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48/187)

검은 군단은 가장 강력하다. - 4

알라리크의 군대 8만 7천,

마리우스의 군대 6만 8천.

도합 16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베로나 평원에서 맞붙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부대 좌익에 그가 가장 신뢰하는 게르만군단과 가우덴티우스가 이끄는 중무장한 창기병들을 배치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이들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서 적 우익을 단번에 박살 내고, 중앙을 압박할 것이었다.

좌익에 배치된 동방군단은 적의 주력으로 추정되는 우익의 공격을 받아내는 역할이었다.

보통은 진형의 양 날개에 기병대를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나, 이번 전투에서는 우익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모든 기병을 우익에 쏟아부은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좌익은 적의 우익과 기병대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었고 말이다.

가장 힘든 싸움이 되리라 생각해, 게르만 병사들 전원에게 튼튼한 중갑을 입혀주었고, 무기와 장비들도 새것으로 교체해 주었다.

그리고 나와 게지카가 이끄는 중군은 그대로 적의 중앙을 들이받아서 적의 중앙을 쪼개고 깨트려서 적들을 각개격파하는 게 목표였다.

“전하, 좌익이 받는 부담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괜찮아, 세르비우스와 데키무스가 잘 버텨줄 거야. 그리고 뒤에 막시무스 장군이 버티고 계시는데 뭐가 그리도 걱정인가.”

“자칫 일이 잘못되어서 우익의 돌파가 막혀버리고, 가우덴티우스 경의 기병들도 발이 묶여버린다면, 좌익은 그대로 전멸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중군에 내가 나서지 않았나.”

마리우스의 말대로였다.

지금의 진형은 마치 정교한 기계와도 같아서, 한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어그러져 버렸다.

그렇기에 마리우스는 중군을 맡아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황에 따라서 병사들을 움직이려 했다.

마리우스의 병사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니, 알라리크의 진영에서도 반응이 왔다.

“주군! 적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군의 준비는?”

“전부 끝났습니다. 주군의 명령만 있으면 됩니다!”

“아타울프는 아직인가?”

“전해오신 소식에는 곧 합류하신다고 합니다. 베로나 인근까지 오신 모양입니다.”

“다행이군. 그럼 우리는 작전대로 간다.”

낮고 멀리 퍼지는 뿔 나팔소리에 알라리크의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진형을 갖췄다.

그런 와중에도 마리우스의 병사들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고 말이다.

“대열의 맨 앞에 있는 마리우스를 노려라!”

“사격준비!”

“발사!”

******

마리우스와의 전투에 앞서 알라리크 또한 마냥 대책 없이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었다.

알라리크는 산 위의 분지 지형인 베로나 평원에서 싸운다면, 기병 전력에서 심각하게 밀리고 있는 알라리크가 전투에서 이기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물러나기에도 애매한 것이, 조금전에도 말했듯이 베로나 평원은 산 위에 자리 잡은 분지 지형인지라 들어오기는 쉬웠지만, 빠져나가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즉, 이곳은 마리우스가 알라리크를 잡기 위해서 파둔 함정과도 같은 곳이었다.

마리우스가 준비한 사지로 제대로 걸어들어왔던 것이었다.

“작전은 간단하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마리우스 놈을 군영까지 유인해온다.”

“놈이 생각이 있다면, 쫓아오겠습니까?”

부하의 질문에 알라리크는 웃으며 대답했다.

“놈이라면···. 오겠지.”

******

하늘을 뒤덮은 화살들이 순식간에 병사들과 마리우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병사는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보거나, 소리를 듣고는 머리 위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화살들은 대부분 방패나 갑옷에 튕겨서 부러지거나, 날아가 버렸다.

마리우스에게로 집중된 화살들 또한 몇몇 화살이 갑옷의 이음새와 틈새에 끼었을 뿐, 대부분의 화살은 튕겨 나갔다.

“제법 격한 인사로군.”

“부상병들은 뒤로 물리겠습니다.”

“아군에게 대응 사격하라고 전해.”

“예!”

중군끼리 사격전이 시작되었을 무렵.

데키무스와 세르비우스가 이끄는 좌익은 적의 무자비한 공세를 그대로 얻어맞고 있었다.

“으아아악!”

“커억-”

“끄르르응르를읋···.”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오랜 시간 전투경험을 쌓은 노련한 동방군단이었기에 위태위태하게나마 버텨내고 있었다.

“막아라! 우리가 밀려나면 아군이 위험하다!”

“적 기병대다! 모두 창을 들어라!”

앞에서는 적 보병들이 들이닥치고 있었고, 측면에서는 적 기병대가 신나게 달려들고 있었다.

세르비우스는 정신없이 병사들을 지휘했고, 데키무스 또한 일선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혼란스러운 전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를 멀찍이서 지켜보던 알라리크는 세르비우스와 동방군단의 분전을 유심히 지켜보며 말했다.

“으음···. 적의 좌익이 허둥대는군.”

“기병들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적의 기병대가 아군의 좌익으로 전부 몰려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예비대를 좌익으로 보내서 적의 돌파를 막아서게 해.”

“예, 주군!”

알라리크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지만, 가우덴티우스의 기병대가 더 빠르고 정확했다.

알라리크의 기병대를 정면으로 맞닥뜨린 가우덴티우스와 휘하의 기병들은 망설임 없이 적을 향해서 뛰어들었다.

“망설이지 마라! 내가 여기 있다!”

“거, 검은 군단이다!”

알라리크 휘하의 기병 중 라다가이수스의 휘하에서 싸우던 이들은 검은색의 중갑으로 무장한 기병들을 보고서는 몇 년 전의 악몽을 떠올렸다.

가족과 친지들이 전부 죽고서 겨우 목숨만 구해서 도망쳤던 그 기억들 말이다.

“도망쳐!”

“어디를 가는 것이야! 돌아와 이 멍청이들아!”

“도망치지 않으면 전부 죽는다···. 도망가!”

몇몇 병사들이 말머리를 돌려서 도망가버리자, 대열이 크게 흔들렸고, 가우덴티우스같이 노련한 장수가 이를 놓칠 일은 없었다.

“적을 막아야 한다. 날 따라와!”

“이대로 뚫고 간다.!”

알라리크의 좌익 기병대는 마리우스의 기병대와 맞부딪히자마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그들의 무기로는 그들의 튼튼한 갑옷을 뚫을 수가 없었던 반면에 그들은 신묘한 기마술을 보여주면서 순식간에 여러 병을 베어내고는 했다.

“도, 도망치지 마라!”

“도망쳐!”

“도망치는 놈들은 내버려 둬라! 이대로 적 보병대를 처리한다.!”

단 한 번의 충돌만으로 적의 기병대를 박살 낸 가우덴티우스는 말머리를 돌려서 사루스와 브레누스를 지원했다.

아군의 기병대가 쓸려나간 줄도 모르고, 알라리크의 병사들은 열심히 브레누스와 사루스가 이끄는 게르만군단과 투덕거리고 있었다.

좀처럼 밀리지 않는 전선에 브레누스와 사루스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쯤.

“모조리 쓸어버려라!”

“어···. 어어?!”

“아군이 아니잖아!”

“알아차리는 게 늦었군. 이제 와장창 시간이다.”

샌드위치 빵 사이에 낀 고기처럼 포위당해버린 알라리크의 병사들은 게르만군단과 기병대의 협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무너져 내렸다.

대부분의 병사는 항복을 선택했으나, 그렇지 않고 끝까지 저항을 택한 병사들은 모조리 참살됐다.

******

“여기까지는 내 예상대로긴 한대···.”

“전하, 화살이 날아옵니다. 머리를 숙이시지요!”

“이크.”

적의 집중사격에 말에서 내린 마리우스는 병사들의 방패벽 뒤에 숨어서 적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병사들 사이에 서 있는 알라리크는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연신 활을 쏘아대고, 돌과 창을 날려대고 있었다.

“전하,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쓰읍···. 이대로 우익이 돌파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가···.”

“엇?! 적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게지카의 말대로 돌연 사격을 멈춘 알라리크의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고 있었다.

언뜻 보면 무질서하게 내달리는 듯 보였으나, 알라리크의 병사들은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백병전 준비!”

“백병전을 준비하라!”

병사들의 대형이 풀리고 방패가 내려가더니, 마리우스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진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제법 먼 거리를 내달려온 알라리크의 병사들과 어설프게 진형을 갖춘 마리우스의 병사들이 뒤섞이면서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밀어붙여라! 마리우스가 이곳에 있다!”

“마리우스만 잡으면 우리의 승리다!”

“겁쟁이 마리우스는 나와라!”

“뭐?”

마치 동네 개새끼 부르듯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는 적들의 모습에 마리우스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부러들었다.

“이 새끼들이 누구보고 겁쟁이라는 거야.”

정확히는 자신을 겁쟁이라고 부른 것에 분노했지만 말이다.

“전하, 위험합니다. 뒤로 물러나시지요.”

“시끄럽다. 따라올 거면 따라오고 아니면 말아 게지카!”

“전하!”

마리우스가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뛰어나가면서 소리쳤다.

“내가 게르마니아의 대추···. 아니, 게르마니아의 총독 마리우스다!”

순식간에 다섯을 베어낸 마리우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창날을 방패로 튕겨내고서는 한 번의 칼질에 한 놈씩 저승으로 보내줬다.

그의 몸놀림이 얼마나 잽싸고 날랬는지, 마리우스에게 당한 병사들이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다른 병사들이 몸의 어딘가를 부여잡으면서 쓰러질 정도였다.

“내가 마리우스다! 누가 나를 막겠느냐?!”

“나다! 너 같은······. 으어억!”

“네놈의 명성도 여기까···. 끄르르릃···.”

몇몇 용감한 전사들이 튀어나와서 마리우스에게 도전했으나, 뭐가 그리도 급한지 저승으로 떠나버렸다.

마리우스의 용맹을 본 병사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고, 반대로 지휘관을 여럿 잃은 알라리크의 병사들 사기는 쪼그라들고 있었다.

“밀어붙여!”

“어, 어어···!”

“전하를 모셔라!”

눈이 반쯤 돌아가서 날뛰는 마리우스를 본 알라리크는 재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좋아, 놈이 미끼를 물었다. 병사들을 군영까지 후퇴시켜!”

“예, 주군!”

알라리크의 명령이 전해지고, 후퇴 나팔이 울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다만, 알라리크가 계획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마리우스가 주는 공포감을 경험하지 못하고서 작전을 짰다는 것이었다.

“어, 어어···?! 벼, 병사들이!”

“뭐야! 병사들이 왜···!”

퇴각 나팔이 울리자마자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물러났는데···. 반쯤 무너져있던 최전방의 병사들이 규율도 없이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 탓에 대열이 무너져 내리면서 병사들이 질서 없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반쯤 박살 나버린 알라리크의 중군은 더는 진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라리크는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면서 부하들에게 물었다.

“저, 저게 무슨 꼴인가? 아니,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

알라리크는 지금까지 전장에서 개인이 줄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믿어왔었다.

이전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허···. 일단···. 일단은 병사들의 수습을···. 아니, 예비대에 연락해서 방어선을···.”

“......”

알라리크는 상상도 못 한 상황에 크게 당황하면서 명령을 내리려고 했지만, 무슨 명령을 내려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최고 지휘관인 알라리크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자, 그의 부하들 또한 우왕좌왕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군, 뭔가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뒤쪽으로 빼뒀던 예비대를 동원해서 방어선을 칠까요?”

“아니, 그보다는 후퇴 중인 병사들을 수습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놈들이 제 발로 함정에 걸어들어오고 있잖나!”

“후퇴 중인 병사들 때문에 대열이 전부 어그러지고 있는 게 보이질 않는가!”

부하들의 말다툼에 알라리크의 혼란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런 와중에도 마리우스는 괴상한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대면서 알라리크의 병사들을 바짝 뒤쫓고 있었다.

“끼요오오옷!!”

“미친놈이다! 도망가!”

“어디를 가느냐?! 빨리 와라!”

알라리크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비디메르의 말이 맞았어, 저 새끼는 그냥 미친 새끼야.”

“주군, 이제 어쩌면 좋겠습니까?”

“어쩌긴, 작전대로 간다. 후퇴하는 병사들은 따로 수습하도록 하고, 지금은 준비해뒀던 병사들을 움직이게, 시간 없으니 빨리 움직여!”

“예, 주군!”

부하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다리를 바쁘게 놀리면서 오히려 후퇴하는 알라리크 병사들을 앞질러가고 있었다.

“알라리크 나와!”

“저, 저 미친놈···.”

“걸렸군.”

마리우스가 군영에 발을 들이자마자, 알라리크의 군영 이곳저곳에 불이 피어오르면서 마리우스와 병사들의 사이를 갈라버렸다.

“전하!”

“응?”

마리우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는 불바다가 되어버린 알라리크의 군영을 둘러보았다.

“뭐야.”

“저, 전하···!”

그의 뒤에는 벌벌 떨고 있는 지토와 마커스를 비롯한 스무 명 정도의 병사들뿐이었다.

“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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