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 - 4
게르마니아는 녹슨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렸지만, 나름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편이었다.
다들 다음봉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것처럼 하루가 멀다고 민란이 일어나고 있는 브리타니아나, 지난 라다가이수스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판노니아, 달마티아에 비하면 꼴찌는 면한 셈이었다.
다만, 이렇게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던 게르마니아에도 커다란 문제가 있었는데···.
“이야···. 지토 너 출세했구나?”
“아저씨도 참···. 출세는 무슨 출세에요.”
“너 입대한 지 몇 년 만에 부백인대장 달았다면서? 그럼 시간이 지나면은 백인 대장까지는 달 것 아냐?”
“그건 그렇긴 해요.”
“드디어 우리 마을에서도 전쟁영웅이 나오는구나!”
“에이···. 아저씨 너무 그러지 마세요.”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지토는 끊임없는 이웃들의 질문 공세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네가 전하를 구했다는 게 참말이냐?”
“코흘리개 지토가 전쟁영웅이 돼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냐!”
“다들 갈길 바쁜 사람 붙잡고 뭐 하는 건가! 고향에 돌아왔으니 가족부터 만나게 해야지!”
그렇게 이웃들을 떨쳐내고서 바쁘게 발걸음을 놀리던 지토는 집에 가까워질수록 한숨이 잦아졌다.
군대에서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고향 집이 눈앞에 있었지만, 지토는 쉽사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지토? 너 지토니?”
“아, 엄마···.”
시장에 다녀온 듯한 지토의 어머니는 장사에 쓰던 물건들을 전부 내팽개치고는 오랜만에 만나는 아들에게 달려갔다.
지토도 오랜만에 재회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면서 두 모자는 상봉했다.
******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지토는 지금 분노했다.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재혼 소식에도 분노하지 않던 지토가 분노한 것은 아주 간단한 이유였다.
“밀가루 한 포대에 이 가격이 말이나 됩니까? 무슨 밀가루에 금이라도 처바른 겁니까?”
“사람은 많아졌는데, 나오는 양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건 저기 산 너머에서 금 캔다고 지랄 중인 이들에게나 말하겠나? 난 물건 파느라 바쁘거든.”
이번 전쟁에서 얻은 두둑한 보상금으로 식량을 구하러 나왔던 지토는 갑작스럽게 올라버린 물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몇 년 동안을 군대에서 보냈던지라 몇 년 만에 돌아온 바깥세상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른 채로 치솟았고, 당장 거리에는 처음 보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지금에야 경비대가 돌아다니면서 그들을 감시한다고는 하지만, 매일매일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말도 마라. 너는 전하랑 같이 와서 모르겠지만, 나는 선발대로 석 달 전인가에 오지 않았냐?”
“그랬지.”
지토는 자신보다 먼저 고향에 돌아온 마커스에게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그때 이탈리아에서 데려온 빈민들도 몇 명인가 우리 마을에 유입됐더라고.”
“그 몇 명이 이렇게까지 불어난 거야?”
“그렇긴 한데···. 그 전에 일이 좀 있긴 했어.”
“일? 무슨 일?”
지토의 질문을 받은 마커스는 눈가의 흉터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저 산 너머에서 금광이 발견됐다고 하더라.”
“뭐?! 금광이?!”
“안에 있는 건 얼마 안 되는데, 처음에 금을 캔놈이 제법 큰 덩어리를 캐냈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든 거구나.”
“그렇지, 안 그래도 요새 북아프리카인지 하는 곳이 시끄러워서 거기서 들어오던 곡물들이 줄어들어서 이탈리아 상인 놈들이 게르마니아에는 안 판다던데?”
지금의 곡물 부족 현상은 게르마니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북아프리카가 결딴난 이후부터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던 곡물값은 마리우스의 이탈리아 원정 이후에 이탈리아에 있던 대농장들은 노동력 부족을 겪으면서 한해 농사를 망쳐버렸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마리우스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마리우스의 탓이 없다고도 할 수도 없었다.
어찌 되었건 이탈리아의 대농장들은 한해 농사를 망쳐버렸고, 그 결과로 갈리아와 히스파니아에서 나오는 모든 곡물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했다.
“식량이 부족하다···. 그럼 갈리아와 히스파니아에서 나는 곡물들은 우선 이탈리아로 들인다.”
요동치는 곡물값이 심상치않다고 여긴 올리브리우스가 칼을 빼들었다.
올리브리우스는 의도적으로 다른 속주들을 배제하면서 이탈리아를 챙겼다.
물론 갈리아나 히스파니아야 애초에 농작물 생산이 잘되는 곳이었으니 상관없었고, 달마티아, 판노니아와 같은 속주들도 군인이 대부분인 곳인지라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마리우스가 다스리고 있는 게르마니아나 콘스탄티누스가 이끄는 브리타니아는 이러한 조치에 직격탄을 맞았고, 이는 올리브리우스가 노린 것이었다.
그런 올리브리우스의 움직임은 스틸리코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다.
“올리브리우스가 제법 재밌는 일을 하는군.”
“장군, 게르마니아 총독에게 이를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냥 내버려 두게. 슬슬 마리우스의 성장에 한 번 제동을 걸만한 시기이긴 했어.”
“예?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날이 갈수록 마리우스의 성장세가 눈이 부실 지경이지 않은가, 지금 로마의 다른 세력들 중에 마리우스만큼 안정적이고 탄탄한 지지기반을 가진 이가 있기나 한가?”
“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우리의 처지는 목소리를 낼 만한 처지가 아니야. 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거지.”
이런 전례 없는 식량 위기 속에서 올리브리우스가 게르마니아에 날리는 견제구는 엉뚱하게도 브리타니아에 운석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유지되어가던 브리타니아 정국에서 식량의 우선 배급순위는 로마인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픽트족은 점점 뒤로 밀리게 되었고, 그렇게 하루 이틀을 굶던 픽트족이 들고일어나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도 먹을 것을 달라!”
“로마놈들은 부드러운 빵을 먹는데, 우리는 들판에 풀떼기나 뜯어먹으라는 거냐!”
그동안 콘스탄티누스가 펼쳐왔던 로마, 픽트분리 정책으로 인해 더욱 똘똘 뭉치게 된 이들은 순식간에 론디니움을 장악해버릴 정도였다.
물론 정신을 차린 콘스탄티누스가 병력을 긁어모아서 다시 찾기는 했지만, 론디니움에 있던 식량창고가 털려버린 뒤였다.
반란은 성공적으로 진압했으나, 브리타니아에는 정말로 먹을거리가 전부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마리우스 전하께 전령을 보내서 식량 지원을 받는 수밖에···.”
******
그리고 지금.
마리우스가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늦은 후였다.
“지금 먹을 게 없어서 식량값이 하늘 모르고 날뛰고 있다는 건가?”
“예, 지금 보리가격도 오르고 있습니다. 특별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니, 자네는 지금까지 뭘 하다가 이제야 말하는 건가?!”
마리우스는 데키무스를 탓했지만, 그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각하께서 시키신 일들을 처리하느라 식량 사정에 신경 쓸 틈이 없었습니다.”
“끄응···. 그건 그렇지···.”
“일단은 급한 대로 군용창고를 열어서 미쳐 날뛰고 있는 곡물가를 낮춰볼까요?”
“우선은 그렇게 진행하는 거로 하···. 아니지, 시장에 푼다고 해서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예?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마리우스가 오랜만에 머리를 굴리는 모습에 데키무스가 기겁하며 물었다.
이에 마리우스가 씨익 웃으며 답하기를.
“이제부터 게르마니아에서 나오고 들어오는 모든 식량은 중앙에서 관리하면서 전면 배급제로 운영하겠다고 선포해.”
“농민들이 반발할 겁니다. 그리고 행정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를 않아서 제대로 된 배급제가 시행될지도 의문이 드는군요.”
“게르마니아 전역에서 일어나는 소요사태와 혼란을 막기 위해서 시행하는 조치라고 해. 어차피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나아.”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후후후···.”
마리우스는 불안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잘만하면, 게르마니아 인구조사를 한 번에 끝낼 수도 있겠어.”
“예? 그건 무슨···. 설마, 배급을 받으려면 명부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뭐 그런걸 하시려는 겁니까?”
“맞아.”
“맙소사···. 각하, 아직도 게르마니아에는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무슨···.”
“물론 폐단이 제법 있을 거야. 없진 않겠지, 그래도 일단은 게르마니아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줘야 해.”
“누구에게 말이니까?”
“그게 누구든 간에 말이야. 지금 게르마니아에 식량이 부족해진 게 우리 탓인가?”
마리우스의 뼈있는 질문에 데키무스가 움찔했다.
“그럼 이 사태를 뒤에서 조장하는 이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럼! 갑자기 이탈리아에 있는 대농장들이 전부 농사를 망쳐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이렇게 들어보니, 각하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들이 우리 게르마니아를 공격해서 얻을 이익이 뭡니까?”
데키무스가 제법 기대된다는 듯이 물었지만, 마리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나라고 알겠나.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예,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
올리브리우스의 이탈리아 우선 정책은 갈리아를 비롯한 다른 속주들의 불만을 가져왔다.
아니, 오히려 스틸리코가 그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번 식량 위기 사태의 원인을 따지고 보자면 스틸리코의 북아프리카 정책 실패부터 그로 인해 발생한 길도의 반란 등등···.
따질 게 많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사태를 일으켰느냐보다.
‘누가’ 이 상황에 책임을 질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스틸리코는 이 일에 책임지기 싫어했고 말이다.
“스틸리코가 재밌는 짓을 하는군.”
물론 올리브리우스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지금은 조용히 바닥에 배를 딱 붙이고서 엎드려 사는 알라리크의 수많은 족쇄 중의 하나를 풀어줬다.
“알라리크, 자네 동생인 아타울프를 갈리아로 보내고 싶은데···. 빌려줄 수 있겠나?”
“아타울프를 말입니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이유로 부르시는 것인지 알 수 있겠는지요?”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간단한 소요사태의 진압에 자네 병사들을 쓰고 싶어서 말이야.”
“......”
올리브리우스는 알라리크를 내세워 앞서있을 스틸리코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부에서 돌고 있는 전염병과 마리우스의 빈민 대이동 덕분에 먹여야 될 입이 줄어들어서 국정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훌륭하군. 자네 휘하의 병사 삼천 명을 동원하는 걸 허락하겠네, 물론 지휘는 자네 동생이 하는 것이고 말이야.”
“예, 휘하 병력 삼천 명을 동원해서 갈리아의 소요사태를 진압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소식은 스틸리코의 귀에도 들어갔다.
“장군, 올리브리우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음···. 고작 삼천 명에···. 고트족을 움직였다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일단은 갈리아에 시민들을 진정시키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스틸리코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올리브리우스가 동원한 병사들의 수가 애매했고, 또 고트족이란 사실이 걸렸다.
이민족을 수족처럼 부리는 황제를 시민들이 좋아할 리는 만무했고, 올리브리우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들을 동원했다는 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은 현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게.”
“현 상태 유지 말입니까?”
“일단은 올리브리우스의 움직임을 잘 살피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감시한다.”
그렇게 스틸리코와 올리브리우스의 눈치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