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09/187)

호노리우스, 당신에게는 양심이란것도 없으십니까? - 3

서른다섯 나이에 할아버지가 된 마리우스가 손주를 돌보고 있을 때, 다키아 너머에 주둔 중이던 울딘의 왕국에는 분열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제법 오랫동안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훈족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던 울딘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는 이가 제법 많았다.

그들은 로마에 대해서 온건적인 태도를 보이는 울딘에 불만이 많았고, 그의 전리품 배분에도 크게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가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우리 부족은 누구 보다 앞장서서 싸우고 많은 이들이 왕을 위해 죽었음에도 배분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우리가 그동안에 울딘을 지지한 이유가 뭡니까?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공평함을 강조했기에 그런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울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공평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지난번에는 로마를 약탈한다면서, 그들과 협상을 통해서 챙긴 것들, 그건 전부 어디 갔습니까?”

울딘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자리에서 이를 주도하는 것은 루길라와 옥타르, 그리고 문주크 라는 세 형제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이들 형제는 나이가 많은 울딘이 훈족을 마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언제나 공포의 상징으로 남을 것 같던 울딘이 가이나스와의 전투에서 큰 손해를 입고, 그를 처리하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해를 넘길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갔지만, 그들의 지도자인 울딘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세월이 그의 눈을 가렸고, 귀를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부하인 우르겐이 게르마니아에서 돌아왔을 때쯤에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기는 했으나, 울딘은 부하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전하,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 삼 형제는 하루빨리 처리하셔야 합니다.”

“으음···. 고작 그런 이유로 나를 부른 것이냐?”

“고작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실 때마다 삼 형제가 다른 족장들을 회유하면서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흠···. 확실한 건가?”

“예, 확실합니다.”

“그렇다는군.”

울딘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대한 울딘의 왕좌 뒤에 가려져 있던 삼 형제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르겐, 당신이 우리 형제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지만, 이렇게 모함하려 드는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이 옥타르 형님과 언쟁이 있었던 것을 알고는 있지만···. 고작 여자 문제 때문에 우리 형제를 모함하려 드시는 겁니까?”

“창피한 줄 아십시오.”

“아니, 이건···. 이건···.”

우르겐은 당황하며 울딘을 바라봤지만, 울딘은 전에 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우르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동안 자네가 나를 위해서 고생했음을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당분간은 자네 부족으로 돌아가서 머리를 식히도록 하게.”

“전하···. 이건 모함입니다. 전하께서는 저 삼 형제 놈의 농간에 놀아나고 계신 섭니다! 전 억울합니다!”

“으음···.”

우르겐은 절박함에 나름대로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오히려 그의 말이 울딘의 심기를 크게 거슬렀다.

“내가 삼 형제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

“아니, 이건···. 그저 말실수를 좀···.”

“자네가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겠구나! 우르겐.”

“전하, 저는 언제나 열정과 성의를 다해 전하를 충성심으로 모셔왔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네.”

울딘이 손짓하자 큰 칼을 뽑아 든 병사들이 줄줄이 들어오더니 우르겐을 둘러싸면서 위협했다.

그제야 우르겐은 이곳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 자리임을 깨달았고,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삼 형제들이 전하의 두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전하께서 과거의 총기를 되찾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울딘은 이에 말없이 수염을 쓰다듬었고, 이에 삼 형제의 막내인 무자크가 나서면서 소리쳤다.

“집행하라!”

“잠깐, 기다···.”

울딘이 뒤늦게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무자크의 명령을 들은 병사들의 칼이 우르겐의 몸을 난도질한 뒤였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우르겐은 최후의 순간까지 루길라, 옥타르 무자크 삼 형제를 노려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죽었다.

“내가 멈추라고 하지 않았느냐?!”

“죄, 죄송합니다.”

울딘이 애꿎은 병사들에게 화를 내봤자, 이미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후였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우르겐의 시체를 바라보며 울딘은 한숨을 내쉬었고, 삼 형제는 미소를 지었다.

제 오른손으로 왼손을 잘라 내버린 울딘의 판단은 치명적이었고,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던 삼 형제는 곧바로 행동을 시작했다.

“울딘은 충성심이 높은 부하마저 아무렇지 않게 죽일 정도로 미쳐있습니다! 이 중에서 울딘을 향한 우르겐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자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울딘을 향한 충성심은 진창에 처박힌 바위처럼 쓸모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분노를 보여줘야 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렸던 삼 형제였지만, 다른 이들을 이끄는 것만큼은 대단히 뛰어났는데, 그중에서 첫째인 루길라가 제일이었다.

이렇듯이 삼 형제가 내부를 뒤집어놓고 있을 때 울딘이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젊은이들보다는 추진력이 뒤떨어지고, 고민과 생각이 많아 그 행동이 굼떴지만 한번 움직일 때는 확실했다.

우르겐의 죽음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찬찬히 지켜보던 울딘은 늦게나마 우르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병사들을 소집해서 삼 형제와 그 일파를 오늘 밤 안으로 모조리 정리한다. 사소한 실수도 없어야 할 것이며, 바람처럼 움직이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울딘은 결심한 그날밤에 병사들을 움직였고, 후일 훈족의 대분열이라고 불릴 다키아의 긴 밤이 시작되었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다들 목소리를 죽이고, 조심히 움직여야 한다.”

“조심, 또 조심해라. 한 놈도 도망가서는 안될 일이다.”

다들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말의 울음소리와 무기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제가 밖에 나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형님.”

“아닙니다. 두 형님께서는 가만 계시지요. 이 막내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삼 형제 중의 막내인 문주크는 품 안에서 잠든 어린 자식들을 내려놓고서는 조용히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두 눈에 보인 것은 곳곳에서 울부짖고 있는 부족민들과 말을 탄 채로 부족민들을 마구 도륙 내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젠장! 형님!”

“나가자마자 돌아왔구나, 그래 무슨 일이냐?”

“습격입니다. 울딘이 먼저 선수를 친 것 같습니다!”

“뭐?!”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무자크가 검을 뽑아 들고서는 두 형과 가족들을 등 뒤에 두고서는 앞장서서 천막을 빠져나갔다.

밖에서는 갑옷과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병사들이 열심히 적에 맞서고 있었지만, 방중에 당한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던지라 모두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적들 편제의 대부분이 기병대였던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울딘에 한 방 먹었군.”

“지금은 늙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훈족을 통합할뻔한 이였으니, 우리가 너무 방심한 것이겠지요. 형님.”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형님들은 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피하시지요. 저는 뒤를 지키겠습니다.”

막내인 문주크의 말에 옥타르 또한 검을 뽑아 들면서 루길라에 말했다.

“이곳에서 형제가 모두 죽을 필요는 없지만, 막내 혼자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외곽에서 기다리마, 금방 따라오거라!”

“예, 형님!”

루길라는 동생들을 뒤로한 채로 부족민들을 챙겨서 정신없이 도망쳤다.

그리고 외곽을 돌며 며칠 동안이나 형제들을 기다렸지만, 형제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큰 숙부, 아버지는 언제 오시는 거예요?”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 가족들을 전부 잃은 루길라에 남은 것은 막내 문주크의 어린 두 아들뿐이었다.

루길라는 어린 조카들을 끌어안아 주면서 소리죽여 울었고, 살아남은 이들 또한 그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울딘···.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큰 숙부, 우리 이제 어디로 가는 거예요?”

루길라는 말없이 어린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저 멀리 북쪽을 바라봤다.

“지난번에 우르겐이 말했었지, 강을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살기 좋은 곳에 좋은 이웃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고 말이야.”

“거기가 어딘데요”

“너는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 네 동생이나 잘 챙기면서 따라오거라 블레다.”

******

콘스탄티노플에서 다시금 통합된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호노리우스는 의문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봉투에는 보낸 이가 적혀있지 않았고, 편지를 봉인한 밀랍에도 인장이 찍혀있지 않았지만, 호노리우스는 그것을 누가 보냈는지는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죽여버리겠다.]

언뜻 보면 누군가가 장난으로 써 갈긴 편지인 것 같았지만, 호노리우스와 폴로는 이 필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 우리 인제 어쩌지 폴로?”

“우리라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폴로! 여기서 배신이야?!”

“배신이라기보다는 관계의 재정립이라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폐하.”

죽음이라는 단어에 밑줄이 세 개나 쳐진 것을 확인한 황제는 모터라도 달린 듯이 몸을 마구 떨면서 폴로에 물었다.

“나, 나 혹시···. 떠, 떨고 있어···?”

“예,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빌면 마리우스가 봐줄까?”

“저는 가족이나 자식들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제 조카를 누가 건드려놓고 미안하다고 찾아오면, 진짜로 죽여버릴 것 같습니다.”

“으음···. 그렇겠지? 어쩌면 좋지···?”

호노리우스는 절벽에 밀린 사람처럼 절박하게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었다. 마리우스가 항상 자신에게 해줬던 말도 있지 않은가?

‘현명한 토끼는 굴을 여러 개를 파둔다.’

늘 그렇듯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호노리우스에게 공부가 하기 싫으면 다른 거라도 해보라고 한 말이었지만, 호노리우스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다 때려 부수고 새로 만드는 거야···!”

“예? 폐하, 멀쩡한 성벽을 왜 때려 부숩니까?”

“지난번에···. 그래 몇 주 전쯤의 누구였지? 그, 그···. 마르쿠스! 그래! 마르쿠스인가 뭔가 하는 귀족 놈이 도시의 확장성이 장벽에 막혀있다고 했잖아!”

“마르쿠스요? 그건 또 누구입니까.”

“지난번에 콘스탄티노플 입성기념 파티에서 말 걸던 늙은이 말이야.”

폴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호노리우스는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지금 게르마니아는 식량이 부족해서 대규모 군대를 일으킬만한 상황이 못 돼. 지금 군대를 일으켜봤자 기껏해야 삼천 정도겠지.”

“아니, 그 말씀은 마리우스 각하의 병사들을 막기 위해서 성벽을 새로 쌓겠다는 말씀입니까?”

“무, 무슨 소리야! 이건 전적으로 도시의 확장성을 위해서···.”

“예 예···. 그러시겠지요.”

폴로가 한숨을 내쉬면서 호노리우스에게 말했다.

“하긴···. 도시가 오래된지라 성벽을 확장할 필요가 있긴 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확장하실 생각이신지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성벽을 많이!”

“....?”

역사에서는 야사로 기록될 로마의 삼대불가사의 중 하나로 기록될 호노리우스의 5중성벽의 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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