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166/187)

로마 오펜스 - 1

게르마니아에서의 전쟁이 끝났다.

장벽은 무너졌고, 수많은 병사와 시민들이 죽었으며 어마어마한 전비가 투입되었고 립스크에서 동원된 병력만 해도 양측을 합쳐서 대략 20만 명에 가까웠고, 사상자는 10만 명이 넘어갔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전투에서 승리했고,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승리의 기쁨에 환호하는 병사들 앞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같이 환호하던 마리우스였지만, 집무실로 돌아와서는 뒷수습에 골머리를 앓았다.

“총원 13만 8천명중. 부상 55643명, 사망자 11287명입니다.”

“피가 많이 흘렀군.”

“그래도 쳐들어온 훈족 놈들을 괴멸시켰으니 무의미한 희생은 아니었습니다.”

“쯧···. 도망친 훈족 놈들은 어떻게 되었나?”

“가이세리크가 병사들과 함께 말을 갈아타고 뒤를 쫓고 있다고 하니, 곧 전부 잡혀 올 겁니다.”

“그래···. 죽이지는 말고 최대한 잡아 오라고 해.”

마리우스는 비를 맞은 채로 한참을 내달리며 싸운 탓에 조금 피곤해졌는지 꾸벅꾸벅 졸면서 말했다.

“며칠 동안은 훈련도 작업도 하지 말고 병사들을 푹 쉬도록 내버리어 두게, 나도 좀 쉬어야겠어···.”

“예, 각하···.”

******

한편, 도착했어도 진즉에 도착했어야 할 스틸리코의 지원군은 전쟁이 끝났음에도 아직 플로렌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르만 야만인 놈.”

“겁쟁이 새끼.”

스틸리코의 명령에 따라 갈리아군단을 보충받은 콘스탄티우스는 당장에라도 병력을 이끌고서 게르마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올리브리우스가 보낸 고트족의 지도자 알라리크가 번번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스틸리코 장군의 명령을 듣고 게르마니아로 가는 겁니다. 알아들으셨으면 이제 비켜주시지요.”

“황제 폐하께서 당분간 플로렌스를 지나려는 모든 이들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리셨음을 모르십니까? 저도 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무슨···. 지금 게르마니아에 훈족들이 쳐들어왔단 말입니다!”

콘스탄티우스의 말에도 알라리크는 했던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로마의 황제이신 올리브리우스 폐하의 명령으로 플로렌스의···.”

“됐습니다. 이번 일은 스틸리코 장군에게 보고할 것이니 그리 아시지요.”

“편할 대로 하시죠.”

콘스탄티우스의 보고를 들은 스틸리코 또한 크게 분노하면서 올리브리우스를 찾아가 따졌다.

“폐하!”

“스틸리코 장군, 마침 향후의 국방정책에 대해 논의코자 하였는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왜 제 병사들을 막고 계신 겁니까!”

“막는다니요?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갑작스럽게 찾아오셔서 그러니 조금 혼란스럽군요.”

올리브리우스는 여유롭게 스틸리코를 타일렀으나, 이미 잔뜩 흥분해서 눈이 돌아가 버린 스틸리코에게 그런 것이 들릴 리가 없었다.

“지금 로마의 적들이 국경을 넘어와서 공격당하는 중인데, 왜 병사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 겁니까? 로마를 지키는 게 당신의 의무 아니었습니까!”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오해는 무슨 놈의 오해! 지금 당신의 부하인 알라리크가 당신의 명령으로 내 병사들을 가로막고 있단 말입니다!”

“음···. 이봐요 스틸리코 장군.”

“그동안은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전부 로마를 위한 일이라 믿고 참고 있었지만,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까지 왔군요.”

“스틸리코!”

스틸리코는 올리브리우스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올리브리우스! 당장 그 빌어먹을 고트족 새끼와 병사들을 뒤로 물리시오!”

“말이 거치시군요.”

“지금 게르마니아가 공격당하고 있는데, 황제라는 사람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앞길을 방해하고 있으니 화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후후후···. 스틸리코 장군, 제가 언제 방해했다는 겁니까?”

“뭐요? 조금 전에 그렇게 알아듣게 설명을 해줬거늘···. 말장난으로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보시오!”

“말장난이라뇨? 저는 남부에서 돌고 있는 전염병들이 로마 전역으로 처져나가지 않게 막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뭐?”

스틸리코는 한방 얻어맞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올리브리우스를 돌아봤다.

그의 말처럼 지금 이탈리아반도의 남부에 돌고 있는 전염병은 어느 정도 그 기세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아직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올리브리우스가 내린 플로렌스 봉쇄령은 따로 말이 나올만한 명령인 것은 맞았으나, 그렇게 큰 문제가 있는 명령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말장난은 그만두시지요.”

“하실 말씀이 그것뿐이라면 이만 물러나시지요. 오늘의 행동은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스틸리코는 뭐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주변에서 지켜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올리브리우스를 지키는 친위대 병사들이 천천히 다가왔고, 환관들은 그를 지켜보면서 쑥덕거리고 있었다.

“쯧···.”

스틸리코는 혀를 차고서는 몸을 돌려서 올리브리우스의 어전을 벗어났다.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올리브리우스는 웃음을 잃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스틸리코를 좇아가서 무슨 행동을 하는지 감시해, 쓸데없는 짓을 꾸민다면···.”

올리브리우스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처리해.”

“가족들도 말입니까?”

“그래, 가족들까지 전부.”

“......”

“대답은?”

“알겠습니다···.”

******

아그리피넨시스로 돌아온 마리우스의 개선식에는 수만 명의 군중이 몰려들어 그를 반겨주었다.

시민들은 당당하게 아그리피넨시스를 행진하는 병사들에게 환호를 보내면서 환영했다.

“이쪽을 봐주세요. 전하!”

“마리우스! 마리우스!”

“게르마니아의 대추장 마리우스 전하 만세!”

마리우스는 자신을 대추장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말한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보이질 않았다.

“누가 자꾸 대추장이라고 하는 거야?”

“이제는 인정하시지요···.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쯧···. 병사들도 많이 죽고 다쳤는데, 이렇게 환호를 받으려니 오히려 창피하군.”

“그래도 이게 승자의 여유가 아니겠습니까?”

마리우스는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총독궁으로 향했고, 아그리피넨시스의 거리에서는 병사들과 시민들이 어울려 축제가 벌어졌다.

집무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우스는 잠시 옛 생각에 잠기려고 했지만, 마리우스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그의 자유를 방해하는 이가 있었으니···.

“아빠!”

“숙부님.”

바루스와 아에티우스가 집무실로 쳐들어온 것이었다. 아직은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마리우스에게 달려온 바루스는 그대로 몸을 던지면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물론 그걸 받아들이는 마리우스는 돌덩어리가 날아든 것처럼 묵직한 충격에 허리를 부여잡았고, 말이다.

“커 헉.”

“아빠! 전쟁터 다녀왔다면서요!”

“으음···. 그래, 무슨 일이니 바루스.”

“나쁜 훈족들이랑 싸웠는데,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엄마가 물어보래요!”

“조금 피곤한 것 말고는 괜찮단다.”

“숙부님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 고맙구나! 아에티우스···. 아! 그렇지, 지난번에 물어봤던 건 생각해봤니?”

마리우스의 갑작스러운 말에 아에티우스가 당황하면서 되물었다.

“예? 무슨 말이요···?”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잖아.”

“네!”

아에티우스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눈빛이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아직도 그 생각 그대로야?”

“네, 저는 군인이 되고 싶어요.”

“쓰읍···.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니?”

“예, 후회 안 할 거예요!”

마리우스는 아에티우스의 생각을 바꿔놓으려고 노력했다.

“전쟁터에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며칠을 굶는 일도 허다하다. 거기에 너를 죽이려는 적들은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너를 괴롭혀댈 거야.”

“괜찮아요! 저는 많이 안 먹는 편이에요!”

“편안한 침대는 안녕이고, 매일같이 들쥐가 돌아다니고 온갖 벌레들이 들끓는 질척질척한 바닥에서 잠을 청해야하고, 비가 온다고 막아줄 천장도 없어.”

“괜찮아요! 저는 잠이 없는 편이에요!”

“후우···. 그뿐인 줄 아느냐? 온몸에 쇳덩어리를 매달고도 쇳덩어리 같은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먼 거리를 쉬지도 않고 움직여야 한다.”

“괜찮아요! 저는 걷는 것도 좋아해요.”

얼굴 한번 찡그리는 법 없이 생각보다 활기차게 대답하는 아에티우스의 모습에 마리우스가 한숨을 내쉬고서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면서 말했다.

“모름지기 훌륭한 장군은 병사들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네가 입대한다면 장교가 아니라 말단병사부터 시작할 거다. 아무도 너를 내 조카로 여기는 게 아니라 말단병사 아에티우스라고 생각할 거야.”

“괜찮아요. 오히려 숙부님의 이름 없이 제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으음···. 그렇구나···.”

마리우스는 아에티우스의 단호한 행동이나 태도에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서는 항복했다.

“그래, 다음 달 초에 훈련소에 입대하거라···. 파라몬드에는 미리 말을 해둘 테니, 짐은 싸지 않아도 좋다.”

“와아! 감사합니다. 숙부님!”

“뭐야? 뭐야? 나도 할래! 아빠 나도 할래요!”

“바루스, 넌 아직 어려서 안 돼.”

“형이랑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왜 나만 안 시켜줘? 나도 시켜줘!”

바루스까지 떼쓰기 시작하자 마리우스가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말했다.

“바루스, 넌 엄마한테 허락받고 와.”

“어, 엄마? 누구한테!”

“전부.”

“히잉···. 엄마한테 혼날 텐데···.”

“그럼 안 되는 거지.”

“나도 시켜줘요! 나도 군인 할래!”

“안된다니까 그러네.”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바루스의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지막지한 힘에 마리우스가 휘청휘청했다.

나름대로 힘 하나는 자신 있는 마리우스였지만, 바루스는 그런 마리우스를 열두 살의 나이로 뛰어넘었다.

“바루스, 그만해.”

“나도 해줘! 해줘! 해줘! 해줘어!”

“엄마한테 허락받으라니까 그러네.”

“엄마는 허락을 안 해줘요!”

“그럼 안 되는 거지!”

바루스는 그 어떤 설득에도 굴하지 않고 떼를 써대기만 했다. 마리우스가 완전히 질려버릴 때쯤.

데키무스가 찾아왔다.

“각하, 안에 계십니까?”

“데키무스? 자네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들어와서 이 장난꾸러기 좀 떼어내 주게.”

마리우스의 말에 데키무스가 집무실로 들어오자, 바루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폴짝 뛰어내리고는 허리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예? 아, 반갑습니다. 바루스 님.”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버지도 안녕히 계세요.”

“뭐야.”

마리우스는 집무실을 나가는 바루스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짓고서는 데키무스에 물었다.

“그래, 축제 기간에도 일하고 있는 데키무스···. 무슨 일이기에 내 휴식시간을 방해했나?”

“급한 일은 아닙니다. 이번에 상처를 입고 제대하는 병사들과 죽은 병사들에 대한 보상금에 대한 건데···. 생각보다 돈이 제법 나갑니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

“금화로 일만 닢은 우습게 듭니다.”

“이, 일만?!”

마리우스는 매우 놀라며 물었다.

“거짓말하지 마! 뭐가 그렇게 많이 나가?!”

“그···. 각하께서 군인들의 처우개선을 목적으로 군인복지에 투자를 많이 하셨잖습니까? 이건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사망위로금과 정착지원비만 계산한 겁니다. 전투상여금에 추가 동원비까지 계산하면···. 오만 닢 정도까지 예상합니다.”

“오, 오만 닢···?!”

“지금 게르마니아에 그만한 재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릴 겁니다.”

“으음···. 어쩐다···.”

이에 데키무스가 조심스럽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

“그래서 청어조합 측과 이를 논하고자 합니다.”

“청어조합···? 그놈들이 왜.”

“각하의 신뢰를 담보로 해서 금화 삼만 닢까지를 책임지겠다고 하더군요.”

“굳이 돈이 있는데, 그들에게 빌려야 하나?”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일단은 서류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제법 흥미로워서 가져온 겁니다.”

“서류?”

마리우스는 서류를 몇 번 둘러보더니, 이윽고 자세를 고쳐잡으면서 다시금 정독했다.

몇 번이나 정독하던 마리우스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데키무스에 물었다.

“이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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