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183/187)

로마 디펜스 - 5

콘스탄티우스의 항복으로 마리우스와 그가 이끄는 게르마니아 군은 플로렌스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점령할 수 있었다.

본래 마리우스의 계획대로였다면, 스틸리코를 지원해주러 온 척 콘스탄티우스를 속이고 플로렌스로 입성해서 내부를 장악할 생각이었는데, 그의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음···. 생각보다 일이 훨씬 잘 풀려버렸는데.”

“그럼 좋은 게 아닙니까?”

“좋지, 좋은 일이지···. 그런데 너무 잘 풀려버려서 지금 위치가 모호해졌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마리우스는 지도를 펼치고서는 로마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면서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강행군으로 달려도 열흘은 걸릴 텐데···.”

“급하게 가실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알라리크와 장인어른께서 한판 붙는다는데, 최대한 빨리 가야 큰 손해 없이 뒤를 칠 수 있지 않겠나.”

“아···. 그거였군요.”

마리우스는 하루라도 빨리 이탈리아의 일을 정리하고 게르마니아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갈리아를 한번 눌러놓기는 했지만, 행정체계를 인수한다거나 속주민의 민심을 얻는다거나 하는 행동 없이 총독들을 처리하고서는 곧바로 이탈리아로 내려온 것이라 그랬다.

지금 해놓은 것은 임시방편이었고 하루빨리 게르마니아로 돌아가서 벌여놓은 일을 정리해야 했다.

“그···. 전하? 제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음···? 콘스탄티우스 자네가?”

마리우스는 영 떨떠름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의견이나 들어보자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며칠 전에 스틸리코 장군께서 플로렌스에서 주둔 중인 갈리아 군단과 일주일 내로 로마로 내려오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 여기서 로마까지 아무리 빨라도 열흘 거리인데,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짐을 최소화하고 급속행군을 유지한다면 일주일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짐을 최소화한다고···?”

그 뒤에 콘스탄티우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식량은 육포와 훈제청어로 대신하고, 텐트를 가져가는 대신에 모포 한 장으로 야외에서 노숙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계산입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마리우스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서 콘스탄티우스를 갈구기 시작했다.

“먹는 건 둘째치고, 밤이슬을 맞으면서 모포 한 장에 의지해서 밤을 보낸다고.? 야영지도 안 만들고 말이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네 말대로 했다가는 행군 중에 절반이 뒤처지고 나머지 절반은 병으로 콜록거리면서 낙오하겠지! 그러면 난 병사도 없이 알라리크와 장인어른을 상대해야 하고 말이야!”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하신 게···.”

콘스탄티우스의 반론에 마리우스가 다시금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비약이라니?! 예전에야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 내 휘하에 있는 병사 중에서 몇이나 그런 강행군을 견딜 것 같나? 게르마니아 병사들도 대부분 나가떨어질 게 분명해!”

“그, 그렇습니까···.”

마리우스의 반응에 콘스탄티우스가 깨갱 하면서 뒤로 물러나 버리자 마리우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소리를 지른 점에 대해서는 사과하겠네, 갑자기 내가 너무 흥분해버렸어.”

“아닙니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내가 군 생활을 스무 살쯤에 사병으로 시작했다네.”

“알고 있습니다.”

“머리에 똥만 가득 찬 백인 대장과 지금 자기가 무슨 명령을 내리는 것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멍청한 대대장 밑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

마리우스는 이제는 제법 오래전의 일이 되어버린 판노니아의 일과 현대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기에 병사들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는 대충 알 수 있어. 지금까지 힘들게 이탈리아까지 왔는데, 여기서 급속행군으로 로마까지 가라고 하면 몇이나 남아있겠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물론 자네 말처럼 병사들을 채찍질할 필요가 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우선은 여기까지 오면서 얻은 피로를 해결하고 천천히 로마로 내려간다. 그게 내 결론이다.”

마리우스의 말에 데키무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기병대를 준비시켜 둘까요?”

“음···. 당장 움직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말을 여러 번 갈아탄 덕분에 다들 쌩쌩한 편입니다.”

“그럼 당장 준비시켜.”

마리우스의 명령에 데키무스가 밖으로 나가버리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콘스탄티우스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전하, 조금 전에는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피로를 푸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기병대를 준비하라니요?”

“조금 전에 병사들을 채찍질할 필요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이 바로 그때일세. 자네와 코실리아누스는 내가 떠나고 정확히 삼일 뒤에 본대를 이끌고서 내려오게.”

“예?!”

당황하는 콘스탄티우스에게 마리우스는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

“각하, 저 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못 믿지. 당장에 적이 쳐들어온다고 냅다 두 손 들고 항복하는 놈들인데 어떻게 믿겠나.”

“그런데 병사들을 맡기시는 겁니까?”

“최소한 내가 놈들을 믿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보여주고 난 다음에는요?”

“그다음에는 서로 물어뜯으면서 허튼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야지. 안 그래?”

마리우스의 말에 데키무스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평소에 입에 달고 살던 그거군요.”

“찢어놓고 관리해라.”

“예, 그거 말입니다.”

“이야···. 데키무스도 눈치가 제법 늘 긴했는데···. 아직 따라오려면 멀었군.”

“예? 그게 무슨···.”

“한 절반 정도만 정답이야.”

“예?”

마리우스는 말없이 웃으면서 말 배를 걷어찼다.

그러자 놀란 말이 속도를 올렸고, 그 뒤를 따르던 기병대가 똥 씹은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그···. 갈리아 군단을 합쳐야 한다고 몇 번이나 설명해 드렸는데, 왜 아직도 병사들이 그대로입니까?”

“내 휘하에 있는 군단은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쓸데없는 일 벌이지 마시지요.”

“후우···. 이건 마리우스 전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입니다. 이해 못 하셨습니까?”

“우연히도 마리우스 각하께서는 군단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명령도 내리셨습니다.”

마리우스의 생각대로 그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콘스탄티우스와 코실리아누스 간에는 사소한 의견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굉장히 단순했다.

마리우스가 둘에게 서로 다른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코실리아누스에는 콘스탄티우스의 휘하에 있는 갈리아 군단을 재편해서 그의 갈리아 방위군에 편입하라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했고 콘스탄티우스에게는 각 군단의 자율성을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각자의 명령은 별문제가 없었지만, 둘이 합쳐지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명령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점잖게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던 둘도 계속해서 대화가 평행선을 걷기만 하자 감정이 격해졌다.

“당장 군단을 내놓던지, 아니면 그 잘난 낯짝이 제대로 찌그러질지 결정하쇼!”

“당신이 뭐라고 지껄이든 간에 내 군단은 못 넘겨주고 이건 다른 군단도 마찬가지일세.”

“지금 말 다 했나?”

“다했다면 어떻게 할 거지.”

둘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져 갈 때쯤.

게르마니아에 남아있던 아에티우스가 둘의 사이를 중재하면서 나섰다.

“두 분 다 적당히 하시지요.”

“넌 뭐야!”

“자네는 또 누군가.”

“가우덴티우스의 아들이자, 이번 원정에서 마리우스 전하를 대신해서 임시로 게르마니아 군을 통솔하게 된 아에티우스라고 합니다.”

사병으로 입대한 아에티우스는 어린 나이임에도 능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뒷짐 지고 지켜보던 마리우스는 이번 이탈리아 원정에 아에티우스를 데려왔다.

그리고는 로마로 떠나기 전날 조용히 아에티우스를 불러서 한가지 명령을 내렸다.

******

“아에티우스.”

“예, 전하.”

“너도 이제야 군인티가 좀 나는구나···. 그래, 군인을 그만둘 생각은 아직도 없고?”

“저는 평생 군인으로 살 겁니다.”

“쯧쯧···. 고집하고는···. 그래, 그렇다면 두 번 다 시는 묻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마리우스는 목이 탔는지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켜고서는 아에티우스에게 말했다.

“아에티우스,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맡겨만 주십시오!”

“너도 잘 알겠지만, 군인이라는 게 잘 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정치에도 신경을 써야 해.”

“알겠습니다!”

“내가 로마로 떠나고 나면은 게르마니아의 병사들은 네가 지휘하도록 해라.”

“예? 제, 제가 말입니까?”

마리우스의 갑작스러운 말에 아에티우스가 당황하면서 말했다.

“저, 전하 저는 아직 누군가를 이끌어본 경험도 없는 일개 병사일 뿐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그 많은 병사를···.”

“아에티우스.”

“예, 전하.”

“너는 네 생각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미리 콘스탄티우스와 코실리아누스를 흔들어 놓았으니, 너는 이 사이를 잘 파고들어서 부대의 통제권을 가져오면 된다.”

“통제권을 가져오다니요···?”

“그건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

그리고 지금.

콘스탄티우스와 코실리아누스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에티우스의 모습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두 갈리아 군단 간의 알력다툼에 게르마니아 군이 난입한 것이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하께서는 다툼이 있어도 가만히 지켜보라고만 하셨지만,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더군요.”

“그게 무슨···.”

“간단합니다. 현 시간부로 모든 부대의 통제권은 전하의 대리자인 제가 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에티우스의 말에 콘스탄티우스와 코실리아누스가 동시에 반발하면서 소리쳤다.

“그게 무슨···.”

“전하께서 그런 명령을 내렸을 리가 없습니다! 전하의 명령장을 내놓으시오!”

“명령장이요? 보여드려야지요.”

아에티우스가 신호를 보내니 판금 갑옷으로 무장한 돌격대 병사들이 우르르 들어와서는 콘스탄티우스와 코실리아누스의 목에 무기를 들이밀었다.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이, 이게 무슨···.”

“명령서를 보여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분들은 게르마니아에서 돌격대라고 불리는 마리우스 전하의 직속 부대들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명령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에티우스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돌격대 병사들이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자신들의 지휘관이 잡혀가는 모습에 병사들이 동요했지만, 아에티우스는 혼란에 빠진 병사들을 모아놓고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저들은 갈리아 군을 올리브리우스에게 팔아치우려고 한 자들이다. 콘스탄티우스는 본래부터 올리브리우스가 스틸리코 장군의 휘하에 심어놓은 첩자였다!”

“처, 첩자?”

“장군께서 올리브리우스의 부하였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선언을 한 아에티우스는 한 장의 서류를 병사들 앞에 보여주면서 말했다.

“여기, 이 안에 올리브리우스와 내통한 병사들의 목록이 있다.”

“저, 저렇게나 많이 있다고?”

“이런 나쁜 놈들을 보았나!”

“배신자들을 죽여라!”

병사들은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저마다 소리를 질러댔으나, 아에티우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그 서류를 찢어버렸다.

그러자 한창 소리를 지르던 병사들이 당황하면서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에티우스는 서류를 갈가리 찢어버렸고 다 찢어버린 뒤에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없다. 이전까지 너희들이 누구 밑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신경 쓰지 않겠다. 앞으로는 내 밑에서 마리우스 전하를 위해 싸우기만 하면 된다 알겠나?”

아에티우스는 대답도 듣지 않고 멍하니 서 있는 병사들을 뒤로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부관이 물었다.

“올리브리우스와 내통한 이들을 내버려 둬도 되겠습니까? 자칫 잘못했다가는···.”

“없어.”

“예?”

아에티우스는 덤덤히 말했다.

“저거 빈 종이야.”

그렇게 아에티우스는 반나절 만에 저마다 나누어져 있던 부대를 게르마니아 군으로 통합하고 그 지휘권을 틀어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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