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187)

로마 오펜스 - 5

스틸리코는 며칠 동안이나 로마를 포위한 채로 올리브리우스의 답변을 기다렸지만, 올리브리우스는 무시로 일관했다.

“장군,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맞습니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친위군단의 병사들이 혼란을 겪으면서 변심할 수 있습니다.”

“으음···. 올리브리우스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건가? 우리와 대화를 하려는 어떠한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거냔 말이야.”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쯧···.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스틸리코는 잠시 고민하더니, 군막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화를 원했으나 황제는 대화를 원치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지.”

“드디어···.”

“저희는 언제나 장군을 지지합니다!”

“가짜황제 역적 올리브리우스를 끌어내리고 둘이었던 황제가 다시 하나가 될 시간이다. 올리브리우스를 내 눈앞으로 끌고 와!”

스틸리코의 명령으로 로마를 포위하고 있던 친위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마리우스가 지방의 군벌들로부터 황제를 지킬 강력한 친위세력으로 만들어놓은 친위군단은 스틸리코의 손에서 황제를 공격하고 있었다.

물론 마리우스가 이들을 창설할 당시에도 명목상으로는 황제를 근거리에서 호위하는 군단이었지만, 정작 따지고 보면 위계 상이나 지휘계통상으로 로마 군사령관인 스틸리코의 휘하에 있는 부대가 맞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복잡한 군 위계질서를 몰랐기에 그저 황제의 직속부대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올리브리우스 또한 대부분 사람에 포함되어 있었고 말이다.

“친위군단이 왜 스틸리코를 따르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 내가 자네를 친위대장으로 임명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자네의 일을 자네가 모르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지금 죄송하다고 끝날 일인가! 밖에서는 적이 몰려오고 있고, 우리는 로마에 갇혀있으니 이 일을 어찌 해결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일단은 방어에 치중하면서 각지에 있는 병사들을 움직여서 지원을 기다리시는 것이···.”

친위대장의 말에 올리브리우스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스틸리코가 군부를 꽉 잡고 있는데, 나를 구하러 올 병사들이 어디 있겠나.”

“알라리크라면···.”

“아니지, 알라리크는 플로렌스를 틀어막아야지.”

“어째서입니까?”

“아직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에는 내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지역이고, 북부와 그 너머에 있는 이들은 스틸리코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들이지.”

“아, 그럼 그들의 개입을 차단하시려는 거로군요···!”

“그래, 알라리크가 변심하거나 손쓰기 힘들 정도로 힘을 키우기 전에 스틸리코를 정리해야 해.”

올리브리우스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그에게 좋지 못했다.

스틸리코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은 3만 명에 달했지만, 올리브리우스의 휘하에 있는 병사는 기껏해야 8천 명이 전부였다.

물론 공성전이라는 전투의 특성상 수비 측이 공격 측에 비해서 유리했지만, 수적 차이가 이 정도로 난다면은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방어에 쉬운 라벤나에 비해서 로마는 방어하기에는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었다.

성벽은 고만고만했고,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곳곳에 허술한 곳도 보일 정도였다.

“적이 몰려옵니다. 이곳은 제게 맡기시고 폐하께서는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대책을 마련해볼 테니 일주일만 시간을 벌어주게, 할 수 있겠지.”

“해보겠습니다.”

******

로마에서 공성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플로렌스에서도 서서히 피어오르던 전운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서로를 주시하면서 싸움을 준비하던 알라리크와 콘스탄티우스 중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콘스탄티우스의 쪽이었다.

지난 여러 전투에서 몇 번이고 선수를 빼앗겨서 쓴맛을 본 경험이 있는 콘스탄티우스는 무기를 준비하거나 병사들을 정비하는 알라리크의 불온한 모습에 선수를 쳤다.

콘스탄티우스는 병사들을 소규모로 쪼개서 플로렌스 시내 이곳저곳에 뿌려두었고, 밤이 되자마자 이들을 끌어모아서 신속하게 알라리크의 병사들을 쳤다.

“습격이다! 습격이다!”

“고트족 놈들을 살려 보내지 마라. 플로렌스의 성문을 틀어막고 아군표식이 없는 놈들을 모두 죽여!”

콘스탄티우스의 습격을 받은 알라리크와 고트족은 크게 당황하면서 큰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노련한 알라리크는 상황을 파악하자 병사들을 수습하고서는 반격에 나섰다.

“겁먹지 마라! 놈들은 아군에 비해서 소수에 불과하다! 다들 차분히 불을 켜고 적에 맞서라!”

“적들은 그리 많지 않다! 모두 정신 차려!”

“전하를 지켜라! 모두 전하의 곁으로 모여라!”

콘스탄티우스의 습격은 알라리크의 병사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침착하게 병사들을 수습한 알라리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플로렌스는 다시금 알라리크에게 포위당했고,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콘스탄티우스는 당황했다.

“알라리크를 왜 놓친 거지.”

“놈들의 저항이 너무 거셌습니다. 아군이 알라리크를 잡으려고 들면 고트족 병사들이 몸을 던져가면서 막는 통에 그만···.”

“놈들이 막는다고 막혔다는 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자네들이 군인이 맞긴 한 건가!”

콘스탄티우스는 분노를 터뜨리면서 부하들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번 습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알라리크를 잡는 것이었어! 다른 것도 아니고 알라리크만 잡으면 다 끝나는 일이었다고!”

“장군, 그것이···. 저희도 노력했는데···.”

“노력은 누구나 하는 거야! 저 고트족 놈들도 제 놈들의 족장을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았는가! 네놈들의 노력은 고작 그 정도인가?!”

“그것이···.”

“듣기 싫어! 병사의 숫자나 질적인 측면에서도 아군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왜 알라리크를 못 잡고 오히려 우리가 궁지에 몰렸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군!”

잔뜩 화를 내던 콘스탄티우스는 지휘봉을 탁자 위로 내던지면서 소리쳤다.

“전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콘스탄티우스가 분노하고 있을 때에 플로렌스를 포위한 알라리크의 부대 상황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지난밤의 습격으로 도시 내에 주둔 중인 병사를 반이나 잃은 알라리크는 도시 외곽과 바깥에서 주둔 중인 병사들로 플로렌스를 포위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원래 이끌고 있던 5만 명이나 되는 병사 중에 만 명이나 되는 병사를 잃었다.

덕분에 플로렌스를 포위하고 있는 알라리크 부대의 포위망은 그리 견고하지 못했고, 콘스탄티우스를 제압하고 플로렌스를 틀어막는다는 올리브리우스와 알라리크의 대전략이 어그러졌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군.”

“죄송합니다. 전부 제 불찰입니다.”

“아타울프, 이 모든 게 어떻게 전부 네 잘못이겠냐. 콘스탄티우스 놈의 움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먼저 움직이지 않은 내 잘못도 있다.”

“형님, 이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기약 없이 플로렌스에 죽치고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일단 플로렌스를 포위하기는 했으나, 지난밤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본 탓에 알라리크는 당장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에 지난밤의 피해로 콘스탄티우스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던 그의 군세 또한 더 압도적이지 못했으니···.

알라리크의 고민은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

한편.

마리우스의 명령으로 콘스탄티노플로 가게 된 헨리쿠스는 갑작스러운 마리우스의 명령에 큰 불만을 품었으나, 데키무스가 전해준 편지를 펼쳐보고서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에우트로피우스를 찾아가라. 가서 호노리우스의 왕실 재산을 몽땅 뜯어오도록. 성공 시 7대3 비율로 배분.]

대놓고 황제를 털어먹으라는 명령을 받은 헨리쿠스는 마리우스의 명령대로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자마자 에우트로피우스를 찾아갔다.

“그래, 사위의 소개로 왔다고?”

“예, 합하.”

“합하는 무슨···. 섭정직도 내려놓은 지 오래이니 편히 부르게나.”

“예, 어르신.”

“그래, 방구석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노인네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고? 보아하니 사위가 나를 만나보라고 해서 찾아온 것 같은데···.”

“예, 그렇습니다. 마리우스 전하께서는 동방의 황제이신 호노리우스 폐하에게 복수하기를 원하십니다.”

“복수? 무슨 복수를 말하는 건가.”

에우트로피우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헨리쿠스에 물었다.

“그···. 황제 폐하께서 마리우스 전하의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하시다가 전부 탕진하셨다고 하시더군요.”

“그거야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일이 아니던가? 폐하께서 사비로 창고를 채워 넣으신다고 들었는데···. 안 하신 모양이로군.”

“그래서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허허···. 나는 뒷방 늙은이일 뿐이야. 누구를 도울만한 처지가 못 된다는 말이지.”

“콘스탄티노플에서 청어조합의 새로운 분점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르신께서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분점을 만드는데 굳이 내 도움이 필요한가?”

“그것이···. 동방에서 깊게 뿌리내린 대형 상단들의 텃세가 심해서 말입니다.”

헨리쿠스의 말대로 기존의 대형 상단들은 새로운 경쟁자인 청어조합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다.

그들은 역사가 짧았으나, 그 짧은 기간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청어들과 새로운 청어 손질법을 바탕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덕분에 북아프리카 속주의 황폐화로 요동치는 식료품 시세에 큰 이득을 보려던 상단들은 제법 손해를 봐야 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자신들의 앞마당인 동방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청어조합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들은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결사적으로 청어조합의 진출을 막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리우스는 지난번에 헨리쿠스와의 거래대로 그들과의 관계를 부정하면서 정치적인 걸림돌을 제거하고, 은근슬쩍 그들의 동방진출을 밀어주었다.

호노리우스의 돈을 빼먹는 건 둘째치고 말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한정적이야.”

“알고 있습니다.”

“자네들이 위험에 빠져도 나는 꼬리를 자를걸세, 그래도 내 도움이 필요한가?”

“예.”

에우트로피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찻주전자를 들어 올리며 보리차를 따라줬다.

“그래, 그러면 어디 사업계획이나 들어보지.”

******

이탈리아와 동방이 저마다의 일로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마리우스 또한 굉장히 바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날이 덥네요.”

“그러게···. 얼마 전까지는 추웠는데 말이지.”

“이렇게 태양 빛이 따가운 날에는 후원이 제일 시원했는데···. 안 그런가요?”

“크흠···.”

마리우스는 여행에서 돌아온 에우독시아의 곁에서 말없이 보리차를 들이켰다.

아무리 보리차를 들이켜도 그의 타는듯한 갈증은 사라지지를 않았다.

“괜찮아요. 다시 지으면 그만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힝···. 아끼던 꽃들이었는데···.”

“미안해···.”

프로바는 마리우스의 사과에도 여전히 잿더미를 만지작거리면서 울상을 지을 뿐이었다.

마리우스는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이를 지켜보던 데키무스에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이내 딴청을 부리면서 이를 무시했다.

“프로바양.”

“네, 네에?”

“꽃이야 다시 기르면 그만이잖아요. 그렇게 울상이면 곧 태어날 자식한테도 안 좋답니다.”

“네···.”

에우독시아가 조곤조곤한 말투로 프로바를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마리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테르만티아가 쌍둥이들에게 딸랑이를 흔들어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관리를 그렇게 잘한 사람 아들이···. 흠흠~”

“아빠! 엄마! 나 나무 위에 올라갔어요!”

참으로 즐거운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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