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채찍 - 6
게르마니아에서 벌어진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마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만큼 게르마니아에는 마리우스를 감시하려는 눈이 많았는데 지금 로마의 권력을 양분하고 있는 올리브리우스와 호노리우스는 말할 것도 없었고, 스틸리코 또한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심어뒀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 마리우스가 사람을 사냥했다고!”
“그러니까 사냥감이 모자라서 사람을 풀어뒀다는 그런 건가···?”
“마, 마리우스가 멀쩡한 사람 눈을 뽑았다고?!!”
물론 사람을 심어뒀다고, 그 정보들이 제대로 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본디 정보라는 것은 왜곡되기 쉬웠고, 게르마니아의 지리적인 특수성과 정보원들의 올라갈 수 있는 직급이 어우러져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마리우스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런 일을 벌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사냥감들은 누구였는지 아느냐?”
“예, 제가 듣기로는 훈족 병사들이 그 대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게르마니아가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훈족···? 훈족이 게르마니아까지는 무슨 일로 간 것이지? 국경선에서 훈족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던가?”
“지난번에 동방에서의 분란이 끝나고 돌아간 이후로는 근거지에 틀어박혀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근거지 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으음···. 당분간은 국경선 인근의 기동부대들을 시찰하면서 준비가 잘 되었는지 확인해야겠군.”
잠시 고민하던 스틸리코는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부관에게 말했다.
“그, 알렉산드리아에서 돌아왔던 갈리아 군단 중에서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어느 정도지?”
“한 개 군단, 그러니까 6000명에서 8000명 정도는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을 노리쿰으로 보내서 국경방어선을 보강하게, 할 수 있겠나?”
“예, 알겠습니다.”
마침 스틸리코와 비슷한 시기에 소식을 전해 듣고 있던 올리브리우스가 정보원에게 물었다.
“훈족? 훈족들이 왜 여기까지 온 건가?”
“그거까지는 저도 잘···.”
“흠···. 그래도 좋은 정보였다.”
올리브리우스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마리우스가 뜬금없이 사람을 사냥했다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는데, 그 대상이 훈족이라는 게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마리우스가 사람사냥을 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훌륭한 공격꺼리가 되었지만, 그 대상이 훈족이라는 것을 들으니 골치가 아파졌다.
이게 훈족의 침공을 마리우스가 성공적으로 격퇴해낸 것을 정보원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보원의 말대로 마리우스가 정신이 나가서 사람사냥을 했는데, 그 대상이 우연하게도 훈족이었는지가 문제였다.
“일단은 마요리아누스에 연락해서 당분간은 돌아오지 말고 게르마니아에서 마리우스를 감시하라고 전해주겠나?”
“예, 알겠습니다.”
한편,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호노리우스는 오히려 안심하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하하하···.”
“뭐가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콘스탄티노플에 새로 지어진 연금술 공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호노리우스는 폴로가 전해준 소식을 듣고서는 웃음을 터뜨렸다.
폴로는 왜 웃는지 궁금해했지만, 호노리우스는 그저 웃으면서 자신의 발명품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왜 웃으시니까요?”
“웃을만하니까 웃지!”
“예? 마리우스 각하가 훈족 놈들이랑 한판 붙었다는 게 그렇게 웃긴 일입니까?”
“아니···. 그게 말이야···. 마리우스가 훈족 놈들이랑 싸우게 되면은···. 당분간은 우리한테서 관심을 안 가지는 게 아닐까?”
“아니, 그게 중요한 겁니까?!”
“아, 아닌가?”
“쯧쯧쯧···. 폐하, 마리우스 장군을 두려워하실 시간에 그분께 인정받으실 생각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인정받는다고···? 어떻게 말이야?”
“그거야 폐하께서 생각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이걸로는 안될까?”
호노리우스는 찰랑거리는 액체를 폴로의 눈앞에 들이밀었지만, 폴로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게 뭡니까?”
“빨래할 때 쓰면 옷이 새하얘지더라고.”
“...? 그걸 어디에 씁니까?”
“몰라. 일단은 만들어봤어.”
“하아···. 그런 걸 보고 마리우스 각하께서 참 좋아하시겠습니다. 예?”
“아, 그럼 이건 어때? 미역 줄기를 가지고 놀다가 찾은 건데···. 상처에 뿌리면은 막 거품이 올라와!”
폴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일단은 성벽이나 마저 짓지요.”
“그게 좋겠지?”
“예, 시간이 어떻게든 해결해 주겠지요.”
******
몇 달 동안의 짧은 평화가 끝나고, 게르마니아에는 다시금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게르마니아의 모든 병사와 시민들은 훈족과 새로운 전쟁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훈족들은 지난 비디메르의 침공 당시에 게르마니아를 침공하여 수많은 이들을 죽였던 이들이었다.
그뿐인가? 심심하면 메뚜기떼처럼 몰려와서 부족을 짓밟으면서 여인과 아이들을 납치하고 젊은이들을 무참히 도살하던 이들이었다.
“아무리 전하여도 이길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그런 소리 말의! 마리우스 전하께서 앞장서신 일 중에서 실패하거나 제대로 안 된 일들이 있었어?!”
“어, 음···. 없었지···?”
“이번에도 분명히 이길 거야!”
한편, 게르마니아의 상업을 책임지는 청어조합에서는 이번 전쟁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그동안에는 굶주림에 지친 일반 시민들이 주린 배를 채우고자 이용했던 청어조합이었지만, 이들이 뭉쳤다고 해서 그동안 게르마니아나 로마의 다른 속주들에 걸쳐서 큰 상단을 거느린 대상인들에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건 기회야···. 마리우스 전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거나 다름없다고!”
“훈족 녀석들과 싸우시려면···. 군수품이 많이 필요하시겠지?”
“아서라. 그쪽은 이미 노리쿰이나 게르마니아의 상인 놈들이 선점했어, 우리가 노려야 할 건 그게 아니라 다른 거야.”
“다른 거? 그게 뭔데?”
“사람은 자고로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어? 알렉산드리아가 슬슬 재건되면서 북아프리카 속주에서도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는데···. 거기에 한 번 투자해봐야겠어.”
“너 미쳤어? 거기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못해도 몇 년은 걸린다던데···. 그래서 다른 상인 놈들도 손을 뗐다잖아!”
“생각을 해봐라. 북아프리카가 당장 힘들다고는 해도, 거기가 뭐 하는 곳이냐? 빵 바구니라고 불리는 곳이 아니었나? 금방 복구될 거라고 믿는다.”
“에라이 미친 새끼.”
“가즈아아!”
******
“이번 전쟁은 공격이 아니라 방어전이다.”
“국경에 있는 울타리들을 한번 손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방벽들은 임시로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인지라 낮고 허술합니다.”
“보수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마리우스의 질문에 데키무스가 조심스레 답했다.
“알비스 유역에 걸쳐있는 방벽 전부를 뜯어고친다고 하면은···. 1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1년은 너무 긴데···. 필요한 지원은 모두 해줄 테니 석 달 안으로 끝내는 건 가능하겠나?”
“게르마니아의 모든 시민과 병사들을 동원해도 힘들 것 같습니다.”
때려죽여도 못하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돌려서 말하는 데키무스의 모습에 마리우스가 다른 이들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좋은 생각이 있나?”
이에 행복한 신혼생활을 전쟁터에서 시작하게 될 게지카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번 전투는 방어전이 될 테니···. 적군에게는 낯선 땅에서 싸우는 것이고, 아군에게는 앞마당에서 싸우는 것과 다름없을 겁니다.”
“그건 다 아는 거잖아.”
“아직 내 말이 안 끝났잖아.”
“그럼 계속해보던가.”
브레누스의 딴지에 게지카의 이맛살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말을 이어갔다.
“지난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비디메르를 무찌른 일을 다들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그때처럼 적들을 유인해서 처리하는 방법으로 게르마니아의 늪지대로 적들을 유인해서 처리하면···.”
“잠깐, 좋은 생각이긴 한데···. 누가 저 훈족 놈들을 늪지대까지 유인해올 건가?”
“그거야···.”
역시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좋은 의견이 있으면 뭐하겠나, 그걸 실행시킬 능력이 없다면 결국에는 탁상공론일 뿐이었다.
다들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마리우스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난번 토이토부르크 숲에서의 전투에서도 크게 다쳤었고, 이번 이탈리아 원정에서도 제법 크게 다치었었다.
이렇게 되니, 아무리 튼튼한 마리우스라고 해도 몸에 하나둘씩 늘어나는 상처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쑤실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가이세리크? 자네가?”
가이세리크가 자신 있게 나섰지만, 브레누스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거부했다.
“가이세리크는 너무 어려서 경험이 부족합니다. 제대로 된 전투는 이번이 처음일 텐데,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 상황에 맞춰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는군.”
마리우스가 고개를 돌려 가이세리크를 바라보니, 가이세리크의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더니 버럭버럭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처음부터 경험이 많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군대는 학교가 아니고, 전쟁터는 자네의 놀이터가 아닐세, 경험을 쌓고 싶다면 입을 다물고 뒤에서 구경이나 하게.”
“오랜만에 브레누스가 맞는 말을 하는군.”
그동안 가이세리크가 앞장서면서 나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들은 브레누스의 말에 통쾌함을 느끼면서 가이세리크를 비웃었다.
그의 아버지인 고디기젤은 다른 이들에게 비웃음 받는 아들을 변호하고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시오. 사돈.”
“사, 사돈···.”
“그게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었던 건가···?”
“젠장···. 부족민들을 전부 동원해서라도 우리가 잡았어야 했는데···.”
사돈이라는 말에 다들 투덜거릴 동안, 목을 가다듬은 고디기젤이 말했다.
“제 아들이 경험이 없다는 것은 사실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동안 제 아들놈은 저와 제 형을 따라다니면서 부족 간의 사소한 다툼에서부터, 이번 훈족 사냥까지 온갖 곳에 따라다니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천 명, 수만 명이 한데 뒤엉켜서 싸우는 전장에서 활약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요.”
“예,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 아들놈이 가진 경험과 실력은 진짜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필요하다면 제 목숨도 걸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아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걸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다른 이들의 입이 다물어졌으나, 브레누스는 여전히 반대하고 나섰다.
“전투는 장난이 아닙니다. 수만 명의 병사가 다 죽고 나서는 이미 늦었단 말입니다.”
“그렇기에 제 아들을 추천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가이세리크의 능력을 잘 보지 않았습니까? 게르마니아를 공포에 떨게 했던 거대한 곰을 함정으로 유인해서 잡아낸 것도 제 아들이고, 훈족 놈들을 구석으로 몰아내어 단번에 잡아낸 것도 제 아들입니다.”
“동물을 사냥하는 것과 소수의 병사를 몰아넣는 것이 전쟁과 같습니까?”
브레누스의 말에 고디기젤은 담담하게 답했다.
“프랑크 공작께서는 제 아들의 무엇이 그리 못마땅하시어 그리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가이세리크가 못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저 어린놈과 얼굴을 붉혀서 좋은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제 말뜻은 험악한 전쟁터에서 그 능력을 입증한다고 죽어 나갈 병사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마리우스가 두 눈을 끔뻑이면서 둘을 바라보고 있으니, 곁에 있던 데키무스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그의 귀에 속삭였다.
“각하, 본래 하스딩기 반달족의 왕인 고디기젤과 프랑크족을 이끄는 브레누스와는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 어째서지?”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조사한 바로는 브레누스의 어머니가 고트족인데, 어머니의 부족을 반달족이 덮쳐서 궤멸시켜 버렸답니다.”
“저런!”
“물론 고디기젤은 실링기 놈들의 짓이라면서 자신을 비롯한 하스딩기 반달은 관련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말입니다.”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잇던 마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하스딩거···. 내 앞길을 막아서던 용맹한 방패 병이었지···. 아직도 그놈 생각만 하면 이가 갈리는군.”
“예? 하스딩거는 뭡니까? 새로운 반달족 일파입니까?”
마리우스의 말에 괜히 고디기젤이 흠칫 놀라면서 마리우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브레누스는 한껏 의기양양해진 태도로 말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전하, 제 아들놈의 실력도 브레누스에 못지않습니다. 그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둘은 내심 기대한다는 듯이 한마디씩 했다.
잠시 고민하던 마리우스는 구석에서 입 다물고 조용히 허공을 응시하던 마요리아누스를 가르치며 말했다.
“마요리아누스, 생각해보니 자네가 있었지.”
“저, 저 말입니까?!”
“그래, 가우덴티우스도 가버렸으니 내가 알고 있는 기병대장 중에서는 자네가 제일이야.”
물론 마리우스가 알고 있는 기병대장은 가우덴티우스와 마요리아누스 둘뿐이었지만 말이다.
그의 머리에서 희끗희끗한 흰 머리하나가 흘러내려 오면서 회의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