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오펜스 - 3
아편···.
참으로 골때리는 물건이었다.
분명 장점도 있고, 그 장점이 사람을 살리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을 상쇄시킬 정도로 단점이 압도적이었다.
중독.
아편은 화려한 만큼이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그건 사용자에게 쾌락과 황홀감을 가져다주면서도 서서히 죽음으로 인도하는 중독성에 있었다.
물론 기르는 것만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아편 자체는 로마와 로마군 내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는 했다.
물론 지금의 게르마니아 군은 호노리우스의 부하 연구원들의 실험결과로 나온 모르핀으로 대체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것 때문에 예산이 널뛰기하듯이 늘어났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것과 더불어서 게르마니아 내에 있는 아편을 퇴치하려고 계획 중이었는데···. 프로바가 태연하게 그저 꽃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기르는 것을 보고 있으니, 조금 기분이 묘했다.
그만큼 로마인에게 아편은 떼놓기 힘든 물건이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꽃이 아름답기는 한데···. 제 취향은 아니군요.”
“어머, 그래요?”
내 말을 들은 프로바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따라다니는 시녀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화단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이러면 되겠죠?”
“어, 음···.”
“우리 잠깐 걸을까요?”
프로바는 자연스럽게 내 오른팔에 팔을 걸고서는 한적한 후원으로 이끌었다.
전임 총독이 공을 들여서 가꾼 후원은 한적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것이 가끔 기분이 울적하거나 일에 지쳐서 데키무스 몰래 도망 나오기 좋은 곳이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대부분 혼자였고, 다른 이와 함께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기가 좋겠네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게 있잖아요···.”
프로바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서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프로바가 평소에도 이런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이 정도까지 행동하는 것을 보아하니 뭔가 중요한 게 있긴 한 모양이었다.
“지난번에 있잖아요···.”
“예? 지난번이라면···. 언제를 말씀하시는지···?”
“전쟁이 있기 전에···. 그, 그···. 그거요.”
프로바는 굉장히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떨궜다.
머릿속을 뒤지면서 전쟁 전에 프로바와 있었던 접점들을 하나둘씩 떠올리던 중의 하나가 떠올랐다.
“아!”
“헤헤···.”
“설마···.”
그럴 리가 없었다.
에우독시아나 테르만티아와도 제법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고민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무슨 착오가 있는 게 분명했다.
“유모가 확인해줬어요.”
“아, 그럼···.”
“아이 이름은 뭐로 할까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프로바는 어리바리한 내 모습도 좋은지 수줍게 나를 껴안으면서 남몰래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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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표정으로 집무실로 들어오는 마리우스를 보며 데키무스가 조금 피곤하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멍한 표정이시로군요.”
“아, 데키무스···.”
“예, 각하.”
“후우···. 나 애 아빠 됐다.”
“그거야 진즉에 있던 일이 아닙니까? 설마 또 아이가 생기신 겁니까?”
“어.”
마리우스의 말에 데키무스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역시 전하께서는 여성 편력만큼이나 후계자 생산에 열중하시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어느 분입니까?”
“프로바.”
“......?”
“그렇게 됐다.”
데키무스는 입으로 가져가던 보리차를 줄줄 흘리면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말없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데키무스는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서는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각하.”
“왜 부르나 데키무스.”
“어, 음···.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시군요.”
“칭찬으로 듣겠네.”
“올리브리우스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무슨 태도를 보일지···.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이번 일로 올리브리우스와도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예 게르마니아를 들어다 바치시지요.”
“농담이야 데키무스.”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잠시 농담을 주고받던 마리우스와 데키무스는 다시 심각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아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분명 올리브리우스가 한 다리 걸치려고 하겠지.”
“한 다리만 걸치려고 들겠습니까? 어쩌면 프로바를 각하의 공식적인 부인으로 만들어서 게르마니아를 홀랑 집어삼키려고 할지도 모르지요.”
“영원히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러기에 아랫도리를 잘 지키셨어야지요.”
“나도 한 번에 될 줄 몰랐지! 알았으면 조심했을 것이고 말이야.”
“끄응···. 이런 걸 보면 올리브리우스가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 기분도 드는군요.”
“끄응···. 어쩌지?”
둘은 한참을 의논했으나 별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생긴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혹여나 아들이 태어난다면 올리브리우스가 조카를 핑계 삼아서 게르마니아의 일에 간섭하려 들 수 있었기에 골치가 아팠다.
물론 마리우스가 버티고 있는 한은 올리브리우스가 함부로 게르마니아에 손을 뻗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마리우스가 급사하거나 올리브리우스가 생각보다 오래 살기라도 한다면 후계 구도가 불안정해졌다.
“한번 올리브리우스를 밟아놔야 하긴 하는데···.”
“명분이 없는데 무슨 수로요.”
“흠···. 글쎄, 뭔가 건수가 하나라도 잡히면 좋을 텐데 말이야···.”
“능구렁이 같은 올리브리우스가 건수를 내주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새롭게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습니다.”
데키무스의 말대로였다.
이번 울딘과의 전쟁 이후로 게르마니아에는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장벽을 넘어온 훈족들의 현지 약탈로 재산상에 피해를 본 사람들도 많았다.
거기에 막시무스가 받아들인 장벽 너머의 이민족들 또한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었다.
“피난민들이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럼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게르마니아에 종속되는 것도 거부하고 있더군요.”
“이런 미친놈들을 보았나.”
******
마리우스가 장벽 너머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이들을 받아들인 일은 언제나 그랬듯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훈족들에게 크게 혼난 이들은 울딘이 대패하여 줄행랑을 쳤음에도 다시 장벽 밖으로 돌아가지 않고 훨씬 살기 좋은 게르마니아에 눌러앉았다.
“게르마니아 좋아요우.”
“싸랑해요 마리우스.”
“막시무스 장군 최고다. 우리는 로마인이다.”
“로마최고에요우.”
어차피 척박하고 살기 힘든 장벽 바깥의 세상보다는 질리기는 하지만, 원한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청어와 잘 가꾸기만 한다면 그럭저럭 소출을 기대할 수 있는 풍요로운 땅이 있는 게르마니아에서 살고 싶었다.
그들을 지원해서 장벽밖에 있는 이민족들에게 영향력을 넓혀서 비스와강 유역까지는 확장하고자 하였지만, 오히려 그 인근에 사는 원주민들이 대거 건너오는 상황을 만들었다.
“여기는 말 타고 다니는 놈들이 없어서 좋구먼.”
“인근의 영주인가 뭔가 하는 사람헌티 여기서 살 거라고 말하면 애들을 공짜로 가르쳐주고 매달 밀가루도 나눠준다는데요?”
“그짓말말라!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그짓말 아임다.”
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문명 세계의 사회시스템에 놀라면서 일가친척을 전부 이끌고서 게르마니아로 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라인강 너머의 게르만인들 보다 더 험난하고 거친 자연환경에서 살아온 이들답게 다른 누군가에게 종속되기를 꺼렸다.
그들에게 집단이라 함은 한 마을에 사는 가족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 돈을 거둬간단 말이오?”
“이곳에서 주민으로 살아가겠다고 했으니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자비로우신 전하께서 세금을 반 이상 감면해주셨으니 군소리 말고 내게.”
“돈 없소.”
“우리는 물건도 받네.”
“이제 막 건너왔는데 뭐가 있겠습니까?”
“흠···. 그럼 정해진 날짜까지 지정된 곳으로 오게나, 세금은 노역으로 대신에 하도록 하지.”
“노역이 뭡니까?”
“광산에서 일하거나, 성벽을 쌓는 일을 할 거야.”
“우리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합니까?”
“하아···. 조금 전에도 설명했다싶이···.”
세금에 대한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민족들에게 이러한 일들은 그들에 대한 차별로 받아들여졌고, 이미 라인강 너머에서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우리도 로마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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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안 하느니만 못 한 일이 되어버렸군.”
“어쩌겠습니까···.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시간이 해결해주기만을 기다려야겠지요.”
“매번 큰일을 끝내고 나면은 뒷수습에 골머리를 썩이는군···. 왜 매번 이러는 것이지?”
데키무스는 문제는 각하이십니다!
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내기 싫었고 말한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웃으면서 말을 돌렸다.
“신은 가끔씩 시련을 내려서 사람들을 시험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니 하시지요.”
“나는 신을 안 믿는데.”
“하나쯤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각하께서 종교의 자유화를 포고하신 이후로···.”
“잠깐, 무슨 놈의 자유화?”
“종교의 자유화 말입니다.”
“내가 언제 그랬어?!”
“지난번에 게르만 인들을 잘 포용하려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토속종교도 문화 일부라고 판단해서···.”
마리우스의 표정이 충격으로 굳어갈수록 데키무스의 눈동자도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까?”
“허···. 이게 무슨···. 아니, 허 참···.”
“그···. 아리우스파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시기에 그렇게 한 것인데···.”
“그건 내가 교회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기에 벌어졌던 일이 아닌가···.”
“말을 안 하셨는데,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 이것 참 당황스럽군.”
마리우스는 그제야 아리우스파 신도들이 왜 그렇게 전도에 목숨을 걸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이교를 믿는 야만인들을 교화하는 과정이었다.
반면에 게르만인들의 입장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신 대신 다른 신을 믿으라고 하니 화를 낸 것이고 말이다.
“지금이라도 모든 종교를 탄압한다고 하면 안 되겠지?”
“죽기 직전까지 반란군과 싸우고 싶으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겠지···.”
새로 등장한 종교문제에 마리우스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으니, 데키무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보고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쁜 소식이면 그냥 말하지 말고 자네 선에서 처리해주게나, 오늘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
“황제 폐하께서 전쟁에 도움이 될만한 신병기를 보내주셨다고 하는데···. 음···.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뭐길래 그래?”
마리우스는 데키무스의 뒤를 따라 비품창고에 있는 호노리우스의 신무기를 감상했다.
“이거 이름이 뭐라고?”
“호노리우스의 분노···. 라고 하더군요.”
“이름 짓는 것도 참···.”
마리우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칭 호노리우스의 분노라고 부르는 신무기를 둘러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포와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대포와는 달라 보였다.
뒤에 달린 자그마한 통에서는 매캐하면서도 머리가 핑 도는듯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검은 물이 담겨있었고, 그 뒤에 있는 거대한 솥에서는 찰랑거리는 물이 들어있었다.
“무기명을 호노리우스의 분노가 아니라 분뇨라고 지어야겠는데.”
“푸흡.”
마리우스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빵 터지자 마리우스가 히죽 웃으면서 그들에게 한마디 했다.
“웃어?”
“아, 아닙니다!”
“농담일세,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런가?”
“각하, 무기 시연 시작하겠습니다.”
“어, 그래···. 그런데 이거 위험한 거 아니지?”
“예, 듣기로는 물건을 조금 태울 뿐이라고 합니다.”
“태운다고.? 흠···. 일단 시작해보게.”
마리우스는 미리 마련된 좌석에서 느긋하게 무기 시연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무기 시연자로 나온 기술자는 마리우스에게 인사를 하고서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솥에 달린 기다란 끈을 잡아당기는 것으로 시연을 시작했다.
“음?”
끈만 잡아당겼을 뿐인데, 솥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더니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러자 기술자가 검은 물이 들어있는 통과 연결된 심지에 불을 붙이니 순식간에 불을 뿜어내면서 프로바의 화단을 녹여버렸다.
“뭐야! 당장 불 꺼!”
마리우스가 당황하면서 명령을 내리자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불을 끄기 위해서 물을 쏟아부었지만, 불이 꺼지기는커녕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호노리우스!”
“각하, 진정하십시오!”
결국, 불은 프로바가 아끼는 화단과 그 옆에 있던 에우독시아가 피크닉을 즐기는 후원까지 깡그리 태워버리고 나서야 겨우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