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수고 많았어요.”
까딱. 답안지를 수거하는 교수님께 고개 숙여 인사한 채현은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한 달간 열심히 듣던 계절 학기가 마침내 종강을 맞이했다.
가방을 고쳐 메며 내딛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시험을 퍽 만족스럽게 본 덕이었다. 막 시작한 연애에 집중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는데, 역시 자신은 태생이 벼락치기 체질이었던 거다.
[서윤채S: 끝났어?] 오후 1:44
오후 2:02 [A+]
[서윤채S: ㅋㅋ]
[서윤채S: 조심해 채현아]
[서윤채S: 천재인 거 걸리면 그대로 대학원행이야] 오후 2:03
“무슨 이런 망언을…….”
채현은 서윤채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대학원이라니. 아무리 애인이라 해도 이건 너무 심한 말이 아닌가 싶었다. 순간적으로 발끈해 ‘넌네애인이교수님노예가’ 쳐 내던 문자는 결국 전송하지 못하고 원래부터 없던 양 지워 냈다.
“그래. 좋은 날인데 화내지 말아야지.”
그도 그럴 게 오늘은 첫 데이트 날이었다. 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주말 알바생과 미리 바꿔 둔 참이었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연락을 했다지만, 공식적인 데이트는 처음이었다.
어젯밤부터 기대가 되고 떨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단둘이 노는 건 똑같은데 뭐가 그리 달라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꽤 늦은 새벽까지 핸드폰을 붙들고 서윤채와 전화를 해야만 했다.
연애를 시작하고선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여전히 매일을 함께하며 한결같은 일상을 영위하는데도 말이다. 애정을 두르고 서로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어 준 덕이 큰 듯했다.
겪어 본 적 없던 관계가 되어 마주한 시간은 이토록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채현은 저도 모르는 사이 한껏 풀어진 얼굴을 하고 서윤채의 번호를 꾹 눌렀다. 전화 연결 중이란 표시가 뜨며 화면 가득 ‘서윤채S’와 익숙한 번호가 떠올랐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니 서윤채가 의문을 드러내던 때가 생각났다. 그는 우연히 저장된 이름을 보고선 S가 도대체 뭐냐고 물어왔다. 머리를 굴려 봐도 그럴싸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이 S는 도대체 뭐야? 이니셜이야?’
‘하트 반으로 쪼갠 거…….’
‘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듯했던 그는 종이에 직접 그려 보여 주자 웃음을 터뜨렸다.
‘왜 쪼갰어.’
‘하트는 너무 노골적이잖아.’
연신 실없이 굴던 이는 포옹을 해 오며 얼굴 여기저기 입을 맞췄다. 그 끝엔 남은 하트 반쪽은 자신이 챙기겠다며 ‘권채현2’로 이름을 바꿨다. 어쩌다 보니 커플 저장명이 된 꼴이었다.
― 응. 채현아.
“어디야?”
서윤채를 떠올리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다. 채현은 걸음을 보다 빨리하며 핸드폰 너머 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너희 학교 앞. 뛰지 말고 천천히 나와. 넘어지면 다친다.
“어, 나 정문인데 너 어디, 어, 너 보인다. 나 보여?”
― 천재 대학생은 보이는데.
“진짜 뭐래…….”
서윤채는 길 건너에 서 있었다. 채현은 사람이 꽤 많은 횡단보도 앞쪽에 서며 정면에 있는 서윤채를 바라보았다. 신호만 바뀌면 바로 만날 테지만 그 누구도 전화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 서로만 응시하길 잠시, 때마침 신호가 초록 불로 바뀌었다.
“거기 있어. 내가 건너갈게.”
채현은 서윤채에게 말을 건네는 즉시 전화를 끊고 땅을 박차고 달렸다. 호흡처럼 터지는 웃음을 마구 내뱉으면서. 건너에 있던 서윤채도 움직인 건 그와 동시였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의아해진 채현은 먼저 한 걸음을 더 내디뎌 서윤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에 더해 손을 붙잡고 인도로 이끌자, 서윤채는 하릴없이 끌려왔다.
“내가 온다니까.”
“……그러게. 왜 움직였지.”
사고를 거치지 않은 행동이었는지 서윤채는 본인도 퍽 당황을 했다. 맞닿은 손을 내려다보던 이는 이내 씩 웃어 보이며 더 단단히 고쳐 잡았다.
“이젠 네가 나한테 와 주는데. 그치.”
“어? 응.”
“가자. 데이트하러.”
나지막이 속삭인 서윤채는 쏟아지는 햇살만큼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에 담던 채현은 화답하듯 맞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뭐 먹고 싶어. 첫 데이트인데 근사한 거 먹어야지.”
“내가 몇 곳 찾아봤는데, 한번 봐 볼래?”
“준비성까지 갖춘 거야? 와, 역시……. 누가 일등 남자 친구 아니랄까 봐.”
“아, 장난치지 말고…….”
“누가 장난이래. 내 진심 곡해하지 말아 줄래.”
단단히 얽힌 손은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기는 동안 한 차례도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쭉 그러할 것을 말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