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군단은 가장 강력하다. - 7
베로나평원에서의 전투로 인해 생긴 부상병들은 대부분 인근의 베로나에 있는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물론 상태가 위중한 이들은 임시로 마련된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는 했는데, 이곳은 몰려드는 부상병들로 인해 미어터지고 있었다.
“아아악!”
“다리, 다리 잡아!”
“안 되겠어, 잘라내야 해!”
“아아악! 내 팔!”
“지금부터 수술 들어갈 거니까, 맨드레이크 가져와!”
이렇게나 정신없는 야전병원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니, 병원이 바락 뒤집혔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병사도, 정신없이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도 모두 잠깐 그 자리에 멈춰서 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다들 아는 얼굴들이구먼.”
“전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보다시피 좀 다쳤네.”
“일단 이리로···.”
다른 환자를 돌보던 군의관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마리우스가 그들에게 말했다.
“나보다 급해 보이는 환자들이 많아 보이니 그들부터 치료해주게, 난 괜찮아.”
“저희 눈에는 전하의 상처가 제일 심해 보입니다.”
“피는 안 나잖아.”
“더 흐를 피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럼 죽은 거 아닌가.”
“두 발로 걸어오신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군의 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수술준비에 들어갔다.
몸 이곳저곳에 꽂힌 화살과 창 때문에 수술도 누워서 받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앉은 상태에서 수술이 시작되었는데, 군의관이 처음 보는 물약을 건네면서 말했다.
“이걸 쭉 들이키면 잠시 잠에 빠져드실 겁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셨을 때는 수술이 끝나있을 겁니다.”
“마취약 그런 건가?”
“그냥 맨드레이크를 우려낸 물입니다.”
마리우스가 주변을 둘러보니, 부상병들이 쓸 침상도 모자라서 바닥에 누워있는 이들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마리우스는 분명 의료용품도 모자랄 것이라고 생각한 마리우스는 그것을 거절하며 말했다.
“나보다는 병사들에게 더 필요해 보이는군.”
“예?”
“그냥 뽑게, 나는 바둑이나 두고 있지.”
“예? 많이 아프실 텐데요.”
“전장에서 칼 맞는 거나 수술칼로 살을 째는 거나, 아픈 건 매한가지 아닌가? 거기다가 약품도 모자랄 테니···.”
“약품은 인근의 베로나에서 사 오는 것과 게르마니아에서 보급으로 보내주는 것이 많습니다.”
군의관의 말에도 마리우스는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생각하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아, 전쟁 중에 물품이 모자란 게 어디 한두 번이었나.”
“정말입니다. 환자가 많아서 그렇지, 모자란 건 없습니다.”
“그냥 내 말대로 하게.”
마리우스의 말에 군의관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다시 한번 마리우스에게 되물었다.
“진심입니까?”
“그래, 게지카! 이리 와서 바둑이나 두지!”
“어, 어···? 예?!”
군의관은 조금 긴장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마취 없이 수술하는 건 처음이지만···.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헤헤···.”
******
솔직하게 말하자면···.
예전에 봤던 삼국지연의 속에 나오는 관우를 따라 하려고 허세를 부린 것이었다.
다만, 글로 보는 것과 실제로 체험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으흐흐 읍···.”
“괜히 고집부리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그만 좀 움찔거리십시오. 자꾸만 상처가 벌어지려고 합니다.”
“게지카 꼼수 그만 쓰고 제대로 좀 두게.”
정작 전투 중에는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전투가 끝나고 흥분이 가라앉으니 고통이 몰려들었다.
집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여지는 심정이었다.
“전하, 우십니까?”
“피곤해서 하품이 나온 거야.”
“예, 그러시군요···.”
군의관이 힘을 주더니, 허리 만에 꽂혀있던 창날을 단숨에 뽑아내자 뭉쳐있던 죽은 피가 한 번에 터져 나오면서 상처가 벌어졌다.
“쌍삼두지 말라니까!”
“예?”
“쌍삼두지 말라고 했잖아!”
“그건 또 뭡니까?”
“바둑, 바둑 줙같이 두네!”
결국, 보다못한 군의관과 게지카가 강제로 마리우스의 입에 아편을 물리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쌍 삼···. 쌍삼두지마···.
******
알라리크와 아타울프는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뒤에 몇 명이나 따라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도 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형님, 이쯤이면 안전할 겁니다.”
“헉헉···. 놈은? 놈은 안 따라오는 것이겠지?!”
“예, 이 정도까지 도망쳤으니 안전합니다.”
알라리크가 말고삐를 당기면서 부드럽게 말갈기를 쓰다듬으니 말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알라리크의 말은 멈추어 서자마다 그 자리에서 엎어지더니 숨을 헐떡이다가 죽어버렸다.
졸지에 말 위에서 굴러떨어진 알라리크는 숨을 헐떡이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무도 안 쫓아오는 거 맞지?”
“예, 형님.”
“후우···. 후우···. 마리우스, 그놈 듣던 것보다 더한 놈이었어···. 비디메르가 그렇게 골머리를 앓았던 게 이해가 안 갔는데, 오늘에서야 이해가 가는구나.”
“우선은 올리브리우스와 합류해야 합니다.”
“몇 명 남았지.”
알라리크는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없었는지, 동생인 아타울프에 조심스레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며칠 정도 인근에 흩어진 병사들을 다시 모아봐야 할 것 같은데···.”
“몇 명이나 따라왔냐고 물었잖아!”
“......한 이천 명 정도 따라왔습니다.”
“이천 명이라···.”
알라리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괜찮구나.”
“병사들이 많이 지쳤으니, 쉬었다 가시지요.”
“그래, 네 말대로 하자꾸나.”
알라리크는 큼지막한 바위에 걸터앉아 병사들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하나같이 잔뜩 지치고 어두운 표정들이었다.
다들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나.”
“뭐가 말입니까?”
“이 장소 말이야. 사방이 꽉 막힌 데다가 우리는 모두 지쳐있단 말이야···.”
“확실히 형님 말씀대로 매복하기 딱 좋은···.”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콘스탄티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숲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선두에서 병사들을 이끌던 콘스탄티우스와 알라리크가 눈이 마주치자, 둘 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어···?”
“저거 뭐야.”
“형님!”
재빨리 정신을 차린 아타울프가 검을 뽑아 들자, 뒤에서 휴식 중이던 병사들도 무기를 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로마군도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래, 내 인생은 언제나 이랬지!”
“형님, 피하셔야 합니다!”
“알라리크···. 마침 잘 만났다!”
알라리크도 검을 뽑아 들었다.
“조금 잘 풀린다고 하고 싶으면 여지없이 누군가가 발목을 잡고, 틀어막고···. 오늘은 꼴사납게 도망쳤어.”
“알라리크를 잡아라!”
“형님,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자리를 피하시지요!”
“이곳에서 도망친다고 나를 반겨줄 곳이 어디 있겠느냐, 올리브리우스라면 내 목을 쳐서 마리우스와 협상을 하려고 들겠지.”
“형님···!”
“마리우스한테서도 살아남았는데, 저런 되먹지도 못한 놈에게 죽을 것 같으냐!”
“앗, 형님!”
알라리크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더니, 고함을 지르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모습에 그의 병사들도 무기를 꼬나쥐고서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내가 알라리크다! 전사들의 ‘방패 위에 우뚝 선 자’ 알라리크란 말이다!”
“뭣들 하나! 저놈을 잡아!”
콘스탄티우스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이 잔뜩 감정을 끓어 올리며 소리쳤다.
“알라리크만 잡아! 나머지는 필요 없어! 마리우스건 뭐건 다 필요 없어! 저놈만···. 저놈만 잡으면 돼! 마지막에 웃는 놈이 이기는 거란 말이다!”
******
마요리아누스와 올리브리우스가 로마로 돌아온 뒤, 나폴리에서는 이상한 병이 돌기 시작했다.
병사들과 접촉했던 병사들로 시작된 이 질병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전염병? 무슨 전염병?!”
“그게···. 의사들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아니, 그들이 모르면 어쩌라는 건가!”
나폴리의 시장은 갑작스러운 전염병에 당황하면서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로마에 지금 상황을 보고하고 지원인력을 요청해야지!”
“일단 도시의 출입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미쳤나?! 그랬다가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나!”
“잠깐은 힘들겠지만, 이 정체불명의 역병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면 앞으로 큰일이···.”
나폴리의 시장은 정무관의 말을 잘라먹으며 크게 화를 냈다.
“자네가 하는 말이 지금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말하는 건가? 이곳의 문을 닫는다는 건, 둘 중 하나야!”
시장은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정무관의 가슴을 거칠게 쿡쿡 찔렀다.
“도시에 큰 문제가 생겼다거나, 로마에 큰 문제가 생기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일세! 그렇게 되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생각이나 해봤나!”
“안 해봤습니다.”
“상인들은 죄다 망하고, 이 지역의 경제가 개판이 나겠지. 상인들이 드나들지 않는 나폴리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 그래도···. 전염병이 퍼지면 더 큰 피해를···.”
“이봐, 문을 닫지 않으면 주변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지만, 문을 닫으면 나폴리는 확실하게 몰락하네.”
“그런 무책임한···.”
“그만!”
시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은 시민들에게 몸을 청결하게 하고···. 병자들과 의사들을 같이 격리해!”
“그 정도로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내가 하라고 하면! 자네는 그냥 해!”
시장의 명령대로 공중목욕탕의 요금이 무료가 되었고, 나폴리에 있는 모든 병자와 의사들은 한곳에 격리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
더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거리를 돌아다녔고, 교회의 미사에 참여하였으며 그 뒤에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나폴리는 더 도시의 기능을 유지하지 못했다.
거리를 오다니는 사람은 없었고, 교회는 진작에 문을 닫았으며 즐겁게 지내던 가족들 또한 차디찬 시체가 되어 불타고 있었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더 시체를 묻을 자리도 마땅치가 않습니다.”
“끄으응···. 그때 자네 말을 들었어야···. 콜록콜록”
“시장님?”
“젠장···. 나도 걸린 모양이야.”
“아···.”
전염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했다.
하지만 치료받는 것은 평등하지 못했는데, 신분이 높거나 돈이 많은 이들이 먼저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대다수 빈민과 일반 시민들의 순위는 뒤로 밀려났다.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나폴리의 시민들은 큰 불만을 품었다.
“제 아이가 아파요···.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미안합니다. 지금 병상이 가득 차서 더는 환자를 받을 여유가 없어요.”
“저 안에 저렇게 자리가 많은데, 왜 제 아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거예요!”
“아, 저 자리는 이미 예약되어있는 자리인지라···.”
“예약이라고요···?”
병원에는 빈자리가 넘쳐났지만, 환자를 받을 자리가 없었고.
“밀 한 포대에 금화 세 닢이요···? 진심입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네, 지난번에는 카르타고가 난리였고, 이번에는 알렉산드리아가 뒤집히지 않았는가? 올 한해는 좀 뒤숭숭해.”
“지지난달에 한 닢 하던 것도 비쌌는데, 이제는 세 닢이라니···. 이러면 우리 다 죽으라는 게 아닙니까?!”
“나라고 별수 있겠나, 보리는 조금 싸니 그거라도 조금 더 챙겨줄까?”
“아니 그걸 위로라고···!”
상점 주인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네, 상인들도 발길을 끊은 지가 오래라서 말이야.”
“외상은 안됩니까?”
“어허, 다른 때면 몰라도 지금 같은 때면 힘들지···.”
“집에서 가족들이 굶고 있습니다.”
“자네 시민권으로 나오는 밀가루 배급이라도 받지 그러나?”
“그것도 관청이 문을 열어야 받지요! 일터도 문을 닫아서 돈도 모자랍니다.”
“끄응···. 쯧···. 자네와는 아버지 때부터 거래하던 사이니 내 특별히 이번만 싸게 주겠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운이 좋게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그 행운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이, 거기 멈춰.”
“무,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오랫동안 굶주렸는데···. 기부 좀 하지 않겠어?”
“이건 우리 가족들이 먹을 것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많이 굶주렸다고!”
“가, 가까이 오지 마! 경비병을 부를 테다!”
“경비병? 그 새끼들이 여기까지 오기나 하겠어?”
“킥킥···. 서로 손해 보지 말고 얌전히 넘기쇼.”
“안돼···. 안돼!”
나폴리의 치안은 무너진 지 오래였고, 시민들은 도저히 통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비단 나폴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 항구도시였던 나폴리는 인근의 도시들과도 긴밀한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
“이 전염병이 곧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갈 거란 말이지···.”
스틸리코는 진격 금지 명령서에 서명하고는 지도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로마는 다시금 안전해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