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오를레아>
슬픈 일이 있었으면, 좋은 일도 따라오는 법. 오를레아는 다니엘이 예상했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내게 무척이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재치도 있고, 입담도 날카로운데다 몹시 우아한 내 친구는 일견 고루해 보이는 고전서적을 자주 읽으며, 성적은 좋았지만 주로 배우는 과목에는 흥미가 없었다.
예쁘게 생겨서 인기가 상당한 그녀는 나를 데리고 도서관에 처박히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고, 우리는 기말고사를 함께 준비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 갈 거야?”
“어? 미안, 뭐라고?”
기말고사 성적표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잘못 채점된 부분은 없는지, 똑바로 처리가 되었는지 고민하는 와중이라 그녀의 말을 잘 듣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들면서 오를레아에게 되물었고, 그녀는 고상한 손놀림으로 내 성적표를 뺏어가더니 말했다.
“소풍, 갈 거냐고.”
“…그게.”
“무슨 소풍인 지 듣지도 않았어, 심지어?”
눈 꼬리를 확, 치켜 올리며 그녀가 하는 말에 나는 난처한 얼굴로 입을 잽싸게 다물었다. 끙, 이럴 때는 얼른 사과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았으므로 얼른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지만 오를레아는 코웃음을 치면서 요즘 읽는 ‘** 가문의 일대기’, 17권을 꺼내 들어 폈다.
“아아-미아안. 무슨 말 했는데? 이번엔 진짜 잘 들을게!”
그러자 그녀가 내 성적표를 자신의 책의 책갈피처럼 꽂더니 선심을 쓰는 듯한 말투로 설명해주었다.
“한참 전에 말했듯이, 아는 여자애 몇이랑 남자애들 몇이 가을 노을 보러가자고 너도 가겠냐고 물어봤어. 생각 있어? 저녁쯤에 모일 것 같은데.”
“으음… 내가 거절하면 네가 불편해지거나 해?”
사실 그다지 끌리지 않아서 그녀에게 물어봤더니 오를레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쥐고 있던 펜을 휙휙 돌리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가고 싶을까봐.”
“나도 별 생각 없는데."
"그럼 됐어, 나도 안 갈래."
그녀가 얼른 다이어리를 꺼내더니 줄을 샥, 하고 그었다.
“애초에 내 멍청한 약혼자가 너와 연줄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제안을 한 거니까. 트로피 피앙세로 만족해야하지 않나.”
그녀의 비아냥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를 멍청이나 등신, 아니면 새대가리 등으로 불렀는데, 웬만한 경우 이렇게 노골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듣는 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만나본 적은 아직 없었지만, 다니엘이 언뜻 말하는 것을 들으니 대충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었다. 따로 알아본 바로도 가문이 상당한 부자지만 뒤가 구린 구석이 있었고, 내가 보기엔 베노암 정보기관인 베러티에서 뭔가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뭐 알 수 없으니. 어쨌거나 이런 비밀스런 일을 하다면 똑똑하기라도 해야할텐데, 들어보니 아들 쪽은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검소한 아를리오스가에 빚을 지워서 오를레아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나마 아버지 쪽은 그걸 보면 바보는 아닌가 보다. 일단 약혼을 맺은 이상 아를리오스 자작은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자신의 딸의 파혼을 하는 것이 치욕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녀의 파혼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사람이 나와 연줄을 닿고 싶어 했어? 의외네. 핏줄 때문에 무시할 줄 알았는데.”
“후계자가 될 사람한테 무슨 핏줄이 중요해.”
오를레아가 동정이나 감정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냉철하게 말해서, 나는 오히려 조금 뜨끔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은연한 자격지심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집안은 황녀파야, 황자파야?"
"둘 다 아냐. 황녀도 황자도 거부했어. 나 같아도 저런 분란거리 집안은 거절하겠어. 뭐 그러니 끝다리 연이라도 잡아보겠다 그거겠지."
"내가 가줬으면 좋겠어? 원한다면 나갈게."
등신이라도 그녀가 함께 지내야할 사람이었다. 등신이기에 내가 가지 않음으로서 그녀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않는 것은 싫었다. 그러자 그녀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제발 시험 끝나고 나랑 놀러가자고 강요해줘."
그 말에 크게 웃으며 가자고, 가자고 몇 번이고 말했다.
“마땅히 강요해줘야지. 음, 내가 다른 소풍을 잡으면 어때?”
“그럼 나야 좋지. 우리 둘이?"
"글쎄, 단 둘이 가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은데. 안 그래도 나 감사할 일이 있어서… 로드리고 사람들은 어때? 불편하지 않으면 같이 가도 좋은데, 나는. 그리고 네 친구들 중에서 네가 몇 명 초대하는 것도 좋겠다. 로드리고는 남자들뿐이니까."
“음, 난 불편하진 않은데. 뭔가 감사할 일이 있어?”
나는 내가 외롭고 일에 치였을 때 나를 인내해주고 도운 사람들에 대해 감사할 필요가 있었다. 바쁘단 핑계로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구나. 반성해야겠네.
“힘들 때 도와주셨어. 같이 쉴만한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오를레아는 나를 가만히 보다가 웃어주면서 말했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대접이 어울리지. 나 다했는데, 뭔가 도와줄 거 있어?”
“어, 정말? 전부? 과제도?”
“음-흠-! 당연하지. 뭐가 필요해?”
나는 반색을 하면서 기뻐했다. 내게 오를레아가 성적표를 건네주면서 물은 말에 나는 시험지들과 자료들을 건네주었다.
“…이건 좀 많은데.”
“왜 그래, 내가 시험 친 게 많은 줄은 알고 있잖아.”
그녀가 차분하게 자신의 과제물을 정리해서 가방 안으로 넣으면서 내 자료들을 받아들더니 말했다.
“아, 문학 과제 도와달라면서.”
그 소리에 재빨리 성적표를 치웠다. 문학 감상문 쓰는 건 도대체 어려워서, 나는 오를레아에게 내 감상문의 부족한 점이나 잘못 해석된 부분을 물어보고는 했다.
성적표야 나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문학과제는 다른 문제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과제물을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가 읽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쉬는 시간이 필요해서 누구를 초대할까 즐거운 마음으로 고르기 시작했다.
…한창 즐겁게 끄적대고 있자니 오를레아가 말했다.
“너무 멋진 사람을 고르진 말아. 속 쓰리니까.”
“네 약혼자보다 덜 멋진 사람을 고르라는 건 너무 잔인한 처사야.”
“에, 뭐… 맞는 말이지.”
그녀가 어깨를 으쓱, 하면서 말했다. 한참을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다가 그녀와 함께 성적처리 서류를 내고 함께 점심을 먹고 나자마자 로드리고 관으로 걸어가서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삶과 과제, 그리고 기말고사에 지친 사람들은 내 계획에 몹시 기뻐했고, 내 고마웠다는 인사에도 쑥쓰러워하며 받아주었다. 애론은 사실 너무 바빠서 안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의외로 흔쾌히 받아주었다.
“많이 안 바쁘세요?”
“가서 잠이나 자지 뭐… 일광욕 의자 같은 거 있는 곳으로 가면 안 되나? 하긴 난 돗자리 위에서도 잘 자니까."
“그럼 굳이 뭐하러 오시는 지… 그냥 집에서 주무시는 게.."
“오를레아나 너, 둘 중의 한 명이 무릎베개를…"
그의 농담에 내가 웃으면서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제 혼삿길을 막아보고 오를레아의 약혼자를 막아주겠다는 말씀이시죠?"
“…집에 가서 잘게."
“아, 그러고보니 벌써 연말이랑 신년파티 초대장이 날아오고 있던데, 다들 받으셨어요?"
“이번에는 좀 빠르게 다들 보내더라. 샤펜에서는 이번 년도엔 신년파티지?”
"아무래도 신년파티겠죠. 좀 성대하게 할 필요가 있거든요. 아비게일 양도 약혼을 하셨고."
위세도 좀 떨쳐야하고 말이다. 보통 연말이나 신년, 둘 중 하나만 여는 게 관례인데, 신년파티의 경우 굉장히 거창하게 열고, 연말파티는 조금 단출하게 연다. 연말파티는 단출하지만 술을 허용해서 좀 더 왁작왁작한 느낌이고 신년파티는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고, 좀 더 정치적이랄까….
어쨌든 황녀파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황녀가 파티 참여 의지를 확고하게 다졌고 이 준비를 위해 알트라쪽의 하녀 몇이 베노암 수도로 떠났다. 사실 안주인이 파티를 주관해야했지만, 공작부인은 타계했기 때문에, 데릭의 어머니인 전 샤펜 공녀께서 잠시 도와주시기로 했다.
물론 공식적인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나와 아비게일이 아느완으로 가서 인수인계를 맡아야 하겠지만. 샤펜가가 황녀파에 참여하는 것으로 상당한 정치계의 변화를 들고 올 거라, 샤펜이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강한 인상의 파티를 개최해야했다. 아무래도 1년의 시작이니까 말이다.
“초대장은 언제 보낼건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주관하는 게 아니다보니. 그나저나, 로디나에서도 가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글세. 코라쪽으로 물어봐줄게."
앨번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레 오후 4시에 알트라 강가에서 봬요. 이번에 거기 주변이 곱게 물들어서 꽤 볼만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뱃놀이도 할 수 있으려나."
"날씨만 좋다면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도시락은 각자 지참이지만 그 외에 건 제 쪽에서 전부 준비할 거니까 마음 편하게 와주세요."
뭐 알았어. 하고 로드리고들이 대답했다. 오랜만에 마음 편한 행사가 되겠거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야, 정말로 좋은 날이 아닙니까. 과연 로디나, 로드리고 여러분들과 함께해서인지 신의 가호가 내린 날인 것 같습니다! 아, 저는 쿠디스 밀렝 메이라고 합니다! 물론 모두 아시고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날인지! 저희 메이가문은 자작가로 승격 된지는 얼마 안 됐지만 강한 위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흠흠, 뭐 그런 연유로 이렇게 아름다운 제비꽃 아가씨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오를레아를 제 피앙세로 맞이할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런 미인이 절 위해 여성을 위한 교양 과목을 듣고.… 이런 게 진정한 남자의 로망 아닐까요, 아핫핫핫!"
일이 점점 커져서 로디나와 로드리고 중 몇 명과 그들의 친구, 나와 오를레아가 소풍에 가기로 했으니 넌 안와도 된다고 했건만, 저 쿠디스란 사내는 돌려서 하는 거절이란 것은 아예 알아먹지를 못할, 아니 안할 남자였다. 그는 ‘나’를 에스코트 할 의무가 있다며, 반드시 여기에 참여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당일 날 초대받지도 않은 자리에 뻔뻔하게 나왔는데, 입을 열자마자 티 나는 그의 무식이나 허세는 듣기 힘겨울 정도였고, 오를레아는 우아하고 고고한 조각상 같이 그의 옆에 서있었다. 그녀의 무표정아래 그녀가 참고 있을 모욕감과 상실감이 짐작되어 가슴이 아팠다.
"그러게요. 날씨가 참 좋네요."
로디나의 친구 중 하나가 그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모두들 그 말에 동의했고,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당신의 피앙세를 좀 빌려도 될까요?"
"아! 물론입니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분의…"
"어머 감사해요. 그럼 저는 이만."
좀 더 말하게 내버려뒀다간 내 장갑까지 벗기고 맨 손에 입을 맞추려 할 것 같아서 적당히 끊고 오를레아의 팔짱을 꼈다. 양산을 펴서 그녀와 같이 나눠썼다. 뭐라고 그녀에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가만히 있자니 그녀가 말했다.
"마치 새와 같은 남자지?"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벼슬같이 세운 머리며, 목에 주름이며…. 게다가 떠드는 목소리까지. 든 것도 없이 가벼운데 날지도 못하는 점이 더없이 어울리지 않니?"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정혼자를 비웃는 그녀의 말에 웃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세상에 그는 정말로 너무 닭과 닮았다! 웃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그녀의 팔을 꼭 잡은 후 말했다.
“난 네가 더 나은 사람과 만났으면 좋겠어. 네가 진짜 존경할 수 있을만한 남자 말이야… 너 스스로가 그를 비아냥하는 것도 용서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남자랑."
그녀가 장난스런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천사라도 잡아오려고?”
그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여 웃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눈으로 그들에게 사과를 했고, 로드리고 몇이 다가와서 뭐가 그렇게 웃기냐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라시아, 소개 좀 시켜줘. 이런 미인을 어째서 너만 독차지 하는지 모르겠네."
“미인인지는 모르겠는데 몹시 재치있는 사람이기는 해요. 음, 소개해드릴게요.”
최대한 단순하게 그녀를 소개하고, 간단하게 그들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인사를 모두 나누고 난 이후 오를레아가 나를 로디나 몇에게도 소개해 주었다.
쿠디스는 어디에도 끼지 못할 듯 했지만, 그 특유의 무례와 뻔뻔함으로 적당히 말을 트고 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오를레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여학생들이 나를 꺼리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오를레아는 나를 여자아이들의 세상에 들여보내주었고, 나는 그 점이 몹시 고마웠다.
함께 도시락을 열어서 먹기 시작했는데, 예쁜 식기가 있기에 어디 것인지 물어봤더니 주인인 아가씨가 몹시 기뻐하면서 내게 소개를 해주었다.
골목 안에 위치한 작은 골동품 점인데, 가격도 적당하면서 몹시 예쁜 것이 많다는 열렬한 주장에 오를레아와 나는 다음에 그 곳에 들르기로 그녀와 약속까지 했다. 이후로 자연스럽게 티세트에 대한 열렬한 토론이 시작되어서, 로드리고들은 또 시작이야! 라는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여자애들은 대체 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져?”
잉그럼의 질색하는 한 마디에 다른 로드리고들 또한 뭐라고 말은 못했는데 약간 한심하다, 라는 얼굴을 했다. 나는 입을 삐뚜름하게 만들면서 말했다.
“글쎄요, 권투 경기 보러 가고 싶어서 기말 고사 내내 우는 소리 했던 분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의미가 없는 소리가 있을까 싶은데요.”
“그건 다르잖아! 권투는 야, 하면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보고 있으면 막, 짜릿해지면서….”
“티세트 사는 것도 짜릿해요.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언제나 즐거운 걸요?”
내 시큰둥한 반응에 남자들이 좀 뻘쭘한 얼굴을 했다. 내게 골동품 가게를 추천해 준 아가씨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 많이 쓴다고 비난할 거면, 말해주겠는데요, 본인들도 엄청나게 유명한 권투가가 둘이 붙는 경기 1등석이 있으면 어떻게든 볼 거잖아요? 돈 쓰면서?”
그 말에 남자들은 단체로 입을 다물었고, 나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나저나 이 스푼 너무 귀여워요! 데이지 꽃도 새겨져 있고.”
“꺄, 제 거예요. 엄청 고민하다가 샀어요! 다른 세트랑 어우러져야 더 귀엽잖아요, 그래서….”
남자들은 포기한 얼굴로 본인들이 관심이 있는 얘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쿠디스가 우리의 대화에 급작스럽게 끼어들더니 자신의 식기세트가 얼마나 고급이고, 비싼 것인지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하는데. 입을 닥칠 줄 모르는 자에게 닥치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 죽도록 아쉬웠다.
나는 그를 ‘견디고 있는’ 소중한 친구를 부르며 작게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돼지 목에다, 아니 닭의 목에다 걸어줄수는 없는 법이지.
"오를레아."
"왜?"
"네가 원한다면 저 가금류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어."
그녀가 입을 살짝 벌리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도와줄게.”
그녀가 비밀스럽게 읊조렸다.
“아버지가 빚을 졌어. 그건 그러니, 아버지의 몫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지금은 체념하고 있어, 라시아. 도와줄 필요는 없어.”
나는 빚을 알았다. 그녀가 어떤 과정으로 그의 곁에서 머물러야하는 지, 대충은 알 것 같았지만… 아버지의 빚을 그녀가 이런 식으로 갚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했을 뻔한 길을, 내 친구가 가게 할 수는 없다.
“오를레아,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어.”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물색 눈동자가 나를 몹시 처연하게 비추고 있었고, 나는 몹시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한테 지금 나는, 기회를 보여주고 있는 거야.”
그녀가 나를 홀린 것 같이 바라보다가 똑바로 앞을 보았다. 그 때 운명적으로, 어리석고 멍청하고 쓸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남자가 약간 비웃듯이 오를레아를 바라봤다.
그는 시종일관 아름답지만 쓸모없다- 혹은 미모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실제로 오를레아의 면전에서 그는 자신의 약혼녀를 낮추고 로디나의 어떤 여성을 찬양하기도 했다.
“내가 너한테 큰 빚을 지겠구나.”
그 말에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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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오를레아 약혼 파토내기 프로젝트.
그나저나 전 치킨을 좋아합니다. 닭은 사랑입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