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시아-9화 (9/113)

..... 음.. 이 편이 많이 바뀌었네여! 하지만 그래도 전개 자체는 크게 안 달라질 것 같습니다. 헤헤헤..... 시험 끝나고 왔어요 ㅠㅠ 바빴네요 9화

“아가씨, 아가씨!”

가볍게 내 몸을 흔드는 손길에 번뜩 눈을 떴다. 과제를, 대충이나마 마무리하고, 그리고 엎드렸… 엎드린 이후로 아예 기억이 없었다. 몸을 급하게 일으키자 애니가 힉, 하고 놀란 소리를 냈다.

“지금, 지금… 콜록, 몇 시야?”

“안 늦으셨어요. 평소 기상 시각인데 안 일어나셔서 깨웠는데, 많이 놀라셨어요?”

“어, 아니. 음… 나 어제 침대에 어떻게 들어온거야? 기억이 없는데.”

“집사님이 안아서 침대로 옮기셨어요.”

“아, 그랬구나….”

엄청 부끄럽다…!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쉬자 애니가 위로한답시고 그래도 집사가 한 번에 들어올렸어요! 라고 말했다. 위로는 고맙지만 전혀 도움은 안 되는구나….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상상돼.

“그나저나 우선 씻고 아침 식사 하셔요. 어제 많이 피곤하신 것 같아서 일부러 여기에 상을 차렸어요.”

“와, 애니 엄청 센스 있다! 멋있어!”

“네에~ 제가 그렇게 센스 있는 하녀랍니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내 앞에 세숫물을 세팅해준 애니가 옷방으로 가서는 교복을 꺼내왔다. 얌전히 세수를 하고 수건에 얼굴을 닦자마자 다음 일까지 착착 진행되어서 어느새 아침도 다 먹고 화장도 다 끝나고 교복도 착실하게 다 입었다. 머리를 묶을까 풀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애니가 이 시각에, 하며 문을 열러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말했다.

“아비게일 아가씨세요.”

제대로 매무새가 정리된 상태니 거절할 명목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문이 열리고 아비게일이 얌전한 걸음걸이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비게일.”

“어제… 늦게 들어왔다더구나.”

“네. 과제가 있었어요.”

“그리고,…”

아비게일은 약간 뻣뻣하고 부자연스럽게 허리를 펴더니 그녀 답지 않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한 귀족가의 영양이라면,”

그걸 듣자마자 어제 일을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질투와 앞으로의 꾸중과의 관련성을 찾는 것이야말로 치졸한 짓이었다. 나는 얌전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아무리 집사라도 함부로 몸에 손을 댈 여지를 주지 않아야한다.”

이 부분은 맞는 소리였으므로, 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실제로 제프리가 나를 깨우지 않고 안아서 침대에 내려놓은 것은 상당한 무례였으나, 그로서는 주인을 보살피는 방법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았을 거다. 이런 것을 미리 알고 언제나 처신을 똑바로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하지만 이에 대한 부끄러움보다는 내 마음대로 그녀를 치졸한 사람으로 만든 것에 부끄러웠다.

“죄송합니다.”

“또한, 여자아이가 그렇게 늦은 시각에 들어오는 것 또한 샤펜 답지 않아. 좀 더 여성임을 깨닫고 행동할 필요가 있어, 너는.”

이건 진짜로 언니다운 말이었다. 그녀의 친절한 말에 내가 약간 놀라서 머뭇거리고 있자 아비게일은 다음 말을 쏘아붙였다.

“무엇보다도! 아무이 친한 선배라고 해도 남자의 옷을 입고 들어오고, 친절함을 구하는 행동도 긍지에 어긋난다! 넌 내 대신 샤펜의 후계자가 될 몸이야! 좀 더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해낼 필요가 있어.”

말이 끝나자마자 내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온 거군. 그녀의 말이 진심으로 나에 대한 걱정의 발로라기에는 지나치게 앞뒤가 안 맞았다. 처음에는 여성이니 뭐니 하며 일찍 다닐 것을 강조하고 나중에는 늦은 밤에 돌아다닐 때는 혼자 다니라니.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그녀가 말했다.

“다니엘에게는 내가 오해 없도록 옷을 돌려주도록 하겠어.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해라.”

이게 목적이었구나! 아하, 하는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참고 얌전하고 순종적인 얼굴을 해보이면서 오히려 반가운 제안을 들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정말 감사하죠. 이상한 오해가 생길까봐 걱정했었는데, 저도.”

그녀는 그제서야 약간 안심한 얼굴을 하더니 앞으로는 조심해, 라고 말하고는 방을 나갔다.

“내가 어제 들고 온 옷, 아비게일에게 전해주렴.”

“어제 이미 들고 가셨어요.”

애니의 어조에는 약간의 불만과 짜증, 그리고 황당함이 섞여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선 어이가 정말로 없어졌지만, 그래도 애니가 괜스레 아비게일에게 나쁜 감정을 품어서는 나중에 괜한 일에 휘말릴 수 있었다. 가까스레 어르는 말투로 애니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면서 말했다.

“네가 내 일에 분개해줄 필요는 없어. 괜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언제나 처신을 조심히 해야지.”

“…아가씨는 화나지도 않으세요? 정말, 어휴!”

정말로 불만에 찬 목소리로 몸까지 부르르 떠는 모습에 오히려 내 기분이 살짝 풀렸다. 그러나 애니는 현명하게도 더 나아가지는 않았고 그 모습에 만족한 나는 그녀가 오늘 예쁜 것 같다고 칭찬해주고 방을 나서려고 했다.

“아, 아가씨.”

“응?”

“목 위로 올라오는 셔츠라도 보이니까 조심하세요.”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멍이 들었나보다.

“거즈라도 붙일까?”

“그나마 한쪽에 진하게 남아서 다행이에요. 목 양옆에 남았다가는 아예 붕대를 감으셔야했을텐데.”

“그러게.”

“누가 그랬는지 알려주실 마음도 없으실테고, 제가 알아봤자 별 소용도 없으실테지만… 그래도 항상 몸 조심하세요. 아셨지요?”

응,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는 웃고 말았다. 애니가 앞치마에서 거즈와 테이프를 꺼내서 붙여주고는 이제 됐다며 나를 방에서 내보냈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서재로 가서 과제를 정리하고 등교해 도서관에서 마저 레포트를 작성한 다음에 리콜라티 교수님의 방으로 향했다.

사실 그녀에게 큰 인상을 줄만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내게 과제를 내주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리콜라티 교수는 매우 훌륭한 교수였다. 그녀는 문화사를 전공했는데 매우 다방면에 지식이 있으며 이를 풀어내는 데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 코라, 시드와 함께 함께 듣는 몇 안 되는 수업 중 하나인데 몇 번 듣지 않았지만 어찌나 흡입력있게 강의를 하는지 강의를 듣다보면 그 이야기에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매우, 매우, 매우 예뻤다.

하얗고 뽀얀, 밀가루 같은 피부에 키가 훤칠하게 큰 흑갈색 머리카락의 교수님은 빛을 받으면 금색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연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키만 조금 작았더라면 미인도에서 튀어나왔다고 해도 믿을만큼 예쁜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사교계에 데뷔했더라면 미인의 기준이 키가 커야한다, 로 바뀌었겠지.

어쨌건간에 리콜라티 파르만이라고 적힌 방문 앞에서 숨을 천천히 내쉬고 문을 두드린 후에 이름을 말하자 우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허락을 내렸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샤펜양. 좋은 오후네요. 과제를 내러 왔나요?”

짧게 네, 라고 대답한 후에 다가가서 끈으로 묶은 과제물을 내밀자 교수님은 가볍게 받아들고는 자리를 권했다. 거절하지 않고 얌전히 앉았더니 과제물을 한참 슥슥 넘겨보시고는 내게 물었다.

“과제물을 받았을 때 당황했죠?”

“솔직히 말하자면… 네, 조금은 그랬습니다.”

“나도 이 과제를 딱히 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말이에요. 물론 샤펜 양에게 말할 수는 없고요. … 뭔가 궁금한 거 없었나요, 과제를 하면서?”

“과제와 특별히 관련은 없었지만… 하나 있습니다.”

“어떤 거지요?”

그녀의 얼굴이 어쩐지 기대에 반짝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착각…이겠지? 내가 할 질문은 그녀가 기대할만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혹시, 일리아라 야노 셀리이라라는 이름을 아세요?”

그러자 그녀가 한껏 미소를 짓더니 매끄럽게 대답했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전대의 샤하레군요. 현 오르안인 이리하의 어머니이기도 해요. 좀 복잡한 개념이겠지만, 샤하레라고 말하기 애매한 사람이기도 하지요. 아이작이 오르안이라고 보기 애매하기도 하니까요. 좀 더 알고 싶다면 내 개인 서재를 이용해도 좋아요. 도서관에 이걸 보여주면, 책을 줄거예요.”

어째서 이런, 인형극에 놀아나는 기분이 들지. 얼떨떨하게 허가증을 받아들고 나는 그녀의 방에서 나왔다. 뭐지. 이… 이상한, 껄끄러운 기분은.

도서관에서 자료를 읽고나자 모든 것이 꽤 분명해졌다. 일리아라 야노 셀리이라는 샤하레였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자료에서 그녀는 샤하레라고 명시되어있었으며 모든 오르제국인들 또한 그녀를 샤하레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아들인 현재의 오르안, 이리하에게 정통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반대로 아이작, 그러니까 이리하의 아버지이자 전대의 통치자는 오르안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자료에서 오르안이기보다는 이름으로 불렸고, 묘도 그곳에 있지 않다. 또한 리콜라티 파르만 교수가 보여준 자료에서 전대의 오르안으로 남아있는 자는 드네인 아루카겐 페르게네스였다. 이 자는 병을 얻어서 일찍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드네인 이전의 오르안은 급사했고, 그 뒤를 급하게 드네인이 이었기 때문에 이 과정은 상당히 약식이었으며, 그리고 그의 샤하레가 바로 일리아라 야노 셀리이아였다. …초상화의 배경으로 추정해봤을 때 사진 속 여자는 현재 살아있다면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 그리고 그녀는, 초콜릿 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

여자 쪽이 바깥에서 낳아온 남자의 아이 또한 사생아이다.

오르제국은 사생아를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그제서야 다니엘 이셀리아 요르펜이 내 목을 조른 이유를 이해했다. 그가 존재하기 때문에, 누군가 이런 사실을 또 알게 된다면….

현 오르안에게 그는 존재함으로 인한 위협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리콜라티 파르만은 왜 내게 이 사실을 알려주려 한 걸까.

무슨 목적으로.

============================ 작품 후기 ============================

약속있어서 밥 먹어요~ 오빠닭 요거닭 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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