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07/187)

호노리우스, 당신에게는 양심이란것도 없으십니까? - 1

학자들로부터 알게 된 사실은 하나같이 처음 듣는 것들투성이였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자신은 아리우스파인가 하는 이단 종파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다시금 부흥할 수 있게 전적으로 돕고 있다고 했다.

“제가요?”

“예, 게르마니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마리우스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일은 마리우스가 아직 상훈으로 불리던 시절에 일곱 살쯤 되었을까,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그때 옆 반 병아리 반에 유리라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누가 유리의 간식을 훔쳐먹은 일이 있었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근처에서 놀고 있던 상훈이 범인으로 몰리게 되었고, 결국 크게 혼나고는 강제로 사과해야만 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억울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도 더 억울했다.

“아니, 그건 마침 아그리피넨시스에 있던 교회가 그쪽이라서 같이한 건데···.”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마리우스의 변명을 가만히 들어주고 이해해줄 리가 만무했다.

사람들이 마리우스를 이단으로 판단했건, 누군가가 그렇게 판단하도록 만들었건 간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마리우스는 이단이 되어버렸고, 로마 교단과는 척을 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저희는 그런 거 신경을 안 씁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소속의 학자들을 배웅한 마리우스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자연스럽게 곁에 다가온 데키무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각하, 시키실 일이 있으신 모양이로군요.”

“당장 가서 도미티누스, 그 새끼 데려와.”

“아마 자리에 없을 것 같은데요.”

“없으면 찾아서라도 끌고 와!”

분노한 마리우스의 노성에 살짝 당황한 데키무스는 황급히 경례를 올리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도미티누스.”

마리우스는 자신을 찾아온 수도사를 바라봤다.

머리가 전부 빠져버린 빡빡머리에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듯한 늙수그레한 그의 모습을 본 마리우스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요새 제 이름을 팔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예, 알고 있었죠. 그런데 왜 다른 속주에서 온 이들이 저를 아리우스파의 수호자로 여기는 거죠?”

“합당한 거래지요. 전하께서는 저희의 인프라가 필요하셨고, 저희는 전하의 위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 이름을 내다 팔았다는 말이로군.”

“예, 처음에 전하께서 저희에게 손을 내미셨을 때는 당혹스러웠지만···. 생각보다 전하의 이름은 게르마니아에서 잘 먹히더군요.”

도미티우스는 몇 군데가 비어있는 이를 드러낼 정도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마리우스는 따끔하게 한소리 하겠노라고 마음먹고서는 왕좌에 있는 팔걸이를 가볍게 내리치며 말했다.

“이놈! 네놈의 혓바닥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곤란을 겪게 되었는지 알고나 있느냐?!?”

“아, 그건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저 조용히 이민족들에게만 포교할 생각이었습니다.”

도미티누스는 고개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사과했다.

찬찬히 따지고 보면 교회나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마리우스가 자초한 일이었기에 도미티누스의 사과에 더 화내지는 않았다.

“그동안에 자네들의 무리한 포교로 로마인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저희에게는 감내할 수 있는 손실입니다.”

“감내할 수 있는 피해라? 그 말은 계속 국경선 밖으로 포교 활동을 보내겠다는 뜻으로 내가 알아들으면 되겠지?”

“주님의 품 안에 귀의하는 게르만 인들이 늘어날수록, 게르마니아로 들어오는 부족들도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도미티누스는 마리우스의 질문을 슬그머니 벗어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저희가 아이들의 교육을 도맡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하를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하가 저희를 지지해주시는 조건으로 말이죠.”

“그래서 원하는 게 뭔가.”

“다른 이들이 전하께 저희와의 관계를 물어볼 때, 부정하지만 말아 주십시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도미티누스의 말에 마리우스는 깊이 고민했다.

사실 기독교의 분파가 어떠니 초기 기독교가 어떠니 하는 것은 마리우스에게는 관심도 없는 일이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아리우스파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냥, 게르마니아에서 좀 유명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대면하느냐고 생각이 달라졌다.

“일단은 포교 활동을 멈추게.”

“전하께서 원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단 내에 속하는 사제들과 기타 인원들의 명부를 조사해서 내게 가져오게나.”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소유로 되어있는 땅과 재산수입 등이 적힌 회계서류도 제출하도록.”

마리우스가 제법 공격적인 자세로 도미티누스를 살살 긁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마리우스에게 복종했다.

“필요하시다면 창고 열쇠도 바치겠습니다.”

“흠···.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너무 저자세라서 의심스럽군.”

마리우스의 의문에 도미티누스는 덤덤하게 답했다.

“저희가 한때, 로마에서 제일가는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이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럼 저희가 아타나시우스파에 어떤 수모와 탄압을 당했는지도 잘 알고 계시겠군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이 또한 처음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알아도 모른 척하고, 몰라도 아는척해야 하는 자리까지 올라왔기에 그리 답했을 뿐이었다.

“그런 일들을 겪고 나니, 바닥의 밑에는 지하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지요.”

“그래서 게르마니아에 터를 잡은 거로군.”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까지 밀려난 것이지요. 그러자 거짓말같이 철옹성 같던 로마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미티누스는 그때를 떠올린 것인지 옷 소매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야말로 신의 기적과도 같았지요···.”

“그 말은 자네가 믿는 그 신이란 분이 로마가 망하기를 원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마리우스의 말을 들은 도미티누스는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되물었다.

“제가 믿는 신이라···. 전하께서는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질문에는 대답을 하는 것일세 도미티누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쯧···. 묻는 말에나 대답하게.”

“글쎄요···.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습니다. 로마가 망하기를 원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위한 파괴이실지 말입니다.”

도미티누스는 마리우스를 잠깐 올려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어찌 되었건 간에 제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이니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도미티누스가 알 수 없는 말을 해대자, 마리우스가 재차 엄하게 다그쳤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나는 신경 쓰지 않겠다만, 내게 피해가 온다거나 자꾸만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

“뜻대로 하시지요. 저희는 언제나 마리우스 전하를 지지합니다.”

“허, 참···.”

마리우스를 만나고 거는 밖으로 나오는 도미티누스를 수많은 군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드니, 총독궁 앞에 모인 수많은 군중이 일제히 환호하면서 그를 반겼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닐세, 오히려 이제라도 전하를 뵈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저는 주교님께서 왜 그렇게 마리우스에게 집착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중을 들던 청년의 말에 인자했던 도미티누스의 표정이 돌연 험악하게 일그러지더니, 청년에게 조용하지만 따끔하게 꾸짖었다.

“말조심하게, 전하께서 없으셨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어!”

“죄, 죄송합니다.”

“요새 교인들 가운데서 젊은이들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구나.”

“용서해주십시오. 주교님···. 본심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찾을 때까지 참회 동에서 네 죄를 반성하고 있도록 해라.”

도미티누스는 단호했다.

******

안토니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게르마니아로 돌아가는 길은 잘 닦여있었고, 날씨 또한 선선하면서도 따갑지 않은 햇살이 참으로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품 안에 안겨있는 작은 천사는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아가야, 곧 네 할아버지를 볼 수 있을 거야.”

눈도 채 뜨지 못한 아기가 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리가 만무했다. 그저 밝고 어두움만 구분할 수 있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마차는 달리고, 또 달려서 아그리피넨시스에 도착한 안토니나를 반기는 것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마리우스였다.

“오랜만이에요 아빠.”

“어, 음···. 그래 오랜만이구나···.”

마리우스는 오랜만에 만나는 딸의 모습에 기뻐하면서도 시선은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로 향했다.

곤히 잠을 자는 아이의 얼굴에서는 묘하게 딸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기에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라벤나는 처음 가봤는데, 굉장히 신기한 곳이라 더 구요. 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많고···.”

“그래, 그렇구나···. 즐거웠으면 됐어.”

“아, 그리고 출발할 때랑은 다르게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오는 길이 참 편하지 뭐에요?”

“으음···. 그거야 원정길에 내가 병사들을 닦달해서 만든 거긴 한데···.”

안토니나는 아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마리우스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아빠, 오랜만에 만나는데 제 얼굴 안 보시고 어딜 보시는 거예요~”

“음? 아, 미안하구나···.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 애길래 네가 데리고 있는 거니?”

“아, 테오도시우스요?”

“테, 테오도시우스?”

익숙한 그 이름이 튀어나오니, 마리우스의 눈동자가 맹렬히 요동치며 이마에서는 땀이 스멀스멀 흐르기 시작했다.

“친숙한 이름이죠?”

“그, 그렇구나···. 그럼···. 그, 그···.”

마리우스는 가쁘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하면서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려고 하는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었다.

그런 마리우스의 모습에 웃고 있던 안토니나의 표정에도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게요···.”

“이 아빠는 다 준비가 되었단다. 빨리 말해주렴.”

“아, 그게요오···.”

안토니나는 예상보다 더한 반응을 보이는 마리우스의 모습에 당황하면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가족들도 처음 보는 마리우스의 극대노에 놀라고 있었다.

“마리우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러는 게 아니에요. 진정하셔야죠.”

“으음···. 그건 그렇지.”

테르만티아는 자연스럽게 마리우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조심스레 주물러주기 시작했고,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마리우스의 분노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 호로···. 아니, 호노리우스냐?”

“일단 안에서 이야기해요.”

에우독시아가 마리우스를 이끌었지만, 마리우스는 동상처럼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부터였니.”

“아, 아빠···.”

“사람들 보는데, 왜 그래요!”

“으음···. 일단은 안에서 이야기하자꾸나.”

마리우스는 안토니나의 품에 안겨 잇던 아이를 빼앗듯이 안아 들고서는 총독궁 안으로 향했고, 안토니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뒤를 따라왔다.

“형! 형! 누나가 아버지한테 혼나고 있어!”

“바루스, 조용히 해···.”

“왜? 왜왜???”

“지금은 조용히 있어야 해···.”

“왜에에에~ 나는 누나랑 놀고 싶은데!”

“내가 놀아줄 테니까, 잠깐 나랑 가자.”

모두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상황에서 오직 바루스만이 속 편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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