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두 황제가 로마로 걷고 있었네. - 3
올리브리우스에게서 온 편지를 받은 스틸리코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합하, 무엇이 그렇게 즐거우신지요?”
“흐흐흫···. 올리브리우스가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십니까?”
“자기 밑으로 오라는군.”
스틸리코의 말에 실실 웃고 있던 부관의 표정이 순간 급격히 굳어버렸다.
“이런 미친 새끼가···.”
“어차피 갈 곳도 없을 텐데, 뭘 그렇게 고생을 하냐는 군. 그냥 자기편으로 붙으라고 하는데?”
“합하!! 당장 로마로 돌아가서 올리브리우스를 끌어내리시지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부관은 잔뜩 흥분했다는 듯이 씩씩거리며 소리쳤으나, 스틸리코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네만.”
“예?! 그게 무슨···.”
“어차피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거기다가 우리에게는 서로 필요한 걸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필요한 것이라니···.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야. 호노리우스가 날 쳐냈어, 라벤나로는 못 돌아간다 이 말이지.”
스틸리코의 말에 부관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합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호노리우스가 먼저 우리를 때렸으니, 우리가 반격해서 호노리우스를 쫓아내면 될 일이 아닙니까···?”
“이보게, 아무리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고는 해도 숙부가 조카를 밀어내고 가족끼리 피를 보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야.”
“실언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합하.”
“이제는 합하도 아니지, 섭정직에서 쫓겨나질 않았는가?”
“그, 그렇군요. 합···. 아니, 장군.”
“그래, 올리브리우스가 우리의 무력이 좀 필요한 모양이네만···.”
“합류하실 겁니까?”
스틸리코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원래 친구는 가까이하고, 적은 한 걸음 더 가까이 두라고 하지 않았는가.”
“알겠습니다. 그럼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을 마리우스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었던 것 같은데···.”
스틸리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씩 재건 중인 알렉산드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죽 쒀서 개나 줘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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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리코···!”
“당신이 어떻게 여길···.”
“다들 내가 그리웠던 모양이지만···. 내가 어떻게 여기 있는지보다는 왜 여기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나?”
“올리브리우스···. 동지들을 배신할 셈이오!”
한 의원의 외침에 올리브리우스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그를 비웃었다.
“동지? 잠깐 한눈팔면 바로 등에 칼 꽂으려던 이들을 동지라고 부를 수가 있던가?”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건 천천히 알게 될 거야.”
“우리에게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고요. 올리브리우스!!”
올리브리우스와 척을 지던 이들이 대부분 끌려나가고, 남은 이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지긋이 내려다보던 올리브리우스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은 남아있군. 참으로 다행이야.”
“저, 저희는 언제나 폐하를 지지할 뿐입니다···.”
“그럼, 자네들의 충성심은 잘 알고 있다네.”
올리브리우스는 단숨에 반대파를 쳐내버리고서는 교통정리를 끝마쳤다.
그동안 골치를 썩이던 이들을 한 번에 쳐내버리니, 그동안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아주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스틸리코와 손을 잡고서 이뤄낸 것이기는 했지만, 올리브리우스의 계산으로는 알라리크에게 조금 힘을 실어주면 스틸리코도 잘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스틸리코는 차근차근 힘을 빼놓은 다음에 정리해야 한다···. 너무 급하게 서둘렀다가는 역으로 내 목이 위험해져.’
스틸리코 또한 잠깐의 불리함에 올리브리우스와 손을 잡았지만, 자신이 원해서 맺은 동맹은 아니었기에 언제고 올리브리우스를 쳐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내 뜻대로 돌아가는 일이 하나도 없어···. 아르카디우스에 마리우스, 그리고 호노리우스까지 말이야···. 그래서 더 재밌는 거기도 하지만···.’
올리브리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스틸리코를 악수를 청했고, 스틸리코 또한 미소를 지으면서 올리브리우스의 손을 맞잡으며 화답했다.
“장군의 도움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폐하.”
“앞으로는 서로 다투지 말고 힘을 합쳐서 위기에 빠진 로마를 구해봅시다.”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오랜 기간을 함께해온 친구처럼 미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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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가 원래 이렇게나 멀었던가?”
“아무리 느긋하게 가도 이 주일 정도면 도착합니다.”
“빈민들은 잘 챙기고 있겠지?”
“예, 어찌나 잘 처먹는지 풍족했던 군량이 아슬아슬해질 지경입니다.”
“병자나 부상병들은?”
“볼로냐에 있는 마차들을 전부 수배했으니 문제없을 것입니다.”
데키무스의 보고에 마리우스가 흡족하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데키무스야. 일 처리가 기가 막힌단 말이지.”
“이렇게 보니, 각하와 처음 만났던 그때가 떠오르는군요.”
“메디올라눔에서 처음 만났을 때?”
“예,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각하께서는 변하신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음···. 자네도 변한 게 없어.”
“저도 많이 늙었지요···.”
데키무스는 희끗희끗하게 솟아난 흰머리를 쓸어넘기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체감하고 있습니다. 각하를 따라서 여러 전장을 누볐지만···.”
“데키무스, 이제야 40줄을 바라보는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조금 우습지 않은가?”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말해도 은퇴는 안 되니까 그렇게 알게.”
“예,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알았으면, 가서 일하게나.”
데키무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뒷줄로 돌아가 버렸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부려먹을 건데, 벌써 앓는 소리라니 쯧쯧쯧···.”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음? 사루스로군.”
데키무스가 떠나고 나니, 이번에는 사루스가 조심스레 다가와서 내 안부를 물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다 나은지가 언제인데, 몇 번이나 묻는 건가?”
“흉터가 그렇게나 큰데, 걱정할 만하지 않습니까.”
“으음···. 아무튼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나저나 가우덴티우스는 좀 어떤가? 통 소식을 못 들은 것 같은데.”
“아···. 가우덴티우스 경 말씀입니까?”
사루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가우덴티우스 경은 깨었다가 기절하는 걸 반복하고 있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을 잃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뭐?! 군의관들은 뭘 했기에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내버려 둔 거란 말인가!”
“그들도 나름대로 노력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늘의 뜻을 거스르기는 힘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가우덴티우스가 죽는 게 하늘의 뜻이다. 뭐 그런 건가?”
마리우스의 뾰족한 말에 사루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변명했다.
“그, 그것이 아니오라···.”
“쯧···. 후우···.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욱해버렸군.”
“아닙니다···. 제가 전하의 기분을 상하게 하였으니, 제 잘못입니다.”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떠나는 가우덴티우스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겠나.”
“......”
마리우스는 가우덴티우스를 떠올리면서 연거푸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강렬했다.
목숨을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마리우스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게 도와줬던 것도 가우덴티우스가 아니었던가?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마리우스는 아직도 변방을 떠도는 이름 없는 백인 대장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아에티우스가 슬퍼하겠군.”
“군인의 아들입니다. 잘 이겨내겠지요.”
“그런 말이 어디 있나? 군인의 아들이건, 상인의 아들이건, 농부의 아들이건, 슬픔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와서 깊은 상처를 남기는 법이야.”
“그렇군요···.”
마리우스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하늘을 바라보기를 여러 번, 마리우스는 한참 동안 말없이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가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을 보고는 사루스에 넌지시 말했다.
“그동안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겠지?”
“전하의 탓이 아닙니다.”
“내 탓이 아니긴···. 일단 게르마니아로 돌아가서 그런 아이들을 위한 보육원과 학교를 세워야겠어.”
“좋은 생각이십니다.”
“나를 보좌해줄 참모도 육성해야겠고 말이야.”
“참모 말입니까···?”
사루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으나, 마리우스의 말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한편, 게르마니아로 떠나는 마리우스의 부대를 따라나선 프로바는 굳이 마차를 거부하고 빈민들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마리우스를 찾았다.
“유모, 뭐가 좀 보여?”
“아가씨, 그냥 마차에 오르자니까 그래요!”
“씨이···. 유모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가 뭘 몰라요! 아가씨가 남자에 미치셔서 다 고생시키는 거 아녜요!”
“그럼 이대로 늙어 죽으라는 거야?!”
“세상에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런 놈팡이한테 홀리셔서는···.”
“뭐?! 놈팡이!”
유모의 말에 발끈한 프로바가 기관총처럼 말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남자들은 많지만, 마리우스 같은 남자는 얼마 없다고!”
“그놈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네요.”
“잘났지! 지금 로마에서 마리우스만 한 사람이 있겠어? 황제하고도 긴밀한 사이인 데다가, 동서 가릴 것 없이 군부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잖아.
그것뿐인 줄 알아? 스틸리코와 에우트로피우스와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고, 당장에라도 마리우스의 명령에 움직일 수십만 명의 병사들도 있잖아!”
프로바의 말에 유모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아가씨,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조만간 안주인이 될 몸이니, 미리 알아둬서 나쁠 게 없잖아?”
“아니, 마리우스 각하는 이미 결혼하셨다면서요.”
“유모도 참···. 로마에서는 누구랑 같이 사는 게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누구를 후계자로 세우냐는 거지.”
“참···. 꿈도 크시네요. 듣기로는 마리우스 각하의 큰 아드님이 올해로 네 살이라는데, 아가씨께서 끼어 들어갈 자리나 있겠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유모.”
꿈 하나만큼은 로마 제일인 프로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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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콘스탄티노플 인근의 평원에서는 울딘과 에우트로피우스가 이끄는 훈족 병사들과 파비우스가 이끄는 친위대 병사들이 대치 중이었다.
양측은 서로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면서 대치 중이었는데, 지나가던 야생동물들도 이곳을 피해갈 정도였다.
그리고 그 병사들 사이에서 에우트로피우스와 파비우스가 얼굴을 마주한 채로 대화를 나눴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합하!”
“나도 오랜만일세 파비우스!”
“그냥 돌아오시면 될 일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었네만, 자네가 나를 적대하니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굳이 피를 보셔야겠습니까?”
“나도 피를 원하지 않네만, 자네가 피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도 피를 봐야 하지.”
에우트로피우스나 파비우스 모두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여기서 물러섰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끝을 보자는 겁니까?”
“자네가 원한다면 말이지.”
파비우스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에우트로피우스에 물었다.
“그렇다면 하나만 묻겠습니다···. 황제 폐하를 죽인 건 누굽니까?”
“황제?”
파비우스의 질문에 그는 미소를 짓더니, 이내 큰 소리로 외쳤다.
“황제 폐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몇 달 동안이나 숨겼지!”
“!!!”
“왜 황제 폐하께서 목숨을 끊은 줄 아는가!”
에우트로피우스와 파비우스의 시선이 공중에서 맹렬히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