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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아-43화 (43/113)

43화

“당연하지. 뭘 이렇게 많이 들고 와. 팔 안 떨어졌어?”

그가 손을 뻗어서 내 짐을 들어주면서 문을 잡아서 나를 들여보내주었다. 들어가서 문을 잡고 아드린 양과 데릭, 그리고 록진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문들 닫았다. 세 명이 차례로 넓은 방으로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가서 물었다. 그래도 손님인데.

"차 한 잔 마실래요?"

내가 묻자, 데릭이 내 책을 탁자위에 내려놓으면서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하고 아드린양을 상대해줬다. 록진이 내 가방과 책을 내려놓고는 자연스럽게 내 뒤로 왔다.

"저는 민트티가 좋습니다."

어쩌라고. 그를 살짝 흘겨봤지만, 저기 있던데요. 하고 그는 천연덕스럽게 찬장을 가리켰다. 일단 넘어가자. 어깨를 으쓱하고 데릭은? 이라고 묻자 데릭이 아 난 홍차. 라고 대답했다.

"아드린 양도 홍차면 되나요?"

"예…"

그녀는 고개를 다시 살짝 숙이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도 사실 이해가 된다.

평민 어머니가 매일 귀족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공손하게 대하는 것을 봐왔고, 아마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사람들을 동급으로 대하라니 황송하고 묘한 기분이 들겠지. 그녀의 문제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오지랖을 부릴 여유가 나한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친절할 수는 있겠지.

"우유 넣으세요, 데릭?"

"아니, 설탕만 부탁할게. 아드린 양은?"

"저는…"

“편하게 말해요.”

“…그, 그러면 우유를.”

“잘 됐네요. 그럼, 저는 차를 타올게요. 부디 편하게 계세요.”

차를 타려면 부엌으로 가야해서 머리를 넘기면서 느긋하게 부엌 쪽으로 들어갔다. 보통 차나 음료수를 보관하는 용도로밖에 안 쓰기 때문에 말끔하기 그지없었다.

로디나 관은 부엌이 굉장히 크다는 소리가 있던데… 하긴 뭐 커서 뭐하겠어. 따라오는 록진이 좀 귀찮긴 했지만, 저 둘이 있는데 이 사람이 있는 것도 애매한 일이라서 그냥 내버려뒀다.

"저는 설탕만 넣으시면 됩니다."

록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당연히 민트티에 설탕밖에 안 넣지, 내가 우유라도 넣을까봐 싶어서 입을 삐죽이려다가 문득 든 생각에 그에게 물었다.

"지금 장난치는 것 맞죠?"

"이제 알아채셨습니까."

그러더니 그가 높이 있는 찬장에서 손쉽게 홍차 재료와 다기세트를 내려주었다. 저래서 미워할 수도 없고.

"민트티도 꺼내세요. 타드릴게요. 근데 맛 없어도 난 몰라요."

그러자 그가 높은 찬장 왼쪽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은 찻잎을 꺼냈다. 주전자를 올리고 불을 넣었다.

록진은 이 마법으로 충전되어 사용하는 화덕을 볼 때마다 신기해했다. 본인이야 아무 표정 없었지만, 켜거나 끌 때마다 무척 심각하게 이 화덕을 바라보곤 했던 것이다.

이 키가 멀대같이 큰 무표정한 남자는 이상한 부분에서 귀엽다니까.

"저 아가씨는 원래 성품이 저러신 겁니까."

"누구요? 아, 아드린 양이요?"

내가 주전가가 끓는지 눈대중으로 확인하며 다기세트를 씻어서 깨끗하게 단장하며 되묻자, 그는 예. 하고 대답했다.

"아마 그런 것 같아요. 평민으로 자랐는데 저 정도 예의면 훌륭한 편이에요, 그래도. 아까 인사할 때도 손에 뭔가 안 들고 있었으면 우아하기 그지없었을걸요. 조심성만 있으면 훌륭한 아가씨가 될 거예요."

소심한 성격이랑 말 더듬는 거랑 깜짝깜짝 놀라는 것만 좀 고치면… 그리고 사람 얼굴도 좀 똑바로 보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좀 가지고.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다기세트를 정리하고 있자니, 그가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왜요? 록진은 별로였어요?"

그러자 그가 내가 다기를 다듬는 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레이디께서 저런 성격이셨으면 좀 귀여우셨을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미안하다 안 귀여운 성격이라. 속으로 이를 갈며 웃고는 그랬어요? 라고 물었다.

"네. 보호해주는 맛이 나지 않습니까. 엄청 세심하게 신경 써주실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막상 보니…"

록진이 등을 벽에 기대고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귀족의 몸가짐은 이유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술이 나서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안 귀여운 여자다 이거죠?"

그러자 그가 갑자기 내 쪽으로 오더니 살짝 앞뒤를 살피고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안 짜증나는 여자라는 소립니다. …이건 비밀인데 들켰네요."

그가 개구쟁이같은 눈웃음을 치더니,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서 떨어졌다.

"하…"

웃어야할지 어째야 할지 싶어서 한참 망설이다가, 어쩐지 웃겨서 웃어버렸다. 삐익- 하고 주전자에서 소리가 나서 웃음을 멈추고 주전자를 챙기려 일어서려 했더니, 록진이 손짓으로 막았다. 옆의 행주를 손잡이에 감싸더니 그가 주전자를 들고 내게 물었다.

"어디다가 따르면 됩니까?"

웃으면서 티세트의 주전자를 가리키자, 그가 물을 부어줬다. 다시 주전자를 놓으러 화덕에 간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화덕의 불을 끄는 버튼을 눌렀다. 불이 꺼지자마자 신기한지 다시 키려고 하기에 내가 웃어버리자, 그는 약간 무안한 표정을 짓더니 허리를 피다 위 찬장에 머리를 부딪혔다.

"어머! 괘, 괜찮아요, 록진? 아, 어떻게 해…큭. "

웃겨서 어쩌질 못하고 그에게 다가가자, 록진은 그 특유의 무표정으로 허리를 숙인 채 천천히 화덕에서 물러났다.

"아가씨는 안 귀엽습니다."

결국 그 말에 내가 식탁에 엎드려 웃고 있자니, 데릭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차를 끓이러 왔니, 재배하러… 너 뭐해?"

“아 데릭. 차는 다 됐어요.. 록진, 아니 라젠이 저기 찬장에 머리가 부딪혀서… 이 사람 진심으로 가끔 멍청해요…크큭.”

그는 묘한 표정으로 자신보다 7cm는 큰,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남자를 보더니 말했다.

“아, 그러냐. 그보다 너 시드랑 광장에서 싸웠다면서?”

“…어디서 들으셨어요?”

당황해서 얼굴이 절로 굳어졌다. 도대체 어디서 이걸 사람들이 전부 알아내는 거지.

“시드가.”

“아.”

데릭이 얼굴을 슬쩍 긁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오지랖이라 좀 부끄럽기도 한데…. 어쨌든 난 너랑도 알고 시드의 친한 선배기도 하니까. …시드한테 너무 기회를 안 주는 거 아닌가 해서.”

“기회요?”

“…너 좋다는 애한테 그렇게 매섭게 굴 필요는 없지 않았니?”.

순간 입이 안 떨어졌다. 모르고 하시는 말이겠지. 내가… 잘못했다는 애를 몰아세운 것도 있고. 그런데 이 순간, 어째서 이렇게 이 사람 말이… 다 맞는데, 듣기 싫을까. 어째서 이렇게 나한테만 섭섭하게 구는 것처럼 느껴질까. 스스로가 여유가 없는 게 느껴져서 부끄럽기도 하고, 변명을 해야겠다고 결심도 들었는데,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는….”

“다 알지도 못하면서 한 쪽 편만 드는 것을 선심 쓰는 듯이 말하는 것은, 어디의 예의입니까.”

내 앞에 보이는 등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서 줄 필요가 없는 일이었는데, 록진의 등 뒤에서 바보같이 서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있는 게 약간 한심할지언정 마음이 편했다.

“…자네가 끼어들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날카로운 기세에 끼어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뭐라 말을 하려다가도 그냥 여기 숨어 있으면 다 해결 될 것 같아서 움직이기 싫기도 했다,

“제 지킴에는 이런 것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끼어들고 말고는,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닙니다.”

“한 쪽 편만 들지 않았어.”

조금만 잘못하면 싸우겠다. 아까까지의 억울함이나, 화 같은 것이 이유도 모르고 누그러져버렸다. 피로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까까지의 무작정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져서 꽤 침착하게 말했다.

“뜻은 알겠지만… 시드가 저한테 잘못한 게 있어요.”

말하는 나를 배려해주듯이 그제서야 록진이 내 시야를 터주었다. 나는 데릭을 올려다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시드가 저를 좋아하기 때문에 제게 뭔가 잘못을 했을 때, 모든 걸 이해해야 하나요?”

그러자 데릭은 입을 다물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데릭의 눈을 말갛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애가… 많이 틀린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러셨던 거 알 것 같아요. 하지만 데릭.”

주전자에 그려진 화려한 꽃무늬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도 그런 사람이지 않나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차를 정리해서 쟁반에 담았다. 데릭과 록진은 아무 말 없이 없었고, 내가 쟁반을 들자마자 록진이 그 쟁반을 받아들고는 데릭에게 말했다.

“하실 말이 있으면 지금 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록진이 쟁반을 받아들고 부엌을 나갔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고개를 비뚤게 하고 있자니 데릭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미안하다.”

“아니에요.”

“널 본의 아니게 섭섭하게 했다는 점에 미안해. 그런데 난 진짜 널 생각해서 한 말이란 점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단 한 번의 잘못으로 친구를 놓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니. 너한테도, 시드한테도.”

고개를 숙이자 데릭이 약간 머뭇거리면서 내 머리에 손을 올려서 어설프게 쓱쓱 넘겨줬다.

“시드가 잘못한 거 진짜 많지. 멋대로 로드리고에 널 좋아한다고 말하고, 거절했는데도 자기 감정 제대로 정리 못 하고….”

그냥 고개를 숙이고, 서있기만 했다. 그제서야 내 마음 한 구석의 오기가 보였다. 어린 내 마음도, 나를 도와주려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몰아세운 나의 비틀린 모습에 저절로 부끄러워졌다.

“그렇지만 그래도 네 친군데, 얘기라도 한 번 길게 들어봐 주는 게 예의 아닐까 해, 나는.”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도… 죄송해요. 마음대로 오해해서.”

“내가 말을 잘못한 건 네 탓이 아니야. 오해하게 만든 내 잘못이기도 해. …미안하다. 어쨌거나 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데릭이 머뭇거리다가 안아주고는 말했다.

“우는 거 아니지?”

“안 울어요, 울기는….”

“…아드린 양은요?”

"방금 웬델이 왔는데, 그 녀석 친구분이라 둘이서 얘기하게 내버려뒀어."

"아… 웬델 친구였구나."

“그럼 난 나가 있을게.”

그가 날 배려해서 먼저 나갔고 나는 결국 부엌에 딸린 의자에 주저앉았다. 뭐가 옳았던 걸까….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몹시도 부끄러운 것은 결국 변하지 않아서 엎드려서 팔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누군가가 내 앞에 앉기에 고개를 들었더니 록진이었다.

“…부끄러워서 미칠 것 같아요.”

그가 차를 내 쪽으로 밀더니 말했다.

“그럴 만한 일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는 생각해요. 그런데, 옹졸했던 것도 사실이라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파묻자 록진이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사람이 옹졸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나면 사람은 진심이 아닌 말을 내뱉기도 하고, 혹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가 엄격한 얼굴로 차를 다시 내게 권했다. 나는 뜨거운 차를 입에 댔다. 스스로가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는 것은 몹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라시아. 당신은 고작 17살입니다. 당신은 더 많이 상처 입어도 되고, 또 실수해야 합니다.”

마치 이리하가 했던 말과 비슷했다. 더 많이 단단해지고, 더 많이… 그 말에 우연히도 오늘 걸고 온 목걸이를 나도 모르게 매만졌다. 록진은 그런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시는 겁니다, 아가씨. 완벽하게는 자랄 수 없겠지만, 배우는 대로 당신은 훌륭하게 자라실 거예요.”

그가 자상하게 웃으면서 내 한 쪽 손을 꽉 잡아주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그렇게 서럽고 부끄러울 때 가려드릴테니까, 안심하세요.”

사랑스러운 다정함에 눈물을 겨우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건지 몰랐다.

그저 이 때 하필 내가 여기에 있어서 잘해주는 걸까. 내가 아니어도 이렇게 이 사람은 잘해줄까. 이 사람에게 만약 연인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게 이 사람은 또 얼마나 자상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애인이 될 것도 아닌데 그런 건 왜 궁금한가 싶어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준비가 다 되셨으면, 아드린 양을 만나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팔을 꼭 잡고 부엌에서 나왔다. 그래도 언젠가 생길 그의 연인에 대한 부러움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이토록 어른스럽고 강하게 뒤를 지켜주는 사람이니까, 그의 상대자는 분명히 안심하고 그와 함께 할 수 있겠지…. 이런 오빠가 있었으면, 아니면 이런 아빠가 있었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부럽고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내 걸음을 좇았다.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자 웬델과 아드린 양, 그리고 데릭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반가운 얼굴을 했다.

"오랜만인것 같다, 굉장히."

"그러게요. 개강파티 후로 제대로 뵌 적 없는 것 같아요."

"아드린양이랑 친구지? 오늘 지나가다 내가 실수를 해서 책을 모두 엎었거든. 죄송해서 이리로 모셨어."

"아, 아니에요!! 제가 잘못해서 그런걸요."

얘기를 하다보니 이 사람이 정말로 귀족의 예에만 어설플 뿐,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과 작고 귀여운 동물 같다는 생각에 기분도 상당히 나아졌다. 시간이 좀 흘러 데릭이 수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와 나머지들은 그를 배웅했다.

그제서야 슬슬 책을 분류해야겠어서 아드린과 함께 책 정리를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거, 아드린 양이 모두 읽는 건가요?"

내가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움찔, 하더니 네, 라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알겠다고 웃은 나는 아무 말 없이 정리만 하다가 말했다.

"저는 한 10과목 정도 듣는데, 아드린 양은 몇 과목 정도를 들어요?"

"굉장히 많이 들으시네요. 저는 한, 6과목… 쯤 될까요? 평범해요."

"그래요? 어떤 걸 듣는데요?"

차분하게 내 책을 빼서 정리하면서 그녀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음, 일단 귀족의 소양 계열 과목은 전부 듣고…그리고 일반 사회, 법, 토론 수업이랑 문화사요."

"그렇구나…. 그럼 정령술이랑 마법이론학, 심화 책이랑 검술 기본, 작위서 정리론, 외교기본서, 경제랑 상권, 지리기본서, 문학 일반은 필요 없는 책이네요?"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웬델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데이, 설마."

나는 내 책을 전부 따로 정리하고, 그녀의 책도 똑바로 쌓아올려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에트왈인 코라조차도 상계의 딸이랍시고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데, 그들이 이런 식으로 아드린 양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는 방식에 딱히 토를 달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나는 그녀를 무감하게 바라보았다.

"이게 당신이 당신을 취급하는 방법인가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존중하는 거였다. 가끔 지나치게 내가 스스로를 소중히하고 자기 방어적이라도, 지나치기 때문에 아예 그 가치를 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때문에 많이 비교당한 사람이리라.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아래에, 과거에 붙잡혀서 지금의 당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너무 많이 포기하고 있지 않나요?”

아드린 양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떨어지지 않는 입을 조심스럽게 떼면서 말했다.

“내가 해 줄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를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다음에 봤을 때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울 것 같아서 나는 조심스럽게 휴게실 쪽으로 록진과 자리를 옮겼다. 본의 아니게 갇힌 상황에서 피로가 몰려와서 나는 자야겠다며 소파에 담요를 들고 가 앉았다.

"다른 분들 앞에서는 저를 라젠이라고 부르시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그의 뜬금 없는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 했다.

"제가 그랬어요? 어… 록진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라젠이라고 하길래 그렇게 했나봐요. …앞으로는 록진이라고 할까요?"

"아뇨, 그렇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왜요, 고향의 이름은 특별해요?"

"예, 특별하죠."

"그러면 왜 저는 부르게 해주는 건데요?"

그러자 록진이 휴게실 문을 닫아서 불을 꺼주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귀여우니까요."

응? 귀가 잘못 됐나. 너무 놀라서 숨쉬는 걸 까먹고 있다가 힉, 하고 소리가 났다. 딸꾹질이 나려는 걸 겨우 참으니 록진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믿으셨습니까."

"이…!!! 자꾸 이런 식으로 할 거예요?!!"

"네. 이럴 겁니다."

아, 진짜! 성질이 나서 담요를 신경질 적으로 덮으면서 한숨을 팍, 내쉬자 록진이 조용히 다가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쓱쓱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귀엽다는 건 진짭니다.”

이것도 농담이지! 그렇게 화를 내면서 그를 바라봤는데, 어둠에 적응되어서 그런가… 그가 작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잘 보였다. 평소에 잘 짓는 장난기가 덕지덕지 묻은 그런 악동 같은 미소가 아닌, 그냥 말 그대로 정말, '귀여워'라고 적혀있는 듯한 미소를. 순식간에 소녀가 된 기분에 얼굴을 숙이고 말았다.

"…혹시 얼굴 빨개지셨으면 고개 좀 들어보십시오."

들까보냐, 하고 오기로 담요에 얼굴을 파묻자 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자꾸 툭, 툭, 치는 거에 욱해서 고개를 확, 들면서 외쳤다.

"자요! 자요!!!"

이젠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울컥해서 고개를 막 쳐들고 그에게 얼굴을 보였다. 그가 그 특유의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부분이 귀여우시다니까요. 안 그럴 것 같으시면서."

이가 절로 갈리는구나아….

============================ 작품 후기 ============================

'ㅅ' 자다 이상하게 깨서 걍.. 업뎃 또 합니다...

록진과도 급작스럽게 이어지는 거 같았져 리메 전에서는.

그래서 이것도 차근차근.

록진의 어른스러움, 지켜주는 다정함, 그런 게 라시아는 처음이라 너무너무 설레고 좋아요. 어른의 매력... 존좋.

이리하는 넘 섹도시발이라 부담이고.. 시드는 넘 친구.

그리고 록진은 다정하고 자상하져. 소나무 같은 남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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