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187)

로마 디펜스 - 2

현대에는 북부 대공이라는 말이 있다.

판타지 소설에서 주로 등장하는 이 가상의 존재는 평소에는 살이 미어질 듯한 추위 속에서 밀려들어 오는 야만족이나 이 종족들과 싸우면서 제국의 북방을 지키는 존재였지만, 중앙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병사를 이끌고 내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북부 대공이 움직였을 때, 중앙의 어떤 이들도 그를 막을 수가 없다.

그리고 현대의 모든 북부 대공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로마의 수호자이자 게르마니아 왕국의 건설자인 가이우스 마리우스 대추장이었다.

“마리우스가 움직였다고?”

“예, 폐하께서 움직이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내, 내가 뭘했다고!”

“아마 폐하께서 또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간언하신 것 같은데···. 뭐 첩자를 심어둔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요.”

“첩자라···.”

호노리우스가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헨리쿠스 단돌로를 바라봤지만, 헨리쿠스 단돌로는 여전히 장부작성에 열중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호노리우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튼, 군대를 움직였다가는 마리우스 각하께서 더 크고 무서운 군대로 우리를 두들겨 팰 겁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자는 거야?”

“폐하, 우리가 굳이 이탈리아에 개입해봤자 얻을 수 있는 이득도 별로 없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것도 그렇긴 한데···.”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헨리쿠스 단돌로가 조심스럽게 호노리우스에게 말했다.

“폐하, 소인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헨리쿠스.”

“현재의 재정상태로는 이탈리아 원정을 준비할 수가 없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뭐? 갑자기 말인가?”

헨리쿠스의 말에 호노리우스가 당황하면서 물었다.

“감자기는 아닙니다. 폐하께서 벌이시는 연금술인지 뭔지 하는 고래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빨아들이고 있는 탓에 다른 부분에서는 긴축상태에 들어간 지도 오래입니다.”

“크흠···. 내가 쓰면 얼마나 쓴다고···.”

“폐하께서 연금술에 쓰는 예산이 작년으로만 따져도 부유한 그리스 지방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의 절반 정도는 될 겁니다.”

“저, 절반···!”

헨리쿠스의 말에 폴로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면서 호노리우스에게 말했다.

“폐하! 헨리쿠스의 말이 옳습니다. 그동안은 잘 몰랐으나 이리 정리된 걸 들으니 참으로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는군요.”

“이봐, 그건 다 과장된 수치가 아닌가? 그 정도였으면 진즉에 나라에 문제가 생겼을···.”

“서방보다 부유한 동방인지라 폐하의 사치를 견뎌낸 것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이제는 한 계인 것이고요.”

“끄응···.”

“폐하께서 굳이 병사를 일으키시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대신에 연금술을 끊으시고 예전처럼 닭이나 치시면서 사십시오!”

폴로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호노리우스가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자신의 황좌에 앉았다.

그리고서는 조심스럽게 폴로에 물었다.

“맞아···. 생각해보니, 로마와 페르시아가 있었지···. 그 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진즉에 죽어서 폐하의 저녁 식사로 올라간 지 오래입니다. 폐하께서는 참으로 맛있게 드시더군요.”

“뭐라고?!”

“농담입니다. 로마는 죽었지만, 페르시아는 아직 잘 살아있더군요.”

“으음···. 로마가 죽은 것은 슬프지만, 페르시아가 잘 살아있다니 다행이로군···.”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었지만, 이를 듣고 있던 헨리쿠스는 오묘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

마리우스가 드디어 움직였다는 소식은 이탈리아까지 흘러 들어갔는데, 마리우스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던 알라리크는 발작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타울프! 아타울프 이새끼 어디 갔어!”

“찾으셨습니까? 형님!”

“너도 들었겠지만, 지금 마리우스가 이탈리아로 내려오고 있다는데···. 무슨 대책이라도 있느냐?”

“글쎄요···. 도망가는 것 말고 방법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준비를 끝낸 상황이라면 모를까.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황에다가 연이은 전투로 병사들도 지친 상태인데···.”

“거기에 식량도 간당간당하지···. 후우···.”

알라리크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마리우스에게 두들겨 맞고 항복하거나, 그게 싫으면 도망가는 일뿐이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병사들의 숫자는 제법 되었지만, 지난번 전투가 증명해주듯이 마리우스는 단순히 병사수가 많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지난 베로나 평원에서의 전투만 하더라도, 알라리크의 병사들이 마리우스보다 숫자도 많았고 질적인 수준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뿐인가? 자신의 계획이 잘 들어맞아서 마리우스를 궁지에 몰아넣기까지 했으나, 마리우스는 순수하게 본인의 힘만으로 포위망을 박살 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상황이 훨씬 좋았던 그때도 그랬는데, 그보다 한참 안 좋은 지금 상황에서 마리우스와 맞붙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물러난다.”

“어디로 말입니까?”

“나폴리로 가야지···. 그곳에 올리브리우스 놈이 있으니까 말이야···.”

“예, 형님.”

알라리크는 결국 군대를 물렸고, 플로렌스를 에워싸던 포위가 풀어지자 콘스탄티우스는 크게 기뻐하면서 물러나는 알라리크에게 소리쳤다.

“다시는 보지 말자 이 더러운 새끼들아!”

******

마리우스가 드디어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은 스틸리코와 올리브리우스는 일제히 환호하면서 병력을 움직일 준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틸리코는 사위인 마리우스가 자신을 도우러 올 것이라 믿고 있었고, 올리브리우스 또한 탐욕스러운 마리우스에게 더 이득을 줄 수 있는 자신을 택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둘 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이탈리아까지 먹어치울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하여튼 스틸리코건 올리브리우스건 현재 운용 가능한 병사들을 영혼까지 끌어모으면서 전투를 준비했고, 이들을 뒷받침해줄 물자도 징발했다.

“이것도 가져가시면 저희는 무얼 먹고 살라는 말씀입니까? 이건 안됩니다···!”

“이건 늙으신 저희 아버지를 드리려고 남겨둔 겁니다. 제발···. 이것만큼은···.”

“시끄럽다! 지금 스틸리코 각하께서 반역자 올리브리우스를 토벌하러 가는 길을 막으려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고···.”

“그게 아니라면 당장 길을 비켜라!”

이러한 상황은 올리브리우스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 로마의 정당한 황제이신 올리브리우스 폐하를 끌어내리려는 반역자 스틸리코를 토벌하려는 상황인데, 네놈이 그것을 가로막겠다는 것이냐?”

“아, 아니 저는 그저···.”

“네놈이 말을 더듬는 것을 보니 참으로 의심스럽구나! 뭣들 하는가? 당장 이놈을 끌고 가!”

“아이고···!”

마리우스가 합류하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둘은 경쟁처럼 병사를 끌어모으면서 이탈리아를 수탈하기 시작했다.

이는 신분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었으며 서방에서도 손에 꼽히는 경제력을 자랑하던 이탈리아반도가 휘청거리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수탈에 시달리던 시민들은 스틸리코와 올리브리우스에 대한 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결국에는 자기가 권력을 잡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자기들 싸움에 왜 우리까지 끌고 가는 거지.”

“하나같이 나쁜 놈들이야.”

“결국에는 그놈이 그놈인 거지.”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지.”

“다른 곳? 다른 곳도 여기랑 마찬가지 아니겠어?”

“먼저 게르마니아로 갔던 사촌이 그러던데, 거기서 제법 성공했는지 어마어마한 돈을 보내주면서 나도 건너오라고 하더라고.”

“게르마니아?”

그렇게 힘들어하던 시민들 사이에 게르마니아의 이야기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가 전쟁이나 다름없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보내고 있는 하층민들은 먼저 게르마니아로 갔던 친척들이 보내오는 소식과 돈을 받아들고서는 그곳에 관심을 끌게 되었다.

게르마니아에서 온 돈은 지금을 헤쳐나갈 수 있는 빵과 청어가 되어주었으며, 이미 죽은 지 오래였던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불꽃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래, 게르마니아 몰라?”

“거기는 그냥 춥고 야만인들만 가득한 동네잖아.”

“푸하하하! 뭐라고? 춥고 야만인들만 가득한 동네? 자네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어둡구먼.”

“뭐? 그럼 다르다는 건가?”

“지난번에 이탈리아에서 게르마니아로 갔던 사람들을 기억하나?”

“아, 그거? 기억하고 있지···. 지난번에 나도 신청해볼까 하다가 큰아들이 아파서 포기했는데 말이야.”

“크크크···. 거기에 뽑혀서 먼저 게르마니아로 간 내 친척이 그러는데, 땅에는 금이 묻혀있고 바다에 그물만 던지면 청어가 올라오는 곳이라더군! 그래서 내 친척 놈도 몇 년 만에 자기 땅이랑 집도 장만했어!”

“그래? 으음···. 부럽구먼···.”

“친척 놈이 그랬는데, 그게 전부 게르마니아 대추장 마리우스가 이뤄낸 거라고 하더군.”

“마리우스···?”

이탈리아 북부에서나 알음알음 퍼져있던 마리우스에 관한 이야기가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삶에 찌들어있던 시민들에게 마리우스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쯧···. 차라리 스틸리코나 올리브리우스 같은 놈보다는 그런 사람이 더 좋겠어.”

******

“오늘부로 갈리아도 게르마니아에 편입한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하라고.”

한편, 마리우스는 재빠르게 병사들을 움직여서 갈리아 지방에 있는 여러 속주의 총독궁을 습격해서 그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아버렸다.

대부분의 갈리아 총독들은 게르마니아 군이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에 각자 지지하고 있는 올리브리우스와 스틸리코를 도우려고 군을 움직이는 줄 알았지만, 그들은 이탈리아가 아닌 총독궁으로 들이닥쳐서 갈리아를 삼켜버렸다.

이러한 마리우스의 습격에 순식간에 머리를 잃어버린 갈리아 주둔 군단들이 큰 혼란에 빠진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마리우스가 갈리아를 침공했다고? 혹시 자네들 저녁거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는가?”

“장군,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마리우스가 갈리아 전역을 침공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번 농담은 조금 웃겼어.”

“장군!”

갈리아 지역의 방위를 책임지던 섹스투스 센티우스 코실리아누스는 부하들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서야 이번 일이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 진짜로···?”

“예, 이미 갈리아 북부지방과 동쪽이 마리우스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입니다!”

“거기에 각 지방에서 주둔 중이던 대대들에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입니다.”

“허···. 마리우스가 드디어 칼을 뽑아 든 건가?”

갈리아 지방 방위군단의 총 책임자인 코르실리아누스는 지도를 살펴보자마자 머리가 어질어질해짐을 느끼면서 크게 탄식했다.

순식간에 갈리아로 짓쳐들어온 마리우스와 게르마니아 군들이 이미 갈리아 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휘하에서 동원 가능한 병사들이 얼마인가.”

“일단 인근에 있는 부대들에 전령을 보내고, 도망친 탈영병들을 붙잡아서 부대로 끌어오고는 있지만···. 전부 합친다고 해도 이만 명이 안 될 겁니다.”

“이만···. 이만 명이라···.”

게르마니아 군은 최소 삼만 명으로 추측되었고 장비의 질이나 훈련 도부터 차이가 나는 최전방의 병사들이었고 코실리아누스의 휘하에 있는 갈리아 방위군은 후방에 있는 부대에다가 장비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싸움이 될 리가 없지···.”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중앙에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쁜 사람들이 우리가 지원을 요청한다고 들어주기나 하겠나?”

한숨을 내쉰 코실리아누스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우리도 마리우스 편에 붙는 것이 살길이 아니겠나?”

“장군!”

“마리우스에게 붙기 싫다면은 내게 방법을 내놓거라 그게 이치에 맞고 그럴듯하면 나도 따르겠다.”

그 휘하에 있는 장교들이 입을 다물었고 마리우스는 스틸리코와 올리브리우스가 병사를 끌어모으겠다고 삽질하던 일주일 만에 갈리아 전역을 발아래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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