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내 일이 좀 끝나자마자 기분을 가다듬기 위해서 코라를 찾았지만 바쁜 모양인지 코빼기도 보기 힘들었고, 그래서 시드를 찾기로 했다. 막상 찾아왔더니 애 얼굴이 반쪽이어서 깜짝 놀랐다. 며칠 못 본 새에 누군지 못 알아볼 뻔 했네.
"엄청 피곤해보인다."
"말도 마. 난 예나 지금이나 마법사는 끔찍해."
마법사 가문의 막내아들이 하는 그 말이 꽤 우스웠다. 한창 마법사들과 죽도록 싸우는 모습에 좀 질려서 도망가려고 했더니 시드가 친구가 찾아왔으므로 해산!! 이라고 거의 악을 써서 빠져나왔다.
나 안 찾아왔으면 어쨌으려나. 아무튼 이런 것들을 각 학생들이 제대로 해결 해야만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교수님들이 축제준비 시작 기간에 말씀을 해 두셨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공짜 인력을 편하게 부려먹으려는 속셈으로 보이는 건, 역시 내가 요즘 너무 피곤해서인가.
마법양성교의 학생들은 모두 망토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망토 자체가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표라서 무척 다양하게 꾸며 놓은 상태였다. 학교 밖에서는 신나서 지팡이를 들고 다니더니 지금은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는 일부러 마법을 용이하게 하는 지팡이 같은 물건들은 들고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건 마법사 집단의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 특이해서라고.
처음에는 정말 그럴까 했는데, 다른 곳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니까 진짜 그런 것 같았다. 마법사 집단은 처음 의견을 나눌 때는 서로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조용히 있다가 한 명이 의견을 내면 그 의견에 열성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하며 멱살을 쥐고 싸우는 경우가 많단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면서 무한정 과정을 되풀이 하다보면 마지막에 조용히 의견을 수렴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다시 신나서 열성적으로 말하다보면 결국 수습은 하나도 안 되고 각자 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연 시드의 말대로, 한창 멱살 쥐고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하며 싸우던 사람들이 어찌어찌 해결이 났는지 점점 목소리가 적어지더니 다시 신나서 저들끼리 떠들어대는 과정이 진행 중이었다. 아까보니 시드의 역할은 그 안에서 가만히 앉아 가끔 거들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면서 회의의 의견을 정리하는 거였다.
"그래도 꽤 잘 하는 것 같던데."
"형제들이랑 지내면서 배운거야. 똑똑한 척들 하는데 결국 항상 자기가 무슨 말 했는지 기억도 못하고 내가 정리한데로 하게 되는 불쌍한 사람들이지. 그러면서 의견을 내놓을때는 또 천재들이 따로 없고. 저치들은 절대로 동업은 못할 거야, 아마. 의견 한 번 내놓으라고 하면 신이 나서 저렇게 소용돌이를 만들어 댄다니까."
지친 목소리에 웃으면서 음료수를 건넸다. 시드는 음료수의 뚜껑을 따더니 한 번에 다 마시고는 내 음료수를 빤히 바라봤다. 결국 그에게 음료수를 넘기고 물었다.
"들으니까 불꽃놀이 어쩌고 하던데?"
"아. 마법사 측에서 지금 항의가 쇄도하고 있어. 도저히 불가능한 디자인이라고 박박 주장하네."
"이번에 알트라의 중립을 체결하는 그림이던데. 그렇게 어려워?"
"적어도 사람 5명을 표현해야 하고 드래곤의 현신까지 넣어야 하잖아. 모든 사람이 볼만큼 크게 만들어야 하는데 가능하겠냐고 말이 많네."
"드래곤은 좀 힘들겠다."
"안 그래도 현실적으로 좀 무리일 것 같기는 해서 판닐 측에다 드워프와의 연락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어. 아니면 광물사들 도움도 좀 받아봐야지. 어쩌겠냐, 어떻게든 해봐야지.“
“저런, 고생이겠다. 그러고보니 형제들도 여기 다니지 않아?"
"형제라고 말하긴 하는데, 사실 난 누나 하나 형 하나야. 누나랑 형이 너무 닮아서 형제라고 하는 거지."
"우와. 신기해."
"우리 집안이 쌍둥이가 많은 게 내력이라 누나랑 형이 쌍둥이야. 이란성인데도 굉장히 닮은데다, 성격도 비슷해. 둘이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어. 둘 다 상급자 중에서도 0.1퍼센트에 속한 타고난 마법사들이라 같이 살기 힘들다…"
우울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시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마법학교가 전원 기숙사제라서 나 진짜 살았다니까. 하고 중얼거리는게 정말로 같이 살기 싫었나보다.
"음.. 하급 마법사라도 쓸 수는 없나?"
"걔네는 쓸만한 애들 자체가 드물어. 불꽃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 있는 마법사가 필요해. 그래서 중급이랑 상급 마법사를 쓰는 게 규칙인데, 이건 말이 쉽지. 마법사가 그거 모아봤자 얼마나 된다고."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 쓰면?"
"그럼 알트라의 축제가 아니게 되니까… 아우 라시아야~ 오빠 죽어간다~"
엄살 떨지말라며 웃었지만 시드는 탁자에 엎어져서 이건 엄살이 아니야… 라며 발버둥을 쳤다.
"뭐 어떻게든 해보긴 해야하는데. 아, 안 되겠다. 나 좀 잘게."
응, 자. 자. 하고 시드의 머리를 두어번 두드려주니 정말 거짓말처럼 이초만에 잠들어 버렸다. 어지간히 힘든가보네. 그러고보니 이번에 축제에서 시드네 가족들이랑 코라네 가족들 볼 수 있으려나? 느긋하게 나도 책이나 펼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고 있는 시드 양쪽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뭐야, 이 녀석 자나? 어머, 샤펜 공작님 여자가 됐어!?!!!"
와, 이 반응이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격했어.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튀어나온 주제에 나보다 더 놀라서 날 보며 꺅꺅 거렸다. 둘 모두 검정색처럼 보이는 진갈색 머리카락에 시드와 쏙 뺀 연청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시드와는 별로 닮지 않았는데, 둘은 성별만 다를 뿐 생김새가 거의 비슷해서 바로 시드의 형제인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음.. 시드의 형제분들이시죠?"
"어머, 우릴 아네? 이 녀석이랑은 안 닮았는데, 우리."
"눈 색깔만은 똑같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
그들은 행동이 마법사답지 않게 재빠른데다 엄청 능청스러워서 나와 얘기하는 도중 자고 있는 시드의 양쪽 볼을 한쪽씩 잡아당기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 사람들 정말 마술사 같은 마법사네….
"아!!!!!! 아 흐망항겨!!!!"
시드의 얼굴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웃겨서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하지만 시드는 짜증스러운 듯 둘의 팔을 재빨리 쳐서 떨어트렸다. 뭐라고 해도 기사 지망생에 검술 연습도 많이 하는 만큼 시드가 진심으로 저항하니 둘이 버티지를 못하긴 하는구나.
"뭐야, 에텔, 에티넬. 잘자는 사람 왜 깨워?"
이름이 에텔과 에티넬이구나. 그나저나 생각보다 가족한테 까칠하네, 시드는.
"얘 말하는 것 좀 봐."
"미워죽겠네~"
시드가 한숨을 쉬더니 내게 말했다.
"아까 말했던 쌍둥이 사이인 형 에텔이랑 누나 에티넬이야. 이쪽은 내 친구 라시아 클레이만 샤펜. 샤펜가의 먼 방계로 이번에 디트리히 젠와 샤펜이 양녀로 삼았고, 로드리고의 구성원."
"역시 그 아가씨였구나~ 우리 사이에서도 아가씨는 유명해요."
"근데 정말 똑 닮았네~ 이정도로 닮을 줄은 몰랐는데."
둘이 동시에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어서 나는 한껏 당황했다가 얼결에 양손을 내밀었다. 내 당황과는 달리 그들이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내 손을 잡고 신나게 흔들어댔다.
마법사는 작위를 받지 않는 이상 귀족에게 기본적으로 존대를 써야 하는데, 학생들의 출신이 다양하고, 몇몇 특별한 가문의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평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엄격하게 신분의 사용을 제한받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이 은근슬쩍 하는 반말은 그리 기분 나쁘지도 않았고 어쨌든 그들에게 나쁘게 보여서 좋을 일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웃으면서 손을 빼지 않고 있었다. 친구의 가족들이었고, 그건 직위를 떠나 존중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어."
"괜찮지?"
그러더니 둘은 내 양손 등에 입을 맞추더니 말했다. 원래 미혼여성인 나 같은 경우 입을 맞추지 않는 것이 관례지만, 굳이 빼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에티넬의 경우 똑같은 레이디라서 좀 재밌기도 했다.
"나중에 샤펜공작이 되면 네 밑에서 일하게 해주면 좋겠네~"
"우리 둘 다 고용해줬으면 좋겠네~"
그 제안에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사람들 정말 내게 놀람의 연속이로구나. 보통의 마법사라면 학비를 갚기 위해 보통은 일을 하거나 취직을 한다. 하지만 에드가 가(家)는 굳이 기하급수적인 학비를 후원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들의 부모님은 베노암 최고의 궁정마법사니까 말이다. 그 말은, 기하급수적으로 돈을 벌어왔다는 것이었고, 사치병이 지나치게 있지 않는 한 마법양성소의 학비 정도야 간단하게 결제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즉, 굳이 나한테 이런 제안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정말로 고마운 제안이었지만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그들은 나에게 이럴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고마운 말씀이지만, 이유를 여쭤 봐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에티넬이 방긋 웃더니 내 손을 내려놓고 시드의 옆에 앉았다. 에텔은 내 손에 두어번 더 키스를 하더니 시드가 그만해! 라고 말하자 얼른 떨어졌다. 나는 자리에 앉아도…? 라고 물었고, 그들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있는 포즈가 아주 완벽하셨어요. 사랑스럽게 고개를 움직이시고 허리에 단단히 힘이 있으시고 가슴과 어깨가 똑바로 펴져있지만 결코 뻣뻣하지 않으신걸 보니 멋진 춤을 추실 줄 아는 게 분명해요. 제가 일부러 눈을 마주쳤는데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미소를 지으셨어요. 약간 느끼한 귀족가 남자들이 짜증나게 굴 때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으시단거겠죠. 특히 저희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저희같이 거절해봤자 본전도 못 찾을 대상에게 어느 정도 굽힐 줄도 아시고요."
갑자기 예절 품평회가 되서 좀 놀랐다. 나는 시드 쪽을 바라봤지만, 시드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자기 눈을 감쌀 뿐이었다. 어쨌든 재미는 있었다. 그들은 마치 연극의 배우처럼 행동했다.
"그 말은 양녀지만 완벽한 예절교육을 받으셨단 거고, 또 그 예절교육이 빛날만한 품성을 가지고 계시단 거겠죠. 뭐 비난하려는 건 아니지만 레이디 아비게일 께서는 에텔의 손을 쳐버리셨답니다. 사실, 그녀는 애초에 두 손에 키스하게 놔두시지도 않았죠. 더군다나 바쁜 와중에 시드를 보러오셨을텐데, 시드가 잠들어도 전혀 화내지 않으시고 그를 기다려줄 만한 여유도 가지고 있으시네요. 저희의 평가 자체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으니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신걸테고 그건 공작가의 영애로서 매우 관대한 처사시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일을 재밌게 받아들여주시는 점이 마음에 드네요. 보통의 깐깐한 귀족들은 화를 내거든요. 시드와 함께 있다는 점은 생각보다 성격이 특이하시다는 걸 증명하는데, "
"우린 둘 다 그런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에티넬이 윙크했다. 시드는 이제 끝났어? 라고 물었고 에텔이 시드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며 말했다.
"그래, 사랑스러운 동생아. 코라 양과는 색다른 멋이 있는 아가씨구나. 그래서, 레이디의 대답은?"
조금 망설였다. 정말 이런 이유로 날 선택했다고? 궁정 마법사가 되어도 될 사람들이 굳이 내 밑에서 일하고 싶다니, 엄청난 기회였지만 의심스러운 구석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두 분 모두 언제 졸업하시죠?"
"저희는 이번 년도에 졸업한답니다. 졸업하자마자 마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를 할거고, 아마 그건 1년이면 될거랍니다."
"즉, 1년만 기다리면 우린 자유의 몸이라는 거지."
예에~ 라며 그들이 시드를 가운데에 두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는 그 완벽하리만큼 닮은 두 사람 사이에서 시드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보였다.
분신처럼 닮은 사람들이니, 시드는 영문도 모르고 소외되어 갔겠지.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왜 시드가 기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사실 기사가 아닌 마검사가 될 테지만 말이다.
"제가 샤펜 공작의 작위를 받을지 잘 모르겠어서 확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게다가 샤펜가가 두분의 높은 개런티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그들은 싱긋 웃었다. 내가 은연중에 온다면 높은 봉급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알아들었기 때문일테지.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두 분은 2년보다 더 오랜시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그 점은 괜찮으신가요?"
"그 점은 좋답니다. 하지만, 레이디께서 샤펜 공작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계약은 유효하지 않을 겁니다. 예를 들면 레이디 아비게일이거나 미스터 디트리히의 경우 우린 움직이지 않을거란 말이죠."
"물론 이 약속이 비공식적인 거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만약 공작이 되지 않은 제가 부탁한다면 어떡하실 거죠?"
그들이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개런티만 감당하실 수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물론 레이디께서는 저희의 마음에 드셨으니 약간의 할인이나 서비스적용도 가능하답니다."
"그래서, 저희가 시드를 빌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시드를 바라봤다. 시드는 한숨을 쉬더니 내게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겠지. 나는 시드에게 미소를 짓고는, 힘내라고 말했다. 분명 그들이 애초 이곳에 온 목적은 내가 아니라 시드였을 것이다.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그들은 웃더니 그럼, 하고 시드를 데리고 텔레포트 했다. 정신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분명 매력적인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만 자리에 일어날까… 어쨌든 나쁜 수확은 아니었다. 에드가 가문은 역사는 짧았지만, 유전적으로 이어지는 마법사의 혈통은 그들의 강력한 기반이 되어줬고 마법사 가문에서는 유일하게 백작의 지위를 사지 않고 하사받았다.
물론 여러가지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에 어느 정도 소귀족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것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공적인 위치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른이 되자마자 많은 것이 변하는 것은 페드윈의 섭리다.
성적이 지배하는 것은 학생 때뿐이니까. 리디어가 이걸 배워야 할텐데.
"아 참, 궁금한게 있어서 그런데."
"꺅!!!!!!!!"
여러 번 놀란다, 요즘. 나타난 건 에티넬이었다. 나는 네, 뭐가 궁금하신데요? 라고 물었다. 에티넬이 내 구두를 가르키며 물었다.
"이 구두 어디서 났어?"
구두는 오페의 구두였다. 나는 뭐라고 말할까 망설이다가 말했다.
"선물 받았어요, 특별한 선물이죠."
에티넬이 가만히 그 구두를 보다가 말했다.
"그 구두가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어렴풋하게, 그 구두가 마력의 결정체인건 알겠네… 매력적인 구두야. 분명 특별한 사람에게서 받았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간직 하도록 해. 실체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원할만한 구두니까. 이건 선물."
에티넬이 지팡이를 내 구두에 가리켜 마력을 쏘았다. 미소를 짓고 말했다.
"학생용 구두면 충분해요."
구두는 변하려고 검정색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학생용 구두가 되었다. 에티넬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기능이 다라면 아쉽겠지만, 이게 부가 기능이라니 정말 탐나겠네. 어쨌든 걱정마, 구두 얘긴 아무한테도 안 할테니까."
다시 사라진 그녀를 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저정도 되어야 알아볼 수 있는데 안전하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지금도 코라는 바쁠까? 한 번 찾아가봐야지. 느긋하게 걸어서 코라가 있을 상점 관련 일을 처리하는 곳으로 갔더니 자리에 있어서 코라를 불러와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15분도 안 되어서 교무학장실에서 누군가 그녀를 찾았다.
코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일단은 알았다고 하더니, 부글부글 끓는 얼굴로 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 안해!"
"안한다고? 드레스 상점?"
믿을 수 없는 선언에 깜짝놀라 그녀를 바라보자 코라가 가방을 발작적으로 벗으면서 다시금 외쳤다.
"그래! 안해! 학생상점 이름으로 안 낼거야! 캘리가 이름으로 내지 뭐! 그거 뭐 별거라고! 나 안해!!!"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온갖 관련서류로 추정되는 것을 꺼내더니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부었다. 나는 그 격렬한 반응에 놀라서 잠시 멈칫했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후회하지 않겠어? 너 이걸 하려고 엄청나게 고생했잖아. 조금만 더 고생하면 좋은 결과가 날지도 모르고."
코라가 한숨을 쉬며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그녀에게 진정하라는 의미로 부채질을 해줬다.
"나도 알아. 그런데 솔직히… 나 스스로 이 일이 옳은 건지 모르겠어. 얼마 전에 다니엘이 찾아와서 충고하더라. 나쁘게 듣지는 말라고. 그런데 자기가 보기엔 내가 지금 너무 위험한 길을 걷고 있데. 내가 가고 싶어하는 방향이랑, 내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정말 말해줬구나.. 물론 진짜 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새삼스레 고마웠다. 그래? 하고 말하자, 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까 그렇더라. 내가 진짜 귀족가의 아가씨라면 모르겠는데, 이건 좀 내 사정에 맞는게 아닌 것 같더라고. 혁신도 좋고, 변화도 좋은데, 내가 원하는 바랑 너무 달라.
누구도 상인 집안이기 때문에, 라는 소리 못하게. 완벽한 귀족 아가씨로서 이 세계 속에 들어가고 싶은데…. 물론 천성적으로 무리인 부분이 있지만. 난 아마 평생 너나 아비게일 같은 매너는 못 가지겠지. 똑같이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았는데도 이래.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분명 있어. 캘리가에 태어난 것부터 말이지."
"코라."
"집안이 원망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아. 내가 애초에 이처럼 간절하게 진짜 귀족이 되길 원하는 것 자체가 가족들을 위한 거니까 말이야. 게다가 소용없는 짓이기도 하고. 어쨌든 난 변화를 일으킬만한 입장이 아니야. 어찌됐든 생투아르 살롱에 들어가야지. 평민들을 대상으로 학생상점을 내겠다는 것 자체로 아마 한 오년쯤은 들어가기 멀어졌겠지만, 어쩔 수 없지. 난 진짜 그게 하고 싶었으니까. "
"코라, 원한다면 해도 돼. 진짜 귀족이 된다는 것도 좋지. 그 어떤 무시도 당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잃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아야해. 넌 타고나길 상인이야. 이윤을 추구하는 거에 천재적이라고. 특별한 재능이야, 그건. 만약 귀족이 된다면 그렇게 당당하게 이윤을 추구할 수 없어. 네 날개의 반쪽을 꺾어버리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네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는데, 누가 뭐라 하든 무슨 상관이야?"
내 말에 코라는 약간 화가 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얼굴을 보는 건 처음 이었다. 나는 움찔, 하고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필요해, 라시아. 내가 완전히 상인이 되면 잃는 건 단지 내 명예가 아니야. 내가 사는 50년이나, 혹은 내 손자나 손녀 대까지의 명예가 걸려 있는 일이란 말야. 내가 상인이 되는 순간, 에드가 집안의 모두가 상인이 되는 거라고. 너도 알아 둬야해, 라시아. 네가 가주가 된다면.… 그런 거야. 가문의 후계자란 그런 위치라고."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그렇게 말한 내 어리석음에 그녀가 일침을 가했다. 기분이 쓰리고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미안해. 난…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했어."
코라는 불편한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왜 그래, 미안해지게. 내가 말이 심했어. 미안해."
"아냐, 넌 맞는 말했어. 네가 맞아. 난…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겠다."
내가 미소 짓자, 코라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말했다.
"난 그게 안 돼. 수십 번, 수백 번을 연습해도 너처럼 웃는 게 안된단 말야. 이상하지? 게다가 그런 식으로 사과하는 것도…. 넌 화도 안나?"
"이런 부분에서는, 전혀. 하지만 부끄럽긴 해. 아직 모자라단 생각이 들어서 말야. 나름대로 많은걸 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너처럼 노력하는 사람은 못 따라잡겠어. 사실, 난 네가 학생상점 내려고 할 때, 반대하고 싶었어. 그런데, 말을 못하겠더라. 솔직히 난 내 생각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현명한 친구라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만약 네가 말했더라면 난 너한테 화를 냈을지도 몰라. 말했잖아. 난 그렇게 못 웃는다고. 아마 너한테 부끄럽고 창피해서 화내거나 했겠지. 받아들였어도 속으로는 꽁해있었을거고."
코라가 가만히 있다가 발을 앞뒤로 흔들었다.
"네가 이렇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어느 정도는 네 그 완벽한 태도 때문 일거야. 귀족 아가씨의 표본이랄까… 아비게일도 그렇지만 말야."
"그리고 네가 에트왈로 뽑힌 건 분명 그까짓 예법 부족으로는 가려지지 않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드디어 미소를 지었다.
"봐, 너도 할 수 있잖아."
"뭘?"
"레이디의 미소 말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미소를 짓는걸 보니 가능성이 보여."
"이건 칭찬 한정이야."
"성질만 죽이면 가능한 일이야. 특히 네 경우는 말이지."
그러자 코라가 나를 째려봤다. 나는 엄격한 선생님 얼굴을 만들고는 말했다.
"받아들여야지? 미소, 미소."
그러자 그제야 코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같이 웃으면서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가주라는 것을 이 작은 여자애가 얼마나 강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말이다. 내가 그냥 부담이나 하기 싫은, 막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동갑의 내 친구가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지를 말이다. 그 책임감과 무게를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어렴풋하지만,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말이다.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었다. 과연 내가 시드의 형제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잘 한 일인지조차, 무척 헛갈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다니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다니엘이랑 나랑 아무 연관이 없는데 왜 굳이 그런 말을 해줬냐는거야."
"글쎄? 왜 그랬을까?"
"너 요즘 리디어랑 같이 셋이서 계속 있잖아, 아는 거 없어?"
"글쎄. 내가 아는 건 다니엘이 네 사업에 굉장히 참여하고 싶어 한다는 것 뿐이야."
"흠.. 그럼 한 번 고려해볼까. 다니엘이 학생상점일도 같이 하지?"
"귀족 관련 상점은 다 하지."
"그러면 어느 정도는 괜찮겠네. 얘기해 보지 뭐."
"충고해준 값으로 좀 줄 거야?"
"내가 미쳤어? 충고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그래놓고 그녀는 분명 다니엘과 계약할 때 그에게 좀 혜택을 줄 것이다. 코라의 귀족다움이랄까, 의리는 저런 곳에서 나타난다. 나는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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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편이 또 코멘트 오픈이네용 'ㅅ'.... 헤.. 솔직히 근데 이번편까지랑 다 복붙이라..!! (외면) 신나게 달려서 원래 진도 따라잡고 싶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작품 소개 바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