌다. 나, 이종족이 좋아하게 생겼나? 스스로 예쁘다는 생각보다는 샤펜공작과 닮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서 이런 칭찬이 좀, 어색하기도 하고… 아무튼 기분이 묘했다. 그 때 동굴 앞을 가린 잎들을 걷으며 타딘이 들어왔다.
“아기새 멀쩡?”
엘큄이 조족의 언어로 뭔가 말을 하자 타딘이 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하더니 내게 뭔가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인간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 물건일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해봤지만, 어렵더군.”
“팔찌네요?”
“조인족에게 드래곤이 준 거다. 인장 같은 거지. 특이한 능력이 있다.”
“…어떤 건데요?”
의심스럽게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팔찌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고, 특이한 그림도 가운데 보석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파란색 기운이 팔찌를 감싸고 있는데다 보석자체도 연청색이라, 어쩐지 시원하게도 보였다.
“실라누스.”
“어, 그걸 외우라고요?”
그러자 엘큄과 타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 생각 없이 중얼거리듯이 입을 열어 실라누스, 라고 말하자 갑자기 팔찌의 보석으로 파란색 기운이 모이더니 물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이거 저 주셔도 돼요?!”
“우리 많은데.”
그러더니 그들이 자신들의 손목을 척, 내밀었다. …음. 확실히 죄책감이 쑥 줄어들긴 했지만, 어쨌든 귀한 것에 틀림 없는데.
“먹는 물에 지장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요? 제가 함부로 가져갔다가 큰 일 나는 거 아니에요?”
“아, 이거 물을 만들어 내는, 그런 대단한 거 아니야. 그냥 주변의 물을 끌어서 먹을 물로 만들어주는 거지. 우리 같은 경우는 저 밑의 강에서 끌어오는 거야. 실라누스의 뜻도 그런거야, 분수.”
“그렇구나… 그래도 만들기 힘들고, 귀한 건데,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린 노력 많이 안 해서 얻었다. 그러니, 너도 우리도 또이또이.”
…또이또이? 타딘한테 대륙어 가르친 사람 누군지 얼굴 한 번 보고 싶네. 어쨌든 고마워서 고개를 숙이고 제대로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해요. 소중하게 잘 쓸게요.”
“그래라. 우리도 고마웠다.”
그리고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해서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가,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에 당황해서 왜요? 하고 물었더니 타딘이 입을 열었다.
“머리카락.”
“아, 이거 엘큄이 그슬린 부분만 잘라준다고 하고 사기치고 이렇게 잘라버렸어요. 안 어울려요?”
타딘은 아무 말 없이 엘큄에게 말했다.
“손 든다, 너.”
어,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놀라서 타딘을 바라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여자 긴 머리 예쁨. 자르는 거 죄악. 너 몹쓸 짓. 망함. 손 듬.”
엘큄이 어안이 벙벙해서 타딘을 보다가 나를 바라보다 했다.
“저게 더 잘 어울리잖아!! 훨씬 예쁘다고!!”
타딘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긴 머리. 로망. 너, 몹쓸 짓. 망함. 너 혼남. 번쩍 듦.”
엘큄이 어이가 없어서 부글부글, 끓는 표정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손을 들었다. 타딘이 손을 든 엘큄에게 말했다.
“날개도 듦.”
엘큄이 날개까지 번쩍 드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다가 나는 구두굽을 부딛혔다. 여관으로 돌아가자마자 노심초사, 나를 기다리고 있던 조지가 보였다. 내가 반가운 얼굴을 했더니 조지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내 머리카락과 옷을 가리켰다.
“아니, 대체 혼자 어딜 다녀오셨는데 그 꼴이십니까?! 아가씨도 이종족 노예 되신 거예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별 일 없었어요.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대충 들었죠? 잡힌 사람들, 관련된 사람들… 이종족인들, 관련해서 보고서 나중에 나한테 올리라고 하세요. 내 책상이나 샤펜 공 집무실에 올려두면 될 거예요. 여기 전부 철수해서 샤펜가로 이동하고, 혹시 모르니까 조지는 메이가에서 몇 주만 더 일해주세요. 튈 것 같으면 바로 연락주고요. 사실 몇 주도 아닐 것 같지만 어쨌든.”
“예, 알겠습니다. 아가씨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전 어디 한 군데 들릴 곳이 있어서 거기 한번 들리고 바로 갈 거예요. 철수하는 거 도우라고 헤이텔 바로 보낼 거니까 잠깐만 버티고 있어주세요.”
“저 혼자 여기 마무리하긴 힘들 것 같으니 되도록 빨리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일단 옷을 갈아입으러 올라갔다. 제대로 드레스를 입고 났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엘큄한테 좀 미안하네. 어쨌든 일단 샤펜가로 가야지. 가고 나서… 그러고나서는 록진이 보고 싶었다.
============================ 작품 후기 ============================
이걸로 아마 이번 챕터는 끝입니다. 'ㅅ'! 뚜뚠우주요정이 말합니다...!! 따단 이번 편은 연참이었다..! 뚜룬뚜룬~++ 라시아는 굉장히 화려하게 생겼습니다. 참고로 하는 얼굴은 로레알 립 모델인 바바라 팔빈 / 혹은 글리에 Quinn역으로 나온 다이애나 애그론- 목소리는 딱 이 분이라고 정하고 있어요!
이런 화려함..? 아마도..?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