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내가 너무 긴장을 안 하고 살았나. 아닌데, 호위무사도 분명히 나 지키고 있었을텐데…. 그 분도 잤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멍하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내가 영 엉뚱한 곳에서 깼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 눈 떴어!!!!!!!!!”
저렇게 겁에 질린 목소리로 힘차게 비명을 지르며 부산스럽게 파드닥 거리는 건 아무래도 실례 아닌가. 근처에 있던 날개 달린 사람들이 날개짓을 하며 네 명이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귀야.
“진짜?!! 진짜?!!!”
키도 엄청 작고, 말도 안 되게 빼빼마른 날개 달린 사람, 아무튼 그런 것들이 우왕좌왕하며 난리였다. 골이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면서 내 상태를 확인했더니, 밧줄로 단단하게 묶여있는데다 주변엔 이 이상한 새들인지 사람인지 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 상황을 설명하게 하고 싶었지만, 일단 얘네의 입부터 닫게 해야겠다 싶어 소리를 질렀다.
“조용!!!!!!”
솔직히 효과 있을 줄 몰랐는데, 순식간에 다들 덜덜덜 떨면서 입을 다물었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혀서 구석에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에 이 사람들 대체 뭐야, 싶어서 입을 열었다.
“날 왜 납치한 거예요?”
그러자 그들이 수군수군 대더니 등에 날개가 달린 한 사람이… 아니, 사람인지 새인지가 조심스레 다가와 내게 말했다. 자다 깼더니 납치당황 상황치고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섭지도 않았다.
“…저기…않고….”
뭐라고 웅얼대는 거야. 나는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안 들리는데요.”
내 말에 우물쭈물, 울먹울먹 거리던 사람이 차렷, 자세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외쳤다.
“납치하지 않다!!!!!!!!”
귀청 터지는 줄 알았네. 묶여 있는 손 때문에 귀를 막지도 못하고 소음공해를 당해서, 진짜 머리가 얼마나 아픈지… 골이, 골이 울려…. 그러다가 샤샤샥, 원래대로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로 달려가는 것을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이게 무슨 해괴한 상황이야. 무슨 납치범이 인질보다 더 겁먹어 있어?
“일단 이거 좀 풀어주세요. 도망 안 갈테니까… 그런데 왜 날, 그러니까 납치는 아니고 여기에 데리고 온 거예요? 아니, 그보다 여기가 어디에요?”
그러자 그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고개를 단체로 저었다. …이게 지금 진짜 웬 상황이야. 일단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해보자 싶어서 그들을 대놓고 구경했다.
사람인지 새인지 모르겠는 이 자들은 대개 갈색이나 하늘색, 혹은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저렇게 눈에 뜨이는 색깔을 하고 참 잘도 사는 구나… 하나같이 속눈썹이 길었고, 키가 작고 아주 비쩍 말랐다.
가슴팍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어서 남자 인 것이 분명한 쪽도 나보다 팔목이며 다리며 한참 가늘었다. 저러니 나 하나를 못 들지. 절대 내가 무거운 건 아니… 잠깐만, 그럼 날 대체 누가 들고 온 거야? 일단 의문을 뒤로하고 뒤돌아선 몇몇의 날개를 구경했다.
진짜 새가 가진 날개 같았다. 인간 몸에 새의 날개라니 말이 되나…. 은신이 잘 되는 색이라 주로 갈색인 걸지도…?
“뭐…뭘 빤히 바라봐?!! 나와 날개를 부비고 싶은 건 아니겠지!! 싫어!!!”
“…전 날개가 없는데요. …그보다 그럼 저를 이리로 데려온 이유를 말해줄 수 있는 분 좀 불러주세요.”
한숨이 나왔다. 첫 번째로 당한 납치가 이렇게 한심한 납치범들에 의한 거라니, 맥이 탁 풀렸다. 아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보통 당할 리 없는 납치를 당한 부분에서 뭐 다행과는 한참 떨어져버렸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니까 크게 일이 날 것 같지는 않고….
“나, 그것 말해 있다.”
낮고 진중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날개가 없는… 평범한… 이 쪽도 평범하지는 않구만. 이렇게 키가 큰 사람은 처음 봤다. 2미터도 넘을 것 같은 키에 덩치도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굉장히 위압적이었다. 정말 희한한 동네네. 저렇게 마른 사람들과 저렇게 덩치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산다니….
“…일단 이것 좀 풀어주시죠? 이쪽들은 납치 의사가 없다고 했는데, 대우가 상당히 다르네요.”
“도망 가서, 아니다. 너, 돌아다니다. 정신 못 차리고 푸드덕 푸드덕. 많이.”
…사람 말을 잘 못하나보다. 아니면 베노암 어를 잘 못하든가.
대충 내가 도망 갈까봐 묶어 둔 게 아니라 다른 애들이 푸드덕될까봐 그랬다는 말 같은데…. 어쨌든 그가 직접 나서서 내 손목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엄청 빨개졌네. 손목을 흔들고 발목에 묶여있는 밧줄을 풀려는데 내 손으로는 영 힘들었다.
그런 목적치고는 지나치게 단단하게 묶어둔 거 아닌가. 남자가 다가오더니 단도로 가볍게 끈을 풀었다.
아, 내 발목. 꾸물꾸물 움직여봤더니 그제야 피가 통하고 살 것 같았다.
“간단한 묶이…. 인간, 오랜만이라 우린 힘을 왔다갔다가 힘들거든.”
“…힘 조절이오?”
“대륙어도 너무 오래전이야. …일단 이쪽으로 안내다. 참고로 우린 대륙어를 안 써. 그래서 제대로 대륙어 하다는 저 엘큄. 어색한 난 타딘. 족장이지.”
엘큄은 타딘이 오자마자 날아서 타딘의 등에 찰싹 붙어있었다. 겁이 많은 건지. 타딘들이 오자 난동을 부리던 날개달린 사람들이 점차 안정을 찾더니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신기한지 내 등을 만지고 싶어 했지만, 초면에 남의 등을 만지고자 하는 건 불쾌한 일인걸 알려주자 얼른 손을 뒤로 감추고 우물쭈물했다….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죄송한데… 누구세요?”
“조(鳥)인족이네, 우리는.”
“…설마 새…? 그, 날아다니는 새의 그 조요?”
타딘의 등 뒤에 찰싹 올라탄 엘큄이라는 새가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그럼 이 날개를 뭐라고 하겠어?”
듣도보도 못한 종족에 듣도보도 못한 날개였다.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족장이라는 자를 바라봤더니, 엘큄이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쟤는 타딘 오기 전에는 나한테 맞을까봐 벌벌 떨던 애가.
“전설상의 종족인지도 꽤 됐어. 지금쯤이면 소문도 안 돌 걸? 고서적 같은 데서 본 적 없어?”
최대한 머리를 굴리다가 리콜라티 교수님이 가르치시던 문화사 교과서 한 귀퉁이에 적혀있던 내용이 생각났다. 조족이라고도 하고 날개인간이라고도 하는 전설상의 종족이 있는데, 벌써 수백년간 하나도 발견되지 않아서 잊혀졌다…는 이야기. 설명도 빈약하고, 그림은 마치 삼백년쯤 전에 동굴에다가 끄적거린 그림 같아서 그냥 전설이구나~하고 넘겼던 기억이 났다.
게다가 시험에도 안 나와서 그냥 새까맣게 잊고 있었네. 사는 거주지도 제대로 안 나왔고, 뭐하나 밝혀진 것도 없는 종족인데 그냥 있다더라 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진짜 있었단 말이야? 엄청 충격이네.
“딱 한번 교과서 비슷한 곳에서요. …그보다 저는 왜 여기 납치, 아니고 데리고 오신건지.”
“우리 동네 애가 하나 사라졌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날개도 아직 돋지 않은 풋풋한 아기 새란 말야.”
칭호도 심지어 새인가…. 그나저나 사라졌다고?
“사라졌다는 말씀은… 그보다 저 자리 좀 옮기면 안 될까요? 영 시선이 신경이 쓰여서요.”
의자도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공간에서 나름대로 깃털로 얼굴을 숨기겠답시고 끙끙되는 여러 명의 조류들과 있자니 머리가 어지러워지려고 했다. 타딘은 가만히 보더니 흠. 하고 말했다.
“그럼 일단 바구니를 타야하는데.”
웬 바구니요? 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들 아무 말 없이 또 수군대더니 조용히 어떤 것을 들고 왔다. 낡아빠진 바구니에 진짜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다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저기 정말 무례한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목숨이 걸려있으니까 여쭤볼게요. 저 바구니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데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타딘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바구니가 좀 오래하다. 하지만 제일 멀쩡. 다른 거. 망함.”
“애초에 왜 바구니를 타야 하는… 다른 방법은 없나요? 대체 밖이 어떻길…”
한 새가 문을 척하니 열어주었다. 입이 절로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이 온 세계를 모두 채우고 있었고, 그 절벽 사이로 장엄한 해가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오로지 황토색밖에 없는 곳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물소리가 어디선가 엄청나게 들렸고, 절벽 사이사이에 굴이 하나씩 나있었다. 장관이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구나. 새빨갛게 물드는 하늘과 세계에 멍하니 말을 잃고 바라보다가 경악했다.
“…설마 제가 저런 곳 중에 하나 안에 들어있는 건….”
엘큄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를 척, 가리키면서 말했다.
“떨어지기 싫으면, 타라.”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바구니를 절실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 족히 4km는 되어보였다. 순간 머리가 어찔해졌다. 대체 이 조인족들이 날 어디로 데려온거야!!! 어디서 들리는지 모르는 물소리가 아래에서 들리는 것 같아 얌전히 바구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날 대체 몇이서 들려고 하는 거예요?”
슬금슬금 바구니위의 끈을 들려고 오는 새들 수가 꽤 있었다. 좀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들은 날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하긴 아무래도 저렇게나 말랐으니까..
“사, 정도면 할 수 있을까나. 한번 들어볼게. 좀 흔들릴 거야.”
그들이 나를 들었다. 들긴 들었는데, 효과음으로 하자면 정말로 굴욕적이게도… 끄응차-, 정도라고나 할까. 그것도 한 이센치쯤 들었을까. 다들 또 수군수군거리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아주 가까이 있는데도 그 말 자체가 내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한 새가 더 다가와서 남은 끈을 하나 잡았다.
“당신들도 날아갈 건가요?”
타딘이 말했다.
“우린 날개이 없어. 날 수 있는것가 날개가 있는 자 뿐.”
그럼 이 절벽을 어떻게 건너가려고, 하는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별 걱정을 다 한다는 듯이 나를 보고 말했다.
“걸어 올라가거나 타고 올라가거나, 아니면 달려서 간다.”
그래, 자기들이 다 방법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얼른 바구니의 입구 쪽을 단단히 잡았다. 드디어, 끄응이 아닌 쑤욱, 하는 느낌으로 바구니가 올라갔다.
“악, 진짜 이렇게 가는 거예요?!!”
나는 최대한 납작하게 바구니 바닥에 달라붙은 채로 물었고 엘큄은 그럼 더 어떻게 가, 라고 하더니 절벽 쪽을 향했다. 하늘을, 하늘이… 바람이 구멍 사이로 불어왔다.
끈이 떨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에 떨렸지만, 내가 어디를 향하는 지 또한 알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아서 무릎으로 바닥을 짚고 고개를 바구니에서 뺐다.
“하…!”
차가운 공기가 목 안을 쪼이듯이 달려들었다. 소름끼치도록 작아 보이는 나무들, 저 아래 실처럼 보이는 강줄기, 귀를 아리게 부는 바람… 절벽이 내리는 그늘과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하늘에 반짝거리는 세상이 순간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바위가 내 손톱만큼 작아 보였고, 가끔 귀 옆을 스쳐지나갈 것 같은 바위에 심장이 떨리는 동시에 몹시 짜릿했다. 옆을 지나가는 바위 중에는 흰 것도 있고, 내 밑에 그렇게나 아득하게 보였던 나무의 끝자락이 보였다.
손을 뻗으면 바위 끝이 닿을 것 같았지만 무서워서 닿지는 못하고, 나는…
그 순간 바람이 강하게 불어 탄 바구니가 흔들렸다. 악, 소리가 절로 났지만 이 때쯤에는 몹시 재미있어서, 나는 꽤 안정적으로 버티고 있을 수 있었다. 엘큄이 소리에 나를 돌아보다가 씩 웃었다.
“우리들의 땅에 온 걸 환영해, 인간.”
햇빛이 마치 줄기처럼 번져서 내 눈 앞을 괴롭혔다.
그렇다, 나는 … 전설의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 작품 후기 ============================
비슷한 경험은 터키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기암괴석을 구경하기 위한 에어볼룬을 탈 수 있거든요. 새벽에만 탑승가능. 작가는 타본 적 없음..... 가고 싶어요..(왈칵)제 맘대로 정하긴 했는데, 얘네는 굉장히 고산지대에 사는 애들입니다. 볼리비아 고산지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얘네는 접때 서점 갔을 때 일러북이 세일하길래 들여다봤는데, 무슨 고대 잉카의 어쩌구 저쩌구 ..? 그런 책에서 인간에 새 날개 달린 그림이 있길래 거기서 영향받아가지고 만들어낸 종족이에요! :ㅇ....알았어여 그만 올릴게요.... 3연참!! 3연참을 했다!! 미쳐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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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금, 토, 일 이렇게 쉬다 올 것 같습니다. 행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