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 - 3
호노리우스가 다시금 동서로마를 통합하는 역사적인 날이었지만, 마리우스는 한낮의 땡볕 아래에 누워서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각하께서 그리 말씀하실 때마다 문제가 생겼던 것 같은데···.”
“자네는 그런 미신 같은 거나 믿는 건가?”
“전하! 전하아!! 전하아아···!”
“보십시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데키무스의 말대로였다.
이제는 외눈박이 훈련대장이라고 불리는 파라몬드가 저 멀리에서 뛰어오며 마리우스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전하!”
“파라몬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훈련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
“그것이···.”
일은 이러했다.
평소와 같이 미래의 정예 병사들을 길러내던 훈련소에 어느 날 게르만 귀족의 아들이 입대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전쟁 중에야 그런 것 없이 군홧발과 몽둥이로 때려잡았겠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니 이런 이들을 강제로 이끌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이번에 훈련소에 입소한 이가 제법 유력한 부족의 막내아들이었기에 파라몬드는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뭐 그런 사소한 일까지 내게 보고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확실히 골치 아픈 일이긴 하군···.”
“이래서 귀족들까지 징집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은 겁니다.”
“원래 장교도 바닥부터 구른 놈이 잘하는 거 아니겠어?”
“지금 각하께서 하시는 일은 굳이 전투용 무기로 요리를 하시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무기를 손에 익게 하신다고 요리할 때까지 쓰려 하시는 것과 같다. 이 말입니다.”
“으음···. 자네 말이 맞는군. 이건 내 실수야.”
마리우스는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떠오른 것을 간단하게 툭 내뱉었다.
“일단은 귀족 자제들은 훈련소에서 분리하고, 병사가 아니라 장교로 훈련받게 하지 뭐.”
“그럼 훈련소가 하나 더 필요하겠군요.”
“아니, 굳이 돈 더 쓸 필요 없이 방만 나눠서 쓰게 해. 대충 일반 병사들처럼 싸울 줄 알아야 그들을 지휘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거기에 장교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추가하면 되겠군요.”
“바로 그거지. 역시 데키무스는 눈치가 빨라.”
조용히 마리우스와 데키무스 간의 말을 듣고 있던 파라몬드는 이내 환한 얼굴로 경례를 올리고는 달려왔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돌아보던 마리우스는 고개를 돌려 데키무스에 물었다.
“그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그 철학자들은 게르마니아에 도착했나?”
“아뇨. 아마 몇 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제법 오래 걸리는군···. 그럼 게르마니아의 인구수파악은 뒤로 미뤄둬야겠군.”
“우선은 기존의 세리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세금을 관리하는 관료로 고용하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반발이 엄청납니다.”
데키무스의 말대로였다.
기존의 로마의 세금들은 대부분 세리에게 돈을 빌리거나 받고서, 일정 기간이나 일정 지역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는 했는데.
당연하게도 이런 방식에서는 세리들이 빌려주거나 건네준 돈보다 더 걷으려고 난리를 쳐대기 일쑤였지만, 이들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었기에 대놓고 욕할 수도 없었다.
이런 징세권을 두고 세리들끼리 경쟁이 붙는 예도 있기도 했지만···.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리우스는 이런 방식의 징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이런 세리들은 그저 게르마니아에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모기나 다름없는 존재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랬기에 마리우스가 게르마니아의 왕으로서 취임하고서는 전부 행정관료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하루아침에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고, 고생은 배나 하는 업무를 강제로 떠맡게 된 세리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업무를 거부하거나, 자금을 사사로이 유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큰일이 없으니까, 잘 타이르면서 어르고 달래봐. 적어도 히파티아의 동료 철학자들이 게르마니아에 도착할 때까지만 말이야.”
“그렇게 되면 차라리 다들 떠나려고 들것입니다.”
“그럼 떠날 놈은 떠나보내고, 남을 놈만 남으라고 해. 어차피 별로 쓸모있는 놈들도 아니었잖아.”
전에 없이 단호한 마리우스의 모습에 결국 데키무스가 한걸음 물러났고, 곧바로 다음 보고를 이어갔다.
“후우···. 그 건은 그렇게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다음은 라인강 너머의 게르만 부족의 재건설 말입니다.”
“아, 그래 그것도 있었지.”
“우선은 라인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시멘트와 게르마니아에 거주 중인 건축가들을 총동원해서 진행하고는 있지만···.”
“있지만?”
데키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단번에 끝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부들이야 그곳에 거주 중인 게르만 인들을 동원하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도로를 정비하는 게 문제입니다.”
“놀고 있는 병사들 데려다가 써.”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라인강 너머의 게르마니아 대부분이 늪지대와 숲인지라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을 중심으로 도로를 새로 깔아야 하는데···.”
“그만, 그만하고 요점만 말해.”
“땅이 지랄 맞아서 도로 깔기가 힘듭니다.”
데키무스의 말대로 늪지대와 빽빽한 숲이 가득한 게르마니아에서 도로를 까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한정된 인력과 자본으로 도로를 까는 것만 해도 진척이 더뎠다.
“뭘 해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군.”
“결국에는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긴 합니다만···. 아마 각하의 손자의 손자쯤은 가야 제대로 개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력과 자본을 계속 쏟아부으면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을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당장 사람을 밀어 넣는다고 쳐도, 그 땅을 제대로 활용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차라리 전쟁터가 더 속 편했어.”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일입니다.”
“후···. 어디 나 대신에 일해줄 만한 사람 없을까?”
“각하···. 솔직히 각하께서는 전부 제게 명령만 하시고, 도장만 찍으시지 않습니까.”
“그것도 귀찮아서 하는 말이야.”
******
파비우스가 이끄는 친위대와 에우트로피우스가 이끄는 훈족 병사들 간의 싸움은 쉽사리 결판이 나질 않았다.
몇 주 동안이나 이어진 전투에 다들 지쳐버렸고, 시민들 또한 하루빨리 싸움이 끝나기를 바랐지만, 그러기에는 둘의 전력이 비등비등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는 그림이 나와야 협상을 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호노리우스는 에우트로피우스와 파비우스에게 전투를 멈추라는 칙령을 보냈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호노리우스가 손수 군대를 이끌고 파비우스와 에우트로피우스가 싸우는 중인 전장에 난입하여 둘의 싸움을 조정했다.
“자자, 우리 모두 평화를 즐깁시다. 평화! 얼마나 좋은 단어입니까?”
“으음···.”
“커흠···.”
내심 둘도 의미 없는 싸움이 길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호노리우스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동의했고, 결국 협상장에 들어오기는 했다.
“황제 폐하의 사망과 관련된 일체의 수사권을 제게 넘겨주십시오.”
라는 파비우스의 주장과.
“황제는 살해당한 것이 아니고 자살한 것이니 수사는 불필요하다.”
라는 에우트로피우스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서로 화해는 하고 싶었으나, 정작 주장하는 것을 들어보자면 계속 싸우자는 것과 다름없었으니, 호노리우스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하늘에 계신 나의 주인께서 내게 내려주신 권한으로 에우트로피우스의 섭정직과 파비우스의 친위 대장직을 모두 거두겠다.”
파비우스는 덤덤하게 이를 받아들였지만, 에우트로피우스는 반발하면서 울딘을 부추겼다.
“당장 황제를 공격하시오!”
“음···. 내 친구 에우트로피우스여. 나는 로마의 황제와 싸우고 싶지는 않네.”
“아니, 그게 무슨···.”
그동안의 전투에서 적잖은 부하들을 잃은 울딘은 고향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새롭게 나타난 호노리우스와도 싸우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물러났다.
그렇게 에우트로피우스의 유일한 믿음이었던 훈족 군대가 물러나고, 파비우스의 친위대 또한 호노리우스의 휘하로 편입되어 버리니, 동방을 불태웠던 파비우스와 에우트로피우스 간의 다툼도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호노리우스 만세!”
“황제 만세!”
물론 그런 건 에우트로피우스나 파비우스의 경우에나 그런 것이었지, 시민들은 호노리우스를 환영했다.
몇 년 동안 이어진 동방의 혼란으로 콘스탄티노플의 시민들은 너무나도 지쳐있었고, 하루빨리 이 혼란을 끝내줄 만한 이를 원하고 있었는데, 호노리우스가 기가 막히게 등장했던 것이었다.
몇 년 전 가이나스와 루피누스가 일으켰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던 어린 황제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 어린 황제가 늠름한 청년이 되어 돌아왔으니,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동방의 귀족들이나 유력자 중에서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호노리우스를 막아서는 정신 나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이, 폴로.”
“부르셨습니까.”
“내가 뭐랬어? 이게 먹힌다고 했지?”
“운이 좋았습니다. 솔직히 거기서 훈족이 고향으로 돌아갈 줄 몰랐습니다. 솔직히 한판 붙을 것도 각오했는데···.”
“그걸 다 계산한 거지.”
“계산이요?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울딘 그놈이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고 있었으니, 그 밑에 불만을 가진 놈이 들고일어날 만했어.”
“그냥 결과론적인 분석 아닙니까?”
폴로의 말에 호노리우스가 실실 웃었다.
“결과가 중요한 거지.”
“쓰읍···. 스틸리코 장군을 적대하고 동방을 먹으셨는데, 이제 다음 행보는 뭡니까?”
“뭐긴···.”
호노리우스는 세상 늘어지는 자세로 왕좌 위에 앉아서 폴로에 말했다.
“당분간은 상황을 잘 지켜봐야지.”
“이탈리아로 돌아가시는 게 아니라요?”
“거긴 이미 틀렸어. 처음부터 나를 지지해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고, 대부분 숙부를 따르거나 올리브리우스를 따르는 이들뿐이잖아.”
호노리우스는 오른손의 검지를 펴서 바닥을 가르치며 말했다.
“반면에 콘스탄티노플의 시민들은 어때? 거리만 봐도 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가득하잖아.”
“그거야 일시적인 인기가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금방 사그라들 것입니다.”
“아니지···. 아니야 폴로, 지금 동방의 시민들은 전에 없이 힘겹고 위태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어.”
호노리우스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 세상이···. 아니, 로마가 강인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데, 스틸리코는 너무 오랫동안 시민들에게 얼굴을 보인 탓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어.”
“올리브리우스는요?”
“그 인간은 확신하고 행동할 때는 그 누구보다 무서운 사람이긴 하지만···.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질 않아. 낚싯대만 드리우고 물고기가 물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야.”
“으음···. 그럼 마리우스 장군은 어떻습니까? 지금의 로마에서 가장 세력도 크고, 스틸리코의 안배로 반쯤은 독립하지 않았습니까?”
마리우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호노리우스가 잠깐 멈칫하더니,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우스야 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긴 한데, 당분간은 게르마니아에 틀어박혀서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모래 위에 세워진 성과 같은 평화지만, 평화는 평화잖아? 평화로울 때 군인들이 할 수 있는 건 집에서 쉬는 것뿐이지.”
“그렇군요.”
“거기에···. 마리우스는 정치적인 지형도로 봐도 여기저기 복잡하게 엮여있어서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잖아?”
그렇게 말한 호노리우스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에우트로피우스를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기도 하지···. 시민들은 당장 죽이라고 아우성치지만···.”
“그랬다가는 마리우스 장군이 분노하겠군요.”
“바로 그게 문제라는 거야. 젠장···. 스틸리코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그거야 모를 일이지요.”
폴로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