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실이 떠들썩했다. 반 아이들은 1차 형질 검사 결과지를 서로 나눠 보며 하교할 때까지 야단법석이었다. 대부분 베타로 나오긴 했으나 오메가 혹은 알파로 판명받은 아이들은 그게 뭐가 자랑인지 으스대기까지 했다.
“태윤아, 넌 뭐로 나왔어?”
“베타.”
이름과 얼굴만 기억하는 여학생이 묻자 태윤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으나 태윤이 가방을 챙기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교실 밖을 나가는 등 뒤에서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의외다, 알파일 줄 알았어.’
태윤은 학교 뒷문을 나와 익숙한 길을 걸어갔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금방 땀이 배어 나왔다. 시멘트 바닥에선 뜨끈한 열기가 올라오고, 어디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그 소리엔 어떤 울음이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태윤은 걸음을 빨리했다.
낡은 주택가를 스쳐 지나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해바라기가 핀 화단에 쪼그려 앉은 은준이었다. 은준은 제 몸에 비해 헐렁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커다란 해바라기가 다 가리지 못한 태양이 유독 하얀 피부를 더욱 쨍하고 비췄다.
태윤은 발걸음을 죽이고 천천히 다가갔다.
“성은준.”
짤막히 이름을 부르자 반응이 없었다. 태윤은 조급해하지 않고 한 번 더 소리를 냈다.
“성은준.”
“…….”
그제야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는 은준이었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엔 눈물 자국이 선연했다. 조금 전까지 펑펑 울고 있었는지 긴 속눈썹엔 이슬이 맺힌 것처럼 눈물방울을 덜렁 매달고 있었다.
“뭐 해.”
태윤은 그 꼴을 보고도 모르는 척 물었다.
“흑, 태윤아….”
주르륵, 단지 말 한번 걸었을 뿐인데 은준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태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은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은준이 손을 뻗어 왔다.
“나 애들 싫어….”
“왜?”
땀에 젖은 태윤의 어깨를 끌어안는 손길이 진득했다. 은준도 저만큼이나 땀을 흘린 게 분명한데, 풍기는 체향이 나쁘지 않았다.
“애들이… 내가, 오메가… 흑, 베타 아니고, 오메가 아니냐고… 뻥 친다고, 자꾸 그래서….”
은준은 태윤의 품에 안겨 훌쩍거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이 또래보다 더 어려 보이는 건 착각일까. 태윤은 말없이 눈물 젖은 뺨을 손등으로 닦아 주었다.
“태윤이 넌…? 넌 뭐로 나왔어?”
조금 진정이 된 건지 은준이 한숨을 작게 쉬며 물었다. 숨결이 달았다. 오메가가 아니라곤 했지만. 은준은 제게 있어 오메가만큼이나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것 같았다.
“너도 베타야?”
은준이 거듭 묻자 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둘 다 베타네?”
사실 은준의 형질이 무엇이든 간에 태윤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은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태윤은 가만히 은준에게 시선을 맞췄다. 갈색의 눈동자가 오롯이 저를 담고 있다. 눈물을 흘린 탓인지 맑은 눈을 한 채 뚫어질 듯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태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려 분홍빛의 입술에 짧게 입맞춤했다.
귓전에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태윤이 퍼뜩 고개를 젖혔다. 두 뺨은 물론이고 이마까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이건… 그러니까….”
“괜찮아.”
먼저 입을 맞췄으면서 당황한 태윤이 버벅거리자, 은준이 벗어나려는 허리를 꽉 잡아당겼다. 기습당한 것치고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반면 태윤은 차마 은준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했다. 그런 태윤에게 달라붙은 은준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나 뽀뽀 처음 해 봐….”
“…나도.”
뺨에 닿는 숨결이 지나치게 달아서 태윤은 잠시 숨을 멈췄다.
“생각보다 부드럽다….”
“…너도.”
그래도 짤막하게 대꾸는 했다. 은준은 태윤의 모습에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더니 푹, 태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저와 똑같이 쿵쿵대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말했다.
“태윤아, 나 사실, 너… 많이 좋아해. 꽤 됐어.”
“얼마나…?”
“중학교 올라오면서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
“…….”
은준의 답에 태윤은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제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다고 느꼈다. 태윤은 은준을 유치원 때 처음 만난 후로 느꼈던 감정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태윤이 넌?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나 좋아했어?”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은준에게 전할 필요는 없다. 이상한 자존심이었다.
“…나도 비슷해.”
“뭐야, 쌍방 짝사랑이었네!”
태윤의 답을 듣자마자 은준이 기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덕분인지 시끄럽게 울던 매미 소리가 잦아졌다. 태윤은 그제야 차분하게 제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어떤 게? 베타라서?”
“처음이 너라서.”
태윤의 고백에 은준이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은준이 쪽, 하고 태윤이 했던 것처럼 입술에 쪼는 입맞춤을 했다.
“그럼 우리… 처음은 항상 같이 하기로 약속해.”
은준의 말에 태윤은 무언가 가슴에 간지러운 느낌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은준도 그런 걸까. 태윤은 조심스럽게 은준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약속해.”
친구에서 연인으로 바뀐 눈동자를 바라보며 태윤이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