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99/187)

거기 두 황제가 로마로 걷고 있었네. - 1

에우트로피우스가 훈족을 만나고 그들을 설득한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배 드리겠습니다.”

“두, 두 배···.”

“모자라십니까?”

“모, 모자라다기 보다는···.”

“그럼 세배드리겠습니다.”

“세, 세, 세배에에에···.”

액수를 들은 울딘은 애써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수많은 금화를 생각하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크흠···.”

“마음에 안 드십니까?”

“듭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울딘은 휘하의 병사들을 크게 일으켜 삼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울딘은 근엄한척하며 병사들을 이끌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돈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번에 크게 한탕 하고 나면은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가 있겠어···.’

하지만 울딘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에우트로피우스의 수중에는 울딘에 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주려는 마음도 없었고 말이다.

‘이번 일이 끝나기만 하면···. 훈족도 함께 처리해야겠어.’

돌은 서로 다른 상상을 하면서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

로마가 이렇게나 혼란스러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게르마니아는 전에 없이 평화로웠다.

매일같이 서로를 적대하고 무기를 휘두르던 게르만 인들과 로마인들이었지만, 이제는 무기 대신 서로의 멱살을 잡고, 드잡이질이었다.

“채소 몇 번 썰다가 이가 모두나 가는 게 식칼이야?!”

“거, 당신이 힘 조절 못 한 걸 가지고 왜 애꿎은 사람한테 난리입니까?”

“당신네 가게 물건들만 그러니까 그렇지! 내가 다시는 여기 물건 사나 봐라!”

“나도 댁 같은 손님 필요없수다!”

“부족민들한테도 사지 말라고 할거요!”

“손님의 분노는 잘 알았습니다. 그···. 보상은 해드릴 테니 제발 그것만은 좀···.”

게르마니아에도 다른 곳들의 혼란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다들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었다.

“들었어? 로마에서 올리브···. 올리브···.”

“그리스에서 들어오던 올리브가 괜찮긴 하더라.”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뭔데.”

두 게르만인이 오전의 햇살에 취해서 늘어지게 쉬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올리브가 아니라 올리브리우스···. 그래! 그 녀석이 로마에서 새로 황제가 됐다던데.”

“황제? 오오···. 대단하네.”

“그거 때문에 이번에 전하께서 군대를 이끌고 간 거라고 하던데.”

“너는 세상 돌아가는 소문도 모르는 거야? 언제 소식인데 이제야 아는 건데?”

“난 내가 본 거 아니면 안 믿거든.”

프랑크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맥주를 들이켜면서 안주로 소시지를 입에 넣었다.

“이거 참 괜찮단 말이야.”

“전하께서 만드신 것 말인가?”

“그래,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이거 한잔하고 들어가서 자면은 아주 좋다니까.”

“넌 벌써 낮술이냐? 네 부인이 뭐라고 안 해?”

“하지, 그래서 쫓겨났어.”

그는 씁쓸한 얼굴로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마리우스가 자리를 비운 지 오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리우스의 빈자리를 대신할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이전에는 호노리우스가 그 자리를 대신에 하였으나, 호노리우스마저 떠난 지금은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이 오가고 있었다.

“광산들에서 나오는 철광석들은 신형 대장간으로 보내라고 하지 않았나?”

“그것이···. 둘째 마님께서는 균형 있게 배분하라고 하셨던지라 그렇게 했습니다.”

“내가 먼저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다음부터는 제 명령에 따라주세요.”

마리우스의 연이은 원정으로 게르마니아를 비운 동안에 게르마니아의 행정업무들은 대부분 그의 부인들의 손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평소의 로마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이미 아그리피넨시스의 의회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였고, 게르만 인들이나 시민들 또한 자연스럽게 그녀들을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각자 은연중에 자신의 자식들을 후계자로 밀고 싶어 하는 그녀들이었기에 게르마니아의 여론이 분열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당장은 테르만티아의 세쌍둥이들이 이제 기어 다니는지라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리우스의 골치를 썩게 만들 문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루스는 올해로 네 살이 됐다.

어린 바루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신기한 것들투성이였고,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바루스! 바루스!”

“히히히···.”

“형, 유모가 화났나 봐.”

“그런 거 같은데, 히히히···.”

바루스는 자기보다 네 살 위인 아에티우스와 종종 어울리고는 했는데, 아그리피넨시스의 총독궁에서 동년배라고는 아에티우스뿐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매일같이 붙어 다니면서 온갖 말썽들을 부리는 아그리피넨시스의 유명한 말썽꾸러기였다.

“아버지는 언제 오실까?”

“기다리다 보면 오겠지.”

“형은 왜 이렇게 태연해.”

“매일같이 혼자서 아버지를 기다렸거든.”

아에티우스는 멍한 얼굴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처럼 말이다···.

그런 아에티우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루스는 아에티우스의 볼을 콕 찌르면서 말했다.

“형! 고민하면 머리가 나빠진댔어!”

“누가?”

“아부지가! 히히히.”

******

“고민하면 머리가 나빠진다.”

호노리우스가 내린 결론이었다.

스틸리코 파를 숙청하고 자신들의 사람들로 새롭게 채워 넣은 호노리우스는 볼로냐에 주둔 중인 마리우스를 두려워했다.

볼로냐에서 라벤나까지는 일주일쯤 되는 거리였는데, 그곳에는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주둔 중이었다.

“각하께서 폐하를 공격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안토니나의 일을 알면 진짜로 날 죽이려고 들 거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안토니나는 최근 아이를 낳았다.

호노리우스의 아이였다.

부인인 마리아는 돌아가는 정황으로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듯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짐을 챙겨서 본가로 돌아가 버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동방도 만만찮게 시끄러우니, 당분간은 동방으로 모든 관심이 쏠릴 테니까 말입니다.”

“쯧···. 갑자기 형이 죽어가지고···.”

“이번 기회에 동방의 제관도 요구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둘로 나뉘었던 걸 다시금 합치는 겁니다.”

“괜찮은 생각 같은데···. 폴로 너 언제부터 그렇게 똑똑해진 거야?”

호노리우스의 질문에 폴로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그래도 마리우스 각하보다는 머리가 잘 돌아갑니다. 제가 그분 휘하에 있을 때, 세부적인 작전 계획들은 제가 전부···.”

“우선은 동방의 상황에 개입해야 한다는 거지?”

호노리우스가 폴로의 말을 잘라먹자 폴로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당분간은 마리우스 각하께서 움직이시지 않을 테니, 폐하께서는 동방으로 가서 제관을 받으시면 됩니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올리브리우스가 라벤나를 침공해오지는 않을까? 요새 보니까 마리우스를 끌어들이려고 공들이는 것 같던데.”

“정 불안하시면 공동황제라는 방법이 있잖습니까.”

“으음···.”

호노리우스는 공동황제라는 말에 침음성을 흘렸다.

공동황제라는 것은 말 그대로 황제직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직책이었고, 보통은 신뢰할만한 사람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내려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럼 올리브리우스를 인정하라는 뜻인데···.”

“잠깐의 평화를 지키자는 것이지요. 시간을 벌고 그 뒤에 올리브리우스를 몰아낼 힘을 기르자는 겁니다.”

“아니면 동방의 제관을 포기하던가?”

“뭐, 그렇죠.”

“쯧···. 어쩔 수 없군.”

******

“정말 우습게 됐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호노리우스와 올리브리우스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자 할 일도 없던 마리우스는 붕 떠 버렸다.

올리브리우스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볼로냐에 주둔 중이었는데, 호노리우스가 올리브리우스에게 공동황제를 제의하였고, 그가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게 끝나버렸다.

“어떻게 하긴···. 짐 싸! 돌아가자.”

“이렇게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지금도 콘스탄티우스에게서 매일같이 전령이 오고 있습니다.”

“음···. 그럼 플로렌스를 버리고 볼로냐로 오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예? 그럼 그곳의 시민들은 어떻게 하고요?!”

“내가 게네들까지 신경 써줘야 해?”

마리우스는 모든 게 귀찮았다.

말년병장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점점 늘어지기 시작했다.

“전하께서 그들을 버리신다면, 올리브리우스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겠습니까?”

“공동황제라면서, 그럼 가만히 있어야지.”

“말이 황제지 잠시 토벌을 미뤄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올리브리우스가 힘을 기른다면, 플로렌스의 시민들은 가축처럼 도살될 겁니다.”

사루스의 애원에 마리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길···.

“기왕 이렇게 된 거,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속주민들을 게르마니아로 이주시키자.”

“후우···. 그건 또 무슨···.”

사루스는 질렸다는 얼굴로 마리우스를 보고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속 주민들을 전부 게르마니아로 끌고 간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아니 이해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들어봐, 어차피 도시마다 빈민들은 사람답게 살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긴 하지요···.”

“그리고 로마에 있는 시민 중에 제대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으음···.”

“거의 없지, 대부분은 귀족들이나 부자들에게 수탈당하고 노예처럼 부려질 뿐이야. 그런데 우리 게르마니아에는 땅과 자원은 넘쳐나는데, 이를 활용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마리우스의 말대로였다.

개로 편입한 영토로인 게르마니아의 영토는 기존의 두 배로 확장되었지만, 그 땅들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새로이 로마의 시민들로 편입된 게르만 인들도 대부분 부족 단위로 뭉쳐 사는지라 공백 지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 번기 회에 사람사냥···. 아니, 수급···. 흠···. 공급? 아니지···. 뭔가 지적이면서 고급스러운 어휘가 있을 텐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습니까.”

“이보게 사루스, 아무리 그래도 강제징집보다는 전 국민 총동원령이 더 듣기 좋지 않은가.”

“예? 총동원은 또 뭡니까?”

마리우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답했다.

“남자는 전부 전쟁터로 보내고, 여자와 노인들은 공장으로 보내서 무기와 장비들을 만드는 거야.”

“아니, 그건 또 무슨···.”

“아무튼, 게르마니아까지 최소한 백만 명은 이주 시킬 수 있도록 하자.”

“배, 백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어, 음···. 안 되려나?”

그렇게 플로렌스 주민들의 이주가 결정되었다.

******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나쁘지 않게 끝났군.”

올리브리우스는 호노리우스가 보낸 화해의 인 제스처인 공동황제직을 수락했다.

로마 원로원의 의원들은 드디어 스틸리코를 굴복시켰다면서 의기양양해지고 있었지만, 올리브리우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조용히 마요리아누스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스틸리코와는 아직도 연락 중이겠지.”

“예, 예?”

마요리아누스는 갑작스러운 올리브리우스의 말에 당황하면서 말했다.

“제,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스틸리코는 전쟁은 알지만, 정치는 알지 못해, 그러니 이렇게 어수룩한 첩자를 보낸 것이 아니겠나.”

“끄응···. 언제부터 아신 겁니까?”

“당연히 처음 만났을 때부터지, 그렇게 허술한 변명으로 내 진영에 숨어들겠다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였어.”

“으음···. 그렇군요.”

올리브리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어 마요리아누스에게 건네주었다.

“자네도 이제 슬슬 손주를 볼 나이라고 들었네, 내 말이 맞겠지?”

“뭐···. 대충 그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래, 자네도 전쟁터에서 인생을 끝내기보다는 편안한 침대 위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끝을 보고 싶겠지.”

“합하께 드릴 말씀이 있는 모양이시군요.”

“마요리아누스, 말이 잘못되었군.”

“?”

“합하라니, 이제 호노리우스가 스스로 친정하기로 했으니, 그의 직위도 다시 군사령관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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