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179/187)

로마 디펜스 - 1

아타울프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동방에 있는 호노리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그에 들어간 노력은 간단하게 설명될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매사에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호노리우스라고는 해도 대놓고 마리우스와 적대하고 또 자신과도 은근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올리브리우스를 지지하는 알라리크를 도와줄 이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매번 저자세로 나오면서 몇 번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알라리크의 모습은 어느샌가 호노리우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방관하기로 했던 호노리우스도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생각보다 복잡하면서도 심각한 상황에 경각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개입을 고민하였다.

그러던 사이에 아타울프가 보낸 칙사가 또다시 동방의 문을 두드렸다.

“알라리크? 그놈이 또 사람을 보냈어?”

“예, 폐하께서 자신들을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충성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충성이라···.”

호노리우스가 조금 고민하는듯한 기색을 보이자. 폴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알라리크를 도와주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충성은 둘째치고···. 지금 이탈리아에 개입하면 입지를 넓힐 기회이긴 하잖아.”

“폐하, 그렇다고 알라리크를 받아줬다가는 마리우스 각하께서 그리 좋게 보시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번에 선물도 보내줬는데···. 설마 그러겠어?”

“폐하, 마리우스 각하께서 십여 년 전에 제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응? 갑자기?”

폴로의 갑작스러운 말에 호노리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주변에서 ‘설마’와 ‘나 하나쯤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랬었나···?”

“아뇨, 마리우스 각하께서 그러십니다.”

“아···.”

대놓고 마리우스를 조심하라는 폴로의 말에도 호노리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에이···. 설마 마리우스가 그렇게까지 하겠어? 나 하나쯤이야 뭐···.”

“맙소사···.”

“거기다가 지금이 아니면,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내 영향력을 넓힐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야.”

언제나 골방에 틀어박혀서 연구에 열중하던 호노리우스 전에 없이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었다.

그만큼 호노리우스가 이탈리아의 상황에 관심을 보이었던 것이다.

“스틸리코 장군께서도 불편해하실 것 같은데···.”

“숙부님이야 매사에 모든 일이 불편하잖아···. 그리고 숙부님이랑 올리브리우스만 쳐내면 내 세상 아니야?”

“그렇게 되면 마리우스각하만 좋은 일이 되겠군요.”

“응···? 그게 그렇게 되나?”

호노리우스와 폴로가 아웅다웅하면서 투덕거리고 있을 때에 곁에서 이를 조용하게 듣고 있던 헨리쿠스는 황제의 집무실을 빠져나와서 에우트로피우스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인가 단돌로?”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에우트로피우스는 갑작스레 찾아온 헨리쿠스 단돌로의 모습에 크게 당황하면서 물었다.

“큰일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화, 황제 폐하께서 이탈리아의 일에 개입하신다고 합니다.”

“뭐?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그러신단 말인가···? 지금 우리가 개입해서 이득을 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들은 바로는 황제 폐하께서는 이탈리아반도 내에서 영향력을 넓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영향력을 넓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원.”

“일단 마리우스각하께 이 사실을 알려주십시오.”

“알겠네, 걱정하지 말게나.”

******

“그래? 호노리우스가 드디어 미친 건가.”

“크흠···. 황제 폐하께서 매사에 즉흥적으로 행동하시지 않습니까? 이번 일도 그런 것이겠지요.”

“그 새끼는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거라니까?”

마리우스는 답답하다는 듯이 보리차를 들이켜면서 빈 컵을 바닥에 던지면서 소리쳤다.

“아니,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일이 잘 해결될 텐데 말이야···. 도대체 왜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크흠···. 각하, 우선은 진정하시는 것이···.”

“진정은 무슨 놈의 진정! 호노리우스 그놈이 모든 판을 엎어버리려고 하는데 말이야!”

마리우스는 분노를 터뜨리면서 데키무스에 명령을 내렸다.

“데키무스, 당장 게르마니아 전역에 동원령을 내리고 모든 부족에게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게.”

“각하, 진심입니까?”

“데키무스, 난 언제나 진심이야. 언제고 한번은 이탈리아로 출병하려고 했는데···. 호노리우스가 내 등을 떠밀고 있는군.”

“지금 동원령을 내렸다가는 안 그래도 휘청거리는 게르마니아 재정에도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래? 그럼 내가 데려갈 수 있는 병사는 몇 명이나 되는 거지? 일만 명? 이만 명?”

마리우스가 조금 흥분을 누그러트리면서 데키무스에 묻자, 데키무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답했다.

“동방에서 빼돌린 자금 덕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굳이 지금 군대를 일으키시겠다면···. 제 생각으로는 보병 이만 명에 기병대 오천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보다 달라진 게 없군.”

“지난번에는 최대한 쥐어짜서 나온 것이지만, 이번에는 여유롭게 넉넉한 보급까지 생각한 숫자입니다.”

“그래? 그럼 동원 완료까지는 며칠이나 걸리겠나.”

“사흘만 주십시오. 로마에서 제일가는 정예병들을 각하의 앞에 대령하겠습니다.”

데키무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마리우스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한참이나 웃어댔다.

가만히 그 웃음을 듣고 있던 데키무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또 저를 놀리신 거로군요.”

“하하하···. 미안하네, 자네를 놀리는 게 너무 재밌어서 말이야.”

“이번에는 진짜로 화나신 줄 알았습니다.”

“조금 속이 쓰리긴 한데···. 늘 있는 일이 아닌가?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동방에 계신 황제 폐하께서 이탈리아의 일에 개입하게 된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것 같은데 말입니다.”

“협상해야지.”

“예? 협상 말입니까···?”

마리우스는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서 호노리우스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데키무스에 명령을 내렸다.

“데키무스, 일주일 내로 이탈리아로 향할 수 있게 병사들을 준비해주겠나?”

“일주일이면 충분하지요.”

“그럼 부탁하지.”

******

마리우스가 동원령을 내리자, 흉노와의 전투 이후로 잠깐 낮잠을 자는 듯이 조용해졌던 게르마니아가 다시금 잠에서 깨어나려는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동안에 천천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던 게르마니아의 경제는 마리우스의 동원령을 기점으로 그래프가 급격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런 변동을 가장 먼저 눈치챈 청어조합은 어획량을 조절하면서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물가의 급격한 변동을 막았고, 레긴의 대장간에서는 새로운 갑옷과 무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밤낮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거기에 더불어서 상인들도 곧 귀해질 노동 인력을 구하기 위해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말이다···.

“빨리빨리 움직여!”

“당분간은 집에 들어가기는 글렀어···.”

“또 전쟁이야?”

“벌써 몇 번째인지 원···.”

“거기! 쓸데없는 소리 말고 풀무질이나 제대로 해!”

새로운 전쟁이라는 소식에 게르마니아의 시민들과 부족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였으나, 마리우스가 직접 친정한다는 소식에 걱정을 조금 덜고서는 먼 길을 떠나는 가족을 배웅했다.

“엄마, 가서 한몫 단단히 잡아 올게요!”

“허튼짓 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네가 전쟁터로 나설 일이 없었을 텐데···.”

“뭘요···. 그럼 몇 달 후에 뵙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게르마니아에서는 이상한 소문도 돌기 시작했는데···.

“또 전쟁인가···?”

“누가 또 전하의 성질을 건드린 모양인데···.”

“총독궁에서 일하는 옆집 아들놈한테 들은 건데, 이탈리아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

“이탈리아에서 난리가 났다고? 거기에서 문제가 생길 게 있나···?”

“보나 마나 올리브리우스인지 올리브유인지 하는 녀석이 또 전하의 성질을 긁은 모양이지.”

“저런 천하의 몹쓸 놈을 보았나.”

“듣기로는 지난번에 쳐들어왔던 훈족들도 올리브리우스가 사주했다는 모양이던데?”

“뭐?! 이런 나쁜 놈을 보았나···!”

어느샌가 시민들의 사이에 퍼진 이상한 소문들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게르마니아에서는 반 올리브리우스 정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시마다 있는 올리브리우스의 동상을 때려 부수거나 초상화를 훼손하는 등 폭도가 되어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를 진압해야 할 병사들은 폭도들을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폭도들 또한 정확히 올리브리우스와 관련된 물건들만 때려 부수고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며칠이 흐를 때쯤에는 게르마니아 내에서 올리브리우스와 관련된 모든 물건이 사라지게 되었다.

“훌륭해.”

“흐음···. 나중에 말이 나오는 게 아닐지···.”

“말?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데키무스. 저건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일 뿐이야. 우리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그런 셈이긴 하지요···.”

“좋게좋게 생각하게, 어차피 이번 이탈리아 원정만 끝나면은 당분간은 평화롭겠지.”

“당분간이로군요···.”

“못해도 백 년 정도는 조용해지지 않을까?”

마리우스는 피식 웃으면서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단상 위에서 광장에 늘어선 병사들을 둘러보던 마리우스는 그 웅장한 규모를 감상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병사들이여 내가 왔다!”

“와 아아아아-!”

“마리우스! 마리우스! 마리우스!”

“게르마니아 대추장 마리우스 만세!”

마리우스가 손을 들었을 뿐인데, 광장에 모인 병사들은 크게 환호하면서 그를 반겼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 또한 그런 병사들과 함께 마리우스의 이름을 부르면서 환호했다.

한참이나 그런 병사들과 시민들을 내려다보던 마리우스는 손을 들어서 모두를 제지하면서 말했다.

“친애하는 나의 병사들이여. 지금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인끼리 서로 무기를 들고서 끝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나도 처음에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늘 그렇듯이 세상은 날 내버려 두지를 않고 이번 내전까지 나를 끌어들이는구나.”

마리우스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단상의 손잡이 부분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이탈리아반도에서 투덕거리는 이들에게 우리의 힘과 용기를 보여줄 차례다! 놈들은 우리의 모습만 보고 오줌을 지릴 것이고, 우리가 행군하면 적들은 뒤로 물러나기 바쁠 것이다!

누가 나를 따르겠나? 누가 나와 함께 로마로 가겠는가? 누가 나를 위해서 로마로 가주겠나!”

“제가 가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저, 저도···.”

마리우스의 말에 병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반응하면서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고, 깃발을 든 기수들은 군기를 맹렬히 휘둘렀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마리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주먹을 하늘 높이 뻗었다.

“자, 가자! 로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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