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13/187)

신의 채찍 - 4

게지카의 결혼식을 기념한 사냥대회는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각 부족의 이름난 사냥꾼들이 한 데 모여서 저마다의 솜씨를 뽐내면서 높으신 분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안달이었다.

마리우스는 사냥꾼들이 하나둘씩 가져오는 사냥감들을 지켜보며 감탄했다.

“다들 실력이 뛰어나구나.”

“인근의 숲에 있는 동물들이 전부 잡힌 것 같습니다.”

“그래, 올 한해는 시민들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군.”

마리우스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냥꾼들이 잡아 온 사냥감들을 둘러보는 와중에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를 보고서는 흠칫 놀랐다.

거의 마차만 한 크기의 그림자에 조금 뒤로 물러나니, 마리우스의 호위병들이 주변을 에워싸면서 마리우스를 보호했다.

“누구냐!”

“아이고···. 접니다 전하!”

“이 목소리는···. 베르세르크?”

“가이세리크입니다. 전하···.”

“그게 그거지, 그런데 등에 메고 있는 건 뭔가? 일단은 곰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가이세리크는 마차만 한 곰을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후···. 아무래도 제가 일등인 것 같습니다?”

“아니, 이게 곰이 맞나?”

“이걸 혼자 잡았다고···?”

마리우스도 말에서 내려 곰 사체를 손가락을 쿡쿡 찔러봤다.

가까이서 보니 훨씬 거대해 보이는 곰은 존재 자체만으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죽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몸이 뻣뻣했다.

“이야···. 솜씨가 대단한데···?”

“이, 이렇게나 큰 곰을 잡아 온걸 보면···.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 정도 덩치면은 칼이나 창도 제대로 박히지 않을 것 같은데···. 겉에 상처도 없고···. 어떻게 잡은 건가?”

“하하하, 덫을 파고서는 놈을 유인했지요. 집에 있는 닭 한 마리를 묶어두고는 그 위에 바위가 떨어지게 덫을 파놨습니다.”

“이놈은 어떻게 찾은 건가?”

“몇 년 전에 아버지의 말을 물어간 놈이기에 몇 번이고 잡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놈이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이번 기회에 잡게 되었습니다.”

“호오···. 그래?”

마리우스는 죽은 곰 털을 쓰다듬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평소 같았으면 게르마니아에서 나오는 모든 물건을 마리우스가 원한다면 귀족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바쳤겠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에는 보통 연회의 주인공에게 그 상이 돌아가게 된다.

마리우스가 아쉽다는 듯이 몇 번이고 죽은 곰 주변을 어슬렁거리자, 보다 못한 게지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곰이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크흠···. 뭐 그런 건 아니고···. 이렇게 큰 곰을 보는 건 처음인지라 뭐···.”

“하하하···. 원하신다면 그 곰의 소유권은 전하께 양도하겠습니다. 가이세리크라고 했던가? 그래도 되겠지?”

게지카의 말에 가이세리크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된다면야 제 영광이지요!”

“흐흫···. 구,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마리우스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이 곰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 모습에 게지카와 브레누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둘이서 수군거렸다.

“전하께서 저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말이지.”

“저런 걸 받으면 기뻐할 만하지.”

“이야···. 그런데 곰이 엄청나게 크다. 저런 게 네 영토 안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거야?”

“그러게 말이야. 이제는 곰이 한 마리로 줄어들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곰이 한 마리가 더 있다고?”

브레누스가 매우 놀라면서 게지카를 바라보니, 게지카가 그런 브레누스를 비웃으며 말했다.

“네 여동생 말이야.”

“야 인마! 너는 좋다고 결혼해놓고 또 그러기야?!”

“누가 뭐라고 했나? 곰을 곰이라고 한 거지.”

“흥, 여동생한테 전부 일러줄 테다.”

“아니, 처남···. 농담으로 한 말인데 왜 그래···.”

브레누스와 게지카가 한창 투덕거리고 있는 동안에 마리우스는 알비스 유역의 국경수비대에게서 들어온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상당히 급한 모양이었는지 말을 탄 채로 연회장에 난입한 전령이 숨을 헐떡이면서 보고서를 전해줬던 것이었다.

“으음···.”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게지카에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연회는 여기까지 해야겠어.”

“예?”

“가이세리크라고 했던가? 부탁 하나만 하지.”

마리우스의 말에 가이세리크가 눈을 빛내더니 주먹으로 가슴팍을 쿵쿵 치면서 말했다.

“뭐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기운차서 좋군. 가서 연회에 참석한 족장들과 장교들을 모두 불러와 주겠나?”

“저, 전부 말입니까?”

“그래, 전부.”

******

카라톤은 울딘의 명령에 따라 팔백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서 는 게르마니아로 향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이 지치지 않게 번갈아 타면서 집요하게 루길라의 뒤를 쫓은 카라톤은 강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 게르마니아의 경계선에 닿았다.

그곳에서 숨을 고르면서 찬찬히 방벽을 둘러보던 카라톤은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생각보다 로마인들의 방비가 잘 되어있구나, 쉽게 넘어가기는 힘들겠어.”

“어차피 루길라 놈도 여기를 넘지 못했을 게 분명합니다. 고작 부족민들 몇 명이 무슨 수로 저길 넘었겠습니까?”

“흐음···.”

카라톤은 잠시 수염 끝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과연 루길라가 저 벽을 넘어서 로마로 들어갔을지, 아니면 방향을 틀어서 다른 쪽으로 빠진 것인지를 한참이나 고민했으나 쉽사리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에 방벽 위를 순찰하던 병사가 카라톤과 그의 병사들을 발견하고서는 손을 흔들었다.

“어이- 자네들도 훈족인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데요?”

“저놈이 어떻게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병사는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카라톤과 병사들의 모습에 뻘쭘했는지 벗어두었던 투구를 뒤집어쓰면서 장교를 불렀다.

“대장님! 대장님!”

“대장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소란이야?”

“밖에 훈족들이 찾아왔는데요?”

“그럼 들여보내면 될 거 아니야! 이런 쓸데없는 일로 그만 부르랬지! 자네는 생각할 줄 모르나?!”

“그게 아니라···. 저놈들이 단단히 무장하고 온 것이 병사들 같아서 말입니다.”

“무장했다고?”

그제야 나이 오십 줄은 되어 보이는 장교가 평상복차림으로 방벽 위로 올라와서는 멀뚱히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훈족들을 살펴봤다.

한참을 살펴보던 그는 병사의 말이 옳았음을 알아채고서는 다급히 병사에게 물었다.

“저놈들이 여길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하더냐?”

“모르겠습니다. 다들 혓바닥에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아니면 제 발음이 이상한지는 몰라도, 다들 대답이 없습니다.”

“으음···. 일단 종을 울려서 주변에 있는 병사들에게 알리고, 후방에 있는 기동부대에도 알려!”

“예, 대장님!”

둘이 대화를 나누다가 병사가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자 카라톤의 병사가 그에게 물었다.

“한 놈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원병력이라도 데려올 모양인 것 같습니다.”

“으음···. 아직 루길라의 흔적도 찾지를 못했는데···.”

“아무래도 그냥 물러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부하의 권유에도 카라톤은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직감이 말하기를 저 방벽 너머에 그가 찾고 있는 루길라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방벽을 넘을 방법이 없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고작 수 미터짜리의 벽에 불과했던지라 말을 탄 채로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해도 맨몸으로 기어 올라가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방벽 위를 지키는 병사들도 기껏해야 백 명쯤?

마음먹고 병사들을 보내서 문을 열게 한다면, 넘어가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방벽을 넘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 방벽 너머에 있을 마리우스라는 이름의 괴물을 떠올리면은 이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지, 진심입니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게르마니아로 들어가는 건 좀···. 저는 아직 오래 살고 싶습니다.”

“우르겐도 이 벽 앞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루길라가 게르마니아로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그때, 성벽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뭘 하는 녀석들이냐! 지난번에 넘어왔던 루길라인지 뭔지 하는 훈족과 아는 사이냐!”

“들었지?”

카라톤은 한숨을 내쉬면서 검을 높이들이었다.

“오늘 저 벽을 넘는다!”

******

“...그래서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기동부대가 움직이기는 했는데, 이미 적들이 벽을 넘어서 게르마니아로 들어온 지 오래였다고 합니다.”

“사상자는?”

“죽은 사람은 없지만, 다친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스무 명 정도쯤 된다고 들었습니다.”

“스무 명···. 스무 명이라···.”

마리우스가 버릇처럼 눈을 감고서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제법 오래된 버릇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다른 이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고서는 마리우스가 다시금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잠깐 고민하던 마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 모인 이들이 데려온 사병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 있나?”

“사병들···. 말입니까?”

데키무스가 말끝을 흐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자 눈이 마주친 게지카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보통은 스무 명에서 백 명 정도 데려왔으니, 인원수대로 곱하면···. 약 오천 명에서 육천 명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자세히 조사해본다면 달라질 수도 있고요.”

“오천에서 육천이라···. 그중에 기병도 있나?”

“음···. 아마 없지는 않을 겁니다. 찾아보면 제법 나올 것 같습니다.”

마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에 모인 각 부족의 족장들과 귀족들도 한꺼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우스는 그런 이들을 둘러보고는 조곤조곤하게, 하지만 확실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사냥대회에서 이름을 날리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거로 생각한다.”

“아닙니다!”

가이세리크가 씩씩하게 대답했으나, 주변에 있던 이들은 어린놈이 뭐 이렇게 나서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면서 눈치를 줬다.

가이세리크가 부끄럽다는 듯이 한걸음 물러섰다.

그 모습을 덤덤하게 지켜보던 마리우스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면서 분위기를 잡더니, 이윽고 말을 이어갔다.

“게르마니아에 쥐새끼들이 기어들어 왔다. 마침 기분도 안 좋았는데 잘된 일이지···. 그래서 지금부터 새로운 사냥대회를 열겠다.”

그렇게 말한 마리우스는 천천히 자리에 앉아서는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훈족 놈들 한 놈 잡아 올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내려질 것이다. 돈을 원하면 돈을 주고, 명예가 필요하다면 명예를 주겠다.”

“전하! 질문이 하나···. 있는데···.”

가이세리크는 당당하게 손을 들었으나,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에 쪼그라들었다.

“질문하게.”

“그, 그것이···. 제일 많이 잡아 온 사람은 무엇을 보상으로 주시는지···. 알 수 없을까 하고···.”

“제일 많이 잡아 온 사람이라···.”

마리우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가이세리크, 네 나이가 올해로 몇이지?”

“열다섯···. 아니, 열여섯입니다!”

“열여섯이라···. 좋아, 제일 많이 잡아 오는 사람은 내 사위로 삼아주지.”

마리우스의 폭탄선언에 멍하니 머릿수만 채우고 있던 이들의 두 눈에서 기괴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고, 몸은 곧 밖으로 튀어 나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돌변해버린 주변의 분위기 속에서 브레누스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결혼한 사람들은 빠져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나이가 많은 이들도 적당히 눈치 보면서 빠져야지요. 전하의 딸을 늙다리에게 시집보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그런 이들도 자식은 있을 거 아닌가?”

“아,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브레누스는 멋쩍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뒤로 물러났지만, 그의 말은 새하얗게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허허 거리고 있던 이들의 두 눈에 불이 들어오게 했다.

“자, 이제 설명은 얼추 끝난 것 같군···.”

마리우스는 이제 볼일은 다 봤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시간은 이번 주까지이고, 장소는 게르마니아 전역으로 하겠네, 알아들었으면 가서 잡아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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