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1.
“흠.”
이른 아침이 찾아든 방 안에 콧노래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뜬 기색이 다분한 그 소리는 끊이지 않고 공간을 채웠다. 자고 일어난 침대를 바르게 정리할 때도.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킬 때도. 한 사람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할 때도…….
자신이 그리하고 있단 자각도 없이 움직이던 채현은 후다닥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칫솔질하며 거울로 확인한 얼굴은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풀린 채였다.
“흐.”
우글우글. 성심성의껏 입 안을 헹군 채현은 또 한 번 히죽댔다. 눈을 뜨고 나서 계속 웃어 대 얼굴 근육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처음으로 서윤채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으니까.
여름휴가 계획의 발단은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였다.
‘개강하기 전에 여행 갔다 올까?’
‘여행?’
‘어. 학기 시작하면 바빠지잖아. 바다도 볼 겸 우리 연애 축하 파티도 할 겸. 어때.’
나란히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던 때였을까. 서윤채는 머릴 쓰다듬어 주다 대뜸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예상치 못한 화제에 당황하기도 잠시, 채현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도 바다지만 연애 축하 파티라는 말에 솔깃해 기대감이 차올랐으므로.
그 이후론 속전속결이었다.
‘어디로 갈까. 가 보고 싶었던 곳 있어?’
‘우리 고딩 때 배주희 할머니네 놀러 갔었잖아. 그런 곳 가고 싶어.’
‘살짝 속세를 벗어난 느낌?’
‘응. 살짝…… 펜션 말고 민박 느낌. 뭔지 알겠어?’
‘이해했어.’
척하면 척 알아듣는 애인 덕에 일정은 술술 완성되어 갔다. 머릴 맞대고 계획을 짜다가도, 뜬금없는 때에 뽀뽀를 해 대서 곤란하단 특이점이 있긴 했지만.
‘렌트할까. 버스 타고 갈까.’
‘너 면허 있어?’
‘있지.’
‘운전 경험은?’
‘없진 않고.’
여행의 모든 요소는 함께 의견을 맞춰 가며 결정했다. 본디 채현은 일단 떠나고 보잔 스타일이었는데, 서윤채와 생각을 나누는 그 시간이 좋아 신이 난 채로 어울렸다.
‘……잘해?’
‘왜. 무서워?’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우리 채현이가 날 못 믿나. 목숨만 갖고 타.’
‘안 타고 싶다 하면 화낼 거야?’
이걸 해 보자. 저길 가 보자. 맛있는 걸 배 터지도록 먹고 오자……. 별거 아닌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어라고 기대감을 심어 주던지.
같은 순간을 그리며 아옹다옹하다 보니 어느새 여행 당일이 밝아 왔다.
“아…… 빨리 가고 싶다.”
입매는 또 한 번 허물어진 지 오래였다. 서둘러 샤워를 마친 채현은 지체할 새 없이 욕실을 벗어났다. 탈탈. 젖은 머리를 털던 수건은 의자 위에 휙 던져두고 곧장 옷을 갈아입었다.
여행 첫날 의상은 흰색 반팔 티셔츠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베이지색 반바지였다. 어젯밤 행거를 노려보며 패션쇼를 방불케 하다가 겨우 정한 복장이었다.
‘넌 밝은색이 잘 받아. 얼굴이 하얘서.’
결코 서윤채의 말을 의식하며 고른 옷이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론 그리 차려입은 꼴이 됐다. 제 상태를 슬쩍 본 채현은 머쓱한 기분에 ‘마음에 들어서 고른 거니까…….’ 되뇌었다.
바로 이어선 미리 싸 놓은 짐을 살폈다. 아침에 챙기려고 빼 둔 물건도 잊지 않고 가방에 꾹꾹 눌러 담았다. 포스트잇 한가득 리스트를 적어 놓아 확인하기가 수월했다.
〈옷. 속옷. 모자. 선글라스. 수건. 세면도구. 선크림. 이동할 때 먹을 간식. 콘돔……?〉
“여벌 옷 챙겼고…….”
물 흐르듯 막힘없던 행동에 제동이 걸린 건 마지막 준비물을 본 뒤였다. 채현은 제가 쓴 글씨를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고뇌했다.
콘돔……. 과연 이걸 챙겨야 할까.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작된 고민은 아직까지 유효했다. 그를 증명하듯 콘돔 주변에만 점이 가득 찍혀 있었다.
통상적으로 연인의 여행이라 하면 예상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당일치기가 아닐 경우에는 더더욱. 그 때문에 채현도 편의점에서 콘돔을 사 오긴 했지만 막상 챙기려니 죽도록 부끄러웠다. 꼭 기대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망설여지기도 했고. 더군다나…….
“……처음부터 안 썼는데.”
저희는 첫 관계 때부터 안 쓴 탓인지, 이 물건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필요할까. 챙겨야 할까. 아니. 가서 밤에 하긴 할까. 나는 하고 싶은 건가…….
“섹…….”
쾅.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진 채현은 요란스레 종이를 내려 두고 방 안을 서성거렸다. 얼굴과 귓가는 투명한 반응을 내보이듯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미친놈. 변태 새끼. 미쳤어. 뭘 기대해.”
시일이 꽤 지났는데도 왜 잊히지 않는지. 관계를 할 때의 서윤채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기억나 열이 올랐다. 괜히 입이 마른 채현은 손부채질을 하며 ‘날이 더워…….’ 중얼거렸다.
한참을 부산스럽게 굴고 나선 챙기지 말자 결론을 내리고 가방을 꽉 닫았다. 그와 동시에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당연하게도 연락해 온 사람은 서윤채였다. 직전까지 애먼 상상을 해 머쓱한 한편, 반사적으로 입가가 간지러워졌다.
“어, 윤채야.”
― 준비 다 했어?
“응. 어디야?”
― 가는 중. 10분 정도 남았어.
“운전 중에 전화해도 돼?”
― 핸즈프리 연결했어. 준법정신 뛰어난 애인 둔 소감이 어때.
낮은 목소리가 장난기를 덧댄 채 전해졌다. 한결같은 그 모습이 서윤채다워 웃음이 났다.
“좋긴 한데…… 운전 중에 전화하는 거 아니랬어. 조심히 와. 끊을게.”
― 칼 같기는. 알았어. 더우니까 연락하면 나와.
“운전 조심하고. 과속하면 안 돼.”
― 네.
길게 늘어지는 음성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더 이어 가다간 끊지 못할까 바로 끊어 버린 채현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10분이면 도착한다 했으니 미리 나가 있을 참이었다.
준비를 다 끝낸 상태였기에 더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서윤채가 선물로 준 시계를 착용하고 가방을 둘러멘 뒤에 즉각 현관으로 향했다.
“모자 쓰고 나올 걸 그랬나.”
밖은 몹시 화창했다.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 바닥을 지글지글 데워 보기만 해도 열이 느껴질 만큼 더웠다. 가방에 넣은 모자 생각이 절실한 날씨였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손차양하고 눈살을 찌푸린 채현은 그늘진 곳에 바짝 붙어 섰다. 비록 한여름 무더위가 사위를 뒤덮은 채였지만 하늘이 새파래서인지 기분은 좋았다.
서윤채가 어느 쪽에서 올지 몰라 좌우를 번갈아 살필 찰나, 멀리 흰색 SUV 차량이 보였다. 멈춤 없이 다가오던 차는 서서히 속도를 죽이고 바로 앞에 정차했다.
“왜 벌써 나와 있어. 날도 더운데.”
“어…….”
채현은 홀린 듯 시선을 옮기며 열린 운전석 창문 너머 보이는 이를 눈에 담았다. 핸들을 잡고 있던 서윤채 역시 눈을 마주해 오며 웃다가 차에서 내렸다.
오늘의 그는 청바지에 감색 셔츠 차림이었다. 살짝 보이는 쇄골과 발목 때문인지 쉬이 눈을 뗄 수 없었다. 유난히 멋져 보여 멍하니 있으려니 입꼬리를 당긴 그가 가방을 가져갔다.
“채현이 이민 가?”
자연스레 행동하길 잠시, 가방을 힐끗댄 서윤채는 만만치 않은 무게에 놀랐는지 실소를 흘렸다. 한 손으로 끈을 잡고 운동하듯 올렸다 내렸다 하며 ‘이야.’ 감탄사도 터뜨렸다.
“보부상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그 정도는 아니거든.”
“야무지게 잘 챙겼단 소리야. 덥겠다. 얼른 타. 너 존나 빨개졌어.”
채현은 뒷좌석 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 두는 서윤채를 보다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 안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했다. 뒤이어 탑승한 그는 바로 출발하는 대신 시선을 던져 왔다.
“안전벨트.”
“아, 응.”
벨트를 끌어다 찰칵 걸쇠를 거는 사이, 서윤채는 손을 뻗어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살살 간지럽게 매만지고선 손가락으로 뺨을 톡 건드렸다.
“열이 잔뜩 올랐네. 많이 더워?”
애를 다루듯 사근사근한 말투와 손짓에 더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한껏 당황한 채현은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대며 슬쩍 고개를 뒤로 물렸다.
“이제 괜찮아. 차 시원해서.”
“에어컨 틀어 두길 잘했네.”
아. 그제야 서윤채의 숨죽인 배려를 알아챈 채현은 짧게 목을 울렸다. 제게 서늘할 정도면 추위를 많이 타는 그에게는 추울 것이 분명했는데. 상대는 어떠한 내색 하나 없이 온 신경을 이쪽으로 쏟아붓고 있었다. 그 행동이 그의 애정을 말하는 듯해 손끝이 저려 왔다.
“운전 안 피곤하겠어? 내가 면허가 없어서 가다가 못 바꿔 줘…….”
“있어도 바꿔 달라고 할 생각 없었어. 편히 드라이브 기분이나 내. 출발한다.”
상대는 말을 맺는 동시에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밟았다. 커다란 차가 부드럽게 앞으로 움직였다. 채현은 약간 긴장한 채로 운전석과 정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디제이 해 줄게. 너 내비 잘 못 보면 그것도 해 주고.”
“그래. 잘 부탁할게. 블루투스 연결해서 네가 듣고 싶은 걸로 틀어.”
“노래 틀어도 운전할 수 있어? 정신 사나워서 운전 못하겠으면 말해. 안 들어도 돼.”
“날 띄엄띄엄 보고 있네.”
언젠가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해 말하는 그를 보며 채현은 대꾸 없이 노래만 틀었다. 신나는 팝송이 흘러나오자 서윤채는 긴장하는 기색 하나 없이 ‘선곡 센스 좋네.’ 속삭였다.
서윤채가 운전하는 차는 예상외로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급브레이크를 밟지도, 차체가 흔들리지도 않았다. 다른 차가 불시에 끼어들면 팔을 뻗어 몸을 막아 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
운전을 이렇게 잘할 줄이야. 목숨만 갖고 타라기에 아닌 척 꽤 걱정했는데. 깜짝 놀란 채현은 고속도로로 올라탄 후에도 그를 곁눈질했다. 홀린 듯 시선을 내주며 침을 꼴깍 삼켰다.
어릴 적 범퍼카를 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실제 차를 모는 모습을 보다니. 믿기지 않으면서도 너무 멋있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역시 차를 사야겠어.”
서윤채는 덩달아 힐끗대더니 실소를 흘리며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눈만 살짝 굴려 그를 바라본 채현은 괜히 머쓱해져 창밖으로 눈길을 옮겼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사위가 푸르게 물들었다. 정면 창 너머로 훤히 보이는 광경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다. 휴가 시기여도 평일인 덕이 큰 듯했다.
휴게소에 한 번 들러 간식을 사 먹고 또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 근처였다.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하늘도 더 파랗고 전경도 평화로운 듯했다.
“윤채야, 아예 장 보고 들어갈래? 숙소 근처에 계곡 있다고 했으니까.”
“그래. 또 나오기 번거로우니까 해결하고 들어가자.”
의견은 엇나가는 일 없이 바로 맞아떨어졌다. 인터넷에선 연인끼리 여행을 가면 싸우기 쉽다 했는데 저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쪽에서 ‘쿵’ 하면 상대가 ‘짝’ 하는 수준이었다. 또 한 번 속절없이 감정이 북받친 채현은 그를 바라보다 방실거렸다.
근처 장으로 목적지를 변경하고 얼마간 달렸을까. 머지않아 상당히 큰 시장에 도착했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선 뻐근한 몸을 풀어 주었다.
우두둑 요란한 소릴 내며 스트레칭한 채현은 서윤채의 허리를 주먹으로 툭툭 두드렸다. 운전하느라 고되었을 테니 피로를 풀어 주려 한 건데, 서윤채는 대뜸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밖이 너무 환하다는 생각 안 들어?”
“그러게 왜 허리를 만져. 나 민감해.”
“무, 뭐……. 만진 게 아니라 운전하느라 고생했다고 안마해 준 거잖아.”
기겁한 채현은 반사적으로 그에게서 떨어졌다. 역시 콘돔을 챙겼어야 했나……. 훌쩍 튄 생각을 갈무리하지 못한 채 슬금슬금 뒤로 가니, 짓궂게 웃은 서윤채가 성큼 다가왔다.
“안마는 이따 숙소에서 해 주고. 지금은 식량 사러 가자. 뭐 먹고 싶어.”
한 걸음 만에 간격을 좁힌 그는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해 오며 발을 내디뎠다. 채현은 그에게 안기다시피 해 이끌리듯 몸을 움직였다.
시장은 평일인데도 몹시 복작복작했다. 휴가철이라 그런 건지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굳이 관광지를 찾지 않아도 생기 넘치는 곳에 오니 기분이 들뜨고 여행 기분이 났다.
주변을 구경하며 걷는 사이 손에는 하나둘 짐이 생겼다. 잔뜩 줄지어 선 가게가 보여, 덩달아 대열에 합류해 기다리다 포장하기도 했다. 서윤채와 함께여서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후 가까운 곳에 있던 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잔뜩 사고는 숙소로 향했다. 예약한 민박은 시내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숙소를 고를 당시, 이곳을 발견하고 둘 다 보물을 찾은 사람처럼 요란법석을 떨어 댔다. 저희가 원하는 숙소와 완전히 부합하는 곳이었으니.
자연 경관을 느끼기 쉬우면서도 깔끔하고 정겨운 곳. 근처에 물놀이할 곳이 있으면 금상첨화. 바비큐는 실내도 좋지만 이왕이면 야외로. 뒤로는 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물이 있기를.
“바비큐 이용할 거죠? 몇 시쯤 할 거예요? 미리 말해 주면 숯 피워 줄게요.”
“저희 그럼 6시로 부탁드릴게요.”
꽤 까다로운 희망 사항이었지만 이곳은 이상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사장님도 친절했거니와 옆방이 비어 있어 이쪽 라인엔 저희가 유일한 투숙객이라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윤채야, 우리 진짜 잘 얻었다. 그치.”
깨끗한 실내를 둘러보다 신이 나 떠들자, 서윤채는 또 곁에 붙어 입을 맞춰 댔다.
“으, 웁, 말로 해. 말로.”
“말하고 있어. 알아들어 봐.”
쪽. 초옥. 입술이 간지럽게 맞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원래 연애라는 게 이런 건지. 채현은 또 얼굴을 화르르 불태우고 버둥거리다 뽀뽀를 받았다.
상대는 입술을 빨아 없애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쯤 기세를 죽였다. 틈을 놓치지 않고 뒤로 물러난 채현은 태연자약한 제 애인을 살짝 흘겨보았다.
“……왜 이렇게 많이 해?”
“참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사기가 떨어지는데.”
“뭐래, 진짜……. 계곡이나 갔다 오자.”
더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단 직감이 들어 이야기하자, 서윤채는 흔쾌히 긍정을 표했다. 기다란 숨을 터뜨린 채현은 촉촉해진 입술을 닦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환복을 끝내고선 서윤채의 손에 이끌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선크림을 발랐다.
“나중에 따갑다고 지랄, 아니 찡찡거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봐.”
그는 퍽 진중한 눈빛을 하고 직접 크림을 발라 주었다. 긴 손가락이 느릿느릿 피부를 문질렀다. 뺨에 묻힌 크림은 볼살을 주무르듯 마구 펴 발랐다.
얌전히 손길을 받던 채현은 문득 웃음이 나 킥킥댔다. 이런 사소한 스킨십처럼 변한 게 있는가 하면, 직전 말투처럼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웃겼다. 물론 어느 쪽이든 다 좋긴 했지만.
“너도 얌전히 있어 봐. 발라 줄게.”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 이번엔 역할을 바꿔 제가 그의 얼굴에 선크림을 발라 주었다. 머리꼭지로 따갑게 쏟아지는 눈빛이 느껴졌지만 꿋꿋하게 하던 일에만 몰두했다.
“나가야겠지?”
느슨히 귓가를 건드리는 음성은 어쩐지 직전보다 한층 낮아진 듯했다. 채현은 서윤채와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 보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곡은 숙소에서 멀지 않았다. 물가엔 가족 단위로 놀러 와 노는 이들이 몇 보였다. 아이들은 꺄르르 웃어 대며 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모습이었다.
이따금 부는 바람은 여름 냄새를 싣고 밀려왔다. 볕도 아까보단 덜 비쳐 한결 놀기 좋은 듯했다. 채현도 물가로 다가가 발만 살짝 담가 보았다. 물은 절로 악 소리가 날 만큼 차가웠다.
“윤채야, 물 엄청 차.”
“빠져 볼래?”
서윤채는 언제든 밀어 줄 수 있다는 양 손짓하며 물어 왔다. 채현은 그를 한 번 흘겨보고 주저앉아 그에게 물을 튕겼다. 물론 물에 젖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만 뿌렸다.
“우리 채현이가 도발을 하네.”
눈을 찡그리며 웃은 서윤채가 낮게 뇌까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성큼 발을 내디뎠다. 당황은 채현의 몫이었다. 뒤로 물러서면 물인데, 서윤채의 기세가 무서워 몸이 움찔댔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슬금슬금 물러나자 그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솟았다.
“왜… 왜, 그렇게 무섭게 와?”
“뭘 쫄아. 내가 뭐 해?”
한다. 장담하건대 서윤채라면 무조건 할 터였다. 자신이 그의 애인이건 아니건 서윤채는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서윤채는 불시에 허리를 확 끌어안더니 함께 물로 들어갔다. 발이 젖고 종아리까지 물이 차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친다. 조심.”
벗어나려고 몸부림쳐도 허리를 감싸 안은 팔 힘이 강해지기만 했다. 젖은 옷을 사이에 두고 몸이 완전히 딱 붙었다. 그는 허리께까지 물이 차오르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뭐 안 한다며…….”
“안 한다고 한 적은 없는데.”
씩 장난스럽게 웃은 서윤채가 손으로 물을 찰방 튕겼다.
“너 물에 젖는 거 싫어하잖아.”
“뭐, 지금은 나쁘지 않은 거 같기도 하고. 같이 빠져 주는 애인 어때.”
햇살을 등지고 웃는 꼴은 심장에 해로웠다. 채현은 물에 젖은 채 환히 웃는 서윤채를 멍하니 보다 얼굴에 물을 뿌려 버렸다. 아무래도 저 얼굴이 너무 잘나서 말리는 거라 생각하면서.
서윤채는 물을 뒤집어쓰면서도 같이 빠진 게 좋은지 실실댔다. 저 멀리 보이는 어린애보다 철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옛날 언젠가 저희도 아이였을 적이 떠오를 만큼.
그렇게 얼마간 나이를 잊고 아옹다옹 물놀이를 할 때였을까.
“어?”
똑. 똑.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더니 갑자기 비가 내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른빛을 띠는데 빗줄기가 굵어졌다. 아무래도 소나기인 듯싶었다. 물에서 놀던 이들은 황급히 뭍으로 나갔다. 하필이면 이럴 때 비가 올 건 뭔지. 시무룩하게 상황을 살피던 채현도 서윤채의 팔을 붙들었다.
“윤채야, 우리도 나가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어?”
“언제 비 맞으면서 물에 빠져 보겠냐.”
한 손으로 머릴 쓸어 넘긴 서윤채가 씩 웃어 보였다. 아쉬워하는 마음을 알아 달래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채현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결국 엇비슷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비록 첫 여행이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이로도 기쁘고 좋았다.
물가를 벗어나선 크게 늘어진 나무 밑에 앉아 비 내리는 계곡을 구경했다. 맴맴 시끄럽게 울어 대던 매미 소리는 솨아아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시원하다.”
“춥진 않고?”
서윤채는 본인도 젖었다는 걸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눈가에 묻은 물기를 닦아 주고 신경을 써 주었다. 채현은 그 보살핌에 기분이 들떠 남들 눈을 피해 서윤채의 손끝을 잡았다. 상대는 당연하다는 듯 곧장 손깍지를 껴 왔다. 적당히 따뜻한 온기를 덧댄 손이 틈 없이 맞물렸다.
후드득. 요란스럽게 쏟아지는 빗방울에 계곡물 표면이 요동쳤다. 주변을 뒤덮은 나무도 비바람에 흔들렸다. 보아하니 금방 그칠 비는 아닌 듯했는데, 화가 나진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평화롭고 좋았으므로.
“이럴 때 여기서 전 부쳐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
“막걸리도 한잔하고?”
“어! 죽이겠다. 와…….”
“다음엔 전도 부쳐 먹자. 마스터 해 올게.”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던 서윤채가 요리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쫄딱 젖은 채 그럴싸한 몸짓을 내보이는 게 웃겨 방실댄 채현은 고갤 끄덕였다. 당연하게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새삼 와닿아 마음이 찡 울렸다.
빗줄기는 오래 지나지 않아 사그라졌다. 천천히 움직이는 비구름 너머 파란 하늘이 보였지만 더 놀기는 애매해진 상황이었다. 슬슬 밥 먹을 시간이니 소나기가 멎은 김에 발을 뗐다.
문제는 숙소에 도착해서였다. 둘 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는데 욕실은 하나였으므로.
“먼저 씻어.”
“너도 젖었잖아. 감기 걸려.”
“너보다 튼튼하니까 걱정 말고. 천천히 씻고 나와.”
서윤채는 직접 욕실 안으로 이끌어 주고선 깨끗한 수건 하나를 챙겨 나갔다. 기다리는 사이 수건으로 버티고 있을 심산인 듯했다. 안에 에어컨도 틀어 둬서 더 추울 텐데……. 걱정 어린 얼굴을 한 채현은 수 초간 고뇌하다 끝내 닫힌 문을 다시 열었다.
“윤채야.”
“어. 뭐 필요해?”
어깨에 수건을 걸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선 이가 물었다. 예사로운 표정을 보니 추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젖은 꼴이 눈에 밟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어.”
“……같이, 씻자고.”
고민 끝에 용기 내어 말을 내뱉자 다가오던 서윤채가 우뚝 멈춰 섰다. 직전 말을 곱씹어 보는 것인지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물끄러미 시선을 흘리길 잠시, ‘아…….’ 목을 울리며 능청스레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이거 혹시 그런 뜻인가?”
“아니, 그냥 너 추울까 봐 같이 씻자고 한 거야. 그게 전부야.”
“나는 우리 채현이 놀랄까 봐 참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한눈에 봐도 짓궂은 미소를 띤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걸음을 옮겼다. 몇 발짝 만에 간격을 좁히고선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지척에서 시선이 완벽하게 맞닿았다.
“어쩌지. 나는 그럴 생각이 들었는데.”
툭. 어깨를 감싸 쥔 서윤채가 손에 힘을 실었다. 자연히 몸이 뒤로 밀렸다. 그는 결코 빠르지 않은 속도로 발을 내디디며 안으로 들어섰다. 공간을 나누는 문이 쾅 소릴 내며 닫혔다.
“윤채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상대도 그를 알아챘는지 퍽 상냥하게 뺨을 매만져 주었다. 달래려는 의도가 분명한 손짓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
“내가 너 잡아먹어?”
“……안 먹어?”
“장담은 못 하고.”
눈가를 찡그리듯 웃은 그는 연신 피식대며 쪽 뽀뽀를 했다. 물기 어린 소리가 욕실 안에 울렸다. 서윤채는 코끝이 간지럽게 스치고 호흡이 섞일 거리에서 상냥히 눈을 마주해 왔다.
“표정 봐라. 네가 자꾸 다 보여 주니까 내가 건드리게 되잖아.”
“모르는 척해 주면 되잖아.”
“노력은 해 볼게. 근데 네 애인 성격이 그 정도로 좋지가 않아서.”
“뭘 또 그렇게 자랑처럼 말해…….”
“흠은 아니니까.”
성격이 안 좋은 건 흠 아닌가. 속으로만 자신 없이 항변하고 있으려니 서윤채가 샤워기 아래로 이끌었다. 물을 틀고 온도를 맞추는 듯했던 그는 이내 옷을 향해 눈짓했다.
“일단 옷부터 벗어. 계속 입고 있다가 감기 걸린다.”
강압적이기보다는 친절한 목소리였으나 채현은 쉬이 움직이지 못하고 망설였다. 예상 못 한 상황이 아닌데도 막상 맞닥뜨리자 심장이 쿵쿵 빠르게 내달렸다.
설마 지금 하는 걸까. 여기서 어떻게 하지. 침대도 없는데. 선 채로 하는 건가…….
“머리 그만 굴리고.”
마구잡이로 이어지던 생각은 서윤채의 손짓에 뚝 끊겼다. 그는 아프지 않게 콧등을 톡 치며 가벼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한 태도였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들켰어?”
“할 생각도 없으면서 일부러 그러지 마.”
“누가 그래. 할 생각이 없다고. 그건 차고 넘치는데.”
팔. 상의 밑자락을 잡은 그가 직접 벗겨 주려는 듯 나직이 이야기했다. 입술을 감쳐물고 잠시 고민하던 채현은 결국 팔을 들었다. 젖은 옷이 벗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바지도 벗겨 줘?”
“아니! 내가… 내가 할게.”
“그래, 그럼.”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서윤채는 바로 이어 제 옷을 벗고 세면대 위에 걸쳐 두었다. 바지를 벗는 움직임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채현은 멍하니 그를 좇다 툭 불거진 중심을 발견하곤 멈칫했다. 검은색 드로어즈 너머 성기의 윤곽이 심히 뚜렷했다. 화들짝 놀라 시선을 떼기도 잠시, 홀린 듯 재차 바라보았다.
……선 건가. 선 거 같은데. 저걸 멀쩡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나. 원래 저 크기였었나.
“뭘 그렇게 노골적으로 봐.”
“왜 섰…….”
“아직 안 섰는데.”
서윤채는 스스럼없이 손을 움직였다. 부끄럽지도 않은지, 속옷 위로 튀어나온 성기를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태연하기만 한 상대에 반해 채현은 입이 바짝 마르고 귓가가 뜨거워졌다.
“왜. 세워?”
“아니?”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 대답은 끝 음이 높게 튄 채였다. 서윤채는 가차 없이 픽 비웃으며 손을 뗐다. 직전까지 본인 성기를 매만지던 사람이라곤 볼 수 없을 만큼 천연덕스러웠다.
“그럼 얼른 벗어 봐. 빨리 씻고 나가게. 시간 끌면 진짜 장담 못 해.”
그의 말마따나 계속 이러고 있으면 끝내 하게 되리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채현은 서둘러 옷을 벗었다. 속옷까지 벗기엔 너무 부끄러워 그대로 휙 돌아 벽을 보고 섰다.
“왜 등을 돌려?”
“어? 아, 이게 더 씻기 편해서…….”
샤워기를 뽑아 들며 꿍얼거리자, 등 뒤에서 가느다랗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척해 줄게.”
웃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인 이는 자연스레 샤워 볼을 건네주었다. 스치듯 손끝이 닿으며 일순 소름이 돋았다. 흠칫 몸을 떤 채현은 간신히 떨림을 죽이고 바디 워시를 묻혔다.
욕실은 고요했다. 울리는 소음이라곤 세차게 쏟아지는 물소리뿐이었다. 피부로 느껴질 만큼 긴장 어린 공기가 공간을 에워쌌다. 그 탓인지 행동이 어색해지고 호흡이 흐트러졌다.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
폭풍 전야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물에 젖어 제 색을 잃고 짙게 변한 속옷부터가 문제였다. 이대로 씻을 수도, 그렇다고 벗고 씻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속이 탔다.
“쫌 뒤로 가…….”
“좁아서 그래.”
몸을 움직일 때마다 서윤채와 살갗이 스쳐 더 곤란했다. 한데, 그는 동요하는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하게 굴며 ‘네가 확인해 볼래?’ 중얼대기만 했다. 어쩜 저리도 여유로울 수 있는지. 심호흡한 채현은 결국 빨리 씻고 나가자 결론을 내리고 손을 놀렸다.
“근데, 채현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던 이가 더 가까이 다가온 건 그즈음이었다.
“다 벗고 안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누가 그런 예의를 따져?”
“연인 사이의 도리라는 게 있잖아.”
서윤채는 헛소리를 퍽 정성스레 해 대며 몸을 바짝 붙여 왔다. 엉덩이 위로 그의 성기가 와 닿은 게 느껴졌다. 젖은 천은 있으나 마나 해 선명한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리가…… 구실 못 하는 새끼도 아니고.”
“아니, 잠깐…….”
“싫어서 그래?”
오스스 소름이 돋을 만큼 은근한 속삭임이었다. 그는 느릿느릿 허리 짓을 하듯 성기를 문질렀다. 엉덩이 사이로 툭 쳐올리기도 했다. 노골적인 몸짓에 덩달아 아래로 열이 몰렸다.
“왜… 왜, 커져?”
거기에 더해 맞닿은 딱딱한 성기가 자꾸만 크기를 키웠다.
“자의가 아니야.”
“그럼 뭐 얘한테 의지가 있어?”
“그런가 봐. 나도 몰랐네.”
능청스레 대꾸한 서윤채가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팔을 뻗어 허리를 휘감고선 본인 쪽으로 당겼다. 그는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샤워 볼을 슥 가져갔다.
“……여기서 하려고?”
“네가 동의하면.”
까슬까슬한 천이 뱀처럼 상체 위를 거닐었다. 비누 거품을 묻힌 서윤채의 손이 몸을 옥죄며 영역 표시라도 하는 듯했다. 채현은 입술만 질근질근 씹다가 고갤 돌려 서윤채를 바라보았다.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쪽 입을 맞춰 왔다. 샤워기 물이 떨어지는 소리만큼이나 촉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장 어린 분위기완 어울리지 않는 산뜻한 입맞춤이었다.
“네가 싫다고 하면 안 해.”
싫은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편에 속했다. 첫 관계 후로 삽입 섹스를 한 적이 없는데도 그 느낌을 선명히 기억할 만큼. 다만 욕실이라는 장소가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너 섰잖아.”
“그렇다고 억지로 박을까.”
서윤채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답했다. 아까와는 달리 꽤나 발기한 상태였는데도.
“그런 쪽은 나도 취미가 없어서. 하기 싫으면 그냥 나 딸치는 거 구경이나 해.”
딸을 친다고……. 서윤채의 말을 곱씹던 채현은 속절없이 귓가를 불태우고 기다란 숨을 토해 냈다. 어느새 제 숨결 또한 잔뜩 녹진해진 채였다.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 때문에 부끄러운 한편, 한결같이 제 의사를 우선해 줘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여기서 한다니까 신경 쓰여서 그래.”
“아하. 싫진 않고?”
“어? 어…….”
“그럼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나 믿지?”
그는 전혀 신용이 가지 않는 얼굴로 속삭이곤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었다. 새끼 강아지처럼 살살 씹어 대 아프지는 않았지만 몹시 간지러웠다. 감촉을 견디던 채현은 결국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힘을 빼고 어울렸다. 상대는 곧장 더없이 안정적인 자세로 몸을 지탱해 주었다.
머지않아 상체는 거품 범벅이 되었다. 서윤채가 붓질하듯 몸을 문지를 때마다 좋은 향기가 풍겼다. 그는 서두르는 법 없이 여유롭게 손을 움직였다. 그에 반해 하체에 닿은 성기는 계속해 단단해졌다. 천 너머로도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윤채야.”
“응?”
모르는 척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한 주제에 목소리는 태연하기만 했다. 감질나는 손짓에 점점 갈증이 나고 애가 타는 건 저뿐인 듯.
채현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그를 힐끔거렸다. 시선이 얽히자 상대는 살며시 눈웃음을 쳤다. 무얼 말하고 싶은지 진작 알아챈 듯싶었다.
“하루 종일 씻어?”
“아…….”
결국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흥분감에 굴복하고 따져 물으니, 그는 호흡하듯 웃으며 목을 울렸다. 느릿하게 배꼽 주변을 배회하던 손이 단번에 가슴께로 향했다.
“우리 채현이 긴장 좀 풀라고 일부러 천천히 한 건데…….”
“으.”
“본의 아니게 애를 태웠네. 미안?”
“너, 하나도 안 미안, 아.”
“미안하니까 더 잘해 볼게.”
서윤채는 상냥하게 군 적 따위 없다는 듯 손을 놀렸다. 툭 불거진 돌기를 짓누르고 손톱으로 살살 긁어 댔다. 본인 성에 찰 때까지 만지작거리곤 유륜을 문질렀다. 안 그래도 긴장한 탓에 바짝 일어서 있던 젖꼭지가 단단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거품이 묻어서 그런가, 저번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인데.”
“변태야? 무슨 그런 말을…….”
“아니라곤 말 못 하고. 너는 어때. 쌩으로 만져 줄 때가 더 좋아?”
“몰라. 으, 꼬집지 마.”
가슴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애무하던 변태가 간지러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의 얼굴이 귓가 근처에 있던 터라 더욱 잘 느껴졌다. 그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슬금슬금 손을 내렸다.
“그런 것치고는…….”
“…….”
“얘도 섰는데.”
톡. 드로어즈 위로 튀어나온 성기를 건드리는 손짓은 장난스러웠다. 채현은 힘을 싣고 몸집을 키우는 제 중심을 바라보다 뒤로 몸을 기댔다. 엉덩이 사이로 흉흉한 성기가 꽉 들어찼다.
“너는 싸기 직전 아니야?”
“누굴 지금 조루로 봐.”
어이가 없다는 듯 즉답한 서윤채가 허리를 휘감은 팔에 힘을 실어 본인 쪽으로 당겼다. 틈 하나 없이 맞닿은 성기가 금방이라도 밑을 뚫고 들어설 듯했다.
“지난번에 봤으면서 그러네.”
은근히 놀려 대는 꼴에 약이 올라 내던져 본 말인데,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었지 싶었다.
“그리고…… 네 애인 좆이 이렇게 작진 않은데.”
“아!”
“안 까먹게 오늘 제대로 해야겠네.”
드로어즈 안으로 불쑥 손을 밀어 넣은 그가 성기를 잡아챘으므로. 그는 ‘너는 지금 자존심을 건드린 거야.’ 헛소리를 내뱉으며 기둥을 꽉꽉 눌러 댔다.
“작다는, 소, 으, 소리는 안 했어.”
“썩 위로는 안 되는데, 고마워.”
지금도 충분히 엄청나다 생각했는데 완전히 발기하기 전이었다니. 새삼 놀라우면서도 심장이 떨렸다. 설렘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두근거림이었다.
아프겠지. 당연히 저 크기니 죽도록 아프겠지. 찢어지면 어떡하지. 절로 눈물이 날 만큼 괴로운 고통 뒤에 아찔한 쾌감이 있다는 걸 알지만 지레 겁이 났다. 벌써 숨이 막히는 듯했다.
“흐으.”
그는 물에 젖어 들러붙는 속옷 안에서 잘도 손을 움직였다. 질척해진 귀두를 양껏 문질러 대며 다른 손으론 융기한 젖꼭지를 건드렸다. 위아래로 쏟아지는 자극에 다리 힘이 풀렸다.
“서 있기 힘들면 기대.”
그에 반해 서윤채의 몸은 흡사 벽 같았다. 다리 사이를 벌리고 제 허벅지를 갖다 대며 편히 기댈 수 있게끔 해 주기도 했다. 채현은 그가 이끄는 대로 기댄 채 손을 뻗어 그를 더듬었다.
찰나 멈칫하며 신음 흘리듯 한숨을 터뜨린 서윤채는 성기를 매만지는 데 박차를 가했다. 기둥 위로 도드라진 핏줄을 꾹 누르던 손이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젖은 살갗이 온기를 덧입은 채 잔뜩 쓸리며 열이 올랐다. 이따금 귀두를 짓누를 땐 절로 허리가 움찔댔다.
“아…….”
참지 못하고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자 그는 초옥, 뽀뽀를 하며 자극을 퍼부었다. 계속 만져져 통통하게 부어오른 젖꼭지는 이미 한껏 예민해진 채였다. 숨결 한 번에도 소름이 돋고 떨릴 정도였다.
결코 익숙한 자극이 아니었다. 경험이라고 해 봐야 한 번이 전부니 당연히 그럴 만했다. 낯선 감각에 본능적으로 피하려 해 봐도 소용없었다. 그의 손을 피하고자 몸을 물리면, 뒤를 단단히 가로막은 서윤채가 성기를 맞붙여 오며 쳐올려 대는 통에 더 죽을 맛이었다.
“이거 벗어 볼래.”
한참을 성기를 갖고 노는 데 집중한 그는 이러다 싸겠다 싶을 때쯤 손을 뗐다. 채현은 가쁜 숨을 터뜨리며 속옷을 벗었다. 그와 동시에 따뜻한 물이 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융기해 있던 젖꼭지가 괜히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나 보고 서 봐.”
서윤채는 비누 거품을 다 헹궈 내고선 천천히 몸을 굽혀 주저앉았다. 목표로 하는 바가 명확한 듯 한곳만을 바라보면서. 그는 물과 프리컴으로 엉망이 된 성기를 빤히 보다 톡 건드렸다. 하필이면 손끝이 귀두를 스쳐 또 한 번 하체가 움찔 떨렸다.
“민감하네.”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중얼댄 서윤채가 느릿느릿 눈을 치켜떴다.
“빨아 줄까.”
“……어딜?”
“여기.”
“흣.”
갑작스러운 말만큼이나 예상치 못한 손길이었다. 넓게 손바닥을 펴 귀두를 문대던 이는 ‘후.’ 태연하게 입김을 불었다. 그러고선 입을 벌린 채 무언가를 물고 빠는 시늉을 해 보였다. 손 모양을 보아하니 성기를 말하는 듯했다. 낯부끄러운 광경에 자연히 호흡이 가빠졌다.
“진짜 빨, 아니, 하려고?”
“응. 내가 세웠으니까 책임은 져야지.”
이상한 데서 책임감을 느낀 이는 지체 없이 고갤 숙였다. 의사를 묻는 게 아니라 통보였던 듯 곧장 성기 끝을 물었다. 잔뜩 흥분해 민감해진 살덩이가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 윤채야, 이거, 으, 너무…….”
말캉한 혀가 기둥을 감싸 안고 살살 핥아 올렸다. 태어나 처음 겪는 감각에 사정감이 치밀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의 어깨를 꽉 쥐었으나, 서윤채는 더 세게 빨아들이기만 했다.
뿌리 끝까지 삼키고 압박하는가 하면, 귀두만 혀로 건드리기도 했다. 새빨간 혀가 붉어진 성기 끝을 살뜰히 핥아 댔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양 질척한 소릴 내며 빨아 먹었다. 성기를 엉망으로 만든 선액은 흔적도 없이 그의 입 안에서 사라졌다.
채현은 속절없이 끙끙 앓는 소릴 터뜨리며 시선을 흘렸다. 이리저리 구르던 눈길이 떨어진 곳은 서윤채의 얼굴이었다. 성기를 빠는 데 집중한 낯이 망막에 새겨졌다.
“…….”
어떤 말도 얹을 수가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성기를 삼킨 그가 너무 야해 보였으므로. 눈가는 묘하게 붉어진 채였고, 방향을 바꿔 성기를 삼킬 때면 뺨도 볼록 튀어나왔다.
제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성기를 빨아 주는 서윤채라니. 아래를 뒤덮은 쾌감 이상의 것이 온몸을 짓눌렀다. 동시에 본능을 닮은 충동이 일었다. 하. 엉망인 숨을 터뜨린 채현은 손에 힘을 실었다. 그렇지 않고선, 그의 머리를 붙들고 자신 쪽으로 당길 뻔했으니.
그 손짓에 눈을 치켜뜬 서윤채는 일순 멈칫하다 성기를 뱉어 냈다.
“아.”
표정 한번……. 나지막이 중얼댄 이가 낮게 욕을 내질렀다. 무언가를 억누르듯 제 볼 안쪽을 혀로 훑더니 눈가를 찡그리며 웃었다. 젖은 머릴 쓸어 넘기는 행동은 퍽 신경질적이었다.
“우리 채현이가…….”
“…….”
“손보다 입을 더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초옥. 말을 맺은 서윤채가 귀두 끝에 입술을 내려 뽀뽀하듯 요도구를 빨았다. 시선은 여전히 얼굴로 와 닿은 채였다. 채현은 신음이 터질 듯해 입술을 감쳐물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대 줄까.”
“……어?”
“하고 싶잖아.”
집요하게 얼굴을 뜯어보며 귀두를 핥던 그가 고갤 물린 건 그와 동시였다.
“대 줄 테니까 네가 박아 봐.”
그는 조금 공간을 띄운 뒤 마음껏 하라는 듯 입을 벌렸다. 직전까지 성기를 빨던 입 안이 훤히 보였다. 타액으로 젖은 붉은 혀가 환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였다.
“싸고 싶으면 싸도 돼.”
“너, 진짜…….”
“얼굴에 쌀 거면 말만 해 주고.”
절로 소름이 돋을 만큼 은근한 음성으로 속삭인 그는 곧이어 성기를 향해 눈짓했다. 채현은 쾌감을 바라듯 움찔대는 제 성기를 바라보다 한 발을 내디뎠다. 뿌리 부분을 조심스레 잡는 동시에 서윤채가 고개를 앞으로 당겼다. 말캉한 입술과 귀두가 맞닿았다.
“아…….”
인내와 망설임은 짧았다. 한 번 겪어 본 감각 앞에서 이성은 빠른 속도로 휘발됐다.
“나중에 다른 말 하면 안 돼.”
채현은 녹진한 그의 입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도사리고 있던 혀가 곧장 기둥을 간질여 왔다. 뱀처럼 살덩이를 휘감더니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 누르기도 했다.
아래를 집어삼킨 열감은 금세 머리끝까지 번졌다.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되는 기분이었다. 오로지 본능만이 남아 몸을 움직였다. 툭. 툭. 채현은 느리게 허리 짓을 하며 그의 입 안에 제 성기를 박았다. 꽉 조여 오는 점막의 느낌을 만끽하며 천천히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윤채야, 나, 봐 줘.”
상대는 느릿하게 시선을 올렸다. 불그스름해진 눈가가 가장 먼저 눈에 밟혔다. 목 안을 찔려 생리적으로 눈물이 고였는지 속눈썹도 젖어 있었다. 한참 전부터 성기를 물고 있던 입술은 새빨개진 지 오래였다. 빈말로도 멀쩡하다곤 못 할 상태에 아랫배 안쪽이 뒤틀리는 듯했다.
직접 성기에 와 닿는 감촉보다 시각적인 요소가 흥분을 더했다. 아, 정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현은 잔뜩 탁해진 숨결을 터뜨렸다.
“너, 너무, 흐, 야한 거, 같아.”
“음.”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서윤채가 성기를 문 채로 입꼬리를 당겼다. 본인이 직접 움직여 살덩이를 더 깊숙이 머금기까지 했다. 샅에 얼굴을 파묻곤 허리 짓에 맞춰 고개를 움직였다.
한 손으로는 본인 성기를 꺼내 수음했다. 곧은 손가락이 희붉은 성기를 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젖은 살덩이를 문지르는 소리가 여과 없이 울려 퍼졌다.
지나친 자극에 달아오른 성기가 한계에 다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채현은 저도 모르게 그의 입 안으로 성기를 콱 처박으며 파정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사정 뒤 찾아오는 여운을 느끼는 사이, 서윤채는 싸지른 정액을 모조리 삼켜 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는 기색 하나 없이 성기를 핥아 올렸다. 남은 정액을 전부 빼낼 작정인지 쪽쪽 빨기도 했다. 결코 맛이 있을 리 없는데,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본인이 전부 취했다.
“잘 박네.”
좁은 공간을 벗어난 성기는 사정 후라곤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직전 행위를 상상케 하듯 축축하게 젖어 있을 뿐이었다.
“쌀 뻔했어.”
“싸도 되는데…….”
“아깝게 왜 바닥에 싸.”
서윤채의 성기는 그사이 잘도 세운 건지 훨씬 더 흉흉해진 채 홀로 꺼떡댔다. 당장 밑을 뚫고 들어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똑같이 빨아 달라는 소리인가. 손으로 만져 줄 때보다 훨씬 좋긴 한데. 덜컥 겁부터 나긴 했지만, 이왕이면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채현은 그를 힐끔대다 용기 내 입을 열었다.
“입에…… 할래?”
“그건 나중에.”
제 좆을 만지작거린 이는 곧이어 엉덩이 사이로 손을 갖다 댔다. 스멀스멀 살결을 기어오른 손이 홀로 뻐끔대던 밑을 조심스레 건드렸다.
“아…….”
“왜 이렇게 힘을 꽉 줘.”
“일부러, 으,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긴장 좀 풀고 반겨 줘 봐.”
흠. 목을 울린 그는 본인 손가락을 빨아 적시더니 재차 구멍을 간질였다.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회음을 콕콕 찌르다 불시에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뜨거워진 내부는 발악하듯 그의 손을 씹었다.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지는데 서윤채는 개의치 않고 점막을 매만졌다.
“아프면 말해.”
“아, 살살 해.”
무언가 밑을 뚫고 들어서는 감각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채현은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붙잡았다. 맨살이 맞닿으니 그나마 안심이 되는 듯했다.
“아으…….”
“한번 해 봤는데도 좁네.”
서윤채는 나지막이 중얼대며 밑을 늘리는 데 몰두했다. 내벽을 살살 긁으며 가위질을 쳐 댔다. 벌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깊숙이 쑤셔 넣기도 했다. 안을 넓히는 손가락은 금세 수를 늘렸다. 두 개. 세 개. 네 개……. 멈춤 없이 늘어나며 열이 오른 내부를 마구 헤집었다.
서윤채에게 배 속이 만져지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밑을 뚫고 들어선 손이 목구멍까지 닿은 듯도 했다. 마냥 좋다기보다는, 불편한 쾌감이 기분 나쁘게 몸을 둘러 안았다.
서윤채는 그 누구도 건드린 적 없던 곳을 마음껏 어루만졌다. 손짓은 능숙했다. 원체 똑똑해 습득이 빠른 것인지 익숙하다는 듯 손을 놀렸다. 채현이 녹아내리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윤채야, 아흣, 누르지, 읏, 마.”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쑤셔 대 척추를 타고 소름이 기어올랐다. 귀두를 자극할 때와 엇비슷한 성감이 머릿속을 절절 끓게 했다. 신경이 다 닳아 한계로 내몰리는 기분이었다.
“여기만 누르면…….”
“아!”
“엄청 물어뜯는데, 느껴져?”
“흐, 아, 됐으니까, 그냥, 하면 안 돼? 아흑, 응?”
“아…….”
지독히 낮은 목소리를 흘린 서윤채가 한 번에 손을 뽑아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봐.’ 뇌까리며 몸을 돌려세웠다. 바로 이어선 밑으로 흉흉한 성기가 와 닿는 게 느껴졌다. 채현은 벽을 짚고 선 채 간신히 호흡을 이어 갔다. 숨소리는 달음박질이라도 한 양 거칠었다.
“왜 보채.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네가 자꾸 그러니까…….”
“왜. 과해?”
짓궂게 속삭인 그가 성기로 구멍을 툭 건드렸다.
“너 그 말 하지 마.”
“네가 좀 예뻐야지.”
웃음 섞인 대꾸는 능청스러웠다. 서윤채는 허벅지 사이에 살덩이를 끼워 넣고 허리 짓을 했다. 바짝 열이 오른 성기끼리 맞붙으며 성감이 치솟았다. 등 뒤에 선 이도 잔뜩 흥분했는지 억누른 신음을 흘렸다. 고환을 툭 쳐 대길 잠시, 상대는 틈을 놓치지 않고 귀두를 밀어 넣었다.
“아으, 아, 아파…….”
“미안, 하, 노력하고 있긴, 윽, 한데…….”
“살살, 으, 아!”
“씹…….”
내부는 몹시 좁았다. 직전까지 넓힌 수고가 무색하도록 성기를 물어 댔다. 꽉 다물린 내벽은 결코 진입을 허락하지 않을 듯했다. 서윤채는 귀두만 간신히 박아 넣고 한숨을 내쉬었다.
“채현아, 너무, 후, 씹지 말아 봐.”
“흐, 뭐?”
“좆 터질 거 같아.”
“나는, 으, 찢어진 거 같거든…….”
“엄살은.”
다정히 옆구리를 쓰다듬은 그는 실소를 흘리며 재차 허리를 움직였다. 툭. 툭. 흉흉한 성기가 좁아 든 내부를 찔러 댔다. 길을 트듯 뒤로 빠졌다가 조금씩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내가 설마, 피를, 보게 할까.”
“윽, 명치까지 들어왔, 흐, 숨 막혀…….”
“우리 채현이…… 다 넣으면 기절하겠네.”
서윤채는 말을 하면서도 허리 짓을 멈추지 않았다. 비좁은 내벽을 쿵 두드리며 제 좆을 박아 넣었다. 살덩이 위로 도드라진 핏줄까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다 안 넣을 거긴 한데, 아프면 말해.”
쪽.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인 서윤채가 가벼이 뽀뽀했다. 팔을 뻗어 상체를 끌어안고 본인 쪽으로 당긴 그는 허리를 놀리는 데 집중했다. 그의 성기가 움직일 때마다 점막도 똑같이 요동쳤다. 기둥에 들러붙어 함께 딸려 나갔다가, 안으로 진입할 땐 뭉개진 채 위로 쓸렸다.
“아!”
“존나, 좋다. 그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은 그가 흥분감이 짙게 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목선을 따라 연신 입을 맞추며 젖꼭지를 건드리기도 했다. 내벽을 짓쳐 대는 성기의 움직임에 맞춰 상체에도 자극이 쏟아졌다. 유독 잘 느끼는 부위를 쑤셔 대 사정감이 치닫는 건 순식간이었다.
“윤채야.”
차마 모른 체할 수 없을 만큼 다급한 부름이었다. 상대는 곧장 손을 뻗어 꺼떡대는 성기를 매만져 주었다. 밑을 헤집던 살덩이도 퍽, 세게 안쪽으로 틀어박혔다.
서윤채는 집요하게 귀두만 문지르며 제 성기를 박아 넣었다. 찔꺽거리는 소리가 난잡하게 울렸다. 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달뜬 호흡이 욕실 안을 가득 메웠다. 노골적인 행위의 흔적이 또 다른 자극제가 되어 몸을 뒤덮었다.
“아!”
채현은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인 채 끙끙 앓았다. 요의를 닮은 사정감이 성기를 내리눌렀다. 더는 못 참겠다 싶을 때쯤, 희뿌연 정액이 터져 나오며 욕실 벽을 더럽혔다.
“하으, 흐…….”
“후…….”
사정의 여파로 경련하듯 떨리는 내벽이 서윤채의 성기를 꼭꼭 씹었다. 힘이 잔뜩 들어가 꽉 조이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서윤채도 참기 힘든지 목을 울리며 성기를 치받았다.
“안에, 후, 쌀게?”
“뭘, 그런, 아, 그런 걸, 말로, 아!”
“예고 없이 하는 거, 싫어하잖아.”
서윤채는 그 뒤로도 꽤 오래 허리 짓을 하다가 깊숙이 박아 넣고 파정했다. 정액을 싸지르는 동안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아 질척이는 소리가 접합부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영역 표시라도 하듯 느릿하게 허리를 놀리며 내부에 정액을 묻혀 댔다.
“서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치.”
“더 힘든 거 같은데…….”
“많이 힘들면 안고 할게.”
“……또 하게?”
지금도 충분히 하지 않았나. 기겁하며 되묻자, 서윤채는 대꾸 없이 쪽쪽거리기만 했다. 온몸에 제 흔적을 남길 요량인지 살갗을 질근대며 입술을 파묻었다.
“왜 안 빼…….”
“지금 빼면 정액 흘러.”
“어차피 빼야 하잖아.”
“음.”
그는 모호한 태도를 고수하며 목을 울렸다. 삽시에 불안해진 채현은 고갤 살짝 틀어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이렇다 할 틈 없이 곧장 얽혀 들었다. 빤히 마주해 오던 서윤채는 살며시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여전히 흉흉한 성기를 박아 넣고 있는 이라곤 볼 수 없었다.
“있잖아.”
손끝이 곱아들 만큼 다정한 부름이 불길하게 귓등을 간질였다.
“한 번 하면 정 없대.”
“누가 그런 말을 해.”
“뭐, 글쎄……. 있지 않을까?”
능청스레 말을 늘어놓은 서윤채가 슬쩍 허리를 움직였다. 안쪽에 틀어박힌 살덩이가 예민해진 내벽을 건드렸다. 불시에 퍼진 자극에 밑이 좁아 들며 끙끙 앓는 소리가 샜다.
“한 번만 더 하자.”
한숨 같은 신음을 흘린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얄궂게 웃어 보인 서윤채는 이내 다디단 목소리로 속삭이며 입을 맞춰 왔다. 아. 서윤채……. 탄식한 채현은 결국 몸에 힘을 빼고 그와 어울렸다. 오직 제게만 쏟아지는 그의 흔적이 기꺼웠으므로.
* * *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선 뽀송뽀송해진 상태로 꼭 끌어안고 누워 있었다. 한 몸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붙은 채 서로를 느끼며 평온하게 호흡했다.
“……배고프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채현이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에 휩싸여 있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물놀이만 해도 기력이 쪽 빨리는데, 격정적인 운동까지 해서인지 힘이 하나도 없었다.
“불 피워 주실 시간 다 됐어. 나가서 고기 구워 먹자.”
서윤채는 다정히 등을 토닥여 주다 이마 위로 쪽 입을 맞추곤 상체를 세웠다. 먼저 몸을 일으키더니 잡고 일어나라는 듯 손을 뻗었다. 맞잡아 당겨 주는 몸짓은 몹시 안정적이었다.
사이좋게 바비큐장으로 향하자, 이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꽤 돼 복작복작했다. 한여름 저녁과 어울리는 활기와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안내받은 자리는 바깥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경계를 나눈 나무 펜스 너머로는 넓은 잔디밭과 우거진 나무가 보였다. 그 위를 뛰어다니는 강아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진흙을 뒹군 것인지, 꼬질꼬질한 강아지는 비가 와 물기를 머금은 땅 위를 신나게 쏘다녔다.
“윤채야, 저기 강아지 있어. 여기서 키우는 건가.”
“개가 두 마리네.”
“……그럼 너는 개랑 여행 왔어?”
잠시 멈칫한 채현은 그가 자신을 개로 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항변했다.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았으나, 서윤채는 개의치 않고 장난스럽게 웃기만 했다.
“우리 채현이 살짝 개 같은 매력이 있잖아.”
“어감이 이상한데.”
“똥개 새끼 같아서 귀엽다는 소리야.”
“……더 이상한데.”
“그만 노려보고 앉기나 해.”
숯불 위로 삼겹살을 올린 서윤채가 피식대며 고갯짓했다. 공연히 손끝이 저릴 만큼 다정한 목소리였다. 머쓱하게 목덜미를 매만진 채현은 자리에 앉아 테이블 세팅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도 귓가를 건드렸다.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은 침샘을 자극했다. 칼집이 들어가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너 고기 잘 굽는다.”
“애인이 고기를 좋아해서 연습 좀 했지.”
슬쩍 시선을 마주쳐 온 서윤채가 눈짓하며 속삭였다. 능청스러운 한마디는 시끌시끌한 공간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현은 즉석 밥만 퍼먹었다.
“고기랑 같이 먹어.”
그를 본 상대는 접시 가득 고기를 담아 테이블 중앙에 놓아 주었다. 딱 알맞게 익은 삼겹살은 한 입 크기로 잘려져 있었다.
“너도 얼른 앉아. 같이 먹게. 그리고 이제 내가 구울게.”
“아서라. 고기는 원래 잘 굽는 사람이 굽는 거야.”
서윤채는 삼겹살 두 줄을 새로 올리고 나서야 집게를 내려 두고 자리에 앉았다. 채현도 그제야 젓가락을 들고 고기 한 점을 그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불 앞에 서서 더웠을 텐데,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수고를 자처해 고맙고 뭐라도 더 챙겨 주고 싶었다.
“많이 먹어.”
“우리 채현이도 많이 먹고.”
잘 먹겠단 인사를 남기고 집어 먹은 고기는 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맛있었다. 채현은 한껏 풀어진 얼굴을 하고서 오물오물 고기를 씹었다. 삽시에 행복해지는 듯했다.
식사 내내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하루를 맛있는 음식으로 마무리해서인지 기분이 들떴다. 서윤채와 마주 보고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며 시선을 주고받는 것도 한몫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선 자리를 정리하고 숙소 주변을 거닐었다. 하루를 밝힌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와 어두웠지만, 그로도 퍽 운치가 있었다.
한바탕 비가 쏟아진 덕에 살살 부는 바람은 무척 시원했다. 젖은 풀 냄새와 흙냄새도 함께 밀려왔다. 빗소리가 멎은 뒤 들리는 매미 소리도 귓등을 매만졌다.
“윤채야.”
찌르르. 채현은 사위를 뒤덮은 풀벌레 소리를 뒤로하고 제 옆에 선 이를 불렀다. 상대는 당연하게 눈을 마주해 오며 말하라는 듯 시선을 던졌다. 애정 어린 눈빛은 몹시 올곧았다.
“우리 다음에 또 놀러 오자.”
“그래.”
딱 그만큼 흔들림 없는 대답이 곧장 들려왔다. 채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똑같은 슬리퍼를 힐끗대다가, 서윤채를 올려다보며 환히 웃었다.
“매년 가자.”
서윤채는 그때까지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가 똑같이 웃어 주며 손을 꽉 잡았다. 틈을 파고들어 손깍지를 끼는 손짓은 자연스럽고 안정적이었다.
“응.”
마찬가지로 힘을 실은 채현은 세차게 고갤 끄덕이며 입매를 허물어뜨렸다. 오롯이 둘뿐인 공간에서 또 한 번 행한 약속에 마음이 부풀었다.
“꼭 가자.”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