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06/187)

새마을 운동, - 5

게르마니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배급제는 삐걱거리면서도 나름대로 잘 굴러갔다.

처음에 중앙에서 모든 식량을 관리하겠다는 말에 게르마니아 전역의 도시와 마을들이 솥안의 끓는 물처럼 불타올랐다.

하지만 적당한 보수를 지급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마리우스의 포고와 실제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엄하게 관리하는 마리우스의 모습에 시민들의 불만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물론 모든 이들의 불만이 누그러진 것은 아니었다.

뒤에서 시민들의 분노를 부추기던 대상인들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중앙에서 모든 식량을 통제하겠다고?”

“이번 기회에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 했더니만···.”

“쓸데없는 일을 하시는군.”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데···.”

이번 기회에 한몫 단단히 챙겨보려던 대상인들은 갑작스러운 통제에 불만을 품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우스가 군사들을 풀어서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곡물류와 육류, 채소류, 어류 등의 식량들을 전부 걷어가 버렸다.

대상인들이야 조금 손해 보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사이에 낀 소상공인들은 일거에 쓸려나갈 정도로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

기존에 리푸아리들과의 거래를 통해서 저지대에서 주로 잡히는 수많은 청어와 정어리들을 가공해서 거래하던 상인들은 마리우스의 배급제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던 이들은 순식간에 일거리가 없어져 버리니, 멀쩡하던 가게를 내놓게 생겼고, 결국 견디다 못해 총독궁의 문을 두드렸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들을 통제하신다면 우리는 뭘 먹고 살라는 겁니까!”

“맞습니다! 여기저기서 물건 떼다가 팔아먹는 소상인들은 전부 굶어 죽으라는 것입니까?”

“제발, 저희에게도 살아남을 방법을 제시해 주십시오···.”

그들의 말을 들은 마리우스는 곰곰이 고민하더니, 이윽고 데키무스에 물었다.

“그 건은 리푸아리들이 관리하던 거 아니었나?”

“아, 얼마 전부터 우리 쪽에서 관리하게 됐습니다.”

“뭐? 왜?”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들의 수장인 테오데머가 오늘내일하면서 앓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 그랬었지···.”

마리우스의 말대로였다.

저지대에 오래전부터 로마의 국경 내에서 거주 중이던 저지대의 프랑크족인 리푸아리들은 지난번의 게르마니아 원정 당시에 도움을 주고받은 일이 있었다.

그들의 수장인 테오데머가 마리우스의 부인 중 하나인 에우독시아의 사촌이었던지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으나, 마리우스가 바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터라 만나지는 못했다.

안 그래도 나이가 제법 있던 테오데머가 어느 날 물고기를 생으로 먹었다가 탈이 생긴 뒤로 오늘내일하고 있었다.

그의 자식들은 어릴 적에 죽거나, 지난 동서 내전에 휩쓸려서 죽어버리고, 남은이라고는 파라몬드에게 시집간 딸 하나뿐이었다.

“마땅히 뒤를 이을 놈이 없으면, 그냥 게르마니아에 편입해달라고 하더라고.”

“차라리 파라몬드에 맡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테오데머의 사위이기도 하고, 충성심이 뛰어난 자가 아닙니까.”

“그렇게도 생각해 봤는데···. 리푸아리들은 그냥 게르마니아에서 섞여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 파라몬드 본인도 거부했고 말이야.”

“그럼 이번 일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사실 그쪽 지역에서 잡히는 청어나 정어리들은 쉽게 상하는 탓에 내륙으로 유통하기에 힘듭니다.”

“가만있어보자, 쉽게 상한다라···.”

먹고살 길이 막막한 소상공인들과 해변에 넘쳐나는 청어와 정어리들···. 둘의 연관 점을 고민하던 마리우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소금에 절여서 유통하면 될 일이 아닌가?”

“동방도 혼란스럽고 달마티아나 이탈리아도 혼란스러운지라 게르마니아까지 제대로 오지도 않습니다. 얼마 전에 소금광산을 찾지 못했다면, 소금이 모자라서 고생했을 겁니다.”

“그 정도야?”

“예, 지금 게르마니아에서 주로 나는 물건들은 전쟁물자가 대부분입니다.”

“으음···.”

몇 년 동안 게르마니아가 발전하기는 했으나, 그동안의 전쟁특수에 기생해서 쌓아 올린 기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다.

호노리우스가 만든 신형 대장간들은 매일같이 새로 생기고 있었고, 그 대장간들에서는 쉴 틈 없이 강철을 뽑아내고 있었다.

반면에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대리석공장이나, 실생활에 필요한 도자기를 구워내는 공방, 옷을 만드는 공방 등은 턱없이 모자랐다.

“일단은 저들을 먹여 살리는 게 우선이겠군.”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정리하자면, 먹을 수 있는 소금은 충분한데 생선을 절일 소금이 모자란다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럼 간단하지. 바닷물에 생선을 절여서 유통하면 될 일이 아닌가? 생선의 가공과 유통까지 맡기지.”

“바닷물···. 말입니까?”

자세히는 알지 못했으나, 한창 대학에 다닐 때 교양과목으로 들은 수업에서 네덜란드에서 청어가 많이 잡혔었는데, 이를 절일만한 소금이 없어서 바닷물을 끓여 수분을 날린 소금물을 소금 대용으로 썼었다는 걸 기억해낸 것이다.

물론 자세한 방식에 대해서는 마리우스도 기억하지 못했기에 상인들이 알아내야 했으나, 이 정도면 거의 다 알려준 거나 다름없었다.

“다음에 불만이 생기거나 불편한 점이 있으면,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지 말고 대표로 열 명 정도만 오게나.”

“예, 전하! 감사합니다!”

그렇게 물러간 상인들은 저마다 청어 손질법을 연구하는데 매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따로따로 연구하였지만,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서로 머리를 맞대고서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집단은 점차 규모가 커져만 갔고, 소상공인들은 삼삼오오 만든 집단의 규모는 대상인들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

식량 위기에 맞닥뜨린 게르마니아가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리우스가 이끄는 게르마니아는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상인조합이 생선 손질법을 연구함으로써 북해에서 쏟아지는 신선한 청어와 정어리들이 게르마니아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기아에 허덕이면서 금을 캐던 이주민들이나, 대농장에서 사탕무를 수확하던 농민들, 그리고 라인강 너머의 땅을 개척하던 게르만 인들은 당분간 식량 걱정을 덜게 됐다.

다만···.

“브리타니아에서 지원요청이 왔습니다.”

“아니, 그 새끼는 왜 자꾸 나한테만 도와달라고 그러는 거야? 하다못해 게르마니아보다 갈리아가 가깝잖아!”

“그만큼 콘스탄티누스나 브리타니아가 각하께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쯧···. 지금 같은 때에 군사를 일으키면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야. 군용창고에서 군량도 다 털어냈는데, 어떻게 병사를 보내겠어.”

마리우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사루스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자네가···? 병사도 없이 혼자 다녀오겠다는 건가?”

“예, 픽트족을 상대하는 법은 제가 잘 알고 있으니, 콘스탄티누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자네 혼자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야. 거기서 문제라도 생기면 개죽음이라고.”

마리우스는 사루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으나, 사루스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청했다.

“어차피 중앙에서도 이리 노골적으로 전하를 견제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브리타니아까지 세력을 뻗치시지요.”

“그런 촌 동네에 손을 벋어서 뭐하겠나?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도 벅차.”

“전하, 게르마니아의 모든 이들과 로마의 시민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원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루스의 말에 마리우스는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무엇을 말인가?”

“로마에는 전하가 필요합니다.”

사루스의 말에 마리우스는 멍하니 사루스를 바라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거참 골치 아프군.”

“저를 브리타니아로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병사 오백 명만 붙여주시면 브리타니아를 들어다가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오백 명···. 오백이라···.”

마리우스가 고민하는 듯이 보이자, 데키무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예속해서 유입되고 있는 어류자원 덕분에 식량 사정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습니다. 오백 명이 아니라 오천 명이라도 보급할 수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쯧···.”

마리우스는 영 마땅치 않다는 듯이 혀를 찼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출정을 허락했다.

“고작 오백 명으로 뭘 하려는 건가. 병사 삼천 명령을 내려줄 테니, 잘 고르고 골라서 브리타니아로 출병하도록.”

“감사합니다! 반드시 브리타니아를 전하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마리우스는 언제나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검을 풀어서 사루스에 건네주며 말했다.

“이 검으로 콘스탄티누스를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너무 긴장할 것 없어, 콘스탄티누스 그 새끼는 나와의 약속을 어겼으니, 그 대가를 받는 것뿐이야.”

마리우스는 전에 없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루스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임무에 실패해도 상관없고, 병사들을 전부 잃어도 상관없다. 자네만 돌아오면 충분해.”

“......”

사루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

사루스가 브리타니아로 떠날 무렵.

마리우스가 목 빠지게 기다리던 히파티아와 알렉산드리아의 노예···. 아니, 학자들이 아그리피넨시스에 도착했다.

“게르마니아에 온 것을 환영하오!”

그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마리우스는 맨발로 달려나가서 그들을 맞이했다.

이러한 마리우스의 행동은 그동안 알렉산드리아에서 제법 긴 시간 동안 고난을 겪은 감수성 짙은 학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그···. 저희가 어떻게 불러야 좋을까요?”

“편한 대로 부르시지요. 제가 얼마나 여러분을 기다렸는지 모르실 겁니다.”

“아···. 그럼 전하라고 부르겠습니다. 저희를 이렇게 반겨주시는 전하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게 뭐 별일이라고 그러십니까, 하하하.”

“알렉산드리아의 귀족들도 우리를 이렇게나 환영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배움을 청할 때는 고개를 숙였지만, 우리의 고난에서는 고개를 돌릴 뿐이었지요.”

“이런 나쁜 놈들을 보았나!”

마리우스는 학자들의 말에 일일이 맞장구를 치면서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작은 행동으로 그들을 감동하게 한 다음에 자발적으로 행정개편이라는 지옥 길에 밀어 넣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스틸리코는 다른 이들과 다른 줄 알았지만, 그도 결국에는 전형적인 귀족이자 군인이었습니다.”

“반면에 마리우스 전하께서는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항상 낮은 이들을 굽어살피시니 타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뿐입니까? 로마 전역에서 명맥만 간신히 이어오던 이교도들을 자유롭게 하셨으니, 그야말로 신앙의 수호자기도 하시지요.”

한 학자의 말에 방긋 웃고 있던 마리우스의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아, 전하께서 로마 전역에서 이단으로 몰려서 탄압받고 억압받고 있는 아리우스파를 가까이하고 계시잖습니까?”

“제가요? 언제요?”

마리우스에게는 모두 처음 듣는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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