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시아-31화 (31/113)

31화

내 말에 소년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가 대답했다.

"너만 오페의 구두를 가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더니 시드는 빙그르르 돌더니 구두로 바닥을 탁탁, 하고 두드렸다.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에게 손짓했다. 그가 웃으면서 내게 다가와서,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비쥬하려고 했다.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상태에서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서 너한테 키스하면, 어떻게 할거야?"

내가 미소 짓고는 오른쪽으로 뺨을 돌린 후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네 정강이가 남아나질 않겠지, 아마."

비쥬를 한 후에 내가 그를 한 번 껴안자, 그는 약간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를 함께 껴안아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에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농담 아닌 농담에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

…정리한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그래도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연 우리는, 친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왜 온 거야? 내가 여기 있는 지는 어떻게 알았고?"

"우리 안 만난 지 3주정도 됐나?"

"음.. 아마 그쯤된 것 같은데."

내가 자리에 다시 앉자 그가 내 옆에 앉았다. 왜 말을 돌리지.

"나 안 보고 싶었어?"

그가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고 그저 웃을 뿐, 나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장난으로 한 보고 싶었어. 라는 말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오히려 그가 상처받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웃자 그는 그 정도는 감내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네가 어딨는 지야 뻔하지. 오르제국의 궁에서 네가 머물 곳이 귀빈궁 밖에 더 있겠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온 건데, 어때? 지낼만해?"

"볼거리가 많아서 하루하루 지루할 틈이 없어. 너는?"

"난 사관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기사 수업듣고 있어. 아마 마검사로 남아야하겠지만 그래도 검술 쪽에 욕심이 나니까."

"좋겠네. 재밌어?"

"사실 힘든데… 보람이 있어서 좋아. 즐겁고."

시드가 춥다고 징징대서 내 담요를 나눠서 덮었다. 시드가 머뭇거리다가 가만히 오른손을 들어 내 어깨를 감쌌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시드가 말했다.

"추우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의 꽃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건 친구끼리 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유난을 떠는 걸까. …어떤 게 옳은 걸지 고민하다가 슬쩍 그 손에서 벗어나며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괜찮아, 별로 안 추워. 넌 재능 있으니까 금방 성장할 수 있을거야.”

시드가 어깨에서 빼낸 손으로 담요를 대수롭지 않게 정리했다. 가만히 그를 관찰하고 있는 내가 웃겼다. 결국 이건 그를 믿지 못한다면 끝나지 않을 문제인데.

"물론 그렇지. 게다가 난 드래곤이니까, 사실 마음만 먹으면야…. 하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냥 평범하게 노력 한만큼 결과가 나오는 사람으로 해보려고."

내가 똑똑한 거야 어쩔 수 없지만. 하고 시드가 씨익 웃었다. 드래곤으로서의 말이 나온 뒤에도 침착하려고 했지만, 어째서 내가 기껏 하는 노력들을 이렇게 날려먹는 지에 대해서는 조금 섭섭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잖아, ‘보통’으로 대하려고. 그런데 너는 왜…

“너는 드래곤이야, 사람이야?”

시드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시간이 무척 느리게 느껴졌다. 바람도, 나도, 그도…주변의 모든 것이 느려졌다.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마치 태풍의 눈과 같은 고요함에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내 친구니?”

시드는 연청색, 드래곤일 때나 사람일 때나 변함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섣부른 질문이었을까. 그에게 지나친 강요일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결국 나는 질문을 무르지 못했다.

“난… 그냥 나야. 시드, 인간이고… 네- 친구지.”

"그래?"

"응. 하지만, 네가 드래곤인 나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하늘로 고정되었다. 나는 세운 내 무릎위에 턱을 괴고는 똑같이 하늘을 바라봤다. 새까만 배경 아래 반짝이는 별이 얼마 전 사막에서의 하늘을 떠올리게 했다. 몹시도 아름다운 하늘 아래 우리 둘은 옹기종기, 그렇게 모여 있었다.

“그런 날이 올까?”

그가 약간 웃었다. 행복에 겨워 웃는 얼굴은 분명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위로하지도, 그 슬픔을 아는 척 하지도 않았다.

“난 오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만약 네가 드래곤인 걸, 네가 좋아진 이후에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을만큼 친한 친구가 된 이후에 알았다면…. 그랬다면 모든 게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쩌면 나는 너를 이렇게 격심하게 거부하게 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너는 내 생명을 살려줬는데, 그 대가로 오히려 내게서 이렇게나 멀어지게 되다니… 너에게 너무 잔혹한 일은 아닐까. 리콜라티 교수님에게 오페의 정체에 대해서 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다른 자가 나를 살렸다면…. 안타까운 마음이 내 안에서 풍선처럼 커져나갔지만, 어떤 말도 행동도, 나는 하지 않았다.

“나도….”

그리고 용기를 내서 나는 한 마디, 돌이키지 않을 말을 내뱉었다.

“나도, 네가 드래곤인 걸… 내가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해. 사막이 하늘을 둘이서 올려다보며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지만 당연히 시드가 이 곳에 계속 남아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인사를 하고 사라졌을 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오페는 내게 리콜라티가 내게 과제를 준 것을 알려주고나서, 시드가 드래곤임을 알려주었다.

내게 빚을 졌다며 한 말이 틀릴 리 없을테니, 어쩌면 시드가 그 과제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만약이라는 가정에 내가 심취해서 엉뚱한 생각을 한 거겠지 싶었지만, 한 켠에 남은 찝찝함이 지워지지를 않았다. 결국 그 날은 밤을 거의 꼬박 새워서 오후까지 늦잠을 잤다.

…정말 남의 나라라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스스로가 약간 한심해질 무렵, 이리하가 나를 집무실로 불렀다.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에 초대 받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또 언제 오르안의 집무실에 들러 보겠는가.

신 나서 갔더니 수도 오르를 둘러볼 마음이 있냐기에 랄캄 외에는 관광의 기회가 없었으므로, 나는 그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마 하닐들이랑 함께 가지 않을까 싶어 신이 나 요한에게 말했더니, 요한이 담담하게 그건 이리하께서 함께 가지 않겠느냐 제의하신 것 같습니다만, 이라고 말해서 기대가 팍 줄어들었다. …요즘 황제라는 직종이 한가하신가봐요. 그럴 리가 없는데.

결과적으로는 요한이 옳아서, 나는 난데없이 이리하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전사들을 보여준 것으로 용건이 설마 끝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지도 휘둘리는 상대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건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분명히 오르안이니 줄줄이 딸려오는 호위만도 몇 십명일텐데, 과연 관광을 제대로 들길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막상 만난 이리하는 간편한 차림으로 호위무사 하나 없이 나와 외출을 했다.

"혼자서도 괜찮으신가요?"

"내 나라에서 그대 하나 못 지킬까봐?"

그 대수롭지 않은 말에 나는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왜 웃지? 내가 정말 그대를 지켜주지 못할 것 같나?"

"아뇨- 그저… 이리하께서는 항상 지켜지셔야 하는 존재신데, 그렇게 말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이리하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대를 못 지켜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리하와 함께 나오지도 않았겠죠? 제가 보기보다 적이 많은 여자랍니다."

기분이 상했나 싶어서 능청스럽게 굴자 이리하가 말했다.

"아, 내가 장담하건데- 그대의 적은 내 적의 세발의 피도 안 될 거라오. 날 믿어도 좋아, 이 부분만은."

웃음기를 참고 놀라는 척 하면서 몸을 사리는 티를 내면서 말했다.

"적을 만드는데 챔피언이시라는 사실은 또 처음 알았네요."

"그대도 벌써 내 적 아닌가?"

그가 능청스럽게 나를 의심스럽게 보는 척했다. 적이라, 적 취급만으로 황송하지 싶어 얄궂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 저야 항상 그랬죠."

이리하는 호쾌하게 웃더니 장난기가 분명히 서린 얼굴로 내게 오르제국의 관행을 알려주지, 라고 말했다.

"뭔데요?"

"궁을 나설 때 말이지, 내 팔짱을 안 끼면 내보내주지 않아."

"아~."

제법 능청스런 소리를 성공적으로 내며 그를 올려다보자 이리하가 웃음을 간신히 참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홍색 눈동자에 알알히 떨어질 것 같은 어린 장난기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이걸 제가 믿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자 그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기대하지도 않았지, 나야. 그냥 속아주는 것으로도 만족하고 있다네."

이리하가 양산을 펴서 내게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어쩐지 아이들처럼 웃고 있는 나와 그가 낯설기도 하고, 몹시 재미있기도 했다.

보조에 맞추어 시내로 걸어나왔는데 오전의 오르가 생각보다 상당히 번화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제와 같은 대외 행사가 자주 있는 편인지, 이리하를 누구나 알아보고 인사하는 데다 가끔씩 사람 중의 하나가 나와서 그의 발에 입 맞추기도 해 나를 진땀 흘리게도 했다.

이렇게 다니시기 힘드시겠어요, 라고 내가 놀라서 말하자 이리하는 익숙해지면 나름대로 재밌어, 라고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나다니는 내내 사람들이 내게도 더없이 정중하게 대해주었는데, 심지어는 내 발에 입을 맞추려하는 사람들까지 있어서 깜짝 놀라 그들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리하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그에게 과일을 주거나 음료수를 바치고는 했는데 그걸 이리하가 유하게 신전으로 돌리는 걸 보고 놀라기도 하고…. 어쨌든 가끔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멈춰서서 내게 오르의 특산품이라며 노상의 군것질거리를 사주거나 내가 기겁할만한 음식을 권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전갈이나 뱀 같은 것 말이다.

내가 기겁하는 걸 보자 그는 좋아죽겠다는 듯이 웃었고, 하다못해 지나가는 노점상이 아가씨를 놀리지 말라며 이리하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줬는데, 그 노점상의 대담한 말에 나는 깜짝 놀랐지만, 이리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굉장히… 음, 친하신가봐요, 오르의 제국민들과."

"어렸을 때부터 나를 봐온 사람들이니까. 게다가 수도민들과는 시간이 있으면 만나기도 하고. 내 나라에서 황족은 신이자 친구이며, 형제이자 그들을 이끄는 현자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들과 너무 멀어서도 안 되는 존재야."

"그러면 감정이 섞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러자 그는 더없이 차가운 눈동자로 내게 대답했다.

"친하게 지내는 것에는 한도가 있다. 내가 그들과 친해지는 것은 공무와 관계에 없을 정도까지의 선이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다면 당장 목이라도 벨 수 있어야 하는 게 내 위치야."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언제 차가웠냐는 듯이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겁을 먹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어."

"전혀요. 오히려…, 현명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위치에 대한 자각도 있으시고…. 당신은 좋은 오르안이네요."

"지금까지는 그럼 어떤 오르안이라고 생각했단 거야?"

"훌륭한 오르안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있지만, 좋은 오르안이라고는… 지금은 둘 다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칭찬이나 경애를 담지 않은 담담한 말투라 사실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리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서 마침 광장이기에 나는 광장에 그가 볼일이 있나 싶어서 둘러봤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 밖에 딱히 볼거리가 없었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낮을지언정 확실하고 커서, 평소라면 분명히 알아들었을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 이리하 쪽으로 아예 몸을 틀고 네? 하고 되물었다.

“기쁘군.”

눈을 내리깐 채, 그가 목 안에서 웃었다. 어…?

“이상하게, 기뻐.”

그의 나이가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순하고 어떤 덧칠도 없는 깨끗한 캔버스를 보는 기분에 눈을 크게 떴다. 이 순진해보이는 반응에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이 사람은 이럴 거야, 라고 스스로 내린 정의가 순식간에 무너져서 나는 몹시 당황했다.

“이상한 일이지 않나.”

“… 몹시요.”

내 떨떠름한 표정에 그가 얼굴을 슥, 하고 한손으로 가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안의 얼굴로 돌아오더니 내게 농을 걸었다.

"왼손으로 양산을 들길 잘했어."

"왜요?"

이리하가 말했다.

"그대의 손이 올라와선지 피로감이 없거든."

나는 그의 농담에 웃고는, 그늘로 가자고 했다. 광장에 있는 큰 나무아래에 서서 나무가 크네요. 라고 말하자, 여기에 수맥이 흐르거든. 이라고 이리하가 대답해줬다.

"나르단들이군. 공연을 할 건가보네."

나르단이라면, 사막에서 만난 무희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천천히 천막을 쳤다. 나와 이리하는 그 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저번에… 다니엘을 구해줬기 떄문에, 제가 몹시도 흥미로운 존재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랬던가.”

그러셨어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가만히 나르단들을 지켜봤다. 사막에서 춤을 추고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사막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 중 한 여자 무희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사실 하닐만큼 미인은 아니라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춤을 추고 사는 자 특유의 분위기가 서려 있어 나는 좋았다. 그와 나, 둘 모두 말 없이 한참을 그 무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들은 사막의 꽃이라고 불리지."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도 그 침묵을 어찌해야한다는 불안감 없이 나는 그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편안했고, 그 침묵 자체도 편안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대가 다니엘을 구했을 때부터, 이건 피할 수 없는 거였는지도 몰라.”

“…무엇을요?”

그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남자의 미소가 바람에 흩날리듯 번져갔다.

“내가 지금 당신과 함께, 여기에 있는 것.”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나로서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표정 너머로 더운 바람이 불었고 그의 그늘 아래에서 나는 그저 그의 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는 사랑은 모르지만 질투는 알고, 받음을 모르되 빼앗음은 아는 자라.”

그게 무슨 그러자 이리하가 갑자기 나르딘들의 공연을 보고 싶지 않아? 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하가 일어나서 나무에 살짝 기댄 나를 에스코트했다.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그의 변덕에 발 맞추기로 했다. 공연장이 세워진 곳으로 걸어가며 그가 여상스럽게 말했다.

"오르안들은 대대로 잔혹한 성정을 가지고 있지. 예를 들면 내 아버지 또한…."

형을 죽이고 형수를 취한 남자였다. 무슨 이야기를 덧붙이고 빼고 할 것 없이, 그저 그런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들의 아이는 남아 있었다. 형수를 빼앗은 남자는 이제 죽었지만, 둘 사이의 아이는 남아 있었다. 사랑을 모르지만 질투는 알고… 받음을 모르되 빼앗음을 아는 사람.

“당신을 빼앗고 싶다면, 그것조차 비극일까.”

공연하는 천막으로 가다가 발을 멈췄다. 이것은 고백이 아니다. 이리하는 그저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다니엘을 위해 목숨을 건 것을 빼앗고 싶다고….

“많은 걸 가지셨지 않나요?”

어쨌거나 황위에 오른 것은 당신이고, 그는 황가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아마 역사 내내로 이름이 오르는 것은 당신과 당신 아버지이지, 힐더가 아닐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지.”

그는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돌맹이를 원한다면, 천금에서 가치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지않나.”

그렇다면 당신이 원한 것은 무엇인가. 말갛게 웃는 독재자의 모습에서 욕심을 엿보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천금을 놓고 돌맹이를 잡으실 수 있을 용기가 있으셔야겠어요.”

“난 용기가 있었어. 돌맹이가 내게 허락되지 않았을 뿐.”

이제 들어가지, 하고 그가 내 손을 잡아 나르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은 어두웠고 나르단들은 나와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 인사를 받은 후에 말했다.

“그대는 분명 사랑받고 컸겠지.”

‘짜라랑-!’

나르단들의 손목에 걸린 팔찌에서 화려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소리가 어떤 악기보다 크게 들렸다. 남편이 죽은 후에, 남편의 동생에게 취해진 형수는… 그의 어머니는, 이리하를 과연 사랑할 수 있었을까.

무거운 표정의 그는 내 쪽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고, 나는 나르단들의 춤사위에는 전혀 집중할 수 없는 상태로,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허허허허... 일부러 좀 잘라왔습니다. 너무 길면 싫을거야. 우리 독자님 천천히 읽으시길 바라면서..

5편 정도 코멘트 열어둘게여 닫아두니 제 기력이 넘 빨려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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