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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아-36화 (36/113)

36화

사람의 감정이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도무지 이렇게나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노릇이었다. 허무하게도 누구의 마음이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데, 그걸 원망할 상대 또한 아무도 없었다.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는 게 오히려 모두에게 나은 일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저택으로 놀러 온 코라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그런 생각을 하고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고민해봤자 바뀔 일도 없는데 혼자 심각하게 있을 필요도 없다.

왜 심각한 척 하냐고 놀리는 코라에게 개강 파티에 뭘 입을지 모르겠어서 고민이라고 대충 둘러댔는데, 코라에게는 이게 굉장히 재미있는 일처럼 느껴졌던지 엄청나게 신이 나서는 내 옷장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랑 옷을 고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그녀의 제안에 맞춰서 이 옷 저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둘이서 인형 놀이 하듯이 옷에 장신구를 잔뜩 꺼내서 놀다보니 자연히 방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차를 들여오던 애니가 질겁하고 우리를 말려서 어쩔 수 없이 인형 놀이가 끝났다.

한참 재미있었는데, 라고 코라는 약간 불만스러운 듯 했지만 사실 지치기도 지쳤고, 우리 뒤치다꺼리를 할 사람들 생각을 하자면 이 쯤 하는 게 맞는 거라 방에서 나와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 앉아서 하녀가 내주는 차를 마시다가 순간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말했다.

“그러고보니 다니엘이랑 아비게일은 정식 약혼이 언제야?"

"아마 신년파티 전에는 할 것 같은데, 정확히는 아직 몰라. 아느완에 가서 해야지, 알트라에서는 좀 무리니까."

"알트라에서 하면 진짜 재미는 있을텐데."

"아무래도 정치적 결합에 좀 더 의미가 있으니까."

신년파티는 대개 12월 말이나 1월 초에 각 고위 귀족의 저택에서 진행되는데, 신년이나 연말에 어떤 파티에 참여하는 지를 보고 사람들이 그 가문의 앞으로의 행보를 짐작하므로 다들 신중하게 참석하는 편이다. 아마 이번에는 나도 아느완으로 불려가 샤펜의 예비 후계자로서의 발걸음을 디디겠지.

"에, 그럼 우리 못 만나는 거야, 신년에는?"

울상을 짓는 얼굴에 약간 당황했다. 캘리가는 아무래도 샤펜에 파티에 정식 초대되는 일이 드물다.

샤펜의 경우 다른 전통 있는 상회와 연이 닿아있는 데다 관심분야가 그녀의 집안이 잘 하는 분야가 아니어서 굳이 캘리들을 초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정치에 참여하고 귀족이 되는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캘리가는 황제, 황녀파 사이에서 가장 단단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세력의 주축인 샤펜이 열리는 파티, 즉 모든 귀족들이 모일 수 있는 명분이 될 파티에 참여할 필요성이 있었다. 내 위치가 샤펜에서 몹시 애매한 것은 둘째치고 내가 초대장을 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시원하게 너는 내가 불러주겠다고 말하기가 참 애매했다.

"왜 못 만나. 따로 만나면 되지."

내 애매한 말에 그녀가 담담하게 차를 마시면서 말을 좀 고르는 듯 했다. 친구지만 이럴 때에는 더 없이 멀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녀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겠지. 마음이 맞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소중한 친구라도 집안과 가문의 상황에 따라 이런 식으로 초대해 달라는 말을 하고, 또 그렇게 거절해야한다는 사실에 나 또한 조심스럽게 차를 마셨다. 어쩌면 내가 예민하게 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차피 앨번 쪽으로 초대장이 가지 않으려나?"

"아, 하긴. 파트너 동반이면 뭐 상관없겠다. …그보다 황자 측에서 아비게일이랑 다니엘 약혼 때문에 말이 많던데."

"아무래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기에는 황자파가 좀 더 유리하지, 결혼하면 빼도 박도 못하니까. 그래도 황녀 전하 쪽 덕분에 약혼이 남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상관없지 않으려나."

"뭐 황녀전하 입장에서야 굳이 위험을 남겨둘 필요는 없으니까. 두 분 사이도 애매한데."

황자와 황녀는 오르제국의 비사 못지않은 성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황자인 페이와 황녀인 페레일라는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호를 받고 자랐는데, 서거한 전 황후는 상당한 권력욕을 가진 동시에 황자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유명했다.

쌍둥이라 닮은 부분이 상당한 두 사람인데도 그 애정이 지나치게 황자 쪽으로 치우쳐져서 심지어는 어린 황녀의 방에 암살자를 보내곤 했고, 나중에 이것이 들켜서 결국 황후는 비공식적으로는 처형 되었고, 공식적으로는 병으로 서거했다. 이런 상황이니,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기사. 그러고보니 너 파트너 시드더라?"

"응. 나 아무도 신청을 안 해줘서."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나 너한테 보냈다는 사람 꽤 알아."

그런 것 치고는 내 손으로 들어온 게 없었다. 이상한 일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뒷처리를 끝내고 우리에게 필요한 거 없으시냐 물으러 온 애니에게 물었다.

"나한테 혹시 개강파티 같이 가자고 편지 온 거 있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짐작 가는 게 있긴 해요."

"응? 뭔데?"

"제프리 집사가 아가씨한테 오는 남자 이름으로 된 편지는 전부 따로 가져가던데요."

내가 이 집사 다리몽둥이를….

"지금 당장 제프리한테 가서, 그거 다 안 원래대로 안 돌려놓으면 앞으로 내가 만나는 여자 하나하나를 찾아가서 헤어지라고 으름장 놓을 거라고 말해."

애니가 웃음을 참는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고 물러났다.

"너희 집사 바람둥이라고 그러고보니 우리 집 하녀들한테도 소문이 짜하더라."

"…미안. 본의 아니게."

"네가 미안할 건 또 뭐야. 저런 사람 하나 밑에 있으면 재밌지."

"자기는 바람둥이면서 나한테 하는 건 할아버지가 따로 없다니까. 꼬장꼬장하기가 아주."

그 정도냐며 웃는 코라를 앞에 두고 문득 그를 처음 봤을 때 내가 아는 사람을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할아버지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생각이 났다. …그래. 제프리는 이상하게 나를 키웠던 집사 할아버지와 느낌이 비슷했다. 내 집사 할아버지는 전혀 바람둥이가 아닌데도.

"그러고보니 이번 학기 시간표도 모르네. 시간표 어떻게 돼?"

"맞아. 겹치는 지 궁금했는데…. 잠시만."

일단 사람을 앞에 두고 할 생각도 아니고,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어서 나는 그 생각을 머리 속 구석으로 밀어뒀다.

***

개강파티가 시작되는 시각 쯤에 아비게일을 데리러 다니엘이 저택에 도착했다. 나는 시드와 사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홀 앞에서 만나기로 해서 혼자 말을 타고 가려고 했는데 기껏 차려입고 말을 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다니엘이 말려서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타기로 한 마차에 타고 시드를 만나기로 한 곳으로 향했다.

그냥 지나가는 마차를 잡으면 되는데, 뭐하러…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사이가 그리 좋지도 않은 걸 티내는 게 맞는 것 같지도 않아서 얌전히 불편을 감수했다. 하지만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내렸을 떄 이미 몹시 피곤해졌다.

먼저 아비게일과 다니엘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홀 앞에서 한 5~10분정도 기다렸을까, 시드가 멀리서 걸어오다가 내가 이미 도착해있는 걸 보고 놀라서 뛰어오다시피 했다. 덩달아 그 쪽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뭐하러 뛰어와, 걸어와도 되는데!"

내 앞에 서자마자 아니, 그냥… 이러더니 빤하게 사람을 쳐다봤다. 얼굴에 뭐 묻었나 싶어서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지려는데 시드가 말했다.

"예쁘네."

얘는 참 사람 민망해질 말을 잘 한다. 그게 천성인지 날 좋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날 정도는 의례 하는 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눈을 도르륵 굴린 후에 가볍게 대답했다.

"너도 멋있어."

웬일로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은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얘가 이런 것도 입을 줄 아는구나. 시드가 내민 팔을 잡으면서 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데,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오늘 많이 들을건데, 뭐."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나도 마음이 들떴다. 일단 오늘의 호스티스가 학생회장이니까 록산느에게 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에 맞는 거라 록산느한테 가자고 하니 시드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앞에 인사를 하려고 모인 사람이 원체 많아서 사실 언제라도 인사를 할 수 있겠나 싶었지만 시도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얌전히 걸어갔더니 사람들이 슬쩍 슬쩍 길을 비켰다. …뭐지.

"그럼 이제 아예 후계자는 라시아로 정해진 건가?"

"오래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생기네. 코르티잔 딸이 정식 후계자 자리를 넘보고."

부채 뒤로 숨어서, 그렇게 비웃고 있었다. 걸어가는 길 주변에서 사람을 노골적으로 비웃고 있는 자들이 목소리를 죽여서 나를 공격했다.

이게 내 정식 데뷔의 처음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꿈에 들떴거나, 멍청해졌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얼굴은 반반하니 샤펜가 얼굴마담 정도는 할 수 있겠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저 피에 대고 절을 해야 한다니, 굴욕도 그런 굴욕이 없네."

"그보다 제대로 쟤가 제대로 일은 할 수 있겠어?"

남자 여럿이 그렇게 떠들더니 웃었다. 그래, 나도 당신들이 내게 절을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자꾸 멈춰 울컥하는 성질을 드러내려하는 시드의 팔뚝을 굳게 잡고 말했다.

"시드."

"…왜."

"네 일은 저것들에게 집중하는 게 아냐."

천천히 눈을 깜빡거리면서 앞만을 쳐다봤다. 나는 예의를 지켜서 그녀에게 인사해야했다. 그건 내게 주어진 일이자 벗어날 수 없는 임무이기도 했다…. 분명히 내가 샤펜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이것은 모두 예정된 일이었으므로.

"네 일은 나를 록산느 앞으로 데려가는 거야."

그제서야 시선을 돌려서 시드를 볼 용기가 생겼다. 시드의 연청색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나는 조용히, 하지만 보다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볼 필요도, 신경 쓸 필요도 없어… 그냥 나를 저기로 데려가면 돼."

나를 피해서 길을 터주는 사람들은 한 편으로는 수치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쾌감이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전부 피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내게 부과된 이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고, 그 중요성을 아는 것만으로 그들은 중요한 사람이다.

"록산느."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침착하고, 그러나 큰 목소리로 나는 록산느의 이름을 불렀다. 아름답게 치장한 그녀에게 절을 하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기묘한 침묵이 돌기에 오히려 이상한 고양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훌륭한 파티를 주최해주셔서 감사해요."

시류를 잘 읽는데다 본디 훌륭한 상인은 귀한 고객을 상대할 때의 예의를 아는 법이라, 록산느는 지금까지의 복잡한 소문들을 못 들은 척 손을 뻗어 내 손을 쥐면서 말했다.

"잘 지냈니, 라시아? 얼굴이 좋아보이는 건 여행 때문이려나?"

"저야 늘 그렇죠. 얼굴이 좋아보이는 건 록산느도 마찬가지인데요. 평소의 편안한 모습도 매력이 있었지만, 이렇게 꾸민 모습을 보니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부시네요."

입에 발린 말이 몇 번 왔다갔다 했다. 나는 보이지도 않냐며 시드가 투덜거리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옆에 서 있는 마사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사는 눈꼬리를 약간 파르르 떨더니 곧 내게 인사를 했다.

"제국에서의 여행은 즐거웠나보구나."

"저로서는 신기한 일이 많았어요. 멋진 나라에서 살고 계시더라고요."

"오르안님과는 별 일 없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네가 뵈었다니, 걱정이 되어서 말이야."

그 말에 약간 긴장이 풀렸던 공기가 팽팽하게 조여졌다. 기껏 분위기를 풀어놨더니, 이게 나한테 싸움을 거네. 눈을 살짝 치켜뜨다가 별 이야기 듣지 않은 것처럼 웃었다. 그래, 내 엄마가 코르티잔이라 오르안을 더러운 방식으로 꼬여낼까봐 걱정 된다 이거지.

"좋은 분이시던걸요? 별 일이라니, 무슨 일을 상상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저도 이리하께서도, 품격 있는 사람들이라 재미있었답니다."

그러고 노골적으로 비웃어줬다. 귀하게 큰 아가씨가,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정말. 싸늘한 침묵 사이로 붉어지는 마사의 얼굴이 유난히 잘 보였다. 몸을 아예 록산느 쪽으로 돌려 외면하고는 다시 한 번 인사했다.

"더 이상 록산느의 시간을 뺏으면 그것 또한 큰 실례겠네요, 다음에 또."

"찾아줘서 나야말로 영광이었어, 미래의 샤펜. 다음에 꼭 제국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렴. 난 흔한 이야기에는 흥미를 가지지 않거든."

록산느의 다정하고 정치적인 발언을 끝으로, 나는 그녀에게서 몸을 돌려서 시드와 함께 적당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드는 괜찮냐고 내게 물었지만, 나는 화가 날 지언정 괜찮았다.

"이겼으니까 됐어. 좀 예상치 못하긴 했지만, 언제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기도 했고."

"뭔가 마실래?"

"지금 마시면 화나서 마시는 거라고 생각할거야. 좀 참았다 마실래."

귀걸이를 매만지면서 한숨을 꾹 참고 있자니 시드가 말했다.

"…너 진짜 예뻐."

얘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래. 저절로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어이없다는 표정이 지어졌다. 내 표정에 시드가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그냥, 예쁘다고…"

그 머뭇거리는 수줍은 얼굴에 나려던 화도 나지 않았다. 이게 뭐 얼마나 대단한 말이라고 예쁘단 말에 화가 풀리나. 괜히 만지작거리던 귀걸이에서 손을 떼고 얌전히 말했다.

"고마워."

"응. 근데 나 그냥 하는 말 아니다."

"그렇다고 한 적도 없는데…"

바보들의 대화도 이것보다 생산적이겠다. 순식간에 괜스레 어색해진 분위기 때문에 치마 자락을 잡았다.

파티장은 어색하지만 착실하게 본래의 분위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시끄럽고 반가운 목소리로 가득 찬 모습에 안심했다.

들어오는 쪽이 좀 시끄럽다 했더니 앨번과 코라, 그리고 애론이며… 대다수의 로드리고들이 어쩐지 왁자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어, 라시아!"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부르는 코라의 목소리에 나는 웃어버렸다. 그녀는 아마 모를 거다.

그녀가 그 잠시, 분위기를 살피지 않고 바로 나를 불러서 얼마나 많은 좋은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주변의 반응이나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헤아리지 않고 그저 단순하게 나를 친구로 받아들여주고, 그리고 지금 그 많은 로드리고들이 내게 일시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해준 게 내게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를.

"이야, 오늘 예쁜데 아가씨!"

애론이 크게 외치면서 다가오는 뒤로 로드리고들이 우르르 내 쪽으로 와서는 인사를 건넸다.

"네가 사온 차 진짜 맛 없어!"

"잘못 타신 거겠죠! 맛있는데."

내 대답에 웬델이 맛 없지 않았냐며 시드에게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흥이다, 싶어 무시하고 코라에게 가서 활짝 웃었다.

"앨번이 이 옷 골라준거죠? 본인이 고른 것보다 훨씬 예쁘네!"

"와, 내가 평소에 고른 게 어때서!"

코라가 소리를 높이자 앨번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고마워. 내 피앙세 예쁘지?"

"제 친구라서 더 예쁜 거 같아요."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앨번이 웃었다.

"애론도 오늘 멋지신데요."

"그치? 너 록산느한테 이미 인사했지?"

"네, 그런데요."

"오늘 기분 어떻든?"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든 좋아하는 사람의 기분을 알아내려고 하는 애론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어깨의 힘이 쭉 풀렸다. 그 말에 시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청 기분 나쁘세요. 선배님 보면 성질 부리실 듯."

"저희도 인사 드리러 가야하는데 같이 가시죠?"

"뭐 하러 너네랑 같이 가! 단 둘이 있을 기횐데!"

도대체 이 인간은 학생회실에서 매일 단둘이 있을 기회나 잡지 뭐하나 싶어서 우리 모두 딱하다는 표정을 했다. 애론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라면서 우는 목소리를 냈다.

저 멀리 회장에서 약간 당혹스러운 얼굴로 걸어오는 다니엘의 모습에 좀 놀랐다. 아비게일은 어디에 두고 오는 거야, 저 사람. 파트너로 온 건 약혼에 대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가문간의 충실한 결합을 증명하는 거였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홀랑 아비게일을 버리고 오다니.

"여긴 왜 오셨어요, 아비게일은요!"

"잠깐 휴게실 있다 온다기에 나도 있다 왔는데… 이상한 소리 들리던데, 괜찮아?"

직접 보지는 않았나보다. 그 말에야 안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꼴을 보이기는 싫었으니까… 겨우 얼굴 표정을 가다듬고 웃으면서 별 일 없었다고 말 하고는 애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더니 다니엘도 딱하다는 표정을 과장되게 짓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애론 선배님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그러니까…"

다들 다시 한 번 애론을 놀렸다. 이런 저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게 끝날 수 있겠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록진이 저택에 찾아와 건네 준 마법도구가 웅, 하고 진동을 시작했다.

…개 목줄도 아니고, 이런 거 울리면 가야한다니 팔자가 확실히 여기 오고 나서 사나워졌어. 파티 끝나고 궁에 가야 하는데, 그러면 시간이 너무 늦지 않을까. 어쨌든 가긴 가야겠지. 최대한 빨리 파티에서 빠져나가야겠다. 그나저나 이 사람 타이밍 좋구나, 그렇게 머릿 속 한 구석에서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 저 좋죠?

빨리 말해봐여 저 좋잖아여! (빤)..는 뭐 답은 정해져있고 독자분들은 코멘트를 못하시니...

저 좋아하는 걸로. ^ㅅ^ 씬난다!

시드가 좀 약화됐는데 이유는 라시아 어장관리 안 하게 하길 위해서입니다...

괜히 여지를 주면 안 될 거 같아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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