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시아-4화 (4/113)

4화

잠을 설쳤는데도 습관은 무서워서, 나는 늘 일어나던 시각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아가씨, 마차를 준비할까요?”

한스의 말에 살짝 고민하면서 애니가 입혀주는 코트를 입고 시각을 확인했더니 곧 아비게일이 나설 시각이었다. 괜히 시각이 겹쳐서 좋을 게 없는데다 한 대 있는 마차를 먼저 타고 가버리는 게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말 타고 갈게요.”

“좀 다루기 거친 녀석 밖에는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상관 없어요.”

“그러면 튼튼한 녀석으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아가씨.”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제프리가 책가방을 한스에게 넘겨주었고 한스는 그 책가방을 들고 마구간쪽으로 걸어갔다. 애니가 마지막으로 내 손목과 머리에 가볍게 향수를 뿌렸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부엌에 들려서 잘 먹었다고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 뒤에 집을 나섰다. 책가방은 말에 단단히 매져있었고 나는 가볍게 말 위에 올라탔다. 시야가 단번에 높아져서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난 동물과 꽤 친한 편이다. 나 스스로가 동물을 좋아한 탓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동물이 나를 무척 친근하게 느끼는 탓이 컸다. 아마도 엄마에게서 이런 체질을 받은 것 같은데, 내가 동물을 퍽 좋아하는 것과 달리 엄마는 동물을 꽤나 무서워해서 피해다니고는 했다. 학교에 도착해 학교 마구간에 말을 맡기면서 말했다.

“찾으러 내가 올 거예요. 잘 부탁해요.”

책가방을 빼내면서 말하자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기 이용자에서 내 이름을 확인했다. 말에게 여물을 먹일까요, 하고 물어보기에 그러라고 했다.

“좋은 말이네요.”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였는데 시드나 코라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들의 목소리보다는 좀 더 차분했고 여유로웠다.

“아….”

있는 지도 몰랐던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에 당황한 채로 재빨리 절을 했다. 그도 가벼운 태도로 내 절을 받아 예의를 차려주었다. 초록색 눈이 싱그럽게 사라지면서 미소가 드러났다.

“다니엘 이셀리아 요프펜이라고 합니다. 그 때는, 인사도 못 했군요.”

딱히 인사를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가 나를 봤음을 알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얌전히 입을 열어 인사에 답했다.

“라시아 클레이만 샤펜이라고 해요. 정식으로 인사드려요, 선배님.”

“그 때 친구와의 대화가 불쾌했을까봐 좀 신경 쓰였습니다. 후배님이 거기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해요.”

“아뇨, 전혀… 제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악의도 없었으니까, 부디 나쁘게는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로드리고 시험을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부디 행운이 따르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어쩐지 어색해질 정도로 매우 격식 있는 예의를 차리는 것에 자연스럽게 나도 긴장이 됐다. 대대로 외교관을 배출하는 집안의 자제이기 때문일까, 혹은 그의 성격이 원래 이런 쪽일까. 조심스럽게 가늠하며 마구간을 나왔다. 선후배 사이에 상호 존칭을 쓴다고 듣긴 했지만, 학생회장이란 사람이 제대로 지키지 않기에 안 지키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지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로드리고 시험을 본다는 소문 때문에 벌써 시끌시끌하거든요. 나는, 아니 저는 재미있어 하는 쪽이지만.”

생각해보니 그도 로드리고 중의 한 명이었다. 말이 번복되는 걸 보니 사실은 그도 그렇게 존댓말의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웃는 얼굴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음. 엄격하게 따지자면 제가 처음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시초 엘라가 있으시니까.”

페드윈은 엘라, 아벤, 그리고 드래곤 페디올이 뜻을 모아 만든 학교였다. 둘은 각자 뛰어난 정치가이자 지략가였고, 그들이 직접 가르친 명문가의 학생들이 각자 로드리고와 로디나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 분을 로드리고에 소속된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지만, 해석은 제법 재미있네요.”

“고맙습니다. …잘 부탁 드려요, 앞으로.”

그러자 요르펜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는 나의 자신감을 우스워해야하는 것인지, 혹은 진심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은 로드리고에 붙고 나서 해도 늦지 않기 때문에.

“로드리고로서 말씀 드리는 게 아니에요. 형부가 되실 분으로서 말씀드리는 거랍니다.”

내 여유로운 미소에 그는 약간 당혹스럽고 재미있어 하는 얼굴로 걸음을 가만히 멈추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얼굴이 잘 읽히나요, 후배님은?”

“아뇨…?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신지 잘 맞추고 있나요, 저?”

그는 의뭉스러운 얼굴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후배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나 보군요. 그렇다면 라시아라고 불러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나도 다니엘이라고 불러도 좋아요.”

가까운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이름이 아닌가.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허락해주신다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님 보다야 마음이 편하겠지.

“우린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마음도 잘 맞을 것 같은데. …그리고 형부라고 판단하는 것은 좀 이르지 않을까요. 그래도 아비게일 양이 장녀잖아요?”

내가 그와 비슷한 의뭉스런 얼굴을 하자 그는 약간 뜸을 주고는 미소를 짓더니 어쨌거나 방심하지 않는 쪽이 좋으니까, 라고 덧붙였다.

“인생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나는 그렇게 말을 덧붙이고는 어리석은 희망이라는 것에 재빨리 말의 방향을 선회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지는 두고 봐야하는 거 아니겠어요, 선배님?”

후계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와의 말장난은 재미있었고, 나는 어리석게도 그와의 대화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길 게 뻔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비게일이 요르펜의 초상화를 지니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공작가 후계자끼리는 결혼할 수 없다는 제국법에 대한 대책으로 내가 왔다고, 아비게일이 스스로 말해주었으니까.

*

수업을 한창 듣고 나서 배가 고파 카페테리아가 어디였더라, 하고 지도를 펼치고 찾고 있었더니 타이밍 좋게 시드가 나를 발견해 카페테리아로 데려가주었다. 한참 찾았네, 하고 싱글벙글 웃는 얼굴에 나를 무안하게 하지 않으려는 특유의 싹싹함이 느껴져 나도 마주 웃어주었다. 어쨌거나 과연 부자 학교, 식단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메뉴를 골라서 받아왔더니 시드가 어느새 자리를 잡고 나를 불렀다. 앞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는데 시드가 내 메뉴를 보더니 말했다.

“오, 나 이거 좋아하는데. 반만 주라.”

“어? 어…. 괜찮겠어? 내가 이미 손 댔는데.”

“에이, 손 댄 거 가지고 뭐.”

너그럽게 손으로 이미 만진 빵을 뜯어주었더니 고마워, 너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라기에 됐다고 말했다. 음… 자유롭고 씩씩하게 자란 애구나. 이런 애는 처음이라 신기하고 유쾌했다. 어쨌거나 나도 완전한 귀족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타입이 어울리기 편했던 것이다.

“아, 먼저 와 있었네. 합석해도 괜찮아, 라시아?”

어딜 봐도 너희 둘이 식사하는 자리에 내가 합석한 거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건 고마웠다. 코라는 엄청나게 용량이 커 보이는 가방을 한 손으로 거뜬하게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봉투를 들고 있었다. 허락이 떨어지자 놀라울 정도로 능률적인 태도로 짐을 내려놓고 봉투에서 식사를 꺼내는 모습이 마치 기예 같이 느껴졌다.

“살아남았군, 제이드 교수에게서.”

마치 전우가 살아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목소리에 코라가 자네도 마찬가지야, 하고 멋지게응수하더니 시드의 옆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뒤져 이것저것을 건네주었다.

“아, 아침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구나.”

“응. 뭐 별 건 없어. 그냥 확인서야. 그리고 그 뒤에 자잘한 종이들은 학교 내 마차 시간대랑… 그리고 이게 내가 급하게 만든 알트라 200퍼센트 즐기는 방법!”

고, 고마워. 하고 서류를 건네받아 접으면서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이 빨라질 수 있구나, 속으로 조금 감탄했다.

“아 맞아! 너 로드리고 테스트 한다면서? 금요일 다섯시에?”

“그게 벌써 소문이 났어?”

그러자 한참 빵을 뜯어먹고 있던 시드 쪽에서 기침이 터졌다. 아, 둘이 친하지.

“너는 왜 혼자 제 발 저리냐. 물론 이 쪽이 정보 제공자긴 한데, 소문이 짜하게 난 것도 사실이야.”

“난 코라한테 밖에 말 안했어!!”

정색하고 변명하는 시드에게 오히려 당황해서 어, 어. 뭐 말해도 상관없어, 라는 말을 해서 그를 안심시켰다. 뭐 소문 날만한 일이었으니 안 났다면 되려 놀랐을 거였다.

“안 그래도 편입생이라서 눈에 띄는데다, 그 샤펜공과 클레이만의 자식에, 여자면서 로드리고까지 들어가다니 엄청나게 마이너의 집단에 속해버렸네, 시작부터. 앞으로 인생의 노고를 축하드립니다.”

시드를 밀어내다시피 하고 양념통을 들고 와 자신의 식사에 팍팍 뿌리는 모습에 시드가 질린 얼굴로 말을 해도 꼭, 하면서 양념통을 빼앗아갔다. 둘의 아웅다웅한 다툼을 보면서 나는 웃고 있기만 했다.

“험한 말로 말하기는 했지만, 맞는 소리야. 능력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당연히 가문이며, 신분차가 극명하게 갈린단 말이야. 만약에 로드리고 가입 조건에 떨어지면… 엄청나게 피곤해져. 로디나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을테니까 예의상 그 쪽에서 보호해줬을텐데, 왜 하필 로드리고야? 우린 여성들의 싸움에는 끼어들 줄 모른단 말야. 널 보호해주기 힘들다고.”

응? 보호?

“나, 보호 받을 필요 없는데.”

“시드는 마법사 집안 출신이면서 기사 쪽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미묘하게 좀… 그랬거든. 그래서 아마 너도 못 내버려두는 걸 거야.”

코라는 포크로 감자를 팍, 하고 찍으면서 내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시드를 빤히 바라보면서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도 좋아보이고, 뭐 하나 빠지는 것도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새겨진 어떤 상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딜 봐도 정말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는데. 딱히 기사 체질인지도 모르겠고….

“그걸 굳이 말하는 저의가 뭐냐, 저의가.”

시드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미묘하게 시선을 피하더니 귀를 손으로 가리면서 발로 코라의 의자를 툭, 툭 찼다. 진심으로 화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쩍 의자까지 뒤로 뺐건만 코라는 이를 대단치 않은 히스테리 정도로만 여기는지 맞는 말인데 뭐, 하면서 감자를 입에 넣었다.

“의리파라니까, 안 그래보여도.”

“따돌림 같은 거 안 당했어. 누나랑 형이, 아 둘이 쌍둥이인데- 좀 뛰어난 마법사거든. 대충 50년에 한번 태어날까말까한. 그러다보니까 좀 사고회로가 달라서 말이 안 통할 때가 있다보니, 뭐.”

뭔가 위로를 해야하나, 싶었지만 그가 이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그냥 이 화제에서 빨리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외로웠겠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상당한 실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그 말도 참았고.

“그렇구나. 음… 아무튼 보호해주려는 건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왜냐면 내가 언제든 그렇게 마이너가 아닌 집단에 속한 적이 없어서 말야.”

어쨌거나 코르티잔의 딸에,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는 채였으니까 말이다. 코르티잔은 평민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며, 중산층이라기엔 사치스럽고 귀족이라기엔 부족한 위치였다. 그런 사람 딸이었으니까 뭐, 어딜 가나 각오하고 있었다. 내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서로 싸우며 전투적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뭐, 나쁘지 않았다.

*

“내 이름은 도로시 길모어, 2학년과 3학년의 마법이론과목과 심화과정의 운영을 맡고 있는 교수입니다. 2학년 첫 수업이니만큼,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으로 수업을 시작하겠어요. 우선 간단한 수업 과정과 개요를 압축해둔 프린트입니다.”

길모어 교수가 간단한 손짓을 하자마자 종이들이 모두 날아와 학생 옆에 안착했다. 이게 마법이 걸렸던 종이라고 생각하자, 어쩐지 신기해서 그 종이를 살짝 만져봤지만, 역시 아무 다를 것이 없었다. 음, 파란색 물줄기 같이 손에서 문자들이 날아오는 문양이 진짜 멋있었는데.

확실히 내가 다른 사람보다 촌뜨기이긴 한가보다. 나는 교수님 손에서 빠져나오는 파란색 물줄기 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저 종이만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좀 부끄러우니까 앞으론 담담한 척 해야지.

“내 수업은 필기가 많고, 나는 성실하지 않은 학생을 싫어합니다. 열심히 하지도 않은 주제에 좋은 점수를 바라는 그런 학생들은 동정이나 아량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알아두세요. 또한, 당신들은 앞으로 수십 명의 마법사와 마주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섬세하게 다루는 위치에 설 겁니다. 그 점을 유념하고 행동하기 바랍니다.”

이 수업을 같이 듣게 된 시드가 펜으로 뭔가를 끄적거리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꽤 악필인 그의 글씨는 잘 알아볼 수가 없어서 인상까지 쓰고 글을 읽어야했다.

「왕 깐깐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교수님. 엄청 무서워!! >:?<」

이 얼굴 표시는 뭐야. 킥, 하고 웃으려는 순간 시드의 깃펜에 파란색의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뜨더니 펜이 시드의 머리를 힘차게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서 교수님을 바라보았는데 교수님은 매우 엄격한 얼굴로 경고하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니 길모어 교수는 장단에 맞춰 손을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내 수업에서 옆 학생에게 어쭙잖은 장난을 거는 것을 나는 허용하지 않아요. 알겠나요, 여러분?”

감히 대답할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차가운 음성이었는데 시드는 얻어맞으면서도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네에-”

혹시 아까 종이를 나눠줄 때의 파란색도 글자였을까? 이런 궁금증을 이 수업에서 풀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길모어 교수는 오늘은 첫 수업이니 이만하자는 말로 수업을 끝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리로 다가온 길모어 교수에게 시드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징징거렸다.

“이제 멈춰주세요, 도로시 교수님~”

길모어 교수는 한숨을 쉬더니 엄격하게 대답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말이 끝나자마자 파란 글자가 시드의 펜들을 전부 일으켜서 주인을 향한 봉기에 참여시켰다. 그리고 교수님은… 이런 말 하면 뭣하지만, 아까의 이모티콘이랑 얼굴 표정이 조금 닮으신 것 같기도 했다.

“군은 대체 언제 마법심화 방학과제를 낼 생각인가, 응?”

“에이, 교수니임. 그래도 두 개는 해왔어요.”

교수님은 더욱 거칠게 펜을 움직이면서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응? 자랑이라고, 하면서 시드를 타박했다.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묘하게 혼나는 것 같은 기분에 슬쩍 한 발자국 빠졌더니 시드가 원망스럽다는 얼굴을 했고, 나는 얌전히 다른 곳을 바라봤다.

“오늘 내로, 내게.”

길모어 교수님이 펜으로 시드를 때리는 것을 멈추자마자 시드가 얍, 하고 소리를 내더니 초록색 단어가 펜들을 전부 회수해서 필통으로 넣었다. 나도 마법을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자네는 예민자였던가, 샤펜양.”

“네.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그러네요.”

“마법사는 대개 혈통에 따른 재능이니까. 그대 윗대에는 선택받은 자가 없지.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테스트 해보겠어?”

“아…네. 괜찮으시다면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그러자 길모어 교수는 손을 휘둘러서 교탁 위에 놓인 구슬을 끌어다 왔다. 두 손을 얌전히 내밀자 손바닥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해서 얌전히 구슬을 잡자마자 나는 던지듯이 구슬을 떨어트렸다.

“죄- 죄송해요. 너무 뜨거워서.”

깜짝이야. 용케 깨지지 않은 구슬을 줍자마자 다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화산에다 손을 넣으면 이렇게 뜨거울까 싶을 정도로 뜨거워서 도무지 만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력 예민자를 판단하는 구슬이야. 저번에는 어떤 걸로 했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지?”

“그 때는 향인가, 그랬었어요. 꽃향기가 지독해서 조금 놀란 정도였거든요.”

“굉장히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나 보군. 그럼 마법사일 확률도 높아지는 건데, 이거 기대가 되는 걸.”

어쩐지 신이 나신 것 같아 나도 조금 들떴다. 혹시 저번의 결과가 약간 잘못 된 것일 수도 있잖아. 얌전히 교수님이 건네주는 구슬을 받아들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서 역시 아닌가봐요, 하고 교수님께 구슬을 되돌려드렸다.

“아쉽게 됐구나.”

교수님께서는 진심으로 아쉬우신 듯이 혀를 두어 번 차시고는 그래도 사는 데에 큰 지장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말하신 후, 인사를 하고는 마법으로 사라져버리셨다.

화상을 입은 것 마냥 벌겋게 달아오른 손바닥과는 달리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는 결과가 어찌나 억울하고 허무한지 나는 손을 흔들면서 시드에게 물었다.

“마력 예민자는 뭐 특기 같은 거 없어?”

“너같이 예민한 사람 난 처음 봤지만… 아마도 없…을걸. 마법이 발동될 때 누구보다 빨리 남들과는 다르게 눈치를 챌 수 있다는 장점은 있어, 그래도!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요는 쓸데없는 능력이라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섭섭하지~ 시각, 청각, 후각… 뭐 그런 오각 다음인데! 식스센스인데!”

“마법할 수 있으면 좋았을 걸. 알아채봤자 뭐해, 쓸 수가 없는데. 이거야말로 못 먹는 케이크 바라보기네.”

“마법에 재능 있으면 심화 수업 들어야해…. 나처럼…. 엄청 힘들게….”

끙끙거리는 모습이 웃겨서 그래, 그래, 하고 대충 달랜 후에 마법 심화 수업을 들으러 이동했다. 나도 다음 수업을 위해서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내 글에서 중 2병을 없애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어휴예쁜 여자를 보면 남자애들은 반응이 다 저런가봐요.

.... 트위터에서 봤는데 조선시대에는 선배님, 후배님, 이렇게 서로 존댓말을 썼다네여. 그거보고 하하.. 써먹어야지 멋있겠다.. 이랬는데 소오오오름..;;;

앞으로 다니엘 되게 편한 선배님 되실 예정인데;.... 너 누구세요 싶을 정도로 깍듯한 남자가 되어버렸네여... 앞으로 역변할듯 ㅠㅠㅠㅠ 나룸 마음에 들었는데 ㅠㅠㅠㅠ

음,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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