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187)

술은 만악의 근원 - 1

색슨족과 노르만족 간의 싸움을 끝이 났지만,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알레피우스가 이끄는 색슨족은 청어를 잡기 위해서 노르만 인들의 영역에서 청어잡이를 하고 싶어 했지만 체르티미손과 노르만족은 색슨족이 자신들의 청어를 뺏어간다고 생각하며 이를 거부했다.

“고작 청어 하나 때문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전하께는 고작 청어 하나겠지만, 저와 제 부족민들에게는 생사가 달린 일입니다.”

“으음···. 골치 아프군.”

“신의 사도이시여! 저들이 먼저 저희의 땅을 노리지 않았다면, 싸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신의 사도라는 말은 이제 그만하지.”

“신의 사도를 그럼 어떻게 불러드려야 합니까? 어리석은 저희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마리우스는 이 복장 터지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면서 오른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그냥 전하라고 부르게.”

“예, 전하.”

“그래···. 노르만인들은 땅을 침범한 색슨족이 물러나기를 원하고 있고, 색슨족은 노르만인들의 앞바다에서 청어를 잡고 싶다는 말이로군.”

“예, 전하.”

“맞습니다. 전하.”

“흠···. 자네 이름이 체르티미손이라고 했던가?”

마리우스의 질문에 멋들어진 수염을 자랑하는 체르티미손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알레피우스와 색슨족이 자네들에게 어떤 보상을 하면 청어잡이를 인정받을 수 있겠나?”

“보상 말입니까···? 저희는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지내고 싶을 뿐입니다.”

“으음···. 알레피우스.”

“예, 전하.”

“자네들이 물러설 수는 없는 건가?”

마리우스의 말에 알레피우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지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게르마니아에는 청어잡이에 나서는 이들이 많아져서 연안에서 청어를 잡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곳을 찾아서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이고 말입니다.”

“이거 골치 아프구먼···.”

마리우스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 일을 어찌 해결할지를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색슨족으로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고, 노르만족으로서는 평소처럼 잘 지내는데, 웬 이상한 녀석들이 쳐들어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둘 사이를 중재하려고 했지만, 첫날은 별다른 대책 없이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온 마리우스는 밤늦게까지 방법을 고민했으나,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흠···. 데키무스, 색슨족과 노르만족을 화해시킬만한 방법이 뭐 없을까?”

“글쎄요···. 저도 여러 일을 겪어봤지만, 두 세력 간의 싸움을 중재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무슨 방법이 없겠나? 둘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그런 방법 말이야.”

“그냥 노르만족을 게르마니아로 끌어들여서 정착시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직 게르마니아에는 개간하지 못한 땅들이 넘쳐나고 있잖습니까.”

데키무스의 말에 마리우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듣기로는 그럴듯한 말이었으나, 고향에 쳐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색슨족과 피 터지게 싸우던 노르만족이 과연 게르마니아로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놈들이 오겠어?”

“각하께서 저들에게 신의 사도라고 추앙받고 있잖습니까? 그 점을 이용해보시지요. 옛날에는 모세라는 인물이 새로운 땅으로 자신들의 동족들을 이끌었다고 하더군요.”

“그건 누구한테 들은 말이야?”

“도미티누스에서 들은 말입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했지만, 조금 전에 데키무스가 말한 모세의 일이 마리우스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호노리우스가 만든 신무기의 위력을 본 노르만족은 자신을 신의 사도라고 착각하면서 숭배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하면 그들도 따라올지 모를 일이었다.

“어떻습니까? 곱씹어볼수록 그럴듯하면서 괜찮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으음···. 그렇지만,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저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아끼는 것 같던데···.”

******

“가겠습니다.”

“어? 진짜로 간다고.?”

“전하께서 저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전하께서는 저희에게 기적을 보이시면서 신의 사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런 분께서 저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으니, 축복받은 일이 아닙니까?”

“으음···. 그래도 고향 땅을 벗어나는 건데,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것 같은데···?”

마리우스의 질문에 체르티미손이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전하께서 저희에게 기적을 보여주셨으니 부족민들도 전하를 믿고 있습니다.”

“기적···? 기적은 무슨 놈의 기적을 말하는 건가?!”

“지난번에 전하께서 어루만져주셨던 노인을 기억하시는지요? 기침을 많이 하던 분 말입니다.”

“기억하네, 유독 기침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지.”

“그분이 수년 만에 기침이 멎었습니다.”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데키무스를 돌아봤지만 데키무스 또한 떨리는 눈으로 마리우스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 픽픽 쓰러지던 꼬마는 쌩쌩해져서 뛰었다니고···.”

“그거야 어릴 적에는 갑자기 픽 쓰러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얼마 전 사냥 중에 크게 다쳐서 정신을 못 차리던 제 친구 놈 또한 깨어났습니다!”

“그거야 시간이 지나서 그런 것이···.”

“전부 전하께서 저희에게 내린 기적이 아닙니까?”

“돌겠네···. 그래서 노르만인들은 게르마니아로 이주하겠다는 뜻으로 알아듣겠네.”

“예, 전하.”

마리우스는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옆에 있던 알레피우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이번 일은 노르만족이 양보하고 우리의 세력으로 들어왔으니 지난 일은 잊고 자네들이 노르만족의 이주를 도와주게나,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전하!”

그렇게 색슨족과 노르만족과 다툼은 마리우스의 중재로 성공적으로 끝났다.

협상 문서에 둘이 서명을 하고, 이어지는 축제에서 술이 한두 잔씩 오가고 나니 다들 벌게진 얼굴로 즐겁게 마시고 즐겼다.

“그때, 딱 전하께서 무기를 빼 드시고는···.”

“알레피우스,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는 건가? 부끄러우니 제발 그만 좀 말하게.”

“하하하, 전하의 위대한 업적을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동생의 말이 옳습니다. 전하를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전하의 위대한 업적들을 듣다 보니 절로 존경심과 경외감이 듭니다.”

“잠깐, 너희 둘이 언제부터 형, 동생 하게 된 거야?”

마리우스가 당황하며 묻자 알레피우스와 체르티미손은 한목소리로 마리우스에게 말했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즐겁게 마시고 놀면, 그게 누구든 간에 형제가 될 수 있다고 전하께서 그러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그랬었나···?”

“그러셨지요. 때는 바야흐로 십여 년 전···. 아그리피넨시스로 처음 부임하신 각하께서···.”

“그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알레피우스, 자네는 그때 오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저는 그때 바깥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크흠···. 아무튼···. 전쟁터에서 무기를 맞대고서 피를 흘리는 거보다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을 흘리는 게 더 낫지 않은가?”

마리우스가 술잔을 높이 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에서 술을 마시던 부족민들과 병사들의 입이 다물어지면서 시선이 마리우스를 향했다.

“자,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다. 새 친구를 사귀고, 쓸데없이 흐르는 피를 막았으니 참으로 다행 아닌가? 오늘은 다들 걱정 없이 마시고 즐기도록!”

“대추장 마리우스 만세! 게르마니아 만세!”

“대추장이라는 말은 하지 말라니까···.”

부족민들은 마리우스의 관대함을 칭송하면서 술잔을 높이 들었으나, 정작 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들은 마리우스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들 각하를 게르마니아 대추장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하하하, 맞습니다. 이제는 인정하시지요.”

“제 생각에도 게르마니아 대왕보다는···. 게르마니아 대추장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말에 어이가 없었는지 마리우스가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허···. 알레피우스, 자네가 내게 대추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자네들에게 노르만족보다 항해술이 떨어져서 고기나 잡는 이들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걸세.”

“하하하, 그거 말 되는군요. 틀린 말도 아니잖습니까? 안 그렇나 동생?”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으나, 저와 색슨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브리타니아까지는 순식간에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항해술이 뛰어나지 않습니까? 전하께서 농담이 심하시군요.”

마리우스가 농담으로 던진 말에 알레피우스와 체르티미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동생, 아무리 그래도 바다 민족이라 함은 우리 노르만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나? 우리는 태어나기를 바다와 함께하고, 죽을 때도 바다로 돌아가니 그야말로 바다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지.”

“형님, 이건 항해술의 문제가 아닙니까, 우리 색슨족은 배 타는 것 하나만큼은 다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습니다.”

마리우스가 던진 작은말로 시작되어 둘의 자존심 싸움에 불이 붙었고, 한참이나 누가 배를 잘 타냐로 토론하던 알레피우스와 체르티미손은 술기운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이렇게 떠들지 말고 시합으로 승부를 내자고!”

“좋습니다. 누가 겁먹을 줄 알고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키무스가 한숨을 내쉬면서 내게 말했다.

“각하, 또 애꿎은 사람들을 싸움 붙이시고···.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내가 알고 그랬나? 데키무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 옆에서 팝콘이나 씹는 게 최고야.”

“팝콘은 또 뭡니까.”

“음···. 옥수수로 만든 건데, 짭조름하면서 바삭바삭하니 입이 심심할 때 먹으면 딱 맞아.”

“듣고 보니 저도 먹고 싶어지는군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만드는 겁니까? 저도 알려주시지요.”

한창 술이 들어가 있던 마리우스는 데키무스의 질문에 신이 나서는 말했다.

“옥수수를 기름에 튀겼던가? 프라이팬으로 구웠던가? 아무튼, 열을 가하다 보면···.”

“잠깐, 옥수수는 또 뭡니까?”

“으음···. 여기서는 안 나는 건데···. 동쪽 끝···. 아니, 서쪽 끝이었던가? 아무튼, 아메리카가 원산지였던가 그랬을 거야.”

“아메리카···? 거긴 또 어딥니까?”

“아 몰라!”

마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술을 들이켜고 있을 때, 잔뜩 흥분한 알레피우스와 체르티미손이 마리우스에게 달려와서 소리쳤다.

“전하, 전하께서 저희 중에서 누구의 항해술이 뛰어난지 판가름해주십시오!”

“맞습니다! 전하께서 판결을 내려주신다면 저도 승복하겠습니다!”

“판결? 흐음···.”

둘 다 자존심이 만만찮게 강한 인물들인 데다가 술까지 들어갔으니 둘의 다툼은 고작 말싸움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마리우스 또한 술이 들어간 지라 평소였으면 조용히 타일러서 보낼 일을 재밌다고 생각하여 잔뜩 흥분한 그들에게 소리쳤다.

“하하하, 그거 재미있겠군!”

“각하?”

“이곳에서 동쪽끝에있는 신대륙을 발견하는자에게 불멸의 명성과 끝나지않을 칭송을 안겨주겠다!”

그렇게 소리친 마리우스는 마지막으로 손에 든 포도주를 들이키고서는 탁자에 머리를 박으면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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