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두 황제가 로마로 걷고 있었네. - 2
마리우스의 군대는 퇴각 준비를 서둘렀다.
병사를 잘게 쪼갠 마리우스는 군대를 이탈리아 북부 이곳저곳에 보내서 메뚜기떼처럼 빈민들을 쓸어모으기 시작했다.
도시의 시장들은 골칫거리였던 빈민들을 데려가 준다는 마리우스의 말에 두 팔 벌려 환영하면서 도시에 숨어있는 빈민들까지 내어줄 정도였다.
“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셈이지···?”
“듣기로는 게르마니아로 간다던데···.”
“뭐? 게르마니아?! 거기는 야만인들의 땅 아닌가···? 아이고···. 우린 전부 망했어···.”
“마리우스 장군은 다를 줄 알았더니···. 결국엔 모두 똑같은 놈들이었어!”
“이럴 게 아니야! 거기가면은 모두 죽는다고!”
그동안에 뭉치지 못했던 빈민들이 게르마니아에 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한데 모여서 봉기를 일으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악독한 마리우스는 물러나라!”
“우리는 게르마니아로 가기 싫다!”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항은 잘 훈련된 마리우스의 병사들에 의해서 손쉽게 제압당했다.
“이 자식들이 너희를 도와주려는 전하의 마음도 몰라주고 도리어 들고일어나?!”
“전부 진압해!”
“주동자부터 잡아들여!”
“한 놈도 빠짐없이 잡아들여!”
“사지만 멀쩡하면 상관없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소요사태는 마리우스의 귓가에까지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빈민들이 게르마니아에 가기 싫다고 폭동을 일으켰다. 뭐 그런 말이로군.”
“저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라···.”
“음···. 그동안 게르마니아에만 신경 쓰느라 바깥 평판을 신경 쓰지 못한 모양이야···.”
마리우스는 씁쓸함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빈민들의 마음이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북이탈리아는 몇 년 전에 있었던 라다가이수스의 침략으로 이민족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남아있지 못했다.
그런 이들에게 대뜸 게르마니아로 가자고 하니 당연하게도 반발이 생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격하게 반발할 줄 몰랐다.
“게르마니아도 살만한데···.”
“아무래도 각하께서 아시는 야만인들과 그들이 알고 있는 야만인들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야만인들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건가?”
마리우스의 말에 데키무스가 웃으며 말했다.
“보십시오. 각하께서는 저들이 야만인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누가 야만인인데?”
“게르만인들 말입니다.”
“아직도 그 친구들을 야만인들이라고 믿는 건가?”
“한번 박힌 인식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있겠습니까.”
마리우스는 자신의 까슬까슬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게르마니아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마리우스가 아무리 고민해도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데키무스, 무슨 좋은 생각 없나?”
“그들에게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
마리우스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으면서 손뼉을 쳤다.
“그래! 그거로군!”
“좋은 생각이 떠오르신 모양이로군요.”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지.”
******
그날 이후로 마리우스는 주변에 흩뿌려놨던 병사들에게 분기별 봉급과 지난번에 약속했던 보너스를 한 번에 지급했다.
갑작스럽게 목돈이 생긴 병사들은 마리우스를 찬양하면서 갑작스럽게 생긴 돈으로 그동안 필요했던 것을 사거나, 유흥을 즐겼다.
당연하게도 약탈 한 번 없이 갑작스럽게 돈이 생겨난 병사들을 보며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이보슈, 그 돈들은 어디서 난 거요?”
“아. 이거 말이오? 이번 분기 봉급에다가 특별수당을 받았지 뭐요?”
“아니, 게르마니아의 총독이 준 돈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각하께서는 게르마니아에서 제일, 아니지 로마 제일의 부자시거든요!”
“그렇습니까···? 게르마니아에서 돈을 벌 만한 거라도 있는지요?”
“허, 돈을 벌 수가 있냐고요? 농담하시는 겁니까? 게르마니아에서는 땅만 파면 금이 쏟아져나오는 금광이 있는 것도 모르셨습니까?”
물론 대부분 병사는 게르마니아에 있는 금광에 대해 몰랐지만, 마리우스가 수당을 지급하면서 넌지시 금광에 대한 소문을 흘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주변으로 소문을 퍼뜨렸고, 소문이 점점 퍼져나가자 게르마니아에 가기 싫다던 여론은 급속도로 힘을 잃었다.
오히려 자신들을 게르마니아로 데려가는 마리우스를 핍박받던 이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으로 이끌었던 모세에 비교하며 찬양하는 사람도 왕왕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리우스와 데키무스가 한데 머리를 맞대어 벌인 이번 일이 엄청난 후폭풍이 되어 돌아올 것을 마리우스는 알지 못했다.
“각하의 예상대로 지원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황금은 못 참지.”
“다들 게르마니아에서는 지나가던 들개도 황금을 물고 다닌다고 떠들고 있더군요.”
“음···.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마리우스는 인간의 탐욕을 너무 가볍게 봤다.
본인 딴에는 그저 서부극에서 봤던 골드러시쯤으로 생각했지만, 마땅히 돈 벌 수단이 없었고 고위층들에게 수탈당하기 바빴던 이 시대의 빈민들과 하위층들의 재물욕은 마리우스가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이었다.
“뭐?! 게르마니아에 가기만 하면 금 한 덩이를 그냥 준다고.?!”
“게르마니아에서는 땅에 깃발만 꽂으면 내 땅이라고?!”
“게르마니아에서는 은화 열 닢이면 황제처럼 살 수 있다는 게 정말인가?!”
“게르만인들이 그렇게 돈이 많다고?”
대지주들의 밑에서 소작을 지내던 소작농들마저도 이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니···.
소작농들이 하나둘씩 정든 고향을 벗어나서 마리우스에게 합류하기 시작하니, 지주들은 그야말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몇몇 이들의 일탈쯤으로 생각했지만, 날이 지날수록 수십에서 수백 명의 소작농이 도망치니 몇몇 이들은 마리우스를 찾아가 따졌다.
“이게 말이 되는 행동입니까! 당신이 데려간 제 농민들을 돌려주십시오!”
“그렇게 빈민들을 깡그리 데려가시는 탓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아십니까? 이 피해를 어떻게 보상하실 겁니까!”
뻔뻔한 그들의 행동에 마리우스는 기가 찼다.
“아니, 제가 그들에게 도망치라고 등 떠밀었습니까? 오히려 오기 싫다는 이들을 억지로 보낸 게 당신들 아니었습니까!”
“내 농민들은 왜 데려가는 것이오!”
“내가 데려간 적 없으니, 빈민들 사이에서 찾아서 데려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오.”
“그걸 변명이라고···.”
“내가 당신에게 왜 변명을 한단 말입니까? 마음만 먹으면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쳐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다고 내가 처벌이라도 받을 것 같습니까?”
마리우스의 작은 분노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분노로 인해 마리우스를 찾아오기는 했지만, 지금의 마리우스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가장 많은 군대를 이끄는 이가 아니었던가.
다들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고서는 말을 줄였다.
“흠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조금 자제해달라는 그런 말이었지요···.”
“생각해보니, 그동안 소작농을 잘 관리하지 못한 제 잘못이었지요···.”
“자네들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마리우스의 군영에는 새로운 삶과 희망을 찾아서 게르마니아로 떠나려는 빈민들과 빈민인 척 위장한 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들 때문에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해질 정도가 되자, 마리우스가 칼을 뽑아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지금 몰려드는 이들이 진짜 빈민인지 확인해서 가려 뽑아.”
“세상에···. 돈이 많은지 검사하는 건 들어봤어도, 돈이 없는지 확인하는 건 또 처음이군요.”
“그래서 안 하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당장 하죠.”
로마 역사에서 아니, 전 세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빈민면접이 시작되었다.
******
마리우스의 이러한 행보는 호노리우스와 올리브리우스를 곤란케 했다.
로마의 공동황제였던 둘은 이러한 마리우스의 ‘일탈’을 억제하고 제어할 필요가 있었으나, 호노리우스는 이미 거하게 사고를 친 탓에 마리우스와 척을 지려 하지 않았고, 올리브리우스는···.
“그쪽은 우리 관할이 아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로마의 황제나 되시는 분이 어째서 시민들의 곤란을 멀리하시는 겁니까!”
“가만 보아하니, 시민들 스스로가 마리우스를 따라서 게르마니아로 가려는 것인데, 그들을 막을 이유나 명분이 있나?”
“그럼 저희가 손해를···.”
“손해라고 해봤자, 자네들 재산에서 흠집이라도 나긴 하나?”
“크흠···.”
“커 흠···.”
“흠흠···.”
올리브리우스의 일침에 다들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물론 뻔뻔하게 나오는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 그들이 저희의 재산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손해가 아무리 적어도, 손해는 손해입니다!”
이에 올리브리우스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자네에게는 부끄러움이란 것도 없는 건가? 푼돈이나 지키겠다고 온갖 추잡한 짓은 다 하려고 드는군.”
“끄응···.”
“쓸데없는 짓으로 마리우스를 건드렸다가는 가만있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게나.”
“폐하, 제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가.”
“당장 오만한 마리우스를 잡아다가 죄를 물고, 저희의 피해를 보상케 해야 합니다! 거기에 더불어서 게르마니아의 세금을···.”
잔뜩 흥분한 의원은 한참을 떠들어댔으나, 올리브리우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내 그의 말이 끝나자, 올리브리우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다 말했는가?”
“예, 이 정도만 해주신다면 될 것 같습니다.”
“마요리아누스.”
“예, 폐하 부르셨습니까!”
“지난번에 조사하라고 한 건 끝났나?”
“예.”
마요리아누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진한 다크서클과 지친 몸을 이끌고서는 한 무더기의 양피지를 꺼내와서는 의원들 앞에 던졌다.
한데 모인 양피지들이 특유의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바닥에 널브러지자, 의원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폐하,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동안 자네들이 고발당한 내용일세.”
“고, 고발?”
“그게 무슨소리십니까! 원로원 의원이 고발당한 것을 어째서 폐하께서···.”
“폐하께서 우리의 구역을 침범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 불쾌하군요.”
원로원 의원들은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올리브리우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불쾌하다라···. 자네들의 행동이 날 불쾌하게 만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건가?”
“저희가 폐하를 떠받든 것이지, 폐하께서 스스로 올라선 게 아님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자네들은 멈춰버린 과거 속에서 사는 건가.”
올리브리우스가 손가락을 튕기니, 중무장한 병사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황제의 곁을 에워싸버렸다.
커다란 병사들의 벽에 사려진 황제의 모습에 의원들이 기가 찬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이제는 병사들로 저희를 협박하시려는 겁니까?”
“그렇다면 한 번에 끝내셔야 할 겁니다.”
“고작 병사들이 몇이나 있다고···.”
하지만 의원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이면서 역으로 올리브리우스를 압박했다.
이에 올리브리우스 또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끌고 오게.”
올리브리우스의 명령에 따라 꽁꽁 묶인 이들이 줄줄이 끌려 나오기 시작하자 의원들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왜요? 뭐 아니꼬운 거라도 있습니까?”
“가족들은 왜 끌고 오신 겁니까!”
“그건 내가 대답하지.”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