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아, 갑갑해.”
짜증 섞인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목을 칭칭 싸매고 있는 목도리와 몸에 딱 맞춘 코트를 손으로 몇 번 잡아당겼다. 그다지 더운 건 아니었지만 극심한 답답함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목도리를 빼고 코트 상단의 단추를 몇 개 풀어냈다. 그제야 살 만했다.
“아, 풀지 말라니까?”
옆에서 운전하고 있던 엄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중에 다시 매면 되잖아.”
“목도리 은준이 어머니가 준 거잖아.”
누가 그걸 모르나?
나는 흘깃 엄마를 쳐다봤다. 뭘 그렇게 대단한 자리라고, 평소 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루주를 바른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다.
“보자마자 딱, 우리 아들 예쁜 모습 보여 줘.”
“…….”
“엄마 말 들어, 레스토랑 곧 도착한다.”
정말이었다. 내비게이션엔 약속된 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하기 약 8분 전이었다. 어쩐지 긴장해서 손바닥에 땀이 찼다.
“아 진짜 갑갑해서 그래. …손에 들고 있을게 그냥.”
나는 결국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려 버렸다. 차창에 비친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제 딴에도 선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었다.
“저기 좀 봐, 예쁘게 장식했네.”
그때 엄마가 밝은 목소리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거리엔 사람들이 넘쳐나고 건물은 화려한 조명과 색색의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엄마가 가리킨 건 건물 외벽에 거대하게 놓인 트리였다. 물방울 모양의 장식과 트리 끝에 달린 금색의 거대한 별이 반짝였다.
“그러네….”
나는 한동안 그 별을 쳐다보면서 밝게 웃는 은준을 떠올렸다.
“다 왔어.”
어느 틈엔가 차는 레스토랑 주차장에 도착했다. 엄마는 능숙하게 주차를 한 뒤, 겉옷을 챙겨 입었다.
은준 부모님과의 저녁 식사 자리는 갑작스럽게 정해졌다. 둘 다 수능을 못 친 관계로, 은준이 부모님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나 보다. 그 대화에서 유학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은준의 반대로 흐지부지되었다.
결과적으로 함께 재수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충돌이 있었다.
“같이 학원도 다니면서 지내면 좋잖아요?”
유명한 재수학원을 같이 다니기로 하자마자 은준은 독립을 요구했다.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요.”
이 자리가 만들어진 실질적인 목적은 동거에 대한 의논이었다.
“뭐 해?”
차에서 내린 직후, 내가 목도리를 제대로 매지 못하고 있자 엄마는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엄마는 일단 풀어 헤친 코트 단추를 다시 끼워 넣었다. 그렇게 답답하면 목도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촌스럽게 코트의 깃을 세워 주기까지 했다.
“…….”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벌써 의견 충돌로 큰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몰라. 시간 맞춰서 오라고 했는데, 연락해 봐야지.”
연락을 받은 아빠는 다행히 크리스마스와 전날 휴가를 받았다. 아빠는 어제저녁 올라와 집에 잠깐 짐을 놔두곤 기국영의 집으로 가더니 그날 하룻밤을 묵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친한 이웃이기도 해서 엄마도 별다른 말은 없었던 모양이지만, 약속까지 빼먹을까 봐 내심 걱정하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레스토랑 입구에서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방으로 향했다. 처음 만나 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일 때문에 외국으로 자주 나가 계시는 은준의 부모님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면 이번 일이 꽤 중요한 문제라서 그럴지도….
똑, 똑.
지배인의 노크와 함께 문을 열자마자, 시야에 북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북적?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은준과 쏙 빼닮아 아름다운 은준의 부모님과 오늘도 너무나 예쁜 성은준, 그리고….
“다, 다들… 오셨네요? 시간 맞춰서….”
이상한 조화에 나보다 먼저 엄마가 입을 뗐다. 크게 당황한 나머지 더듬대며 말하면서 손목을 내려다봤다. 당연히 손목시계는 차고 있지 않았다.
“어서 와요, 태윤이 어머님. 이쪽으로 오시죠.”
자리에 일어선 은준의 부모님이 온화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엄마는 당황한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은준의 어머니는 그런 엄마를 옆자리에 앉혔다.
“짐은 이리 줘.”
엄마가 걱정했던 아빠도 미리 와 있었다. 무언가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아빠는 엄마의 코트를 받아 주었다.
“태윤아.”
엄마한테 인사를 건넨 은준도 내 손을 잡아당겨 정해진 자리에 앉혔다. 올 사람은 모두 다 있었다. 은준의 부모님과 은준, 엄마, 아빠, 나, 그리고….
“왔냐.”
“…….”
내 옆에는 기이하게도 기국영이 앉아 있었다.
***
식사는 최고였다. 디저트로 내준 민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앞의 코스 요리를 하나씩 떠올리며 곱씹을 정도였다. 은준도 맛있었는지 잘 먹지 않는 야채까지 다 먹었다.
“이건 너 먹어.”
벌써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 먹은 은준의 빈 그릇이 보이기에, 나뭇잎 모양으로 장식된 초콜릿을 은준의 그릇에 덜어 주었다.
“아니, 태윤이 먹어. 초콜릿 맛있어.”
“단 건 별론데.”
“별로 안 달아.”
“안 먹어도 돼.”
“한 입만 먹어 봐, 그럼.”
결국엔 숟가락에 담긴 초콜릿이 다가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려 그걸 받아먹었다. 입천장에 닿자마자 바스러질 듯 녹는 초콜릿이 진하게 느껴졌다.
“…달잖아.”
은준을 보며 중얼거리자 뭐가 재미있는지 눈이 반달로 접혔다. 초콜릿보다 더 단 웃음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희 그냥 같이 살아라.”
그때 툭 내뱉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퍼뜩 놀라 고개를 돌리자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이 모두 은준과 나를 보고 있었다. 그제야 지켜보고 있던 눈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괜히 집에서 농땡이 부리는 것보단 낫지. 은준이가 워낙 공부를 잘하니까 잘 가르쳐 줄 것 같은데…. 우리 국영이처럼 허튼짓도 안 할 것 같고요.”
“아, 나는 왜 걸고넘어져.”
기국영이 인상을 팍 쓰며 맞은편에 앉은 제 부모에게 시선을 던졌다. 얘기를 듣고 있던 어른들이 모두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기국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식사 자리엔 기국영뿐만이 아니라 기국영의 부모님도 함께였다. 두 분이 함께 옷가게를 하시는 분들이라서 일을 비우기 힘들었을 텐데, 이 자리를 위해서 큰맘 먹고 이틀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거기엔 아빠의 적극적인 추진이 있었다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아빠 말로는 기국영의 부모님도 알파의 아들을 두었기에, 이번 결정에 큰 도움을 얻을 거라는 거였다. 실제로 그게 먹혀들긴 했는지 은준의 부모님은 두 분의 이야기에 경청했다.
“허튼짓은 누가 됐든 다 해요.”
그때 엄마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국영이랑은 다르죠, 둘이 사귀는데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
흘깃, 엄마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SNS 사진을 보고 묵인할 때까지만 해도 찬성해 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알아서 더 그런 건지도 몰랐다.
“에이, 요즘 시대가….”
“시대도 시대 나름이죠.”
기국영의 아버지가 말을 채 뱉기도 전에 엄마는 까칠한 면모를 보였다.
평소엔 그렇게 친분이 두터운 관계인데, 엄마는 제삼자의 집안이 끼어든 것이 통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고 그저 아빠에게 불똥 같은 눈길을 보냈다. 누구보다 아빠의 의도를 알기 때문이다. 분명 격식 있는 자리가 불편하고 심심해서 그런 거겠지.
“거기다 알파고. 집 자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서….”
맞는 말이었다. 이제 은준과 내가 알파니, 집을 구하기엔 무척 힘들 것이다. 외국은 몰라도 우리나라는 아직 알파에 대한 편견이 사회 전체에 자리하고 있어서 더욱이 그랬다.
“집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은준의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곧 유려한 눈길이 은준에게 향했다. 나 또한 놀라서 옆자리에 앉은 은준을 돌아봤다.
“아…. 프러포즈하면서 말하려고 했는데….”
내내 얌전히 앉아 있던 은준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물었다. 프러포즈라는 다소 닭살스러운 멘트는 그렇다 치고, 집 걱정을 하지 말라니. 설마….
내 눈길을 알아챘는지 은준이 무언갈 다짐한 것처럼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조용히 속삭였다.
“너랑 같이 살 집. 내년 초에 완공되고, 인테리어 준비 중이야.”
“……!”
순간 턱이 저절로 벌어졌다. 뜨악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은준과 은준의 부모님을 뺀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윤이와 저, 같이 살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어머님.”
***
새삼 반했다. 은준이네 집 벽난로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 줬다. 장작을 태우는 불은 생각보다 크게 타올랐고, 불꽃은 춤을 추는 것같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한동안 나는 벽난로 앞에 앉아 불쏘시개로 몇 번 쑤셨다. 그 덕에 불똥이 과하게 튀자 은준이 다가와 문을 닫아 버렸다. 집 안에 나무 타는 냄새가 은근하게 풍겨 왔다.
“연기 많이 마시면 안 좋아.”
“그래.”
나는 은준의 말대로 얌전히 불쏘시개를 두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은준이 곧바로 옆으로 다가와 두꺼운 담요를 같이 덮었다.
“진짜 따뜻하다.”
담요 덕분인지 아니면 내게 딱 달라붙은 은준의 온기 때문인지 몸이 이불 속에 들어온 것처럼 훈훈했다.
“아, 이거 아버지가 뉴질랜드에서 사 오셨어. 양모인데 특수 코팅까지 작업했나 봐. 무겁기도 하고 부피가 커서 가져온다고 애먹었대.”
조잘대는 은준의 말을 들으며 장작불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온갖 상념이 떠오르다 가라앉았다. 금세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저녁을 배불리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생각보다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서 마음이 편해졌는지도.
레스토랑에서 은준의 폭탄 발언이 있고 난 뒤, 엄마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후에는 아빠가 주도권을 쥐고서 기국영의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결국엔 은준의 부모님마저 그 수에 넘어가서는 어른들끼리 할 얘기가 많다면서 우리를 집에 내버려 두고 가 버렸다.
“국영아, 너 어디 가지 말고 쟤들 옆에 꼭 있어라.”
기국영까지 두고 가면서 엄마는 신신당부했다. 확인 전화까지 하겠다고 하니 말 다 했다. 거기다 엄마는 나보다 은준을 더 걱정했다. 아마도 엄마의 머릿속엔 이미 포지션이 정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기국영은 절대 믿을 놈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국영은 알아서 꺼져 주겠대?”
“아니.”
불현듯 문밖으로 쫓겨난 기국영이 생각나 묻자 은준이 고개를 저었다. 기국영은 은준과 내가 모아 건넨 돈은 모자랐던 모양인지 대략 두 시간 뒤 다시 오겠다고 했다.
두 시간이라…. 꿈같은 크리스마스이브를 둘이서 보내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 녀석과 함께 있는 것보단 나았다.
“졸려?”
은준이 내 귓가에 대고 물었다. 어느샌가 나는 녀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있었다. 말이 없는 내게 은준은 따뜻해진 손으로 내 손을 문질렀다. 열 오른 손바닥이 기분 좋았다.
“더 만져도 돼?”
머리 위로 내 얼굴을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대답을 보냈다. 장작 타는 냄새 사이로 은준의 페로몬이 약하게 느껴졌다.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달콤한 냄새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 시간밖에 없는데, 하려고?”
정확히 말하자면 대략 한 시간 반이다. 그사이 기국영이 마음이 바뀌어 집에 올 수 있었고, 불시에 어른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었다.
“응…. 넌 자도 돼. 자고 있어.”
“그게 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준은 상관없다는 듯이 내 귀에 혀를 댔다. 귓바퀴가 뜨거운 입속으로 쑥 들어가고, 저번처럼 사탕 빨듯 빨아 댔다. 젖은 소리에 목덜미가 오싹했다.
그러는 동안 서로 깍지를 낀 손이 움찔움찔 떨렸다. 나는 장작불에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은준의 예쁜 손을 바라봤다.
“예쁘다.”
“응…?”
작게 중얼거리자 은준이 귀에서 입을 떼고 고개를 숙였다. 가까이 달라붙는 숨결이 지나치게 달았다. 잠에 취한 듯 몽롱한 감각이 배 안에서부터 솟아났다. 결국 은준처럼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페로몬을 물씬 풍겼다.
“너… 예쁘다고.”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뱉자마자 턱이 위로 끌어당겨졌다.
“음…!”
입술을 덮치듯 부딪치는 혀가 안쪽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틈새로 알파의 강렬한 페로몬이 느껴져 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제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오메가가 아니어서 그 향에 취해 발정하진 않았지만, 냄새로 상대방의 상태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으, 후읏….”
입가에 타액이 흘러내리고, 질척대는 소리가 커졌다. 쪽쪽거리는 혀가 입 안과 밖을 샅샅이 핥고 빨았다. 나는 그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키스에 응했다. 그렇게 얼마간 혼을 빼 놓을 듯한 키스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싶더니, 어느새 옷 안으로 들어온 손이 내 가슴을 더듬었다.
“푸, 후으…!”
가까스로 입술을 뗀 나는 가슴을 만지고 있는 손을 바라봤다.
“윽…. 서, 성은준…. 그만….”
가슴 돌기를 문지르는 손길이 거칠었다. 빳빳하게 선 유두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응… 태윤아, 그냥 자… 신경 쓰지 말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황당한 마음에 가슴께로 달라붙은 녀석의 머리를 밀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은준은 유두에 꼭 입을 담고서 민망한 소리를 내며 쭙쭙 빨았다. 순식간에 침으로 진탕이 된 가슴이 불빛에 반짝거렸다.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조금 돌리자 은준의 바지 앞섶이 불룩 솟은 게 보였다.
“읏, 네 것…. 터질 것 같은데….”
나는 손을 뻗어 은준의 바지를 끌어당겼다. 흥분에 못 이긴 은준이 가슴에 입술을 떼고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옷 벗어.”
짤막한 내 허락이 떨어지자 은준은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나 또한 은준이 옷을 벗는 속도에 맞췄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자 서로의 몸이 흥분으로 빨개져 있었다. 나는 은준의 군살 없는 배와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더듬다가 허리를 들었다.
“흐읏….”
이미 쿠퍼액으로 엉망이 된 서로의 성기가 부딪쳤다. 나는 손으로 은준의 것과 내 것을 함께 쥐어 흔들었다. 아래가 미끌미끌하고 뜨거웠다.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은준이 허리를 거칠게 흔들자, 나 또한 달게 받아 주었다.
“흣, 윽! 흐….”
끼익, 하고 등에 기댄 가죽 소파가 밀려나는 소리가 들렸다. 땀에 젖은 무릎 아래론 담요가 깔렸다.
“태윤아, 아, 태윤아….”
지나친 흥분을 못 이긴 은준이 내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선단이 압박당하자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았다.
“윽, 잠깐, 기다려….”
나는 가까스로 그 손짓을 막으며 손을 뗐다. 뜨겁게 달구던 감각이 사라지자 은준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시간… 없으니까.”
욕망에 부푼 녀석을 그냥 두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나는 재빨리 뒤돌았다. 소파에 팔을 대고 은준의 쪽으로 엉덩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은준이 탁한 소리를 내며 눈빛이 변했다. 날 번들거리는 눈으로 정확히 쏘아보자 시선을 끝까지 마주칠 수가 없었다. 결국 고개를 돌려 버렸다. 가슴 한쪽이 지나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안 돼, 준비 잘해야지….”
곧장 쳐들어올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엉덩이 사이에서 습한 소리가 들리더니 허리가 잡혔다. 혀가 구멍 안으로 미끄덩하게 들어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흣, 응…!”
신음이 절로 나오고 입이 자꾸만 벌어졌다. 나는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엉덩이를 떨었다. 은준은 혀를 뾰족하게 세워 내벽 안을 휘저었다. 꿀쩍대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리자 수치심에 무릎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은준이 내가 도망치기도 전에 더욱 세게 허리를 당겼다. 점막을 뚫고 쑤욱 들어오는 혀가 깊숙했다. 선연한 느낌이 아찔해 허리가 떨렸다.
“아, 아으…! 그, 그마, 아! 으, 읏….”
가죽 소파를 틀어잡은 손가락이 하얗게 질리고 자꾸 목구멍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것 같지 않은 목소리에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흐음, 맛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은준이 또 미친 소리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도 아쉽다는 듯 은준은 달아오른 엉덩이 양쪽에 쪽쪽 입맞춤했다. 무어라 말할 틈도 없었다. 나는 그저 다급히 헐떡대며 숨 고르기 바빴다.
“더….”
묽은 액을 터트리는 내 성기를 잡아 상태를 살피던 은준이 제 걸 내 허벅지에 탁탁, 쳐 댔다. 그건 또 어디서 배운 건가 싶었다.
“하아… 태윤아….”
허리를 숙인 은준이 엉덩이골 사이로 뭉툭한 것을 문질렀다. 예민한 점막에 선단이 몇 번 스쳐 지나가자 간지러움에 몸을 떨었다.
“…느껴져?”
은준의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오싹한 소름이 등허리로 피어나고 허벅지가 후들후들 떨렸다. 얼른 삽입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녀석이 짜증 났다. 초조함에 손을 뻗으려는 찰나였다.
“흣…!”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은준이 녹진해진 주름을 벌리며 성기를 삽입했다. 나는 순간 숨을 참고 동작을 멈췄다. 내장 안으로 딱딱하고 긴 기둥이 쉼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점막을 쑤시고 들어오는 살갗이 진저리칠 정도로 선명해서 나는 그 감각에만 집중했다.
“읏, 허윽…!”
귀두 끝이 더는 들어올 수 없는 곳까지 닿자 나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가슴이 울렁대고 배 안이 더부룩했다. 더듬더듬 나는 손으로 아랫배를 매만졌다. 기분 탓인지 모르나 정말로 윤곽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좋아, 태윤아…. 너무 좋아….”
완전히 성기를 삽입한 은준은 등 뒤에서 홀로 난리법석이었다. 얼굴을 보고 싶어서 고개를 꺾으니 기다렸다는 듯 키스했다. 한참을 물고 빨던 은준은 낮은 울음을 내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벅! 하고 땀에 젖은 살이 치대는 소리가 울렸다. 이를 시작으로 퍽, 퍽, 거리는 피스톤질은 더욱 거세졌다.
“흣! 윽, 아으, 읏, 흑…!”
시간이 지날수록 거의 찧어 내리는 은준의 허리짓이 고조를 더 했다. 체액이 이리저리 튀고 아래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뜨거웠다. 은준이 성기 뿌리까지 무식하게 찔러 넣었다가 예민한 부위를 스칠 때면 나도 모르게 다리를 더욱 벌리며 신음했다. 녀석이 내장 깊숙이 찔러 올릴 때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것 같았다.
“흐읏, 하, 태윤, 아…! 하, 미치겠어. 냄새 너무 좋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
정말 서로에게서 강하게 느껴지는 페로몬 때문일까. 은준은 지나친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허리를 흔들었다. 그때마다 달콤한 냄새가 내 의식을 완전히 붙잡았다. 나는 홀린 듯 스스로 허리를 흔들고 엉덩이를 뒤로 붙였다.
“흐아, 잠, 까아, 앗… 후, 잠, 아응…!”
부딪쳤다가 떨어지는 접합부의 적나라한 소리가 내 신음과 함께 어지럽게 울렸다.
“다 먹고 싶어, 흣! 태윤이, 다 먹어… 흐, 먹어 치워 버리고 싶어!”
“큿, 미, 미친, 놈아…! 흐읏, 으으윽…!”
귀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아래는 지나치게 흥분한 성기가 배를 퉁퉁 때렸다. 지나친 흥분감에 발끝이 저렸다. 온몸에 땀이 솟았다. 나는 아랫배보다 더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에 몸에 힘을 주었다.
“윽…!”
“이, 이상, 잇…! 힛, 흐읏…!”
눈앞이 번쩍했다. 절정에 치달은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은준도 그걸 느꼈는지 잔뜩 힘을 준 아래에서 꼼짝없이 갇힌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태윤아, 괜찮아…?”
은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 왔다. 나는 차마 아래는 보지 못하고 배 쪽을 더듬더듬 만졌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떨렸다.
“서, 성은준… 흣, 모, 몸이… 이…상, 이상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말을 뱉으면 뱉을수록 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변화를 눈치챈 은준이 슬쩍 아래를 보더니 놀란 눈을 했다.
“노팅…인 것 같은데?”
“뭐,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몸에 힘을 줬다. 부르르, 순간 성기가 떨리고 울컥대며 희미한 것을 쏟아 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은준이 노팅했을 때 봤던 것과 똑같이 성기 뿌리가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아, 아니… 아니….”
주르륵, 부정의 말과 함께 물처럼 흘러나오는 정액이 담요를 적시기 시작했다. 마치 오줌처럼 흘러나오는 광경이 믿을 수가 없었다.
“흐악…!”
그걸 은준은 큰 손으로 선단을 잡았다. 한번 슥 문지르는 손길에 버티고 있던 허리에 힘이 빠졌다. 그대로 소파에 얼굴을 처박은 나는 손만 힘없이 뒤로 뻗었다.
“마, 만지지… 크윽! 만지… 히, 힉…! 나… 왓…. 흑, 싫…!”
결국 우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서러움에 겨워 눈물을 줄줄 흘리자 은준은 내 어깨에 입을 맞추며 달래는 소리를 냈다.
“예쁘다, 태윤이 노팅한 성기 빨고 싶은데, 또 빼기는 싫고… 아쉽다.”
“씹…! 흐으, 그…만해….”
장난처럼 말하는 녀석의 말에 기가 막혔지만 꼼짝도 할 수 없어서 그저 노려보기만 했다. 그랬더니 은준이 입꼬리를 한껏 끌어 올리며 강한 페로몬을 풍겼다.
“흐아, 아아…!”
눈앞이 흐릿했다. 뇌를 자극하는 향에 몸이 마비된 것처럼 사지가 뻣뻣해졌다. 그 틈을 타 은준은 성기를 천천히 빼었다가 푹 찔러 넣었다. 귀두가 내벽 안쪽을 튕기듯 누르자 더는 이성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퍽, 퍽, 퍽, 연달아 내리찧는 허리짓에 젖은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담요 다 젖었어….”
“…….”
귓전으로 희미하게 들리는 은준의 목소리에 나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축축하게 젖은 몸이 무거웠다. 나는 힘이 축 빠진 상태로 손에 닿는 담요를 더듬었다. 은준의 말대로 체액과 정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세탁한다고 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그때 은준이 좋은 생각이 났는지 허리를 들었다.
“내 방으로 가.”
“지, 지금…?”
깜짝 놀란 내 허리를 잡은 은준이 힘을 주어 날 들어 올렸다. 불시에 일어난 녀석은 무게감에 잠시 비틀거렸다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덕에 풀려 있던 내벽이 진동하며 은준의 것을 잔뜩 꽉 조였다.
“어윽…! 태, 태윤아, 그러면, 나도… 나도 노팅할 것… 같은데.”
“뭐, 아니, 일단… 놔, 헉…!”
“…미안.”
사과가 떨어지기 무섭게 내벽 안쪽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 섬뜩한 감각에 놀라 엉덩이에 힘을 빼자 아랫배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또 노팅이 시작됐다.
“지금, 아닛… 안, 하…! 아악… 하읏!”
압박감 때문인지 다 뽑아낸 건 줄 알았던 정액이 찌익, 튀어나와 얼굴까지 튀었다. 그리고 내장 깊숙한 곳에서 액체가 차오르는 느낌이 나더니, 다시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메리 크리스마스.”
“…….”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은준의 얼굴과 산뜻한 아침 인사였다. 녀석은 웃는 낯을 한 채 천천히 내 어깨를 손으로 문질렀다.
“…아침이야?”
쉰 목소리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왔다. 고개를 돌리니 거실의 커튼 사이로 어슴푸레한 빛이 비쳐 동트기 바로 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느 틈에 저를 침실에서 다시 여기로 데리고 왔는지, 거실은 다소 멀끔했다.
흠뻑 젖은 담요는 보이지 않고, 신경 쓰이던 부근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거기다 나는 은준의 체향이 느껴지는 잠옷까지 입혀져 있었다. 홀로 고생했을 녀석이 눈에 선해서 나는 가만히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목말라.”
“응, 안 그래도 우유 데웠어.”
내 말에 은준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어젯밤 따뜻한 훈기가 느껴지던 벽난로가 보였다. 벽난로에는 검은 재만 남아 있었다. 마치 지난밤의 일들이 꿈속의 일인 것같이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기국영은?”
나는 은준에게 건네받은 우유를 반쯤 마신 뒤 물었다. 뒤늦게 기국영의 존재가 떠오르자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안 왔어, 혹시나 해서 연락하니까… 이렇게 답하네.”
섹스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