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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아-3화 (3/113)

3화

둘은 동시에 약간 일그러진 얼굴을 했는데 어쩜 둘이 그렇게 똑같은가 몰랐다. 겨우 웃음을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곧 수업이 있는 코라는 힘내라며 측은한 얼굴을 하더니 가버렸다. 혼자 남은 시드는 매우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기사처럼 결심에 찬 얼굴로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입을 하기 위해 금붕어 똥처럼 따라다니는 시드를 무시하고 학생회실을 찾기 시작했다. 로드리고 대표가 분명히 4학년 학생회장이었지.

“여자애들은 우리 그룹에 어울리기도 힘들고, 사실 우리 동아리 재밌지도 않고…”

“재미도 없으면서 넌 왜 가입했는데?”

코라가 주고 간 지도를 펼쳐서 학생회실의 위치를 찾으면서 가볍게 웃으면서 물었더니, 갑자기 시드가 입을 다물더니 어음, 하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기왕 가문을 잇게 된 거 부모님께서 해보라고 권하셔서?”

저나 나나 그리 다른 목적이나 동기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조금 같잖게 느껴져서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나도 샤펜께서 원하셔서 들어가는 거야. 게다가 난 놀러가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

내 말에 시드는 난처한 얼굴을 하더니 인상까지 쓰면서 말했다.

“신청하는 즉시 붙든 못 붙든, 넌 여기서 이상한 애가 되는 거야. 다른 길을 걷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여자애들 사이에서 어떤 취급을 당할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라는 대로 따르기 보다는,…”

이 애는 참 사랑 받고 자랐구나. 나는 그에 대한 인상을 그렇게 결론지으면서 웃었다. 참 상냥하지만, 귀찮은 애네.

“시드 로함 에드가.”

내 말에 그가 나를 토끼처럼 큰 눈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말했다.

“너랑 상관 없는 일이잖아.”

학생회실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나는 사실 그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드는 재빨리 내 옆으로 보폭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를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한 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넌 좋은 애구나.”

그는 그 말에 그렇다고 생각해주면 고마운데, 라고 말하더니 약간 쑥쓰러운 표정으로 코를 긁었다. 내 뜬금없는 칭찬에 괜히 민망해서 고개를 바로 하고는 그와 나란히 한참을 걸었다. 학생회실의 문을 열기 직전, 괜히 긴장되는 마음에 크게 한숨을 한 번 내쉬자 시드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라면서 내 어깨를 심하게 흔들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 하면서 그를 돌아봤더니 마치 자신이 시험에 드는 것마냥 긴장한 얼굴이어서 내 긴장이 쑥, 하고 풀려버렸다. 얘는 진짜, 어떻게 크면 이렇게 되는 거야.

“왜 네가 긴장하고 그래.”

“어…그러게. 아, 잘하고 와, 잘 하고. 알았지?”

“응. 다녀올게.”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웬 남자가 소파에 거의 처박혀서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여기는 이 사람밖에 없나? 천천히 다가가 고개를 기울여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이 사람이 4학년 에트왈이자 로드리고임을 깨달았다. 음, 깨워야하나…? 어쩔까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남자가 부스스하게 눈을 떠버려서 나는 아, 안녕하세요, 하고 그에게 웃어보였다.

“…꿈인가….”

남자는 흐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음, 꿈은 확실히 아닌데요.”

내 말에 남자가 아냐 꿈일거야, 라며 몸을 돌려서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기에 재빨리 손을 뻗어서 살짝 남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남자는 아냐 꿈이라고, 난 더 잘거야, 하면서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 죄송해요, 그런데 꼭 필요해서요….”

내가 거기까지 말을 꺼내자 그 때서야 남자는 흑흑흑 하는 인위적인 소리를 내면서 얼굴을 마구 문지르더니 몸을 일으켰다.

“왜… 삼일 동안 못 잤는데…. 흑…”

그 말을 듣고서는 정말로 미안해졌다. 미안한 얼굴로 죄송해요,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했더니 그가 아냐 이게 내 팔자지 뭐… 하면서 슬픈 얼굴로 손을 내밀더니 말했다.

“애론 데샹테 주드발이라고 한다.”

“라시아 클레이만 샤펜이에요.”

가볍게 악수하고 소중한 게 분명한 그의 시간을 더 빼앗고 싶지 않아 재빨리 말했다.

“로드리고 가입을 하고 싶어서요. 우선 추천장이 필요한 걸로 알고 있어서, 샤펜경의 것을 들고 왔는데…”

주드발은 상당히 놀란 얼굴로 내가 내미는 추천장을 받아들더니 펴보고 두 눈을 부릅뜨고 읽기 시작했다. 정말이네, 라고 그가 말하면서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주드발은 흠, 하고 두어번 추천장을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금요일 오후 5시에, 동아리 실로 와. 가입 여부는 다 같이 결정할 거니까. 적당히 시험 같은 것도 있을 거고, 물론. 편입 시험 성적표 들고 오고.”

“아, 시험은 어떤 걸 보는 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음. 그 때 그 때 다르기는 한데…. 글쎄, 보통은 검술이랑 성적, 승마도 보지. 참, 체스도 있어. 가끔 비공식 체스 대회가 로디나 들이랑 열리는데 질 수 없어서 말이야.”

“그렇군요.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방해해서 죄송해요.”

“아냐, 아냐. 후배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한 후에 나는 학생회실을 빠져나왔다. 시드는 밖에서 쭉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내가 나오자마자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다.

“음. 시험은 일단 보기로 했어. 다행이야. 남자 동아리라 많이 걱정했는데.”

“어쨌든간에 샤펜공의 추천서를 쉽게 그렇게 잘라낼 수야 없지. 당신께서도 로드리고였기 때문에, 우리 입장으로는 까마득한 선배님이니까.”

“뭐야, 괜히 걱정했네.”

“이제 걱정을 시작해야지. 그보다 볼 일 다 본 거야?”

“응. 같이 와줘서 고마워.”

시드가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뭘. 잘 알지도 못하는데 간섭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네. 하고는 상냥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마차를 타는 곳에서 시드와 헤어져서 마차를 타고 돌아왔다.

“다녀왔어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중을 나온 제프리에게 가방과 코트를 건넸다.

“학교는 재미 있으셨습니까?”

“응, 뭐 나름대로요. 별 일은 없었죠?”

제프리는 상당히 잘 생긴 축인 샤펜가의 집사로, 이른 승진을 한 능력자였다. 게다가 얼굴값을 해서 인기 많은 바람둥이란다, 하녀들의 말로는. 어쨌거나 샤펜 가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제프리에게 이상한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내가 오랫동안 알고 있는 사람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을 닮은 것 같은데, 누굴 닮았는지 짐작이 안 되는 느낌?

“왜 그렇게 보십니까? 제가 오늘따라 잘 생겨 보이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참, 식사는 안 해도 괜찮아요.”

“밥을 안 드시면 안 되죠. 저녁 식사를 멋지게 해서 다들 맛있게 드셔주시길 기다리고 있는데.”

“목욕하고 일찍 자고 싶은데….”

“그렇게 밥 안 먹고 주무시면 좋을 게 없어요.”

오늘따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안 먹는다고 대답했더니 제프리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더니 알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왜 내가 이렇게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그래도 고생해서 만들었을텐데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별로 힘들게 만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 세시간 정도… 그럼 뜨거운 물을 받아두겠습니다.”

결국 끙, 하고 입을 깨물고는 말했다.

“먹으면 되잖아요, 먹으면.”

“역시 우리 아가씨. 상냥하기까지 하시니.”

방글 방글 웃는 얼굴이 어찌나 얄미운지, 그 높은 코를 잡아당기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제프리, 혹시 검 다룰 줄 알아요?”

“…어. 왜 그러십니까? 때리시려고요? 저는 제 적성을 살리느라 술이랑 여자밖에 다룬 적이 없어서…”

“으응, 그렇구나아.”

대충 대답해버렸더니 어째서 그런 반응이세요. 애초에 왜 물어보신 거예요, 하며 나를 또다시 쫓아오기 시작했다.

“아, 식사 준비하시라니까!”

문 앞에서 탕, 하고 문을 닫자 제프리가 옷 갈아입고 얼른 내려오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 꽤 멀게 들렸다. 못 말린다 싶어서 머리를 하나로 묶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후에 슬리퍼를 신고 방 밖으로 나왔더니 애니와 딱 마주쳤다.

“어머, 아가씨. 벌써 갈아입으셨어요?”

“응. 없는 동안 별 일 없었어?”

“네. 하루 종일 평화로웠어요, 아가씨. 옷 갈아입는 것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늦어버렸네요.”

“혼자 갈아입을 수 있는데 뭐하러.”

“그래도 이제 제가 모시는 분인데.”

애니의 시무룩한 표정에 퍽 난처해졌다. 이런 생활은 처음이라 아직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색해 아직도 나는 나 혼자 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충 둘러댈 필요가 있어서 애니가 맵시 있게 들고 있는 코트를 보면서 가볍게 물었다.

“다른 걸로 도와주면 되지, 뭐. 아비게일양이 돌아왔나보네?”

“네, 방금 도착하셨어요.”

“그렇구나. 나 식사 하고 목욕할 건데, 그러면 그 때 봐.”

네, 아가씨. 애니가 가볍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아비게일의 코트 주머니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종이를 주웠다. 초록색 눈에 초콜릿색 머리카락, 상냥하게 웃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나는 가만히 사진을 한참 보고 있을 뻔했다. 없어진 걸 알아채면 난리가 나겠지, 싶어서 나는 왜 나는지 모르는 욕심을 누르고 애니를 불렀다.

“애니.”

“네, 아가씨.”

“코트 안에서 뭔가 떨어져서, 잠깐 코트 좀 줘볼래?”

애니는 선뜻 내게 코트를 내밀었다. 나는 고마워, 하고 말하면서 안주머니에 다니엘의 사진을 넣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애니.”

애니에게 웃어주고 나는 식사를 한 후에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학교에서의 첫 날은 피곤하고 무엇보다 몹시 긴장 되었다. 침등을 켜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 옛날이 떠올랐다.

…내 엄마인 리이 클레이만은 아느완, 즉 베노암 수도에서 제일가는 코르티잔이었다. 북쪽에서 팔려와 가장 바닥에서 그녀가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나를 몹시 사랑했고, 배운 모든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훌륭한 여자였으나, 코르티잔의 삶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 덕분에 무리 없이 귀족가의 생활에 적응할 수도, 페드윈에 들어올 수도 있었다. 나는 엄마를 존경했고, 어쨌거나 사랑했다.

엄마는 샤펜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곧잘 덧붙였다. 대체 왜 그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실제로 샤펜공은 내가 기대하거나 예상했던 어떤 ‘아버지’와도 달랐고, 그리고 엄마를 내게서 떠올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왔다. 대체 왜 그 사람, 그 때의 그 사람이어야 했는지 모르는 것.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그 사람이 그 때, 거기에 서있었을까.

그 초록색 눈, 초콜릿색 머리카락, 그렇게 웃으면서.

나는 입술을 깨물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아니야. 얼굴뿐인데,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니어야해.

============================ 작품 후기 ============================

애정전선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어요. 리메 전에는 연애 감정을 따라가기가 힘드셨을 것 같아서.. 헤헤헤.. 라시아의 마음이나, 시드의 마음을 잘 볼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D 바꾸는데 전 정말 리메 후가 훠어어얼씬 마음에 드네요.. (눈물범벅)좋아하는 존잘님께서 친절하게도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애정에 항상 감사하고 있답니다.

허락을 받고 나서는 표지 그림을 바꾸고 싶네요. 또 근시일 내에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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