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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아-17화 (17/113)

201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메에 17화

“그동안 뭘 하셨기에 이렇게 마르셨어요.”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 들러리 옷은 이걸로 될까?”

“뭐든 어때요. 리콜라티만 아름다워 보이면 된 거죠.”

대충대충 옷을 고르며 말했다. 솔직히 그녀의 드레스가 어떨지가 궁금해서 내 옷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드래곤과 결혼하는 인간 여자니까 분명 어딘가에서 예쁜 옷을 구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제국의 수도 아느완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의 옷이 아닐까? 아니면, 요정족이나 드워프의 아는 자들이 해줄지도 몰랐다.

“그런데 리콜라티의 드레스는 어때요? 저 진짜 궁금해요.”

리콜라티는 뭔가 설명하려고 했지만, 잘 하지 못하겠는지 그저 웃기만 했다. 하루만 입을 들러리 옷 같은 건 얼른 정해버리고 그녀의 옷이나 구경하고 싶었다.

“기성복으로 나온 들러리 옷 중엔 예쁜 게 없네. 그냥 하나 맞출까?”

“시간이 촉박해서 그러긴 힘들걸요. 그냥 아무거나 입어도 돼요. 아니면 그냥 교복을 입는 것도 저는 괜찮은데요.”

뜬금없이 결혼 날짜는 내일이라는 소리에 내가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른다. 제대로 프로포즈는 받았냐고 묻자 리콜라티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서, 그 점은 안심했지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도 드레스인데, 아쉽잖아. 예쁜 걸.. 어머.”

그녀가 갑자기 멈춰섰다. 나는 의아해서 그녀가 시선을 준 드레스를 봤다. 내가 봐도 그것은 예뻤다. 튜브탑 스타일이의 드레스로, 허리에 공단느낌의 복숭아색 리본이 달려있고, 가슴 쪽의 디자인이 기본 흰색의 천으로 된 것이 가운데 레이스로 이루어진 면을 감싸는 형식이었다. 치마는 A라인이 아닌 볼륨감있는 느낌으로 디자인 되었고, 안에는 역시 레이스가 있었는데 길이는 아마 무릎까지 올 듯했다.

“예쁘네요.”

“이게 딱이다. 이걸로 하자, 라시아.”

“튜브탑이라서 조금..”

솔직히 꺼려졌다. 어깨를 저렇게 훤하게 드러내는 디자인이라니,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저게 보통일 수도 있잖아. 게다가 이 옷 입는다고 수군댈 사람 내 결혼식에 안 와. 걱정 마, 걱정 마. 너 인생에 이런 걸 입어볼 기회가 많은 줄 아니? 목걸이 하나 하고 신발은 오페가 줬던 구두를 흰색으로 바꿔서 신으면 딱이겠다.”

뭐 그녀의 결혼식인데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고, 솔직히 그녀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언제 이런 걸 입어보겠냔 말이다. 말이야 말이지. 드레스 숍의 디자이너는 아니나 다를까 이런 들러리 원피스는 다른 나라에서나 통한다며, 우리보고 어느 나라에서 오셨냐고 물었다. 리콜라티는 뻔뻔하게 오르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나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리콜라티는 내게 옷을 주면서 말했다.

“꼭 와서 그 자리를 추억해줘.”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집에 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고, 깨자마자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쪽지에 잠시 외출. 늦음. 이라고 적고 구두를 신은 후 굽을 세 번 부딛혔다.

눈을 뜨고 드래곤일 것이 분명한 사람이 네가 들러리로구나! 라고 말하더니 나를 질질 끌고 준비를 시켰다. 생각보다 신이 난 분위기라 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어느 새 식이 시작해 정신 없이 들러리로서 입장을 하고 서 있다가 오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나서 리콜라티가 입장을 하기 시작했다.

“우와.”

이러면 안 되는데 저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리콜라티는 아름다웠다. 그 외의 어떤 찬사도 그녀와 어울리지 않을만큼, 그저 아름다웠다. 순백의 드레스는 탑 드레스였는데, 새하얀 털로 만들어진 어깨의 숄로 그녀는 어깨를 덮었다. 흰 구슬이 촘촘하게 박힌 디자인은 허리를 기점으로 사라지고, 밑은 그냥 하얀 공단도 아닌 천이었다. 리콜라티가 나중에야 요정족에서 만든 천이라고 귀띔해주었다.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머리장식에 달린 베일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가려지지 않았다. 귀에 달린 귀걸이는 진주였고, 팔에 찬 팔찌도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운 흰색이었다.

오페의 레어 앞에서 식은 펼쳐졌는데, 손님은 10명도 채 안 됐다. 그녀가 천천히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오페의 뒷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그저 기쁘지만은 않을테지… 보통 있을 법도 한 나이 든 성직자 대신, 젊은 남자가 주례사로 서있는데 어찌나 잘 생겼던지 심각한 위화감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자리에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도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는 안 듣는데, 지나치게 미남미녀들 속에 들어있으니 무척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하지! 어쨌거나 식은 매우 부드럽게 진행되어서 젊은 남자는 오페가 리콜라티의 손을 잡는 것을 보다 가운데에서 보석 상자를 열었다.

가까이서 이 모든 광경을 보니 어쩐지 매우 인간적인 형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콜라티를 위한 결혼식이구나. 오페가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리콜라티의 손에 입맞춤했다. 리콜라티도 그에게 똑같이 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맞대고 키스했다. 내 결혼식도 이보다 아름답게 추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하객들과 오페와 리콜라티는 일일이 인사했다. 오페는 약간 퉁명스러워 보였지만, 참을 만한 수준이었는지 그다지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계속 나를 구해줬던 드래곤에게 인사하고 싶었던지라 계속 그를 찾았지만, 본체밖에 본 적이 없어서 도저히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내 차례였는지 오페가 내게 다가왔다.

“리콜라티를 도와줘서 고맙다.”

“아뇨, 그녀는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이고.. 저도 좋은 옷을 얻기도 했으니까요.”

삐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등 상당히 띠거운 태도를 보였더니 그가 약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괜한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고… 동시에 고맙다.”

그런 사과가 가능한 사람인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리콜라티가 시켰어요?”

“시키기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무뢰한은 아니야.”

불퉁하게 말하는 그에게 코웃음을 치고는 예에, 하고 대충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푹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정말이다. 여러 가능성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말까지 듣고는 더 이상 나도 퉁명스럽게 대할 수가 없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면 사과와 감사를 받아들일게요, 라고 말했다. 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리콜라티는 무척 아름답네요. 운이 좋은 드래곤이군요.”

의례하는 칭찬으로 한참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리콜라티를 바라보고 있자 오페가 그래, 난 운 좋은 남자지, 라고 말했다. 한참 웃는 그녀를 그와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리콜라티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그가 입을 열었다. 그 뒤의 말을 하지 말라고,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고,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나, 그녀가 그를 바라보는 애틋함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방법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침을 삼키고 나를 메마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아내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거나, 아이가 태어나고 한 두 달후 죽을 거다. 네게는…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내를 방금 맞이한 남자는 눈가를 발갛게 물들이고 웃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이 짐과 무게가 그 어느 누구에게 무겁지 않을까…

“설득시키지는… 못하셨나요?”

만약에 나였다면 어떤 결말을 낼 수 있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녀는 이 길을 선택한 걸까.

“내가 어떻게 리콜라티를 이기겠어.”

그렇게 말하고 그는 웃었다. 더 이상 말하지는 못하고, 나는 그저 거기에 서있었다. 리콜라티가 이 쪽을 바라보자 나와 오페는 그린듯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오페는 그럼, 이라고는 말하고 내 곁을 떠 리콜라티의 곁에 가서 섰다. 리콜라티는 오페가 오자 환하게 웃었다.

이 때의 두 사람을 마치 초상화에 그린 듯이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내게 자욱하게 남아, 습기로 내 눈가에 맺혔다.

“여기서 혼자 뭘 하는 거지?”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밝은 노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연청색 눈동자를 지녔는데, 눈꼬리가 쳐져서 순한 인상을 주는 미남이 서있었다. 순간 격해진 감정에 흘러내린 눈물이 부끄러워서 재빨리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안녕하세요, 음. 인간은 아니시죠?”

“드래곤이야. 기억 안나? 섭섭하네, 내가 널 구했는데.”

제법 발랄하게 말하자마자 돌아온 대답에 굉장히 놀라서 황급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뭐. 나도 부탁받은 거였고. 아, 난 르웬. 가운데 산맥을 다스리는 자야.”

“라시아예요. 라시아 클레이만 샤펜.”

“라시아라. 이름이 예쁘네.”

“어머니께서 지어주셨어요. 음…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나요?”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어딘가 친숙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말이다.

“와, 나한테 작업거는거야? 대담하네.”

“하하, 설마 드래곤한테 작업을 걸리가요. 제가 본 사람은 잘 안 잊거든요… 느낌이 친숙해서. 어디서 정말 본 적이 없나요, 우리?”

“글쎄다… 아마 내가 눈 색깔이 본체일 때랑 똑같아서 그런 거 아닐까? 왜 죽음 직전의 기억은 강렬하잖아.”

진짜 그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냥 납득했다. 그는 이만 리콜라티에게 가보라고 했고, 나는 뭔가 더 보답을 하고 싶어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다음에라도, 뭔가 보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목걸이로 됐어. 참.”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르웬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서있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르웬이 미소 짓고는 말했다.

“드레스, 잘 어울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정말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일단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리콜라티에게로 갔다.

“리콜라티. 몇 번이고 말씀드리는 건데, 정말 오늘 아름다워요.”

그녀는 몇 번이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사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해 줄 말이 없어서 그저 그녀의 곁에서 헛소리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마 오페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을까. 그녀의 손 동작이며,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사소한 버릇까지. 오페는 그녀의 목소리와 숨결과 머리카락의 감촉을 기억할 것이며 그녀가 어떤 말투를 쓰고 어떤 식으로 웃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결혼식에서 그녀가 눈을 깜빡인 횟수도 오페는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애틋하고 처연해서 나는 먼 미래만을 상상했다. 언젠가 그가 아이에게 리콜라티에 대해 말할 때, 기회가 된다면- 어쩌면 그녀에 대해 나도 뭔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시아.“

“네, 리콜라티.”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되면.. 내 아이에게 내 결혼식 이야기를 해주지 않겠어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페는 가만히 리콜라티를 바라보다 그녀의 머리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물론이에요.”

꼭 와서 그 자리를 추억해줘. 리콜라티는 그렇게 말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결혼식은 두 번다시 보기 힘들겠지. 약소한 결혼식의 약소한 파티가 끝나고, 리콜라티는 내게 인사하고 오페가 나를 마중하겠다고 약속에 약속을 한 뒤에야 동굴로 쉬러 들어갔다. 오페와 나는 천천히 걸어서 천천히 인사를 했다. 둘 다 서로에게 할 말이 없었다.

“…리콜라티가 너한테… 이상한 과제를 줬었지?”

“어… 그걸 어떻게 아세요?”

“힌트를 주마.”

“… 네?”

“내 눈은 본체로 변했을 때 붉은 색이다. 그리고 드래곤이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을 리는 없지.”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그를 빤하게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내뱉듯이 말했다.

“너에겐 빚을 졌으니까.”

그러더니 그가 나를 텔레포트 시켰다. 알 수 없는 의미의 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게 된다.

그리고 이후 내가 3학년이 됐을 때, 딱 한번 오페는 나를 찾아왔다. 그는 리콜라티와 꼭 닮은 여자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여자아이는 제대로 말도 못하는 갓난쟁이였다. 오페는 내게 와 비보를 전했다. 아이의 이름은 라티였다.

리콜라티는 페드윈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오페를 볼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새해 복 두 번 받으세요 음메음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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