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시아-18화 (18/113)

18화

<축제>

리콜라티과 오페의 결혼식이 끝나고 몇 주가 지났지만 그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축제 관련 서류를 보다가 드래곤 모양으로 폭죽을 만들고, 어쩌고 하는 부분에서 멍하니 그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나쁜 머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 머리… 나쁜 걸까. 본체로 변했을 때 붉은 눈이고 드래곤이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을 리가 없다.… 과제는 또 뭐고. 물론 그녀가 내게 내줄 이유가 없는 과제이기는 했지만….

“너 지금 뭐하니.”

멍하니 고개를 드니, 다니엘이 이 놈이, 하는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는 내 옆에 앉더니 내가 들여다보고 있던 서류를 보았다. 내가 2시간 동안 3장 밖에 처리하지 못한 서류들이다. 한숨을 쉬고 죄송해요, 집중을 못하겠네요. 라고 말했다.

“뭐 나한테 미안 할 건 없지. 뭐 고민 있어?”

고민을 묻는 다니엘이야말로 얼굴이 반쪽이었다. 한창 축제 준비기간이라 3,4학년 모두가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이런 얼굴 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안쓰러웠지만, 나름대로 다들 자신이 원하는 분야, 혹은 원하지 않는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굉장히 멋있었다. 아비게일은 4학년의 마사와 함께 전체적인 페드윈의 분위기와 실내 장식의 콘셉트를 정하는 일을 했고, 다니엘은 전의 그 상인들과의 일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교수님이 나와 그의 직속 관계를 쓸데없이 배려해서 나는 그의 일을 도와주기로 되어 있다. 또 시드는 마법사들과의 가능과 불가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아서 죽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는 협상에 꽝이어서 한창 고전중이라고 한다.

코라는 그 분점 내는 일과 축제에 쓰일 상인 위치 선정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시드에게 간간히 도움을 주면서 2학년 학생 몇과 함께 학생상점을 내려했다. 그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기운 넘치는 여자다.

"이 서류가 고민이네요. 영 진도가 안 나가요. 신청자격이 없는 사람을 빼는 것도 일단 일이고…."

"거짓말 하지 말고. 며칠 동안 봤을 때 서류정리의 천재는 아니어도 그럭저럭은 하더니, 왜 집중을 못하는 건데?"

나는 어설프게 웃어보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드래곤이 힌트를 줬는데 뭐에 쓰이는 힌트인지도 모르겠고 무시하자니 찝찝해서 이러고 있어요. 라고 말하기엔 그냥 들어도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코라와 관련된 일이 있는데, 그건 굳이 그와 얘기해봤자 답도 안 나올 이야기였다.

"어라, 이거 캘트로프가가 후원하는 거네요? 캘트로프라면.."

"록산느 집안이지. 이번에 록산느의 오빠라는 머저리같은 자식이 온다고 하던데, 그건가보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절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집무실 대신 쓰이는 작은 휴게실에는 나와 다니엘뿐이었다.

"그런 말을 잘도 쓰시네요..."

"너밖에 없잖아. 너한테까지 내가 내숭 피워야겠냐."

"그러다가 한 방에 그냥 들키시는 거라고요."

"원래 한 명한테라도 들키면 그건 그냥 끝인거야."

말은 잘하셔. 나는 그가 옆에 있는 게 신경이 쓰여서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음.. 그 록산느 오빠라는 분 말이에요. 그렇게 머저리예요?"

"그냥 평범해. 상인 집안에서 자라서 상인답게 컸지. 재미없는 작자야. 그 남자보다야 록산느가 훨씬 나은데. 난 그 집안을 이해할 수 없다니까."

4학년 에트왈인 록산느는 코라의 집안인 캘리가와 함께 위세를 날리는 상인 집안인 캘트로프가의 영양이다. 장차 집안을 이어받을 후계자인 코라와는 달리 약혼자를 찾아 결혼하는 것으로 정해진 여성인데, 그건 캘트로프 가문은 아주 가부장적이라 여성의 집안 내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아서 여성 가주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실제로 그녀는 무척 적극적이고 꼼꼼한 성격인데다 4학년의 에트왈로 뽑힐 만큼 리더쉽이 강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서, 학교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가지고 있다. 나도 몇 번 이야기 해봤는데, 정말 시원시원한 성격의 사람이라 그녀의 집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도 그렇긴 한데, 그럼 그 남자 자체는 머저리가 아니지 않아요?"

그러자 그가 내게 들고 있던 서류를 보여주었다. 천천히 서류를 읽어보면서 깨달았다.

"머저리네요."

입 밖에 꺼내면서 좀 웃었다. 머저리라는 말은 생각보다 입에 내면 재밌는 말이었다. 다니엘은 그렇지? 라고 말하며 서류에 불가, 라는 도장을 꽉 찍었다. 서류의 내용은 장삿속이 빤히 보이는 제안이었다. 다니엘은 내 옆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이대로라면 캘리가에 밀리는 것도 시간문제겠어. 귀족들한테 내밀만한 제안을 들고 와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잘도 이런 먹히지도 않을 제안을 들고 오네."

"이건 그럼 평민을 대상으로 하는 코너로 돌릴까요?"

"글쎄다… 그쪽에서 받아줄 진 의문이지만 넘겨보도록 할까. 평민들은 구매력이 안 될텐데 말이지. 그냥 잘라."

다니엘은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결론을 내주고 집중 좀 해, 알았지? 하며 내 머리를 쓱쓱 괴롭히더니 자신의 서류들로 돌아가, 불가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알트라의 축제는 귀족이나 평민들이 동시에 즐기는 축제라서 귀족의 경우 평민들의 거리축제를 즐겨볼 수 있고 평민들의 경우 그 자체가 구경거리인 귀족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렇지만 귀족들은 대개 페드윈 등의 학교에서 머무르고, 평민들은 알트라의 시내를 다니게 된다.

그래서 상회들은 대개 2가지의 임시 상점을 기획한다. 하나는 페드윈 안에 차려질 고급 상점, 하나는 평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식점이나 소박한 기념품 가게 같은 것이다.

축제가 열리는 18일 중 9일은 평민들에게 학교가 개방되기 때문에 그 곳에서 그들은 그들을 다스리게 될 귀족들과 대면하고, 귀족들은 그들이 다스리게 될 존재들을 거의 처음 보게 된다. 학생들은 그들이 얼마나 강인하면서 연약한지와, 귀족들이 누려온 혜택이 그 꾀죄죄한 것에 비하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그들이 다스릴 사람들이 선명히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라는데 이게 실제로 느껴지는 걸까. 나는 1학년의 리디어가 음료수를 사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서 의심스러워졌다.

"웬 음료수야?"

"두 분 다 저한테 음료수는커녕 물도 못 마시게 할 기세로 일하셔서 제가 직접 조달해오는 거예요~ 쉬엄쉬엄 일하세요~"

리디어는 애교가 많은 1학년의 에트왈로, 글랜시아 백작의 둘째 딸이다. 그녀는 코라가 전에 말했듯이 고민이라고는 없는 밝은 성격의 긍정적인 아가씨로, 진한 갈색 머리카락에 진홍색 눈동자를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다.

"아, 고마워. 잘 마실게 리디어. 다음에 밥이라도 한 끼 사줘야겠네."

다니엘은 금세 반짝반짝한 미소를 지으며 리디어에게 말했다. 아까 머저리를 말할 때하고는 퍽 다르다.

옛날에는 몰랐는데, 요즘에는 확실히 구분이 간다. 나와 있을 때 그는 꽤 비꼬기를 잘하는 사람인데, 물론 옛날 내게도 이렇게 대했겠지만,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그는 놀라울 정도로 자기를 억제하는 매너를 보여준다.

"아이, 선배님도. 괜찮아요, 이쯤은 해드릴 수 있죠. 저 이제 뭐 도와드릴까요?"

리디어가 쪼르르 그에게 달려가 그의 의자 옆에 서서 일거리를 물어봤다. 학년 초기에는 저런 태도로 많은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코라가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저 태도는 100퍼센트 천연이란다.

그녀에게는 친오빠가 하나 있는데, 그는 애교에 무척 약한 남자라서, 리디어가 애교를 떨면 좋아죽겠다는 티를 팍팍 내는데, 리디어는 그게 몸에 배서 자연스럽게 연장자를 대할 때는 저런 자세가 나온다고 한다. 나한테도 그러는 것이 나는 너무 어색해서, 그녀 앞에서는 조금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그래도 확실히 다시 태어나면 저렇게 살고 싶은 사람 중에 리디어는 꼭 들어간다.

아마 그런 마음이 에트왈로 뽑힌 기반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대충 일을 설명 받았는지 리디어가 내 옆에 앉아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애만 있으면 분위기가 밝아진다니까. 나는 적당히 얘기를 받아주면서 서류를 정리해갔다.

"아 맞다, 저 서류 배달 다녀오는 길에 코라의 학생상점 이야기 들었어요. 그걸로 지금 난리던데요."

"그럴 줄 알았어.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걔가 온갖 곳을 다 돌아다니더라. 교무학장실부터 교장실이며 학부모 위원회 대표랑도 면담 했다던걸."

리콜라티의 수업을 들었을 때 우연찮게 교무학장실에 갔었다고 말한 코라는 시험이 끝나고서야 사실 이런 학생상점을 계획하고 있어, 라고 말하면서 나와 시드를 경악시켰다.

"난 전혀 모르는 일인데, 무슨 일이야?"

"하긴 다니엘은 거의 요즘 귀족 쪽 일하느라 바쁘시죠? 코라가 이번에 학생상점을 열기로 했데요. 종업원도 이미 구했고, 드레스도 다 구했데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드레스 교환 상점이기라도 해?"

다니엘은 자신의 서류더미 속에서 코라의 상점을 찾으려고 뒤적거렸다.

"거기서 찾으셔도 없을걸요. 왜냐면 코라가 평민을 상대로 한 학생상점을 열기로 했거든요."

다니엘의 얼굴이 놀람으로 가득찼다. 나는 미소를 지었는데, 이유는 그의 놀람이 결코 미친거 아냐? 의 종류가 아닌, 혁신인데, 이거- 라는 놀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가 황제가 되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생각이라서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와."

"그쵸?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어요. 유행이나 철이 지난 드레스를 평민들에게 대여하거나 팔다뇨. 좋은 생각이기도 하지만,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 어리석게 느껴져요. 뭐랄까..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에요?"

다니엘은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에 희미한 짜증이 서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리디어에게 말했다.

"리디어. 네 생각은 잘 알겠지만, 알다시피 코라는 내 친구야. 그래서 그런 말이 듣기에 그리 유쾌하지는 않단다."

"라시아에겐 좀 미안하지만 말이에요, 애초에 코라는 상인집안이잖아요? 전부터 가끔 생각했던 거지만, 코라는.. 뭐 물론 2학년들의 생각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조금 귀족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생투아르 살롱에 초대받지 못하는 거겠지만."

리디어의 말에 나는 솔직히 불쾌했지만, 화를 내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글랜시아 백작가는 귀족의 혈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리디어는 단지 그런 가문의 가풍에 따라 말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후 그녀가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캘리가의 재력이 그들이 말하는 혈통의 유지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었다. 나는 언젠가 그녀가 코라의 앞에서 빌빌대는 모습을 상상하고 속으로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더불어 평민들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무척 잘못되었지만, 아마 1학년 교수님들은 축제 때 여러 가지 일을 겪다보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고쳐질 거라 믿는 듯 했다. 난 그 생각에 약간 회의적이지만, 뭐.

"리디어, 1학년 교수님들이 너 축제 때 어디에서 일하라고 했니?"

리디어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입을 살짝 내밀고는 귀엽게 말했다.

"저는 싫었는데, 음식 무료로 주는 서비스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됐어요."

"내가 장담하건데, 많은 걸 배우는 기회가 될 거다, 리디어. 내가 아는 한 여자애도 그 일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워서 지금은 아주 매력적인 숙녀가 됐단다."

다니엘이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말했다. 나는 정리한 서류를 가지고 그에게 주면서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리디어는 다니엘의 말에 기분이 고조되어서 네, 알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두 번째 서류에 나는 작은 쪽지를 넣어놨다. 다니엘은 그 다음 일거리를 주었다. 리디어 몰래 쪽지를 펴보았다.

'그 아가씨가 누군데요?'

- 소피아 드니에 아르잔.

웃음을 억지로 눌러 참고 모르는 척 고개를 숙여 서류를 정리하는 척 했다. 소피아 드니에 아르잔은 코라가 무척 싫어하는 여자 중의 한 명인데, (물론 전혀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그녀가 아르잔 백작가의 귀족혈통주의와 여성차별주의의 전형적인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많이 나아진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지금도 그다지 전형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르잔 백작가야 워낙 전통 있는 가문이지만, 그걸 고려하고서라도 그녀는 구제할 길이 없었다. 어쨌든 전형적으로 결혼 사냥을 좋아하는데다 소문거리를 좋아해서 페드윈의 소문은 거의 그녀를 통해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의 오빠와는 사이가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서 그들이 가엾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치가 미와 재력밖에 없다는 것처럼 굴었고, 또 본인도 여자이면서 여자를 적으로 여기는 태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사실 나로서도 좋아하기는 힘이 들었다.

소피아는 페드윈에 들어온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두각을 드러낼 정도는 아니었는데,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여학생들을 볼 때 결혼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 딱하게 여겼고, 자기보다 성적이 낮은 여학생들은 타조보다 못한 머리라고 신랄하게 비웃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녀에게 친구가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래도 그녀의 오빠인 앨번 드니에 아르잔은 로드리고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어째서 소피아의 오빠인지가 의심스런 인물이었다. 둘의 유전적 공통점인 남색머리카락과 핑크색 눈이 아니었다면 내가 맹세컨대 나는 둘의 어떤 공통점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앨번은 소피아가 경멸해 마지않는 나를 이용해 그의 여동생을 떼놓으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집에 가서 혹독한 귀찮음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요즘은 그런 일을 잘 하지 않는다.

앨번은 애론을 대신해서 로드리고의 일을 이끌어나갈 정도인데, 소피아는 대체 왜 그런단 말인가? 아무리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직도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식인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페드윈에 다니는 아가씨인데!

어쨌든, 그런 소피아가 1학년 때 맡게 된 일이 바로 리디어가 맡게 된 일이다. 물론 소피아는 이번에도 그 무료 식당일을 하게 되었다. 그게 사실 가장 고된 일이었기 때문에 코라와 나는 몰래 웃었다.

"리디어, 이 서류 좀 부탁할게."

다니엘이 어느새 쌓인 서류를 리디어에게 맡겼다. 리디어가 다녀올게요~ 하면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다니엘이 얼른 의자를 끌어다 당겨서 내 앞에 앉았다.

"코라 진짜 천재 아냐?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데?"

"글쎄요. 저도 잘 모르죠."

"좀 도와주면 수익의 몇 퍼센트 쯤 주지 않을까?"

"코라가 얼마나 짠지 모르시는 건 아니죠? 그리고 리디어에게 맡길만한 양도 아닌데 왜 애를 밖으로 보내셨어요?"

"물어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했다고. 어쩔 수 없었어. 그런데 정확히 사업의 내용이 뭐야? 넌 알 것 아니야."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마지막으로 살핀 후 그를 바라봤다. 그는 완전히 신난 얼굴이어서, 어쩐지 내가 맥이 빠졌다.

"흠. 철 지난 드레스나 처치 곤란한 옷들을 대신 처리해준다고 여자애들 사이에서 한 두어달 전에 코라가 말했었거든요. 사실 딱히 그 옷들을 들고 있어봤자 별 도움도 안 되니까 찾아온 코라한테 의아해하면서도 그런 옷들을 넘겼나봐요. 저희 집에도 왔었는데 사실 저는 딱히 그런 옷이 없어서 아비게일이 많이 줬었죠. 그런데 무슨 서류에 사인하게 하는 거예요. 대충 내용이 더는 이 드레스의 행방에 관여하지 않는다. 뭐 그런 내용이라서 이게 또 무슨 사업을 하는가보다 하긴 했었죠."

사실 코라에게 그걸로 무슨 사업할 지 알리기 전에 수입의 3퍼센트를 요구했지만, 뭐 그건 굳이 알릴만한 내용이 아니라서 생략했다.

"알고 보니 평민들을 대상으로 단 하루 귀족이 되어보세요! 뭐 이런 걸 하려나보더라고요. 사실 그런 옷 입어보기 쉽지 않잖아요. 귀족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집이라면 그런 옷을 싸게 살 수도 있게 말이죠. 하루라고는 해도 사실 시간당 돈을 내야하니까 정말 돈 없는 평민들은 시도도 안 하겠죠. 솔직히 말하면 귀족들 눈에야 평민들은 다 그냥 평민들이지만, 아시겠지만 사실 알트라에 축제기간에 맞춰서 올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부유한 사람들에 속해요. 뭐 그런 걸 노린 거죠 일단은."

"진짜 캘리 가 앞으로 장난 아니겠네. 그런데 높으신 양반들이 역대 평민을 대상으로 한 페드윈의 학생 상점은 없었다고 반대하고 나서는 거야?"

"전통 문제도 있고 직접 평민들을 대하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있어요. 사실 전 코라가 학생상점의 이름으로 내는 건 반대에요."

"왜? 난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시혜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좀 더 확실한 소통기회가 되지 않겠어, 페드윈에게? 사실 방금까지 윗분들과의 소통을 좀 잘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난."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오히려 시혜적 성격이 아니라서 불편해요. 그들과 얼마나 소통하든 뭘 하든 상관없지만 어쨌든 코라가 하려는 건 장사에요. 결국 이윤 창출이 목적인거죠. 페드윈 학생이 학생 상점으로 귀족들이 버린 드레스를 가지고 평민들의 로망을 이용해서 장사를 한다. 나쁘게 포장하면 이렇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내 말에 다니엘이 계속해보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만약 학생상점이 아닌 상회의 이름으로 낸다면 그건 멋진 아이디어가 되겠지만, 페드윈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면 그건 그냥 보기 싫은 일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그건 캘리가의 구성원인 코라가 리디어가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꼬투리가 될 수도 있고요. 전 리디어나 소피아 같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게 정말 싫어요. 코라는 누구보다 귀족으로서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자기가 해야 하는 일도 알고 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요. 누구보다 명예와 도덕으로 스스로를 감싼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까짓 작위가 뭐라고.. ”

말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져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니엘이 가만히 내 눈을 바라봤다.

"너 진짜 코라를 걱정하는구나, 그렇지?"

"전 그냥-…"

나는 뭔가 변명을 하려다 말았다. 난 진짜 코라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코라에게 그 이야기는 했어?"

고개를 저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가게를 낼 생각에 꿈에 부풀은 그녀에게 감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코라의 가게가 혁신적인 바람을 페드윈에 가져올지도 모르고 말이다.

게다가 그 이야기를 했다가 코라와 사이가 틀어질까봐 나는 두려웠다. 그녀는 내가 가진 첫 번째 친구였다.

나는 코르티잔이라는 귀족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애매한 위치의 어머니를 가지고 있어서 동갑내기의 여자친구가 아예 없었다. 물론 엄마와 친구처럼 지냈지만 그녀는 평등한 입장이 아니라 내가 항상 무언가를 배우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코라는 내게 특별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화낼 만한 일은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니엘이 의자를 들고 책상을 건너 내 옆에 의자를 놓더니 거기에 앉았다.

"좋아."

그는 어느새 숙여져 있던 내 턱을 들어올리더니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그의 무릎이 내 무릎과 가까웠다.

"원래 코라의 일을 도와줘서 용돈이나 벌려고 했지만, 난 너에게 잘해줘야 하니까. "

다니엘이 두 손을 모아서 깍지를 낀 후 자신의 무릎에 올렸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서 나와 눈을 마주친 상태 그대로 내게 천천히 설명했다.

"내가 코라에게 가서,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네가 말하려는 걸 말해줄게. 그러고 나서 그녀가 어떤 반응이었는지 너한테 다시 얘기해줄게. 어때? 좋은 생각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웃음을 만들어냈다. 세상에. 진짜, 진짜, 진짜 잘생겼다. 코라와 관련해서 그가 해주기로 한 일은 내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다니엘은 내 머리를 흐트러뜨리더니, 말했다.

"착하네."

고개를 숙이고 작게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난 바람 좀 쐬고 올 테니까, 음.. 뭐 마시고 싶은 것 있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리디어가 준 음료수 컵을 들었다. 그는 아, 하더니 그럼 나가볼게. 하면서 나갔다. 그가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고맙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겨우 울음을 참으면서 손수건으로 눈밑을 꾹 눌렀다.

리콜라티의 결혼식 이후 나는 상당히 약해져서 오페의 구두를 신고 '집'으로 자주 갔다. 리콜라티의 일이 내게 추억을 회상시켰고 그와 동시에 내가 잃은 것에 대해 기억하게 했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내게 어쩌면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 마치 인이 박히듯 내게 남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머니의 장례식은 정말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용기를 냈어야 한 게 아닐까. 다니엘에게 말하기보다는 코라에게 말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옳은 길을 보여주는 것보다 그저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고 앉아있기만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코라에 대해 말을 하는 리디어에게 바로 이 나쁜 계집애야! 하고 쥐어뜯고 싸울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코라는 요즘 저런 귀족파의 아가씨들의 험담과 윗선의 불림을 받아 무척 힘들 일을 겪고 있었고, 다니엘에게 한 말을 내가 했다면 그녀는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완전히 지지해주는 친구가 지금 필요했다. 아니, 이건 또 변명일까? 모르겠다.

손수건에 눈을 문지르고 난 후 책상에 엎어졌다. 생각이 너무 많다, 요즘은.

“일하자, 일.”

다시 손에 서류를 잡고 분류를 시작했다. 내 생각이 적어도 하나에는 틀렸음이 분명했다. 다니엘에게 이야기 하길 잘 했다. 정말로 잘 했다.

============================ 작품 후기 ============================

복은 삼세번...

사실 이제 말투나 라시아의 그런.. 생각?이 비슷해진 수준이고 별로 바꿀 내용도 없어서 복붙.....을 다듬는..(외면 죄송합니다,. 사과하겠습니다. 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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