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학기의 시작.>
며칠 뒤 내 건강상 무리가 있다고 신관에게 무언의 압박을 준 이리하가 마지막으로 납득을 하고 나서야, 호출기의 용도로 쓰일 목걸이를 받은 후 마법진에 라젠과 올라설 수 있었다. 베노암이었다면 2번 정도의 이동이면 가능했겠지만, 오르의 특성상 마법사가 잘 없었기에 연속으로 몇 번의 마법진으로 이동한 다음에야 겨우 랄캄에 도착했다.
오르제국에서는 이런 마법진의 발동 자체가 드문 일이고, 대개 황족의 명령으로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라서 라젠은 처음 타보는 거라고 했다. 새삼스럽게 이리하가 베푼 호의가 큰 것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많이 고마웠지만, 굳이 그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반응이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랄캄에 도착하자마자 배편을 알아보는 라젠에게 사실 랄캄 구경을 더하고 싶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라젠이 어려웠으므로 뭔가 제의하기 꺼려졌다. 그는 꽤 잘생긴 남자기는 했지만, 말을 걸기에 쉬운 편안한 잘생김이 아니었다.
엄격하고 금욕적인 얼굴에 키도 지나치게 큰데다 꽤 무서운 인상이었고 심지어는 말도 별로 없었다. 결국 저기요 랄캄 구경하고 싶은데, 라는 말이 입에서 쏙 들어갔고, 울며 겨자먹기로 배에 몸을 싣는 수 밖에 없었다.
라젠은 배에서도 철저하게 내 뒤에 섰는데, 노골적으로 호위무사라고 광고하는 모습에 내 숨이 턱턱 막혀올 지경이었다.
결국에 나는 그에게 너무 불편하고 숨막혀서 죽겠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는데,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렇습니까. 라고 말하기만 했을 뿐, 딱히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어서 순간 그의 목을 졸라버릴뻔 했다. 단 둘이 하는 여행인데 이렇게 호응도, 재미도, 농담도 없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꽤 열심히 옆에서 떠들어댔는데도 그의 반응은 무심하기 그지없어서, 한숨밖에 쉬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는 이 남자가 생각보다 반응이 빠른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묘하지만 분명히 표정의 변화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 말을 들은 후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애쓰는게 눈에 보였다. 그냥 여자가 불편한건가.
서서히 내 옆에 섰고, 내가 가끔 실없는 소리를 하면 그렇습니까, 하고 대답하는 횟수도 차곡히 늘었다. 어쩐지 야생동물을 기르는 기분이라 은근한 기쁨이나 뿌듯함도 있어서 어느정도 기분이 풀렸을 때쯤, 갑자기 궁금해져서 내가 요한은 대체 어떤 사람이 취향이예요, 라고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자 취향입니다."
"…네?"
"요한은 여성에게 큰 매력을 못 느낀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그렇다고하는데다 저희 가문에는 이미 대를 이을 큰 형님이 계시니, 뭐 상관이 없어서 저희 쪽에서는 방관하고 있습니다."
그가 너무 담담하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순간 멍하니 있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나한테 전혀 감을 못 잡고 계시네요, 라고 말했던 거구나…
"전 요한이 로리타라거나, 굉장히 변태적인 성욕을 가진 줄 알고 있었는데..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솔직히 어린 소년의 성적 판타지가 되는걸 바라진 않았거든요, 저."
이래뵈도 아직 소녀의 마음인데, 그런 거 정말 되기 싫었다. 안심되는 마음에 안도하자 라젠이 더없이 차분한 말투로 그런 거 되시기엔 무립니다, 라고 말했다.
"…무리요?"
너 지금, 내 자존심을. 내가 웃음을 겨우 만들어내면서 되묻자, 라젠이 말했다.
"아, 레이디 샤펜은 아름다우십니다. 요한에게 성적 판타지가 되기에는 무리라는 말이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레이디는 충분히 아름다우십니다."
몇번이고 앵무새 같이 내가 아름답다고 강조하는 그의 무덤덤한 얼굴과 목소리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람, 은근히 귀엽지 않은가.
"그 정도면 됐어요, 납득했답니다."
푸흐흐흐. 생각보다 이 사람과의 여행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어느새 베노암 제국의 제 1항구, 라벤티아에 도착했다.
"그래도 두번째 타는거라 그런가, 올때 만큼 속이 안 좋고 그렇지는 않네요. 록진은 괜찮아요?"
나는 라젠을 부를때 록진, 혹은 라젠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어떤 호칭을 더 좋아하는지 몰랐기도 했지만,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 딱딱 끊기는 대화는 익숙해지기 정말 힘들군. 싶어서 웃어버리고는 말을 구하러 갔다. 라젠이 생각보다 능숙하게 흥정한 후에 말 두마리를 끌고 왔다. 말에 몇가지 짐을 모두 싣는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제가 말 몰 줄 모르면 어쩌시려고 말을 빌려 오셨어요?"
아차, 하는 얼굴을 빠아안히 바라보자 라젠이 아차,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째 진땀을 흘리는 모양새에 웃으면서 계속 바라보자 점점 더 곤란한 얼굴을 했다.
이상하게 이 남자는 곤란하게 하고 싶고, 괴롭히고 싶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응시하며 눈싸움을 벌리고 있는 와중에 그가 갑자기 다가와서 순식간에 내 허리 부근을 잡고 말 위에 태웠다. 놀라서 그를 바라보니, 그가 말했다.
"타실 줄 모르십니까?"
"…알죠."
"자꾸 저 괴롭히시면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에게 웃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잖아. 귀엽잖아!! 뭐야 이 사람.
"그리고 록진으로 호칭을 통일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아, 그 쪽이 더 좋으시면 그렇게 할게요."
일단은 빠져나가지요, 하면서 그가 자신의 말에 올라타고 말 대여소를 벗어났다. 불편하지만 그가 올린대로 옆으로 앉아서 말 고삐를 잡은 후 그의 옆으로 말은 몬 후에 바로 알트라로 갈까요? 라고 물었다.
"라벤티아에 볼 것이 있으시면 들리셔도 좋습니다만, 웬만하면 바로 알트라에 가는 게 좋으실 듯 합니다. 옆으로 타기 힘드실텐데, 승마 솜씨가 좋으시군요."
"고마워요. 그런데 왜 바로 알트라에 가는 걸 추천하는데요?"
"오르안께서 저와 레이디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걸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어… 하면서 그를 바라봤는데, 그는 딱히 어떤 반응 같은걸 보이는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단순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표정이나 말투가 아닌, 전해지는 느낌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렇군요. 음, 그럼 옷을 갈아입을까요? 저기, 아무래도 말을 오래타야하니까 바지가 편할 것 같아서."
"그럼 마을 쪽으로 한 번 들어가봐야겠군요."
나와 그는 말머리를 마을 안으로 돌려서 여관이나 옷가게에 들리기로 했다. 얼마 쯤 말을 몰고 난 뒤 도시 안의 광장에 가서 일단 말은 잠시 세워두는 곳에 세워두었고 그가 나를 다시 훌쩍 들어서 내려줬다.
"제가 사정이야기를 해 볼테니 갈아입으실 옷을 들고 오시는게 좋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후 작은 가방에 승마복을 담아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꽤 쉽게 옷가게에 사정설명을 했고, 나는 간편한 승마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사실 그냥 여행복으로 입을만한 옷을 하나 사입고 싶었지만, 남자들이 입는 옷을 입었다가 알트라에서 주목받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기에 그냥 승마복을 갖춰서 입었다. 머리도 포니테일로 단순하게 묶고 나오자, 록진이 내게 주스를 건넸다.
"응? 웬 주스예요?"
"가게 주인이 줬습니다. 상냥한 아가씨더군요."
그 말에 그 상냥한 아가씨의 볼이 붉어졌다. 오호라. 하긴 뭐 록진이 좀 무섭고 엄하게 생기긴 했지만 잘생긴 편이기는 했다. 나는 주스를 받아들고 그럼 감사했습니다, 하고 인사한 뒤 가게를 빠져나왔다.
라젠이 내가 입고있던 단촐한 드레스와 작은 가방을 들어주었고, 나는 가벼운 몸으로 라벤티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요기나 하고 가자고 그에게 제의해서 샌드위치를 사서 광장에서 먹고난 이후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나는 라즈베리맛이었고, 그는 녹차맛이었는데 그의 아이스크림이 가게에서 가장 유명한 맛이라기에 한 번 맛보고 싶어서 스푼으로 살짝 떠먹어도 되냐고 물었는데, 그가 정말로 아쉽다는 얼굴을 해서 웃었다. 그렇게 맛있나 싶어서 먹어봤는데, 정말로 맛있었다. 이거 하나 더 사갈까요, 라고 물었더니 그가 얼른 일어나서 나를 안내했다.
말이 없지만 꽤 재밌는 사람이라니까. 아이스크림을 다시 한 번 끝장내고 나서 말에 올라타고 드디어 알트라로 향했다. 몇시간 쯤 말을 타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말을 타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한 후에, 알트라의 성문에 겨우 도착했지만, 그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는데다 록진은 별로 지치지 않았는데, 체력적 한계를 느낀 나 때문에 나까지 말에 태우고 달리다 보니 말 두 마리가 모두 인사불성의 상태였다.
알트라와 라벤티아 사이가 먼데다 그 사이에 도시가 없어서 보통 옆도시 사이에 적용되는 이어타기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마차를 하는 수 없이 대여했고, 샤펜저택에 도착하고 나서는 이미 해가 진지 너무 오래인데다가 마차를 운영해주는 사람조차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여정이 얼마나 길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도착해 나를 집 안까지 데려다 주는 그를 그냥 보내기 미안해 제프리에게 얼른 눈치를 주자, 역시 눈치로는 드래곤 앞에서도 살아돌아올 제프리가 얼른 입을 열었다.
"들어오십시오. 여기까지 아가씨를 모셔온 분인데 그냥 보내기엔 죄송합니다."
웬만하면 거절했을 것이 뻔한 그도 피곤한 것은 사실인지 초대를 받아들였다. 흙먼지며 피곤함으로 찌든 나는 하품을 겨우 참으면서 록진에게 잘자라고 인사한 뒤 방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시녀 하나가 록진을 안내하는 것이 보여서 제프리에게 말했다.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지금 시간에? 많이 번거로우면 그냥 세수만 대충해도 괜찮아요."
"지금 아가씨가 안 씻으시면 그 뒷처리가 더 고생스러우니 그냥 목욕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라젠이라고 했던가요? 저 분도 목욕을 하셔야 할테니까요."
"그럼 부탁해요."
하품을 손으로 가리면서 방에 올라가니 애니가 능숙한 솜씨로 내 시중을 들었다. 내 전용시녀인 그녀가 너무 반가워서 눈물 날 뻔 했다.
그녀를 껴안고 오르제국에서의 내 고행, 남자 시종에 대해 말하려다가 이 이야기가 번져나갈것이 두려운 나머지 그냥 보고 싶었다고만 말하고 말았다. 애니는 쑥쓰러운듯이 웃고는 나를 어색하게 껴안았다.
목욕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는데, 그녀의 손길이 어찌나 시원한지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
오랜만에 개운하게 일찍 일어나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근육통이 좀 있긴했지만, 참을만 한 정도? 그리고 어쩐일인지 아비게일은 저택에 있지 않는다고 해서 더 개운한 것도 있긴 하고. 여러가지 일 때문에 곧 이틀이나 뒤에 온다는데, 개학이 일주일 정도 남은 상황에 의외다 싶었지만, 뭐 사정이 있겠지 하고 말았다.
록진과 아침식사를 한 후에 그를 배웅하고 느긋하게 응접실에 누워서 햇볕이나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제프리의 목소리였다. 웬일이지 싶어서 자세와 몸가짐을 바로 한 후에 들어오라고 했더니, 제프리가 오후의 티세트를 준비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차 마신다고 안 했는데…"
"타지에 있으신다고 이런 것 드실 기회가 없으셨지 않습니까. 스콘이랑 홍차입니다. 취향대로 탔답니다."
제프리가 옆에서 차 시중을 들어줬고, 막상 눈앞에 두니 향이며 색이며, 급격하게 반가워져서 오랜만의 티타임을 즐겼다.
"슬슬 학생들이 돌아오고 있겠네요. 어느 댁의 주인이 자리하셨는지 아는 것 있어요, 제프리?"
"아마 대개의 저택이 주인을 다 찾지 않았을까 합니다. 얼마전에 캘리가 아가씨께서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에드가 가의 도련님께서도 오셨다고 들었고요. 두 분다 아가씨께서 오시면 연락해달라고 하시기에 오늘 아침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그럼 오늘 올지도 모르겠네요."
"괜한 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가씨께서 피곤해보이셔서 오늘 내일 까지는 방문을 자제하셨으면 좋겠다는 연락도 같이 했답니다."
그의 배려가 고마워서 고맙다고 말하고 웃어보였다.
"오르제국에서는 잘 지내셨나요?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재밌었어요. 무척 다른 문화라서 흥미롭기도 했고요… 저 좀 탄것 같지 않아요? 나름대로 열심히 햇볕아래에도 서있고 그랬는데. 혈색이 좋아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좀 타면."
제프리는 애매한 미소를 짓더니 네, 조금 타시기는 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나도 안 탔군. 김이 새버렸다. 하긴 엄마가 북방출신이라서 그런지 내 피부는 잘 타지 않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러니까 더 갖고 싶은 게 탄 피부란 말야.
"레이디 샤펜은 어떻게 지냈나요? 일하면서?"
의례적으로 물으며 스콘을 부숴서 한 입 먹었다. 제프리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씀을 드릴 게 있답니다. 하고 말했다.
"왜요? 무슨 일 있었나요?"
찻잔을 내려놓고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자, 제프리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아비게일 아가씨께 약혼처가 들어왔답니다."
순간, 머리가 비었다.
"… 약혼…처요?"
나는 살짝 떨리는 손을 끌어당겨 무릎위에 얹었다. 설마.
"예. 급작스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하더군요. 약혼파티는 급하게 정해진 거라서 못하겠지만, 약식으로 반지는 나눠가졌다고 합니다. 하기야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에는 공작께서도 의외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어쨌든, 그래서 이제 곧 라시아 아가씨께서는 명실상부 샤펜의 유일무이한 후계자가 되시게 되는 거지요. 아시다시피 황제폐하께서 후계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한 공작가끼리의 혼인을 금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비게일 아가씨의 후계자 자격은 박탈됩니다.
"
"…그거 잘 됐네요. 그래서, 약혼자는… 누군데요?"
애써 미소를 짓고 그에게 물었다. 제프리는 신이난 듯이 내게 말해주었다.
"요르펜 공작가의 장자이신 다니엘 이셀리아 요르펜이시라던데요? 아, 아가씨는 로드리고라 잘 아시는 분이시죠?"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 아는 사이기는 해요."
아비게일은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리디아처럼 되고 싶어했다.
공작위만 아니라면, 그녀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샤펜의 재력과 권위, 그리고 그녀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까지 가질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공작위의 의무와 책임, 권리만 누군가에게로 넘기면 말이다. 넘길 사람이 마땅치 않았지만, 사랑하는 딸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던 샤펜공작은 그의 유일한 사생아를 찾아 헤맸다.
신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나를 가장 완벽한 시기에 찾아내 시궁창에서 건져내주었다. 물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시궁창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노력하면…어쩌면 하급공무원쯤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나는 마법도 검도 다룰줄 모르고 정령술도 쥐뿔도 못하는 계집아이였다.
잘해봤자 창녀였겠지. 아니면 엄마처럼 코르티잔이라던가... 내게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마음이, 인정하지 못하는 더러운 마음이. 아비게일이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추한 마음이 나에게서 끓어올랐다. 소용 없는, 그저 추하기만 한 마음.
삶은 쉬워서는 안 되었다. 내게 이토록 잔혹하게 어려웠으면서, 어째서 너에게는. 어째서 그녀에겐 이다지도 쉬운 것이 될 수 있는지 도무지 나는, 알 수가…
"아가씨?"
"…그건…"
나는 제프리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건, 잘 된 일이네요."
"아가씨, 괜찮으세요?"
나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소용이 없는 일인데, 그런데도…. 나는 아비게일이 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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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후! 별로 안 고쳤더니 금방 쓰네여ㅋㅋㅋㅋㅋㅋㅋ 난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