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진태윤이 분식집에서 나간 직후, 기국영은 대차게 식사를 했다. 식당 안에선 후루룩, 라볶이의 빨간 양념이 뒤섞인 면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뜨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걸 그대로 입 안으로 쑤셔 넣다가, 매콤한 맛이 밴 떡은 젓가락으로 꼬치처럼 푹푹 찍어 한 번에 털어 넣었다. 푹 익은 떡을 몇 번 씹고 말더니 다시금 면발에 집중했다.
“아.”
그러다 이제야 생각이 난 듯, 기국영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맞은편에 앉은 성은준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
“…….”
성은준은 그저 말없이 가방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의심스러워 보이는 두툼한 약 봉지를 보는 눈동자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거 찹쌀가루야.”
반응이 영 심심찮았는지 기국영이 툭 내뱉으며 치즈 알밥을 푹푹 퍼먹었다.
“그래?”
그래도 조금은 반응이 있었다.
“너 근데 냄새는 어떻게 지웠냐?”
“생각보다 병원에서 준 약이 효과가 있더라고. 이틀 정도 먹으니까 사라졌어.”
“…….”
은준의 산뜻한 대답에 기국영은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러트 기간이 너무 오래간다고 했더니, 이 자식 그럼 일부러 안 먹었던 건가?
단순히 학교에 나오기 싫어서 그랬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성은준은 얼굴만으론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꼭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건가. 뭐, 나쁜 놈 되는 거야 익숙한데. 진태윤이 나를 완전….”
“맛있는 거 먹었잖아.”
은준이 기국영 말을 잘라 버리고 먹고 있던 것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진태윤을 넘어선 건방진 모습에 기가 막혔지만, 참기로 했다. 어쨌든 제가 한 짓은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단지 얼른 이 문제 커플의 눈 밖에 나고 싶었다.
“아, 배부르네. 잘 먹었다.”
기국영은 라볶이와 치즈 알밥을 절반가량 남긴 채로 숟가락을 내렸다. 제 역할은 이걸로 끝난 거다.
덜컹.
볼일이 끝나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성은준이 팔을 잡아당겼다.
“다 먹어.”
그러곤 날카로운 눈빛으로 종용했다.
“태윤이가 사 줬잖아. 다 먹으라고.”
“…….”
기국영이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자, 성은준은 또 협박할 거리를 언급했다.
“사진.”
“아… 진짜, 쌍으로 엿 먹이네….”
기국영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태껏 녀석들을 카메라에 찍고, SNS에 올려 버린 장본인인 탓이다.
사진을 인화해 비싼 값에 팔기도 했다. 어찌나 둘이서 붙어선 물고 빠는지 등굣길에 숨어 찍기만 해도 수십 장은 나왔다. 녀석들의 외모가 바람직하니 그만큼 들어오는 돈도 쏠쏠했다. 일부러 찍어 달라고 먼저 연락이 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전부터 말했지만, 그거 나만 찍은 거 아니다.”
실제로 저만 사진을 찍는 건 아니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 많았다. 특히나 태윤이 협박의 용도로 쓴 일전의 사건은 자신이 찍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네가 안 찍었다는 말은 아니지.”
하지만 그걸로 정상참작해 줄 수 없다는 듯 은준이 냉정하게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국영은 뻔뻔한 낯짝을 했다.
“너 알파 되고 귀여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너한테 귀여울 필요도 없지.”
“…….”
모두 다 맞는 말이었다. 기국영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쳤다.
“너 참 독한 새끼다.”
결국엔 할 말이 없어서 말이 아무렇게나 나갔다.
“차라리 진태윤을 오메가로 만들지 그래?”
알파를 베타로 만드는 것처럼 베타를 오메가로 만드는 방법 따위 없었지만, 기국영은 재미 삼아 물어봤다. 결국엔 모든 알파가 그렇듯 제 소유물에 대한 집착은 거기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성은준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한 얼굴을 하며 기국영을 노려봤다.
“태윤이 몸엔 털끝 하나 손 못 대. 그게 뭐가 됐든 안 돼. 절대.”
말끝마다 힘을 준 음산한 목소리는 마치 경고 메시지 같았다.
“아, 그러셔.”
기국영은 쭈뼛 머리털이 솟는 것을 가라앉히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여기서 성은준을 더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눈치를 알았는지 성은준도 입을 다물었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근데 쟨 어떡할 거야?”
“뭐?”
묻는 말에 기국영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창밖으로 대놓고 어슬렁거리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녀석은 아예 대놓고 스토킹을 했다.
“아, 또 왔네….”
지겹지도 않은가. 기국영은 학교에서도 보는 변은심이 왜 자꾸 저를 따라다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잘해 봐.”
“뭐?”
그때 성은준이 답지 않은 말로 응원했다. 이번엔 진짜 어이가 없어서 별로 대꾸도 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아주 많이 피곤해졌다.
“난 멍청한 놈은 싫어.”
“그럼?”
“내 취향은 좀 더….”
기국영이 말을 하다가 말자 성은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아마 진태윤으로 오해를 하고 단단히 경계할 작정일 것이다.
“뭐, 결국엔 다 멍청한 놈들이지. 아, 외롭네.”
그리 말한 기국영은 숟가락을 들어 남은 음식을 몽땅 해치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