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오펜스 - 10
호노리우스의 분뇨.
신무기를 처음 본 노르만족은 이내 관심을 보이다가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네모난 통과 뒤편에서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둥그런 모양의 커다란 솥까지 어느 하나 무기라고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고작 저런 거로 뭘 하겠다는 건가, 우리에게 음식이라도 해주려는 모양인가 보지?”
“비슷하긴 하지···. 음식 대신에 너희들이 구워진다는 것만 빼면 말이야.”
“뭐? 해볼 테면 해봐라! 우리가 어디 눈 하나···.”
“발사!”
내 명령에 따라 무기를 만지작거리던 기술자들이 무기에 달린 끈을 잡아당겼고, 이내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불꽃이 노르만 부족 인근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불이 붙은 나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불타올랐고 이에 당황한 노르만 부족민들이 물을 부어서 끄려 했으나, 불이 꺼지기는커녕 물과 만나면서 더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이게 우리의 신무기다. 모두 바싹 익은 채로 죽기 싫으면 순순히 내 말을 듣는 게 어떤가.”
거대한 거목을 단숨에 태워버리는 신무기의 위용에 노르만족은 입을 떡 벌린 채로 타오르는 나무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저 큰 나무를 단숨에 태워버렸어···.”
“나무가 울부짖고 있어.”
“물을 부으니까 오히려 불이 더 커진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야···. 이건 신의 힘이다. 불의 신께서 우리를 벌하시려고···!”
“불의 신은 무슨···. 로마놈들이 사악한 요술을 써서 우리의 눈을 속이는 거야! 저 불꽃은 가짜···. 앗 뜨거워!”
겁도 없이 타오르는 나무 근처로 걸어가던 한 부족민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열기에 피부가 익어버리자,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타오르던 거목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나무 기둥이 뚝 하니 꺾이더니 땅으로 떨어지면서 주변에 불이 옮겨붙었다.
“부, 불의 사도다! 저분은 불의 사도야!”
“불의 사도께서 우리의 벌을 징벌하시러 오셨다!”
“왜들 저러는 거야.”
“저도 잘···.”
마리우스는 갑자기 저들끼리 혼란에 빠지는 노르만족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면서 멍한 표정을 하고있는 체르티미르손에게 말했다.
“마지막 기회다. 이대로 전쟁을 끝내겠는가, 아니면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꽃에 타오르겠나? 선택은 자네의 자유겠지만, 결과는 내 선택이겠지.”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그래, 자네들의 무기를 준비하···. 잠깐, 뭐라고?”
마리우스는 화들짝 놀라면서 두 눈을 크게 뜨면서 체르티미르손을 돌아봤다.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순순히 항복하는 그의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불의 사도 앞에서 한낮 인간이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부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불의 사도? 그건 또 무슨···.”
주류문명인 로마에서 멀리 떨어져서 야만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던 노르만인들에게 신무기인 호노리우스의 분뇨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기다란 대롱 같은 것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은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크게 불타올랐고, 그들의 세상 속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거목마저 몇 분 만에 활활 태워버리는 화력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대인은 그들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보통 신의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에 비친 호노리우스의 분뇨는 불의 신께서 보낸 괴물쯤이었고, 그 무기를 가져온 마리우스는 신의 사도라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신이란 것은 더없이 높은 지고의 존재였고, 그의 사도인 마리우스는 가장 존귀한 존재였다.
노르만 부족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리우스에게 몰려들어서는 손을 뻗어서 그의 몸을 더듬었다.
좀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었지만, 나름대로 다들 경건한 마음으로 질서정연하게 한 명 한 명씩 마리우스의 몸에 손을 얹었다.
“다들 무엇 하는가! 빨리 통제해!”
“아, 돼서 그냥 놔둬.”
“예? 아무리 그래도···.”
“고작해야 민간인들인데, 뭐가 중요한가? 빨리 가서 불이나 끄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마리우스는 별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넘겼지만, 부족민들은 전에 없이 열정적으로 마리우스를 대했다.
마리우스는 부족민들의 손에 이끌려서 마을 내의 병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그들을 쓰다듬으면서 축복을 내려주는 척을 하고서야 그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이탈리아의 상황은 나날이 험악해졌다.
로마에서 쫓겨난 올리브리우스는 나폴리에서 술렁거리는 남부의 유력자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
물론 반항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거나, 스틸리코에 붙으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올리브리우스는 그들을 쳐내고서 결국 남부를 장악할 수 있었다.
로마의 혼란을 진압하고 이탈하려고만 하는 이탈리아 중부의 민심을 수습하던 스틸리코는 이 상황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남부를 장악한 올리브리우스는 곧장 로마로 들어가는 식량을 모두 끊어버렸다.
어차피 플로렌스를 알라리크가 틀어막은 이상 식량이 들어올 구멍은 남부의 곡창지대나, 바다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올리브리우스가 이 통로를 모두 틀어막은 것이다.
“장군···. 남은 식량은 두 달 치가 전부입니다.”
“두 달이라···. 콘스탄티우스에게서는 무슨 연락이 온 게 없는가?”
“알라리크에게 포위당해있으니, 지원을 요청한다는 말뿐이었습니다···.”
“후우···. 마리우스는? 마리우스에게서는 무슨 연락이 오지 않았는가?”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전령이 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겠지요.”
“그렇겠지.”
스틸리코는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병사들과 시민들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마저 흔들린다면 이번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틸리코는 언제나 여유롭게 행동했다.
아니, 억지로 여유를 가졌다.
“우선은 시민들에게 식량 사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전하고, 창고에는 로마 시민들이 일 년은 족히 지낼 수 있는 식량이 보관되어있다고 알리게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우스에게는 적과의 직접적인 교전을 피하고, 호노리우스나 마리우스가 보낸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자리를 지키라고 전하게.”
“예, 장군.”
부관이 자리를 비우자, 혼자남은 스틸리코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식량 사정도 문제였지만, 호노리우스나 마리우스의 지원이 없다면은 이대로 이탈리아에 갇힌 채로 옴짝달싹도 못 하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병사를 움직여서 나폴리를 들이치기에도 모호한 것이, 지금이야 병사의 수적인 측면이나 질적인 측면에서야 스틸리코가 앞서고 있었지만, 현재 올리브리우스가 이탈리아에 동원령을 내려서 병사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질적인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웃하더라도 수적인 측면에서는 스틸리코와 맞먹거나 그 이상의 병력을 올리브리우스가 손에 넣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승패가 확실하지 않은 싸움을 위해서 로마를 비운다는 것은 그냥 죽자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마리우스···. 흠···.”
******
스틸리코가 고립된 채로 식량 사정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올리브리우스 또한 산적해 있는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그에게 반기를 든 남부의 유력자들이나 귀족들을 무력으로 찍어누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올리브리우스가 최대한 빠르게 몸을 움직여서 그들이 뭉치기 전에 각개격파 했던 것이었다.
일단 상황을 안정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틸리코와 대적하려면 이들의 힘이 필요했기에 완전히 쳐낼 수가 없었다.
“각지에서 스틸리코와 접선하려는 무리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습니다.”
“후우···. 병사들을 징집하는 건 어떻게 되었나.”
“동원령을 내려서 최대한 불러모으고는 있으나···. 각지에서 온갖 핑계를 대면서 불응하는 이들도 있는 탓에 조금 힘든 상황입니다.”
“으음···. 지난번에 그렇게 혼이 나고도 정신들을 못 차리고 있군···.”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군부의 인물들도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탓에···.”
“불온한 움직임이라니, 그건 무슨 말인가?”
지난날 로마공방전 당시에 올리브리우스의 휘하에 있던 장교 중에서는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이들도 많았지만, 몇몇은 제때 로마를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서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올리브리우스를 따라오기는 했지만, 스틸리코를 지지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애초부터 스틸리코가 군부를 꽉 쥐고 있었던 탓에 올리브리우스를 지지하는 장교는 거의 없었다.
일이 그렇게 되다 보니, 상황이 매우 급할 때는 올리브리우스를 따랐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에 다른 생각을 품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대세는 이미 기울었어. 지금이야 스틸리코 장군이 위험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곧 그분의 사위이신 게르마니아 대추장 마리우스가 내려온다고.”
“으음···. 마리우스가 내려온다고 어떻게 확신하는 건가? 지금 게르마니아는 훈족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보지 않았는가?”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뭐?”
“게르마니아가 훈족의 침입을 받고서 며칠 만에 그들을 국경 밖으로 몰아낸 걸 보면 모르겠나? 게르마니아의 저력은 자네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야.”
스틸리코를 지지하는 장교들은 은근슬쩍 다른 장교들과 접촉하면서 내부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은 마리우스가 내려오면 곧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하며 많은 이들을 설득하고 다녔고, 이는 곧 내부불안으로 이어졌다.
“쓰읍···. 일단은 해당 장교들을 천천히 일선에서 배제하게나, 절대로 우리가 먼저 눈치챘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돼.”
“한꺼번에 처리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게 더 내부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것 같은데···.”
친위대장의 말에 올리브리우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지금 내부사정이 불안정한테 굳이 남들 앞에서 이를 알려봤자 좋을 게 없어.”
“차라리 대놓고 대규모로 숙청한다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경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많은 피를 흘렸어. 공포로만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이지 또 다른 내부불안이 아니야.”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래, 마리우스에게서 온 소식은 없나?”
올리브리우스의 질문에 친위대장이 고개를 저으면서 답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최근에 노르만족이라는 이민족들과 다툼이 생겼다고만 들었습니다.”
“허···. 그래? 그래도 나쁜 소식은 아니로군···. 최소한 이곳의 문제에 개입할 생각을 없어 보이니까 말이야.”
“아, 동생분에게서 소식이 온 것은 있었습니다.”
“프로바? 걔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건 저도 잘···. 폐하께 편지를 보냈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편지?”
올리브리우스는 친위대장이 건네주는 편지를 받고서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시킨 대로 내부단속은 최대한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여야 하네.”
친위대장이 나가고 홀로 남게 된 올리브리우스는 동생이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것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