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50/187)

검은 군단은 가장 강력하다. - 6

남쪽에서 지원군이 도착하니, 알라리크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아타울프···. 도착했구나!”

“쯧···.”

“지금이다! 마리우스를 잡아라!”

바닥을 찍고 지구의 중심까지 뚫고 들어가던 병사들의 사기가 다시 반등했고, 다시금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마리우스에게 달려들면서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알라리크! 도망가지 마라!”

“놈을 잡아라! 아니, 쳐 죽여! 목만 가져와!”

“알라리크···! 겁쟁이 새끼가···!”

“히야아아앗!”

도망가는 알라리크에게 잠시 한눈 팔린 사이에 마리우스의 시각에서 튀어나온 창날이 옆구리를 꿰뚫었다.

“전하!”

“잡았다! 내가 잡았···.”

마리우스의 몸에 상처를 냈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병사는 순식간에 머리가 으깨졌다.

마리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창대를 부러트리고는 고통으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후우···. 너희 대장이 도망가버렸구나.”

“......”

“씨발, 아주 열 받는데 말이지···. 응?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모두 겁먹지 말···.”

“조용.”

병사들의 등을 떠밀려면 알라리크의 부하는 마리우스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지토!”

“예, 전하!”

“이제부터 길을 뚫겠다. 잘 따라올 수 있겠나!”

마리우스의 말에 지토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죽더라도 전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훌륭하다.”

마리우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창 하나를 발로 걷어 올려 다른 손에 쥐고서는 마지막으로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알라리크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마리우스에게 덤벼들었다.

******

“이게···.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 러게 말입니다···.”

아타울프는 눈앞의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형인 알라리크의 병사들은 로마군에게 밀려서 반쯤 무너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알라리크의 군영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그 중심에서 소수의 로마군이 다수의 아군을 박살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거기에 한 무리의 기병대가 불타오르는 군영을 향해서 맹렬히 진격하고 있었다.

“어···. 저기 저분···. 주군이 아닙니까?”

“형님? 어디?”

아타울프는 부관이 가르치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추레해진 모습으로 소수의 병사와 함께 도망가는 알라리크가 있었다.

“형님이···.”

“도망치고 계시는군요···.”

아타울프와 부관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고는 이윽고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선은 형님을 구하고, 이곳을 뜬다.”

“다른 병사들은 어떻게···?”

“다른 이들이 수습하는 중이니, 최대한 수습해서 물러나야지···. 중간에 적 기병대에 주의하게, 언뜻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여.”

“예, 알겠습니다.”

아타울프의 병사들이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신병이었던 아타울프의 군대는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순식간에 대열이 망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타울프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작 며칠 동안 훈련받은 신병들을 전쟁터로 끌고 온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

가우덴티우스가 이끄는 기병대는 단숨에 알라리크의 군영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군영의 불이 꺼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들어가기에는 불길이 거세기만 했다.

“젠장!”

“가우덴티우스님, 오셨군요!”

“게지카, 각하께서는 어디 계시나?!”

“저 안에서 병사들과 교전 중이십니다!”

“진입로는 찾았습니까?”

“예, 알라리크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알라리크가 빠져나갔다고···?”

“조금 전에 포위망을 돌파해 남쪽으로 도망쳤습니다. 아마도 지원군에게로 향하는 듯합니다.”

“이런···!”

가우덴티우스는 말고삐를 거칠게 당기면서 말했다.

“저는 알라리크의 뒤를 쫓겠습니다. 여기서 놈이 도망가버리면 안 됩니다!”

“예, 행운의 신이 장군의 등을 밀어줄 것입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가우덴티우스가 다급히 말을 몰고서 남쪽으로 향했고, 게지카와 병사들이 불타는 군영 안으로 난입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보인 것은 수많은 시체를 발아래에 두고 있는 마리우스와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꽤 격한 전투를 거친 듯이 보였다.

선두에 있는 마리우스는 몸 이곳저곳에 화살과 부러진 창대가 꽂혀있었고, 그의 뒤에 있는 병사들 또한 이곳저곳에 큰 상처를 입고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전하!”

“으음···. 게지카로군.”

“전하, 상처가···. 여봐라! 군의관은 어디 있나!”

“게지카, 소리가 너무 크군. 머리가 울리고 있어.”

“크흑···. 이 모든 게 제 불찰입니다···. 제가 전하를 잘 따라가기만 했다면···!”

마리우스는 한숨을 내쉬며 게지카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이고는 말했다.

“다 큰 사내새끼가 뭘 그리 울먹거리고 있어?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누구야 게지카.”

마리우스는 담담한 눈빛으로 게지카를 내려보며 물었지만, 게지카는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그, 그것이···.”

“말해봐, 내가 누구지?”

“...전하십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게르마니아의 대왕 마리우스 전하십니다!”

게지카의 힘찬 대답에 마리우스가 흡족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마리우스. 포기를 모르는···. 푸헉!”

“전하!”

한창 말하던 마리우스의 입에서 핏물이 튀어 나왔고, 그 모습에 게지카가 심장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이 놀라며 소리쳤다.

“군의관!!!”

“크크크···. 나도 좀 늙었네.”

“말하지 마십시오. 상처가 깊습니다!”

“이봐 게지카, 내 상처는 내가 잘 알아.”

마리우스는 손을 들어서 병사들을 가르치며 말했다.

“나보다는 저들을 먼저 치료해주게, 나같이 모자란 놈을 따라왔다가 봉변을 당한 이들이야.”

“저들도 잘 돌보겠습니다. 저들보다 전하의 상처가 더 깊고 위중합니다!”

“으음···. 일단은 자네 말대로···. 쿨럭쿨럭.”

마리우스는 연신 피를 토해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목숨이 경각에 달해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시발···. 이러다가 진짜로 죽겠네···.”

“전하, 군의관이 금세 올 것입니다. 자제분들과 사모님들을 떠올리시면서 정신을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이대로 돌아가면, 아일라나···. 아멜리아가 날 죽이려고 들겠지···.”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거 참, 나 안 죽는다니까 그러네.”

사실 마리우스의 몸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피딱지들은 대부분 마리우스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마리우스의 상처 또한 겉으로는 위급해 보였으나, 대부분은 갑옷이 막아줘서 생각보다 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전하!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자제분들을 생각하셔서라도 정신을 단단히···.”

“나 안 죽는다고!! 커 헉!”

******

베로나 평원에서의 전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브레누스와 사루스가 이끄는 우익은 적의 좌익을 분쇄하고는 도망치는 적의 중군까지 사냥하고 있었고, 세르비우스와 데키무스가 이끄는 좌익은 막시무스가 보내준 예비대와 함께 천천히 적의 우익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알라리크의 기병대는 진즉에 힘을 잃고서 도망가버린 지 오래였고, 전장에서 날뛰는 것은 대부분 마리우스의 기병대였다.

다만,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 아타울프의 대군에 마리우스의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대로 뒤를 공격당하면 위험하다.”

“우군은 이대로 막시무스 장군이 계신 후방으로 물러난다.”

“전하의 명령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각하께서도 먼저 조처하고, 보고는 그 뒤에 올려도 늦지 않는다고 하셨어.”

“그래도 전령은 보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

이는 좌익을 이끌던 세르비우스와 데키무스 또한 다르지 않았는데···.

“적이 후방에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앞뒤로 포위당한 형국인데···.”

“알라리크의 군세는 반쯤 무너진 상황입니다. 차라리 이대로 적을 돌파해서 각하와 합류하시지요.”

“적들이 쉽사리 무너질 것 같지가 않아.”

“그렇다고 각하와 아군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긴 한데···.”

이는 아타울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주군이자 피를 나눈 형제인 알라리크를 구하기 위해서 급조한 벽력인지라 전투를 치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아니,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를 수도 없는 병력이라는 게 맞을 것이었다.

거기다가 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전투의 현황도 아군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타울프는 이대로 싸우지 않고 알라리크를 구해서 빠져나가기로 했고 그렇게 행동에 옮기고 있었다.

“아타울프!”

“형님!”

“내, 내 뒤에 마리우스가 붙은 것이냐?!”

“예?”

아타울프는 태어나 처음 보는 알라리크의 겁에 질린 표정에 당황하며 물었다.

“형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노, 놈은 사람이 아니다···. 괴물···. 아니, 괴물보다도 더한 놈이야!”

“예? 놈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마리우스!”

알라리크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면서 쉽사리 진정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가 밀려오는 듯했다.

“형님, 아무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시는 게 맞을 듯합니다.”

“그래, 그래···. 네 말이 옳다 아우야.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꾸나.!”

“어딜 도망가는 것이냐 알라리크!”

전장을 빠져나가려던 알라리크의 발목을 붙잡는 가우덴티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뒤에 늘어선 수천 명의 기병대는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갑옷을 자랑하며 알라리크의 군대를 압박하고 있었다.

“일을 벌였으면 응당 끝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마리우스 놈의 사냥개로군!”

“알라리크 이 겁쟁이! 네 놈이 자초한 일이 아니더냐! 부하들은 죽어가는데 대장이라는 자는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려 하다니···.”

“뭐?!”

“형님, 참으십시오. 하찮은 도발일 뿐입니다.”

아타울프의 말대로 하찮은 도발일 뿐이었지만, 고작 마리우스 한 놈에게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다는 사실 때문인지 살짝 울컥하며 소리쳤다.

“내가 네놈 하나를 어찌 못할 것 같으냐!?”

“하하하···. 어디 시험해볼까!”

“젠장! 모두 전투준비!”

가우덴티우스의 기병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싸운 탓인지, 병사들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몸이 지칠수록 정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했다.

“돌격 앞으로!”

가우덴티우스가 앞장서서 달려나가니, 병사들도 그의 뒤를 뒤따랐다.

평소라면은 적의 방진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빈틈을 찾거나, 만들어내서 돌격했겠지만.

지금은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랬기에 가우덴티우스는 망설임 없이 정면에서 적을 들이받았다.

곧 거대한 두 집단끼리 부딪히자, 수많은 짐승과 사람의 비명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갑옷을 둘렀다고는 해도 모든 공격을 막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타울프의 군세가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동안에 가우덴티우스가 이끄는 기병대 또한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아타울프는 징집병들을 고기 방패로 세워두고서는 고트족 정예병력을 뒤쪽에 배치해, 적의 돌파력이 둔해지는 순간을 노렸다.

그리고 지친 병사들을 낚아채서 하나씩 하나씩 사냥했고 말이다···.

“모두 알라리크를 찾아! 알라리크 놈을 잡아야 한다.!”

“예, 장군!”

물론 아무리 지치고 돌파력을 상실한 기병이라고는 해도, 일반 보병들의 손에 끌어져 내릴 만큼 녹록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타울프가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에 알라리크는 베로나 평원을 벗어났다.

“알라리크가 보이질 않습니다!”

“젠장, 도망간 모양이군.”

“사상자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쯧···. 우리도 물러난다. 길을 뚫어라!”

한참이나 진형을 휘젓고 다니던 가우덴티우스가 도망치려 하자, 아타울프가 활을 들어 올리면서 소리쳤다.

“어딜 도망치려고!”

아타울프의 활을 떠난 화살은 그대로 날아가서 가우덴티우스의 겨드랑이를 정확히 꿰뚫고 들어갔다.

“큭.”

“장군!”

화살에 맞은 가우덴티우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서는 쓰러졌고, 곁에 있던 부관이 그의 말고삐를 쥐고서는 황급히 도망쳤다.

가우덴티우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아타울프는 혀를 차면서 소리쳤다.

“우리도 물러난다.!”

물론 그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반수가 넘는 병사들은 이미 도망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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