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3. (9/10)

03.

세상은 넓고 등신은 많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그 많은 등신이 다 제 학교로, 하필이면 이 강의로, 저와 같은 조로 모인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삐딱하게 고갤 기울인 서윤채는 속 터지는 낯짝들을 살폈다. 눈빛부터 멍청해 보이는 이들은 아까부터 되지도 않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제대로 과제를 할 생각이 있긴 한 건지. 전공 수업을 듣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이가 없어 이젠 화도 나질 않고 실소만 터져 나왔다.

대체 어디까지 갈 심산인가 싶어 가만히 두고 보고 있으려니 징, 진동이 울렸다.

[권채현2 : 윤채야바빠?]

[권채현2 : 수업중이야?] 오후 3:35

1 오후 3:36 [곧 쉬는 시간]

숨만 쉬어도 화를 돋우는 등신들과 달리 언제고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상대의 연락이었다. 미소를 머금은 서윤채는 바로 메시지를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 두었다.

톡톡. 지체 없이 행동하고선 답장을 기다리며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 소음이 거슬렸는지 졸업 논문 준비 중이라 바쁘다던 등신1이 곁눈질했다.

“왜요?”

“아니에요.”

예사롭게 묻자, 상대는 핸드폰을 힐끗대며 시선을 거뒀다. 변태 새끼도 아니고 뭘 야려 대는 건지. 신경이 긁힌 서윤채는 핸드폰을 뒤집어 놓고 회의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이번엔 의견이랄 것이 전혀 없는, 있느니만 못한 등신2가 얼굴을 힐끔거렸다.

“할 말 있으세요?”

상대는 물은 보람이 없을 만큼 고개를 홱 돌렸다. 황당한 반응에 절로 열이 솟구쳤다. 대체……. 시비를 거는 걸까. 그도 아니면 제게 불만이 더럽게 많은데 참고 있는 걸까.

느닷없는 행동의 연유를 생각하길 잠시, 참 개판인 조별 과제구나 싶어 볼 안쪽을 혀로 훑어 내렸다. 전공이니 챙기긴 해야 할 텐데 함께하는 이들이 영 시원찮았다.

저희 과에 이 정도로 덜떨어진 사람이 많았던지. 대형 학과라 모르는 이가 대다수긴 한데, 모두 초면이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과 행사 참여를 안 하다 보니 더욱 알 길이 없긴 했다만.

회의는 이도 저도 아닌 채 길어지기만 했다. 요점 파악을 못 하고 주제를 넓히기만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벌써 주차가 꽤 지났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서윤채는 터지려는 한숨을 겨우 삼키고서야 입을 열었다.

“그 부분 기획안 수정해서 저번 주에 보내 드렸어요. 확인해 보시고 의견 남겨 달라고 말씀드렸고. 그때 별다른 피드백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 그게…….”

파일을 공유하자마자 좋다고 대꾸했던 등신3이 우물쭈물했다. 씨발……. 그림처럼 입꼬리를 당긴 서윤채가 속으로만 중얼댔다. 그러한 노력이 무색하도록 떠오른 미소도 곱지는 않았다.

전공만 아니었어도. 매초 속이 뒤집혔지만 인내하며 꿋꿋하게 회의를 이끌었다. 저런 등신이어도, 입결이 꽤 높다는 저희 학교에 합격한 이들이니 시키는 일은 해내리라 믿으며.

지잉. 아까보다 긴 진동이 울린 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니 기다리던 이의 이름이 떠 있었다.

“잠깐 실례할게요.”

때마침 교수님이 쉬어 가자고 이야기해 서윤채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채현아.”

전화를 받으며 움직이자 등신들의 눈길이 따라붙었다. 연신 눈치를 보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빤히 쳐다보았다. 쯧 혀를 찬 서윤채는 시선을 모조리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 윤채야,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물어봐 줘.

“뭐 하고 있어.”

― 내 남은 대학 생활이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을 버티고 있어.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 그게 아니라, 과사 갔다가 교수님 마주쳤는데…….

다소 소란스러운 핸드폰 너머로 상대의 음성이 들려왔다. 서윤채는 입매를 잔뜩 늘어뜨리고 채현이 앞에 있는 양 웃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직전까지 기분이 좆같았는데 삽시에 좋아지는 듯했다. 목소리가 맑아서 그런지 환히 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고.

아. 권채현 보고 싶다. 성실히 반응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더더욱 만나고 싶단 생각만 치밀었다. 공연히 갈증이 나 입술을 적신 서윤채는 복도 벽에 몸을 툭 기댔다.

“이따 저녁에 볼까?”

― 저녁에?

“어. 내가 너희 집으로 갈게.”

― 상관은 없는데, 너 안 피곤하겠어?

“널 보는데 왜 피곤해.”

불리하면 꼭 입을 다무는 상대는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또 버릇처럼 귓가를 붉게 물들이고 올곧은 반응을 내보이고 있겠지. 그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져 웃음이 났다.

“이따 연락할게. 꼭 살아 돌아와.”

― 어, 응. 알겠어.

“그래. 좋아하고.”

― 무슨, 그런 말을 학교에서 해.

“집에서도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제 끊어. 나 들어가 봐야 돼.”

― 알겠어. 너도 파이팅.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서윤채는 통화를 종료한 뒤 강의실로 향했다. 힐끔 제게 와 닿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다시 회의가 재개된 후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머리를 식힌 등신들이 제 몫을 하게 되는 기적 따위 일어나지 않았다. 성가신 일은 질색이라 조장도 기피했는데, 결국은 도맡은 꼴이었다.

“진행 상황 다음 수업 전까지 공유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죠.”

온갖 악재가 겹친 와중, 강의가 평소보다 일찍 끝난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서윤채는 예의상 한 번 웃어 보이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찰나 떠올랐던 미소는 금세 자취를 감췄다.

좆같은 학교. 휴학 시절 재학생을 놀려 대던 업보를 돌려받은 건지, 오랜만의 학교는 유독 힘든 듯했다. 실은 채현과 만날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뭐 하고 있으려나. 습관적으로 채현을 떠올리며 걷던 찰나,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신제윤과 눈이 마주쳤다. 온화한 낯을 하고 있던 상대의 표정이 찰나 흔들렸다. 그러하길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웃어 보이며 일행과 멀어진 뒤 지척으로 다가왔다.

곁으로 와 선 신제윤의 얼굴은 무심하기만 했다. 직전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하여간 정 안 가는 새끼. 하는 꼴을 바라보던 서윤채는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뜻으로 까딱 고갯짓했다.

“학교생활 하는 데 무슨 문제 있어?”

한데 들리는 말은 갑작스러운 만남만큼이나 뜬금없었다. 왜 만나는 이마다 전부 뇌에 힘이 풀린 건지. 그나마 머리는 멀쩡한 편이었던 신제윤도 드디어 돌아 버린 건가 싶었다.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네가 개소리를 하는 거야? 바빠 보이는데 가던 길 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신제윤은 말을 늘이며 본인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환한 화면엔 채현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권채현 : 제윤아나물어볼게하나있는데]

[권채현 : 혹시시간돼?] 오후 6:11

오후 6:14 [응. 뭔데?]

[권채현 : 다른게아니라..윤채학교에서어때?잘다녀?]

[권채현 : 친구는있는지..] 오후 6:18

[글쎄^^;]

오후 6:20 [마주치면 한번 물어볼게^^]

[권채현 : 고마워ㅎ;ㅠ] 오후 6:24

“뭐야, 이게?”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뭘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채현이가 이런 걸 물어봐.”

집중한 채 활자를 읽던 서윤채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대체 뭘 걱정하는 건지. 언젠가 한 번 친구들에게 욕먹는다 어쩐다 하더니 뒤에서 이런 깜찍한 짓을 한 듯했다. 그럴 거면 티나 안 나게 하던가. 좌우지간 숨길 줄을 모르는 것도 채현다워 웃음이 났다.

“아무 일도 없어.”

“일 있으면 말해. 학생 지원 센터 방문하면 도움받을 수 있을 거야.”

“총학이라 이거냐? 신경 써 줘서 고마운데, 가서 네 볼일이나 봐.”

“문제없어 보이긴 한다. 갈게. 수고해.”

가벼이 대꾸한 상대는 덧붙이는 말 없이 자리를 떴다. 서윤채도 바로 발을 내디디며 채현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아직 교수님이랑 있는 건가. 방해가 될까 종료 버튼을 누른 서윤채는 메시지를 남겨 두고 과방으로 향했다.

동기에게 전해 받을 자료가 있어 들어선 공간엔 인원이 꽤 많았다.

“안녕하세요.”

“안녕 못 한다. 넌 복학도 한 새끼가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제 얼굴 봐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요.”

“새내기 때 내가 밥을 몇 번을 사 줬는데.”

“감사했습니다.”

까딱. 얕게 고개를 꾸벅이며 씩 웃어 보이자 선배가 ‘허!’ 기가 차다는 듯 소릴 냈다. 배은망덕한 새끼라는 둥 악담을 퍼부어 댔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수업 있냐?”

“아뇨. 끝났어요.”

“그럼 술이나 마시러 가자.”

“다음에요.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비싸게 굴기는.”

선배는 안 보챌 테니 얘기나 하다 가라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시간을 확인한 서윤채는 저녁까진 여유가 있어 흔쾌히 소파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흔하디흔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때였을까. 문득 선배가 착용하고 있는 커플링이 눈에 띄었다. 서윤채는 무의식적으로 텅 빈 제 약지를 바라보며 채현의 손을 떠올렸다.

반지라……. 워낙 피부가 희고 손가락이 곧아서 잘 어울릴 듯했다. 그를 받았을 때의 반응 역시 기대가 되었고. 분명 또 투명한 속내를 내보이겠지. 신이 나면 늘 도톰히 솟는 애교 살이 올라올 만큼 환히 웃을 테고. 부끄러워하며 입술을 감쳐물 수도 있으리라.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 만족감이 차올랐다. 아직은 이른가. 언제 해야 좋을까. 자신도 모르는 새 생각을 이어 가던 서윤채는 입매를 허물어뜨리며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형은 반지 언제 맞췄어요?”

“나? 일주년 때인가.”

“아.”

“왜. 너 연애하냐?”

떳떳하게 못 밝힐 이유는 없다만, 긍정하는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말해 봤자 학과에 소문만 퍼지리란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

“야, 여럿 울겠다.”

“제가 뭐 되나요.”

“적당히 겸손 떨어라. 재수 없으니까.”

발끈하는 선배를 응시하던 서윤채는 태연히 미소 지으며 다리를 꼬아 올렸다. 상대는 더더욱 분개하며 제법 억센 음성으로 ‘안 되겠다.’ 중얼거렸다.

“너 오늘 그냥은 못 가겠다. 어차피 밤 약속일 거 아니야. 싫으면 여친 얘기 좀 해 보든가.”

“선배가 후배한테 이래도 돼요?”

“어. 돼.”

“밥을 괜히 얻어먹어서.”

“늦었어, 인마. 갈 거지? 술은 형이 살게.”

“네, 뭐. 오래는 못 있어요.”

잠잠한 핸드폰을 확인한 서윤채는 알겠단 뜻으로 고갤 끄덕였다. 대충 적당히 어울려 주다가 채현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 *

“아으…….”

과제와 딴짓을 번갈아 하던 채현이 요란한 소릴 내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푹신한 침대가 몸을 감싸 안자, 계속 앉아 있느라 혹사당한 허리가 아우성을 쳐 댔다.

“그냥 누워만 있고 싶다…….”

편히 누워 숨만 쉬는 게 이다지도 좋은 일인지. 멍하니 천장을 보던 채현은 뻑뻑해진 눈가를 꾹꾹 누르며 실소를 흘렸다. 시원해질 때까지 마사지해 주고선 뒹굴 돌아누워 바디 필로우를 끌어안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딱 정각까지만 누워 있을 참이었다.

흠. 목을 울린 채현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덧 9시에 가까워진 채였다. 술자리에 끌려가게 돼 늦을 거 같단 이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서윤채S : 금방 끝나]

[서윤채S : 죽이고 연락할게] 오후 6:57

[오늘안봐도괜찮으니까실컷놀고와]

1 오후 7:02 [술너무많이마시지말고]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의 ‘1’ 자도 여전했다. 설마 본인도 죽은 건 아니겠지……. 그가 술을 싫어할 뿐인지, 주량은 센 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걱정이 됐다.

술자리에서 연락이 끊겼지만 불안한 마음은 없었다. 서윤채가 애먼 짓을 할 사람도 아니거니와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기에 그저 상태가 신경 쓰일 뿐이었다.

“잘 놀고 있는 건지…….”

허튼 말 따위 하지 않는 서윤채이니, 분명 오늘이 가기 전에 연락해 오리라. 그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잠잠하던 핸드폰이 때마침 길게 울렸다. 화면엔 더없이 익숙한 번호가 떠 있었다.

― 어디야?

소란스러운 주변 너머로 서윤채의 음성이 들려왔다. 짧은 물음은 평소보다 느릿하게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조금 취한 건가. 곰곰이 생각하던 채현은 핸드폰을 귓가에 바짝 갖다 댔다.

“나는 집이지.”

― 왜 안 자고.

“아직 잘 시간 안 됐어. 너는 어디야? 오늘 만날 수 있겠어?”

― 나 기다렸어?

“어?”

― 내가 보고 싶어서 안 자고 기다렸나…….

희미한 웃음기가 묻어나는 음성이 길게 늘어졌다. 집중한 채 그의 말을 듣던 채현은 고갤 갸웃하며 삽시에 표정을 굳혔다. 발음은 또박또박한데, 말씨가 멀쩡한 사람 같지 않았다.

“너 괜찮은 거 맞아?”

― 아, 택시…….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듯한 상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

“윤채야, 어디야? 내가 지금 갈까?”

― 채현아, 이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어. 위험해.

이제 겨우 9시인데 몇 시라고 생각하는 건지. 걱정이 치민 채현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 난 지금 집이야. 너 어딘데? 내가 데리러 갈게.”

― 나도 집 가.

“택시 탄 거야? 집 혼자 갈 수 있겠어?”

― 응. 아, 권채현 보고 싶다.

“택시 탄 거 맞아?”

― 오늘은 늦었으니까 우리 내일 보자. 미안해.

“괜찮아. 사과 안 해도 돼.”

거짓 하나 없이 바로 대꾸한 채현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위치를 몰라 찾아갈 수도 없고. 무사히 집으로 가고 있는 건지 불분명해 신경이 쓰였다.

서윤채가 전화를 끊지 않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디 쪽으로 갈까요?’ 묻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택시를 타긴 탄 듯했다.

“윤채야, 잠든 거 아니지?”

― 응. 뭐 하고 있었어.

혹시 차 안에서 잠들까 일부러 말을 걸자, 상대는 몹시 멀쩡한 투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직전까지 딴소리만 해 대더니……. 어떤 상태인지 가늠이 안 돼 속이 탔다.

“과제하고 있었어. 속은 좀 어때. 멀미 안 나?”

― 좆같아.

“많이 안 좋아?”

연애를 시작한 후로는 퍽 고운 말만 쓰던 이다. 특히 제 앞에서는 말투를 고쳐 보려는 듯했고. 그랬던 서윤채가 노골적으로 말하는 걸 보니 완전히 취했구나 싶어 조바심이 났다.

“윤채야?”

― 응. 채현아.

“토할 거 같으면 기사님한테 잠시 멈춰 달라고 얘기해 봐.”

― 괜찮아. 아, 근데…….

평소와 같이 나긋하게 이름을 부른 상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개중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제 이름과 보고 싶단 소리뿐이었다.

― 이 앞에 세워 드리면 될까요.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았는지 금세 집 앞에 도착한 듯했다. 채현은 귀를 쫑긋 세우고 서윤채의 기척을 좇았다.

카드를 꺼내 계산하는 소리. 감사하다 인사하는 소리. 탁. 택시 문을 닫고 내리는 소리…….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소음으로 자연히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윤채야, 조심히 걸어. 집 들어갈 때까지 전화 끊지 말고.”

― 계속 통화할까.

듣기 좋은 목소리가 느릿느릿 흘러나왔다. 꼭 한 음절 한 음절 정성 들여 말한 느낌이었다. 공연히 소름이 돋은 채현은 목덜미를 매만지며 ‘응.’ 짧게 대꾸했다.

저벅저벅. 대화가 끊기고 그 사이로 복도를 걷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그 정도 정신은 남아 있는 듯했다.

“집 앞이야?”

― 응. 다 왔어.

삑삑. 순순한 대답 뒤로 도어록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제집 밖에서도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화들짝 놀란 채현은 휙 고개를 쳐들고 현관을 응시했다.

― 아…… 왜 안 열리지.

삑삑. 우려는 너무도 쉽게 현실이 되었다. 또 한 번 같은 소리가 들린 순간 확신이 섰다. 서윤채가 저 밖에 있으리라고. 허, 짧게 숨을 토해 낸 채현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채현아, 문이 안 열려.

벌컥 문을 여니 아니나 다를까 우두커니 버티고 선 서윤채가 보였다. 어이가 없어 빤히 쳐다보자, 서윤채는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어…….’ 목을 울렸다.

“너 여기서 뭐 해?”

“채현이가 왜 우리 집에 있지?”

나지막한 물음은 얼굴에 떠오른 미소만큼이나 다디달았다.

“말을 하고 오지.”

“여기 우리 집인데.”

“우리 집이야?”

‘우리’에 힘을 실어 말한 그가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서윤채 특유의 향이 훅 밀려왔다. 일순 멍해졌던 채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쿵. 문이 닫히고 좁은 현관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현관 센서가 공간을 비추다 머지않아 빛을 꺼트렸다. 한껏 풀어진 얼굴을 한 서윤채는 평소보다 느슨히 웃어 보였다.

“우리가 언제 살림을 합쳤지……. 미안. 기억이 잘 안 난다. 나 술 많이 마셨어.”

“그래 보여…….”

“아, 내가 지금 말을, 이렇게 해도 좀 봐줘.”

“속은 괜찮아?”

“나 보고 싶어서 왔어?”

더군다나 단단히 취한 것인지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연신 실없이 굴며 피식대기만 했다. 본인이 듣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소화하듯 뜬금없는 말만 해 댔고.

“나도 보고 싶었는데. 이리 와 봐. 아, 아니다…….”

“어?”

“잠시만. 나 일단 씻고 올게. 술 냄새 나면 안 되니까.”

금방이라도 껴안을 듯 팔을 벌리던 상대는 인상을 설핏 구기곤 몸을 뒤로 물렸다. 살짝 휘청대기에 잡아 주려 했으나, 바로 중심을 잡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제법 멀쩡한 사람처럼 걸음을 옮겨 채현은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멈춤 없이 나아가던 서윤채는 방 중앙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딱 보니 욕실을 못 찾고 헤매는 듯했다. 여전히 본인 집이라 생각해 구조가 익숙지 않은 것인지. 황당한 모습에 자연히 실소가 터져 나왔다. 가벼이 웃음을 흘린 채현은 직접 그를 욕실로 데려다주었다.

“혼자 씻을 수 있어?”

“채현이 씻었어?”

“어? 어. 난 씻었지.”

“그럼 기다려.”

쾅. 공간을 나눈 문은 답할 새 없이 닫혔다. 대체……. 이 상황이 퍽 어이가 없어 피식댄 채현은 서윤채에게 줄 얼음물을 꺼내 두었다.

상대는 오래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문제는 겉보기엔 멀쩡한데 눈이 돌아 있단 거였다. 한 박자 늦게 시선이 얽힌 그는 그제야 성큼 곁으로 다가와 몸을 꽉 끌어안았다.

“나 이제 술 냄새 안 나.”

“아까도 별로 안 났어.”

“뽀뽀해도 돼?”

“해도 되긴 하는데….”

서윤채는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입을 맞춰 왔다. 물기를 머금은 입술이 와 닿았다 떨어졌다. 쪽. 산뜻한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서윤채의 입꼬리가 예쁘게 솟았다.

“아, 이거 좋은 거 같아…….”

“뭐가?”

“집에 오자마자 너 보는 거.”

눈웃음을 치며 속삭인 이는 또다시 뽀뽀를 했다. 얼굴 곳곳에 입술을 내리더니 끝내는 목덜미에 고갤 파묻고 질근질근 씹어 댔다. 이 정도로 취한 모습은 처음 봐서 조금 놀라웠다.

“어쩌다 이렇게 많이 마셨어.”

“아, 반지를…….”

“반지?”

뜻 모를 이야기를 중얼댄 서윤채는 말을 잇지 않고 얕게 호흡했다. 가느다란 숨결이 계속 살갗에 닿아 간지러웠다. 소름이 돋아 움찔 몸을 떤 채현은 조심히 서윤채의 등을 토닥였다.

“머리 아프지는 않고?”

“아파.”

“그럼 잠깐만 있어 봐. 나가서 숙취 해소제라도 사 올게.”

“어두워. 안 돼. 그냥 안아 줘.”

서윤채는 퍽 단호히 대꾸하고서 폭삭 안겨 왔다. 본인 덩치 생각 못 하고 몸을 기대 힘겨워진 채현은 ‘억.’ 소릴 내며 그를 침대로 밀었다.

맥없이 밀린 서윤채는 느릿하게 눈을 올려 떴다. 가느스름하게 뜬 눈가 주변은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한눈에 봐도 술기운에 잡아먹힌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그는 그 상태로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붉은색을 띠는 혀가 입술을 촉촉이 적시고 입 안으로 사라졌다.

“왜 눕혀?”

온통 희고 붉은 이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고 싶어?”

“뭐래……. 취했으면 얼른 잠이나 자.”

“그래. 자자. 이리 와.”

살랑 손짓하며 제 옆자리를 가리키는 모습은 퍽 얄궂었다. 만취 상태면서 저 태도는 대체 뭔지……. 황급히 시선을 돌린 채현은 걸음을 옮겨 불을 끄고 간이 조명만 켜 두었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니지만 우선 그를 재워야 할 듯싶었다.

그사이 바깥 자리를 차지하고 누운 서윤채는 한 팔을 벌리고 있었다. 팔베개를 해 주려는 모양새였다. 채현은 잠시 망설이다 주춤주춤 그의 곁으로 가 몸을 눕혔다.

서윤채가 평소와는 달라서일까. 따뜻하게 와 닿는 온기가 기꺼운 한편, 손끝에서부터 긴장이 차올랐다. 당장 일을 치러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라 호흡 하나에도 신경이 흐트러졌다.

“채현아.”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귀를 매만지는 손짓만큼이나 간지러웠다.

“고개 들어 봐.”

저항하지 못하고 고갤 움직이자 미소 띤 그의 낯이 가장 먼저 보였다. 술기운에 잡아먹힌 주제에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이채가 돌았다는 게 문제이지만.

“우리 채현이는 순서대로 하는 거 좋아하니까…….”

“윤채야, 오늘은 안….”

상대는 말을 마무리할 새 없이 입을 맞춰 왔다. 즐겨 하던 애들 장난 같은 뽀뽀는 아니었다. 단번에 틈을 벌리고 혀를 밀어 넣었다. 말캉한 살덩이는 양껏 입 안을 헤집었다.

등을 둘러 안은 서윤채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고개를 꺾으며 한층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혀가 얽히고 타액과 호흡이 뒤섞이며 입 안을 데웠다.

“흐…….”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숨이 새어 나온 순간, 목을 울린 서윤채가 상체를 움직였다. 꼭 위에서 짓누르는 듯한 자세였다. 그는 그 상태로 입맞춤에 몰두했다. 숨이 달려 움찔대는 혀를 옭아매 문지르다 입천장을 간질였다. 여린 점막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는 듯했다.

어둑한 방 안에 서로의 호흡과 타액이 섞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기 어린 행위의 흔적은 침대 위를 적시며 손끝을 떨리게 했다. 서서히 단전으로 피가 몰렸다.

“윤채야.”

상대의 중심은 몸집을 부풀린 지 오래였다. 차마 모르는 척할 수 없는 감촉이 하체를 짓눌렀다. 본능적으로 제 아래로도 힘이 쏠리며 허벅지가 움찔 굳어 들었다.

간신히 고개를 뒤로 물리고 조급하게 이름을 부르자, 서윤채는 목덜미로 입술을 내렸다. 한시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양 살갗을 씹고 핥아 댔다. 붉게 남을 흔적이 안 봐도 그려졌다.

“……키스만 해도 서?”

“아…….”

오늘따라 반응이 빠른 상대는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 댄 채 작게 웃었다. 따뜻한 숨결이 피부 위를 뒤덮었다. 초옥. 목선을 따라 정성 들여 입을 맞추는 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술 마시면 원래 잘 안 선다는데…….”

“…….”

“나는 세웠어.”

그는 퍽 뿌듯해하며 속삭였다.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말씨였다.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아니. 이 크기면 대단한 게 맞는 건가……. 혼란스러워진 채현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슬금슬금 몸을 뒤로 물렸다. 그 노력이 무색하도록 상대는 재차 바짝 끌어당겼다.

“채현이도 세워 줄까.”

그러면서 중얼거리는 말이라곤 심히 난잡했다. 의사소통은 엉망인 수준이면서 말은 왜 잘하는 건지……. 분명 만취한 상태에서 하는 헛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동요하게 됐다.

“나는 괜찮으니까 얼른 자. 너 많이 취했어.”

“좋은 냄새 나.”

“아니, 말을 좀 들, 아, 깨물지 마.”

그는 목덜미에 꽂힌 사람처럼 이를 박아 넣고 질근질근 물어 댔다. 아프지는 않았으나 머리칼이 스치며 너무 간지러웠다. 몸을 움츠리며 벗어나려 하자, 혀로 붓질하듯 핥아 올렸다.

등을 감싸 안았던 손은 어느새 옷 밑으로 들어선 채였다. 뱀처럼 기어오른 손은 느긋하다 못해 느린 손길로 살을 어루만졌다. 와 닿는 온기에 동화되기라도 한 듯 열이 올랐다.

“밥 안 먹었어?”

“어?”

“살이 빠졌는데. 뼈밖에 없잖아.”

서윤채는 심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툭 튀어나온 날개뼈를 지긋이 내리눌렀다.

“거긴 원래 그래.”

“아니야. 만졌을 때 느낌이 달라.”

꾹. 힘을 실어 만지던 이는 손을 내려 옆구리를 쓰다듬고선 골반을 감싸 쥐었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손가락을 놀리더니 한숨처럼 숨을 터뜨렸다.

“우리 채현이 말랐네.”

“아니, 안 말랐어. 나 정상이야. 그러니까 손 좀, 으, 간지러우니까 떼 봐.”

“고기 사 줄까?”

그럼 살이 찌려나……. 그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해 댔다. 버둥거리다 지친 채현은 진이 빠져 축 늘어진 채 눈동자만 굴려 그를 쳐다보았다.

“……왜 살을 찌우려고 해.”

“잡아먹으려고.”

“어?”

“구라야.”

실없이 피식댄 서윤채는 느슨히 풀어진 낯빛과 어울리지 않게 하체를 툭 쳐올렸다. 단단해진 성기를 맞붙이더니 허리를 뭉근히 돌리며 비볐다. 의도가 분명한 노골적인 행동이었다.

“하고 싶어.”

그는 들끓는 열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짧은 한마디에서도 진득한 흥분이 묻어났다.

“응? 채현아.”

꼬여 내려는 것이 분명한 부름이었다. 고개를 숙인 그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대답을 종용하는 것 같기도, 다음 행동을 부추기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한 지 얼마 안 됐잖아.”

“3일이나 지났어.”

“……얼마 안 된 거 아니야?”

“나는 매일 참고 있어.”

관계를 갖고 나면 다음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비실거리기 일쑤였다.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연달아 행위를 이어 가니 그럴 수밖에. 내일은 수업이 많아 곤란했다.

“우리 채현이가 이제 나한테 질렸나…….”

“아니, 내가 너한테 왜 질려.”

“근데 왜 싫다고 해.”

“싫다고는 안 했어.”

“그럼 좋아?”

서윤채는 은근히 묻는 와중에도 맞붙은 입술을 물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훤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미 잔뜩 흥분한 채라 그냥 재울 수도 없고…….

얇은 파자마 너머로 느껴지는 성기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이대로 그냥 두면 아플 것이 분명했다. 그를 증명하듯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들어 오는 상대의 숨결도 몹시 뜨거웠다.

하. 긴 숨을 터뜨리며 고민하던 채현은 서윤채의 어깨를 살짝 감싸 쥐고 뒤로 밀어냈다.

“만, 만져… 줄게.”

“응?”

고갤 갸웃하며 의아해하던 그는 곧이어 ‘아…….’ 목을 울렸다.

“어디를?”

“너 이대로는 못 잘 거 아니야. 오늘은 못 해. 그러니까…….”

“내 좆 만지고 싶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되묻는 그는 어쩐지 들떠 보였다. 만지고 싶었구나……. 깨달음을 얻은 양 중얼대기까지 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삽시에 목덜미 위로 열이 번졌다.

“마음껏 만져. 얌전히 있을게. 하고 싶은 대로 해.”

채현은 대답하지 않고 삐걱대며 몸만 움직였다. 용기 내 말을 내던지긴 했는데, 빠듯하게 부푼 바지춤을 보자 머뭇거리게 됐다. 왜 몇 번을 봐도 그의 성기에는 익숙해지질 않는지.

후. 행동으로 옮기기 전 심호흡한 채현은 마음을 굳게 다잡고 손을 뻗었다. 트레이닝복 바지는 쉬이 벗겨졌다. 성기가 보일 정도로만 내리고는 드로어즈 위로 드러난 성기를 쥐었다. 조심히 감싸 안고 살살 힘을 싣자, 위쪽에서 한숨 같은 신음이 들려왔다.

이미 선액을 흘린 것인지 드로어즈 한 부분이 유독 짙었다. 질척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손을 놀리는 대로 허벅지를 단단히 굳히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아…….”

천 너머로 귀두를 문지르자 하체를 움찔 떨었다. 확실히 평소보다 반응이 빠르고 민감했다. 덩달아 예민해진 채현은 느릿느릿 드로어즈 안으로 손을 넣었다. 잔뜩 흥분한 성기가 손끝에 닿았다. 기둥을 따라 일어선 핏줄이 유난히 잘 느껴지는 듯했다.

“느낌 좋아…….”

아예 옷 밖으로 꺼내 주무르는 동시에 서윤채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맑은 액체도 새어 나와 귀두를 적셨다. 체모가 옅어 유독 고와 보이는 성기가 불그스름하게 색을 덧입었다.

채현은 손을 움직이는 속도를 빨리하며 그의 성기를 자극했다. 위아래로 흔들다가 꽉 쥐어짜듯 감싸 안으며 사정을 종용했다. 흉흉한 성기는 지칠 줄을 모르고 크기를 키웠다.

술 마시면 안 서기는 무슨. 지극히 정상적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반응하기만 해 황당하고 놀라웠다. 그 사이로 긴장을 닮은 흥분이 밀려오기도 했다. 꼴깍 침을 삼킨 채현은 그의 성기를 달래는 데 집중했다. 어서 해결하고 재워야 한단 생각을 품고서.

“마음에 들어?”

탁탁. 열중해 성기를 쳐올릴 무렵, 서윤채가 살짝 긁혀 가라앉은 목소리를 흘렸다. 부름에 반응하듯 고개를 돌리자 바로 시선이 맞닿았다. 술에 취한 사람이라곤 볼 수 없을 만큼 또렷한 눈빛이 쏟아졌다. 어쩐지 긴장이 돼 혀를 내어 입술을 적시자 그는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먹고 싶어?”

“……어?”

“먹어도 돼.”

힐끔. 말을 맺으며 눈으로 가리킨 대상은 명백했다.

“무슨…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빨고 싶으면 빨아. 나는 좋아.”

꺼떡대는 성기와 서윤채의 낯을 번갈아 본 채현은 뺨을 화르르 불태웠다. 할 수야 있는데, 그의 눈길을 매달고 살덩이를 머금으려니 죽도록 부끄러웠다.

“……빨아 줬으면 좋겠어?”

“응.”

대답이 돌아오는 속도는 빨랐다. 그는 살짝 몸을 움직이며 자세를 바꿨다. 꼭 성기를 빨기 용이한 환경을 만들어 주듯이. 완전히 발기한 성기는 그사이에도 선액을 뚝뚝 흘려 댔다.

하릴없이 입술을 적시며 고민하던 채현은 끝내 상체를 숙였다. 이대로 사정해 정액을 흘리면 치우기 힘들 테니까. 한 번 싸고 나면 지쳐 잠들 테니까……. 여러 이유를 덧붙이며 그의 성기 끝을 입에 물었다. 단번에 끝까지 삼킬 자신은 없어 끄트머리만 혀로 할짝거렸다.

“아…….”

상대가 서윤채여서일까. 난생처음 남의 성기를 빨아 보는 거였지만 거부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가 느끼고 있다는 게 확연히 보여 덩달아 아랫배 안쪽이 콕콕 쑤셨다.

아이스크림을 먹듯 귀두를 핥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커다란 기둥을 조금씩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에 닿지 않게끔 크게 벌린 채 삼켜서인지 입꼬리가 아팠다.

“채현아.”

호흡이 섞인 부름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소리에 반응해 잔뜩 힘을 주며 성기를 빨자, 상대는 억눌린 음성으로 호명했다. 권채현. 귓가에 틀어박힌 목소리는 지독히도 낮았다.

“고개 들어 봐.”

채현은 성기를 문 채 눈만 치켜떠 상대를 바라보았다. 서윤채 역시 집요하게 얼굴만을 눈에 담았다. 타들어 갈 듯한 눈빛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내렸다.

“아, 씨발…….”

그 상태로 혀를 움직여 기둥을 문지르고 귀두를 핥으니 서윤채가 눈살을 찌푸렸다. 갈증이 난 사람처럼 마른 입술을 적시고 막힌 숨을 터뜨리기도 했다.

울컥. 터져 나온 선액이 혀 밑에 고였다. 서윤채가 뱉어 낸 액체는 그대로 타액과 섞여 혀를 적셨다. 물기 어린 혀로 그의 성기를 쓸어 올리자, 흉흉한 살덩이도 금세 축축해졌다.

서윤채는 서툰 애무에도 인상을 설핏 구기고 목을 울렸다. 이따금 하체를 움찔 떨며 입 안을 쑤시려 하기도 했다. 조용한 방 안을 울리는 기다란 한숨은 몹시도 끈덕졌다.

“채현아, 입에 싸도 돼?”

“음.”

응. 커다란 성기를 물고 있어 발음이 샜다. 긍정을 표하는 동시에 서윤채는 ‘미안.’ 속삭이고서 입 안에 성기를 처박았다. 목젖을 건드릴 듯이 밀어 넣고는 파정했다.

“후, 흐…….”

그는 꽤 오래도록 정액을 싸질렀다. 뜨거운 액체는 여린 점막 곳곳에 흔적을 넘기며 흘러 내려갔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액체의 느낌이 선연했다.

채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정액을 삼켰다. 처음 먹어 보는 액체는 별맛이 없었다. 서윤채가 아무 말 않고 먹어 주었듯 자신도 해 주고 싶어 먹긴 했는데, 두 번 먹고 싶진 않았다.

“윤채야.”

한 번 쌌으니까 이제 진정됐겠지. 양치만 다시 하고 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상대를 부를 찰나, 후희를 느끼듯 탁한 숨을 내뱉던 서윤채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나도 빨아 줄게.”

“어? 아니, 나는 괜, 아!”

그러고는 이렇다 할 틈도 없이 자세를 전복시켰다. 깜짝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사이 서윤채는 위에 자릴 잡고 바지를 벗기려 했다. 채현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안 해 줘도 돼.”

“왜?”

태연히 대꾸한 서윤채의 눈길이 느릿하게 기어 볼록해진 중심으로 향했다.

“섰는데.”

“이 정도는…… 그냥 두면 가라앉아.”

“내가 빼 줄게.”

“너 졸리잖아. 괜찮으니까 얼른 자. 응?”

“내가? 나 지금 제정신이야, 채현아.”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 아닌 듯한 이가 당당하게 속삭였다. 뜻을 굽힐 생각이 없는지 옷을 붙든 손힘은 억셌다. 평소 서윤채가 저를 얼마나 봐주고 있던 건지 새삼 깨달을 판이었다.

채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마른 입술만 적셨다. 그를 본 상대는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상체를 숙였다. 도장을 찍듯 입을 맞추고는 아무 일도 없던 양 능청을 떨어 댔다.

“아프게 안 할게.”

“…….”

“응? 채현아.”

어여삐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심히 자극적이었다. 터지려는 탄식을 삼킨 채현은 입술을 감쳐물었다. 동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자신도 분명 흥분을 했고 욕구를 느꼈다. 그러함에도 한 줄기 이성을 붙들고 있으려 노력한 것인데…….

“자기야.”

탁. 살살 녹을 듯한 부름에 맥없이 힘이 풀렸다.

“아…….”

힘이 빠진 손과 얼이 빠졌을 게 분명한 얼굴을 번갈아 본 서윤채가 입매를 허물어뜨렸다.

“우리 채현이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그…….”

“알겠어.”

서윤채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단박에 바지와 속옷을 벗겨 내리곤 기립한 성기를 움켜쥐었다. 은근히 피가 쏠리며 일어서던 성기가 움찔 떨렸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귀두를 슬쩍 간질이다 기둥을 감싸 안았다. 익숙한 듯 낯선 온기에 소름이 기어올랐다.

수 분이 지나며 새어 나온 액체는 성기 끝을 적셨다. 쿨쩍. 어느새 엉망이 된 살갗과 손이 맞닿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윤채는 퍽 정성스럽게 성기를 매만지다 불시에 고개를 숙였다.

“아!”

기둥을 따라 쪽 입을 맞추길 잠시, 뜨겁고 녹진한 입 안으로 성기를 삼켰다.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뿌리 끝까지 머금고선 압박하듯 빨아들였다. 준비할 틈도 없이 쏟아진 자극은 너무 거셌다. 연신 버둥거리자 고개를 뒤로 물린 서윤채가 귀두를 할짝거리며 눈을 치켜떴다.

“자기야, 가만히 있어.”

“무슨…….”

꼭 명령처럼 쏟아진 한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순간적으로 멍해져 빤히 바라보니 서윤채의 만면에 짓궂은 웃음이 떠올랐다.

“자꾸 낑낑대면 확 문다.”

“……너 하지 마. 나 안 해. 빨리, 읏, 저리 가.”

그는 더없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서 성기를 머금었다. 귀두만 쪽쪽 빨아 올리며 건드리는 행동은 의도가 투명했다. 그를 알면서도 어찌할 도리 없이 넘어가게 됐다.

성기가 완전히 힘을 싣고 일어서는 건 순식간이었다. 채현은 끙끙 앓으면서 쏟아지는 자극을 견뎠다. 얼마간 혀를 놀리는 데 집중하던 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성기를 뱉어 냈다.

“아프면 말해?”

“어?”

서윤채는 덧붙이는 설명 없이 다리를 치켜올렸다. 맞붙인 다리를 상체 쪽으로 기울이더니 훤히 드러난 밑으로 고갤 숙였다. 이게 대체 뭔지 파악할 새 없이 말캉한 혀가 와 닿았다.

“아니, 뭐, 아! 윤채야, 하지, 하지 마. 혀, 읏.”

뾰족하게 심이 선 혀가 꽉 닫힌 밑을 콕콕 찔러 댔다. 긴장을 풀게 하려는지 혓바닥을 넓게 펴 회음까지 핥아 올리기도 했다. 아픈가. 그도 아니면 좋은 건가. 아니. 그저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아래서 피어난 열기가 순식간에 곳곳으로 번졌다.

“윤채야, 서윤채.”

몸부림치며 다리로 그의 어깨를 툭 밀어 봐도 소용없었다. 그는 밑을 취하는 데 한껏 집중한 양 입을 맞추기만 했다. 스치듯 코끝이 닿을 때마다 간지러움이 일었다.

등허리를 다정히 매만지며 집요하게 굴던 그는 끝내 혀를 밀어 넣었다. 미친 듯이 조이는 내벽을 뚫고는 살살 간질여 댔다. 말캉한 살덩이가 꼭 성기라도 된 양 자연스레 움직였다.

“아, 윤채야…….”

아래가 빨리는 느낌은 지금껏 겪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머리끝까지 삐쭉 서는 듯했다. 어떡하면 좋을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일순 겁이 치밀었다. 익숙지 않은 쾌감에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했던 눈물은 눈을 깜빡이는 동시에 뚝 떨어졌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냥, 윽, 그냥 넣어…….”

우뚝. 울먹이며 말을 늘어놓자 서윤채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곧이어 쏟아지는 시선은 몹시 집요했다. 꼭 낱낱이 뜯어보듯 매섭기까지 했다. 수 초간 빤히 보던 상대는 응축된 숨을 터뜨리며 눈을 빛냈다. 새까만 눈동자 가득 이채가 돌았다.

“아!”

“울지 마. 속상하게 왜 울어.”

“으, 너, 윽, 너 때문이잖아.”

“미안. 그래도 나 미워하지 마.”

세 개. 아니 네 개쯤 될까. 한 번에 손가락을 넣은 그는 혀로 풀어 둔 내부를 들쑤셨다. 애가 달았는지 퍽 조급한 손짓이었다. 가위질을 치며 안을 넓히더니 내벽을 긁으며 손을 뺐다.

“아!”

“하, 씹…….”

손이 빠져나간 자리는 곧장 흉흉한 성기가 대신했다. 한 번 사정을 했는데도 여전히 기세가 죽지 않은 살덩이가 틈을 벌리고 들어섰다. 삽입 순간은 언제고 긴장이 됐다. 그가 최대한 느릿하게 진입한다는 걸 알면서도 바짝 몸이 굳었다.

“아, 윤채야, 살살, 읏!”

서윤채는 능숙하게 허리 짓을 했다. 가장 느끼는 부위만 올려 치며 소름 끼치는 자극을 퍼부었다. 밑을 조이며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굴면, 부러 애를 태우듯 성기를 뒤로 물렸다.

귀두 끝까지 뺐다가 한 번에 밀어 넣는 몸짓은 몸 전체를 울렸다. 그는 그러다가도 성기를 박아 넣은 채 허리만 돌려 내부를 휘저었다. 마구 찧듯이 찍어 댈 땐 호흡도 흐트러졌다.

“채현아.”

“흐, 어?”

“잘 잡아.”

얼마간 이어지던 일정한 리듬은 상대가 깨트렸다. 서윤채는 통보에 가깝게 말을 흘리고선 골반을 움켜쥐고 좆을 쑤셔 박았다. 살덩이를 물어뜯듯 힘이 들어간 내부를 뚫고 계속 허리 짓을 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닿은 적 없던 곳까지 성기가 처박혔다.

“아, 잠… 윤채, 아!”

“아…… 다 들어갔어.”

채현은 비명처럼 신음을 흘리며 파들파들 떨었다. 쑤셔 박힌 좆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만큼 압박감이 엄청났다. 차마 제 아래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움, 움직이지 말아 봐. 잠깐, 윽, 너무 깊어.”

“느껴져?”

“아!”

살짝 허리를 움직였을 뿐인데 내부가 요동쳤다. 성기를 씹어 대는 내벽의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 음습한 숨을 흘린 이는 상체를 겹쳐 오며 살살 허리 짓을 했다.

“아, 존나…….”

“흐, 아, 이거, 너무, 윽.”

채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하듯 그에게 매달렸다. 너무 자극이 커 멈춰 달라는 뜻으로 한 것이지만 소용은 없었다. 아래를 치받는 힘이 약해지기는커녕 더 거세지기만 했으니.

사정감이 치솟는 건 한순간이었다. 소름 끼칠 만큼 선명한 쾌감에 짓눌린 채현은 끝내 정액을 토해 냈다. 사정 직후 무의식적으로 밑을 꽉 조이자 서윤채도 낮게 신음하며 파정했다.

“아…….”

직전의 감각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벼락같이 치밀었던 흥분은 잔존하며 몸을 떨리게 했다. 채현은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호흡을 내뱉으며 서윤채를 툭 쳤다.

“살살, 하라고 했잖아.”

“아팠어?”

쪽. 서윤채는 원망을 담아 노려보던 눈 끝에 입술을 내렸다. 간지러운 감촉에 절로 눈꺼풀이 떨렸다. 물기에 젖은 눈가를 문지르는 손길 역시 다정했다.

“……몰라. 얼른 빼.”

아팠느냐고. 처음은 죽도록 아팠다. 그다음은 선명한 자극에 젖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참지 못하고 사정할 만큼 쾌감이 크긴 했다만, 바른대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성기도 빼지 않고 있는 이에게 그런 말을 했다간 어찌 될지 뻔했으므로.

“나는 좋았어, 채현아.”

한데 서윤채는 숨기는 것 하나 없이 투명한 속내를 전부 내보였다.

“진짜…… 좋았어.”

감정이 묻어난 속삭임은 말 한마디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숨죽여 침음한 채현은 입 안 살만 하릴없이 짓씹었다. 언제고 그에겐 떳떳하고 솔직하고 싶었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싫었어?”

분명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는데. 결국은 고갤 가로젓게 됐다.

“그래.”

대답을 기다리던 상대는 기쁘다는 듯 곱게 웃어 보이며 입을 맞춰 왔다. 잠시간 고민한 채현은 결국 한숨처럼 웃음을 흘리며 그를 끌어안았다.

긴긴밤의 시작이었다.

* * *

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잔뜩 갈라져 엉망인 목소릴 흘린 채현은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다 재차 눈을 감았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어디 그뿐일까. 눈에 보이는 곳만 해도 울긋불긋 자국이 남은 채였다. 안 보이는 곳은 어느 정도일지 대충 그려졌다. 제발 그만하란 말이 나올 때까지 물고 빨았으니 그럴 수밖에.

“…….”

역시 눈이 정상이 아닌 걸 안 순간 무시했어야 하는데. 이제 와 후회해 봤자 부질없는 걸 알면서 생각은 자꾸 지난밤으로 흘렀다.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어울린 제게도 문제는 많았다.

하. 한숨을 터뜨리며 무의식적으로 고갤 돌리던 찰나, 때마침 눈을 뜬 서윤채와 단번에 시선이 얽혔다. 정신을 차리듯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곧이어 멋쩍게 웃어 보였다.

“안녕, 채현아.”

그 역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를 하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잘 잤어?”

채현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그의 낯을 살폈다. 탐색하듯 바라보길 잠시, 다 기억하고 있단 확신을 얻곤 어깨를 쳤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을 떤 서윤채는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너 다시는 만취할 때까지 술 마시지 마. 나 지금 온몸이 아파.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

“……나도 아래가 아파.”

“너는 왜?”

“좆 다 헌 거 같아.”

“무슨 그런 말을 아침부터 대놓고…….”

서윤채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고 팔을 뻗어 왔다. 등을 감싸 안고 본인 쪽으로 끌어당기는 몸짓은 자연스러웠다. 몸에 힘을 주고 버틸까 하던 채현은 결국 그에게 폭 기댔다.

“……당분간 안 할 거야.”

“할 말이 없네, 내가. 반성하고 있을게.”

“……속은 괜찮아? 머리 안 아파?”

“조금 자면 괜찮아질 정도.”

토닥토닥. 상냥히 중얼거린 이는 허리를 살살 두드려 주었다. 달아났던 수마가 다시 몰려올 만큼 정성스럽고 느릿한 손길이었다. 서윤채도 마찬가지인지 한층 가느다랗게 호흡했다.

“몇 시야?”

“7시.”

“그럼 이러고 딱 30분만 더 자자. 수업 여유 있으니까…….”

채현은 고개만 살짝 움직여 서윤채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미 눈을 감은 채였다. 말간 얼굴 위로 잠기운이 감돌았다. 반쯤 의식을 놓은 듯하면서 토닥거리는 손짓은 멎지 않았다.

“…….”

공연히 마음이 부푼 채현은 서윤채의 품으로 파고들어 눈을 꾹 감았다. 상대가 작게 웃는 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맞닿은 몸은 서로에게 온기를 전해 주며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침이 내려앉은 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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