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8)

4.

은준의 러트가 끝났다.

마치 거대한 폭풍우가 지나간 것처럼 녀석은 아주 멀끔한 상태로 돌아왔다. 반면 태윤은 초토화된 상태로 거의 반나절이 지나도록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몸살이 난 것처럼 계속 앓았다. 

그렇다고 마냥 은준을 탓할 수도 없었다. 겁도 없이 러트 기간 중인 알파에게 들이댔으니까 말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은준이 말하는 ‘못 견뎌’가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태윤은 그날 저녁까지 은준에게 극진한 간호를 받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서 밥 먹어.”

집까지 데려다준 은준에게 태윤이 힘없이 말했다. 몸이 아파 희멀건 죽밖에 먹지 못한 탓이다. 그건 은준도 마찬가지였다. 제 몸 상태보다 연인이 더 걱정이 된 태윤은 은준의 팔을 매만졌다.

“응.”

“…….”

곧장 대답하는 얼굴이 지나치게 화사하다. 순간 태윤은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싶었다. 파리한 제 안색과 달리 은준은 발그레한 뺨으로도 모자라 아예 분홍빛 입술을 미끄러트리며 웃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녀석은 밥 한 끼 먹지 않았으면서 배가 부른 것처럼 포만감을 숨기지 않았다.

“내일 같이 병원 가.”

태윤이 은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저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내일? 학교는?”

은준이 꽉 잡힌 손을 쳐다보며 물었다. 태윤은 그 모습이 이상하게 불안해졌다. 정말 러트가 끝난 것인지 알 수 없어서다. 페로몬을 인지하지 못하는 베타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전문가의 확실한 대답이 필요했다.

“알았어.”

그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은준이 맞잡은 손에 깍지를 끼고 힘주어 답했다.

“고마워.”

서로를 향한 말이었다.

***

D-1.

수능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오전, 교실엔 아이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담임이 나눠 준 출제 예상 문제 풀이에 한창이었다.

“진태윤.”

그때 변은심이 느닷없이 태윤을 불렀다. 태윤은 모의고사 문제집을 풀다 말고 옆을 봤다.

“알친법은 왜 탈퇴했어?”

“…….”

소곤대며 변은심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태윤은 슬쩍 주위를 돌아봤다. 다행히 은준은 담임의 요구로 다시 자기 반으로 돌아가 뒷자리는 이미 비어 있는 상태였다.

“뭐, 도움은 많이 됐는데….”

태윤은 최대한 시끄럽지 않게 하려고 목소리를 죽였다.

“워낙 개인사가 많다 보니 직접 경험한 거랑 다른 것도 있더라. 알파라고 모두 다 똑같은 건 아닌데…. 아무튼 그래서 괜한 편견은 가지지 않으려고 탈퇴했어.”

재빠르게 말을 끝맺은 태윤은 다시 주위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반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뜨끔했던 태윤이 손을 흔들며 대화 끝났다고 신호했다.

“그건 나도 알아…. 알고 있어….”

그런데 변은심이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짧게 끝낼 얘기가 아닌 것 같아 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서 얘기할까.”

모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기인 터라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안 그래도 은준과 저의 일로 반 아이들에게 여러 차례 피해를 입혀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덜컹.

그때 변은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느닷없는 소란에 모두의 눈길이 변은심에게 쏠렸다.

“야, 갑자기….”

태윤이 놀라 교실 밖으로 이끌려고 하자 변은심이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다르더라. 알파라고 다 똑같진 않더라고.”

제법 큰 소리로 말한 변은심은 태윤을 보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붉어진 눈동자로 기국영을 봤다가 곧장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 상황에서도 기국영은 여전히 자리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저 자식을 그냥….’

느긋한 놈의 꼴을 보니 화가 뻗쳤다. 기국영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반에서 더 소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결국 태윤도 교실 밖을 나섰다. 그냥 이대로 변은심을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디 간 거야…. 밖으로 나간 건 아닌 것 같은데… 윽.”

한산한 복도를 걸으며 변은심을 찾는데, 갑작스러운 통증과 동시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태윤은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계단 아래에 앉아 벽에 머리를 기댔다. 기운이 빠져 어깨가 축 처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심하진 않았지만 최근 들어 두통과 어지럼증이 잦았다.

집 근처 병원에선 별다른 진단을 내리지 못해 수능이 끝나면 큰 병원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아…. 진짜 왜 이러지….”

그러고 보면 오늘따라 속이 더부룩하기까지 했다. 입맛이 없어서 점심을 간단하게 때운 탓일까. 태윤은 흐릿한 눈을 깜빡이며 손으로 배를 문질렀다. 문득 웃음이 샜다. 이럴 때 누가 누굴 걱정하는가 싶었다.

어디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