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화 (169/187)

로마 오펜스 - 4

마리우스가 게르마니아에서 호노리우스의 분뇨를 맛보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을 때, 로마에서도 스틸리코와 올리브리우스 간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그동안에는 겉으로나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척이라도 하던 스틸리코와 올리브리우스였지만, 게르마니아 파병문제로 인해 시작된 대립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콘스탄티우스에게 사람을 보내서 로마로 불러와 주게나.”

“병사들을 이끌고서 말입니까?”

“그래, 전부 끌고 오라고 해.”

“무슨 일로 그러시는 겁니까?”

“부대를 재정비한다.”

“음···. 전투도 없었는데 말입니까?”

“늘상 있는 일이 아닌가.”

스틸리코의 이런 행보는 올리브리우스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고, 평소에 스틸리코를 눈여겨보던 올리브리우스는 한발 앞서서 알라리크를 비롯한 로마군에게 칙령을 내렸다.

[모든 부대는 전염병이 진정될 때까지 현상태유지.]

올리브리우스는 스틸리코가 부대를 왜 움직이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으나,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다는 생각에 재빠르게 움직인 것이었다.

물론 그런 올리브리우스의 행동은 스틸리코가 유도한 것이었고 말이다.

올리브리우스의 칙령이 이탈리아반도 내에 퍼져나가고 이탈리아 내에 있는 모든 부대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단 하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수도에 긴급상황이 발생했다는 말입니까?”

“그래, 당장 움직여야 한다.”

“어···. 폴로님이나 황제 폐하의 명령이 아니면 움직일 수가 없는데···.”

“스틸리코 장군의 명령이다.”

“아···.”

스틸리코는 로마 내에 동요가 발생했다고 속이면서 라벤나에 주둔 중인 친위군단을 움직여서 로마로 끌고 오게 했는데, 이 사실을 알아챈 올리브리우스가 이를 막고자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은 후였다.

하루 만에 로마를 포위한 스틸리코는 망설임 없이 올리브리우스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로마의 가짜황제 반역자 올리브리우스는 들어라! 지난날 어린 황제를 윽박질러서 황위를 받고서는 그 전권을 휘둘러 로마를 어지럽게 한 너의 죄가 모두를 분노케 했다! 로마를 지키겠다는 그 선언조차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네놈은 더 이상 로마의 황제가 아니다!”

로마를 포위한 스틸리코의 말에 올리브리우스가 침음성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스틸리코에게 한 방 먹었군.”

원래 계획대로라면은 스틸리코가 불미스러운 움직임을 보였을 때 암살하려 했지만, 그의 주변을 지키는 호위병력과 그의 죽음으로 인해 반발할 병사들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인 파장으로 인해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게 오늘날에 이르렀다.

물론 스틸리코가 로마를 포위한 상황에서도 올리브리우스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스틸리코는 나름대로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친위군단을 움직여서 자신을 공격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알라리크에게 사람을 보낼 수 있겠나.”

“한 명 정도라면···. 어떻게 가능할 겁니다.”

“그럼 이렇게 전하게.”

******

“플로렌스에 주둔 중인 로마군을 치라고···?”

“예, 그렇습니다.”

“정말 황제 폐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셨다고?”

“네, 바로 움직여달라고 하셨습니다.”

“으음···.”

알라리크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평소와는 다른 올리브리우스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거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지금 로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올리브리우스가 자신에게 이런 명령까지 내린 것을 보면 둘 중 하나인 듯싶었다.

“스틸리코가 죽었거나···. 올리브리우스가 스틸리코에게 선수를 빼앗겼거나, 둘 중 하나로군.”

“저는 말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어느 쪽도 내게 좋은 소식은 없구나.”

알라리크가 고민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말을 전하러 왔던 올리브리우스의 부하가 그를 채근했다.

“그동안 폐하께서 베푸셨던 은혜를 생각하시지요.”

“은혜, 은혜라···.”

그 말에 알라리크 부하들의 표정이 하나둘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장 알라리크가 명령을 내린다면 눈앞에 있는 녀석의 허리를 부러트려 버릴듯한 얼굴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알라리크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갈리아에 있는 아타울프를 불러와.”

“장군의 결단을 폐하께서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셔야지요.”

전령이 기쁜 얼굴로 돌아가자 알라리크의 부하들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전하, 올리브리우스를 따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로마에 무슨 일이 생긴듯한데···.”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올리브리우스에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하나뿐이야. 나머지는 전부 추측의 영역이지.”

“그럼 우리가 조금 더 강경하게 나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아쉬운 건 저들이지 않습니까.”

알라리크가 재밌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올리브리우스에 요구하면? 그다음에 일이 끝나고 나면 우리에게 뭐가 남지?”

“아···. 그건···.”

“어차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머리를 바짝 숙이고서 힘을 기르는 것뿐이야···.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게.”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럴 수 있지···. 우선은 아타울프를 불러들이고 병사들을 준비시키도록 하게, 우선은 플로렌스를 장악하고서 다음 명령을 기다려야 하니 말이야.”

알라리크는 평소처럼 태연하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천천히 도시 외곽에서 주둔하고 있던 자신의 병사들을 플로렌스 안으로 들이기 시작했다.

콘스탄티우스도 며칠 동안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알라리크를 경계하면서 유사시에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부대를 정비하면서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

이탈리아반도에 긴장감이 감돌 무렵.

게르마니아에서는 불타버린 화단과 후원을 바라보며 마리우스가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하마터면 총독궁을 다 태워 먹을 뻔했어! 호노리우스가 날 죽이려고 수를 쓴 거라고!”

“각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우리의 예상보다 무기의 위력이 더 강했던 것이지요.”

“다루기도 어렵고, 쓸데없이 위력만 강한 무기를 어디에 써먹겠나? 기껏해야 공성전에서나 그 쓸모가 있겠지.”

“그래도 물로 끌수 없는 불은 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봐!”

“예, 예 전하!”

마리우스는 시연을 했던 기술자를 불러서 물었다.

“이거 만드는데 돈은 얼마나 들어.”

“예? 그것까지는 잘···. 제가 알기로는 물과 닿으면 스스로 열을 내게 하는 가루와 찐득한 검은 물이 굉장히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냐고.”

“어, 음···. 대략 이 정도···?”

기술자는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금화 쉰 개에 이 정도 위력이라고?”

기술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오백 개는 되어야···.”

기술자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오, 오천 개란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무기 하나에 금화 오천 닢이 가능한 말이야!!”

마리우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금화 오천 개짜리 무기를 선물로 보내줬다니···. 이럴 거면 그냥 돈으로 주지 크흠···.”

“이러니저러니 해도 황제 폐하께서 전하를 아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 아닙니까.”

“크흠···. 뭐, 힘들게 만들어서 선물로 보내줬으니, 잘 써봐야지.”

마리우스의 말에 우물쭈물하면서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던 기술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그것이···.”

“더 할 말이라도 있나?”

“황제 폐하께서 이 무기를 만드실 때, 전하의 사재를 운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동방에 있던 전하의 재산만으로는 제대로 된 보수가 지급되지 못해서···.”

기술자의 말이 이어질수록 마리우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추가금을 지급해주셔야 합니다.”

“호노리우스는 한 푼 안 내고?”

“황제 폐하께서는 이 무기에 들어간 최신기술을 연구하신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래서 돈 내냐고.”

“한 푼 안 내셨습니다···.”

“돌아버리겠군.”

마리우스는 호노리우스의 행동에 허탈해하며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어차피 재산이야 또 모으면 되는 일이었지만, 몇 번이고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 호노리우스의 행보에 어떻게 하면 호노리우스를 혼내줄지 고민했다.

“전하···.”

“돈은 청어조합에 있는 헨리쿠스 단돌로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받아가게, 내가 잘 말해두겠네.”

“예, 알겠습니다.”

마리우스는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는 기술자에게서 관심을 끊고는 데키무스에 명령을 내렸다.

“내가 폴로와 동방에 계신 장인어른께 편지를 써줄 테니, 헨리쿠스한테 콘스탄티노플로 가라고 해.”

“콘스탄티노플이요? 갑자기 왜 그곳으로 보내시는 겁니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네는 놈에게 내 말만 전해주면 돼. 나머지는 헨리쿠스가 알아서 할 일이야.”

“흠···. 알겠습니다. 그럼 저 호노리우스의 분노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분노는 무슨···. 쯧···. 그래도 영 쓸모없는 물건은 아니니까 일단은 알비스 장벽의 주요 도시에 배치해둬.”

“알겠습니다.”

마리우스는 명령을 되새기면서 돌아가려는 데키무스를 불러세우면서 손가락으로 화단을 가르치며 말했다.

“그리고 오늘이 가기 전에 저거 말끔하게 치워둬.”

******

한편, 게르마니아를 뒤지면서 훈족 패잔병들의 뒤를 쫓고 있던 가이세리크는 장벽 너머에서 울딘의 뒤를 쫓았다.

원래 마리우스의 명령대로라면 장벽 내의 게르마니아에서 패잔병들을 잡아야 했지만, 가이세리크는 전공을 위해서 병사를 둘로 나누어 장벽 바깥까지 울딘의 뒤를 쫓았다.

“장군, 너무 멀리 나온 게 아닐지···. 울딘의 흔적도 끊긴 지가 오래입니다.”

“울딘의 흔적이 끊겼다는 건···. 놈이 근처에 있다는 증거다. 울딘을 잡기만 한다면···. 이번 전쟁에서 제일의 공적은 우리가 될 것이야!”

“우리가 받은 명령은 패잔병을 수색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좋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하의 말은 합리적이고 옳은 말이었지만, 가이세리크는 이를 듣지 않았다.

지난 훈족과의 전쟁에서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우지 못한 가이세리크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현재 게르마니아의 세력 구도를 보면 마리우스의 아래에서 거대한 몇몇의 부족들과 기타 군소부족들이 불편한 동거를 하는 상태였다.

예전처럼 서로 무기를 들고서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그 대신 마리우스의 총애를 받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다른 부족민들을 위해서라도 공을 세워야만 해.”

“고작 그런 이유로···.”

“자네들에게는 고작 그런 이유겠지만, 내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야!”

“쯧···.”

병사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가이세리크를 바라봤으나, 일단 그는 마리우스의 예비사위였기에 묵묵히 명령을 따랐다.

그리고 기약 없이 오데르강 인근을 조사하던 가이세리크와 게르마니아 기병대는 결국···.

“젠장!”

“여기 있었군. 울딘.”

울딘은 다급하게 안장을 벗겨놓은 말 위에 올라 도망치려 했지만, 가이세리크의 창이 그의 어깻죽지를 꿰뚫으면서 울딘이 말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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