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태윤은 초조한 기분으로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어제 일로 한숨도 자지 못해 퀭한 눈을 하고선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한참 문고리를 잡고 고민하던 사이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울리며 문이 벌컥 열렸다.
“……!”
놀란 태윤이 잔뜩 얼어붙은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학교 가니.”
밤새워 일하고 퇴근한 엄마가 태윤만큼이나 퀭한 눈빛으로 들어섰다. 고된 노동이었는지 알은척만 하고 곧바로 침실로 향했다. 태윤은 짧게 한숨을 쉬고 집을 나섰다.
다행인지는 모르나 집 주변엔 은준이 없었다. 핸드폰도 여전히 조용했다. 항상 저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모닝 톡을 해 주던 녀석이었는데, 되지도 않는 주접을 떨던 메시지가 지금은 그립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연락을 마냥 기다리려던 건 아니다. 아픈 애를 그냥 두고 무작정 도망쳤을 때, 자신이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다시 되돌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뺨 위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도 그제야 알아차렸다.
태윤은 멍하니 학교를 향하는 동안 수십 번도 넘게 은준에게 먼저 연락을 걸까, 싶다가도 절 책망하는 목소리를 들을까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다친 상처는 괜찮을지, 적잖은 충격을 받은 건 아닐지 걱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은준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
꼭 오늘은 조퇴하더라도 일찍 은준의 집으로….
드르륵.
“태윤아.”
교실 문을 열자마자 뒷자리에 앉아 있는 은준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환히 빛나는 얼굴로 제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꿈인가? 아니면 너무 보고 싶어서 헛것을 보는 걸까.
태윤은 그대로 굳어선 눈만 껌뻑거렸다.
“왜 그래? 태윤아, 이리 와서 앉아.”
은준이 제 앞자리를 붕대를 감은 손으로 두드렸다. 태윤의 자리였다. 옆에는 변은심이 웅크리듯 앉아 있는 바뀐 자리.
태윤은 입을 어물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왜… 여기, 아, 너 러트…!”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태윤이 오메가인 변은심을 바라봤다. 은준이 러트 중이니 영향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끝났어.”
“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안다는 듯 은준이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러트 끝났어.”
자기야, 말끝에 태윤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냈다.
“어떻게….”
하지만 태윤은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그토록 오랜 시간 러트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하루아침에 끝나다니…. 더군다나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은준은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고 그렇게 됐다면서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못 믿는 눈치네…. 변은심.”
은준은 시무룩한 표정을 과장하며 웅크려 앉아 있는 변은심의 의자를 발로 툭툭 쳤다. 순간 깜짝 놀란 듯 변은심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무언의 재촉에 그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태윤을 향해 돌아본 변은심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채였다. 꼭 얼어붙어 있는 것처럼 앉아선 아주 미약한 숨만 쉬는 것 같았다.
“어… 어, 냄새 안 나.”
“났으면 이렇게 앉아 있지도 못했어. 태윤아, 정말 끝났어.”
변은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은준이 태윤의 의자를 끌어냈다. 앉을 수 있게 자리까지 내어 주고, 태윤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도 손수 빼 책상 옆에 걸었다.
“부모님도 알고 학교 측에서도 합의된 사항이야. 반을 옮긴 건, 그동안 수업을 너무 오래 비운 것 같아서 담임 선생님께 부탁한 거야. 흔쾌히 승낙하더라. 워낙 1반이 예민한 애들이 많아서 알파인 내가 있으면 곤란하던 참이라 하고. 나도 태윤이 옆이면 얌전히 있겠다고 했어.”
‘얌전히’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한 은준은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태윤에게 다가와 삐뚤어진 넥타이를 똑바로 고쳐 주었다.
“어젠 잘 들어갔어?”
“…….”
귓가에 살포시 내려앉는 질문이었다. 태윤은 어제 일이 떠올라 죄책감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미안한 마음이 더 컸는데, 이 얼굴을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 있는 것만 같은 두려움은 떨쳐 내기가 힘들었다.
러트 끝난 거 확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