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39/187)

양파의 노래 - 2

론디니움에서 주둔하는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시민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

시민들은 셋 이상이 모이면 마리우스나 그의 병사들을 헐뜯기 바빴고, 병사들이 지나갈 때마다 뒤에서 수군거리기 바빴다.

“야만인 놈들···.”

“아칸님은 무사하시려나?”

“보나 마나 모진 고문을 당하고 계시겠지.”

“그분이 도시를 다스릴 때는 조금 힘들기는 했어도, 이렇게 공포에 떨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게르만 병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튀어나왔다.

“아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매번 뒤에서 수군거린단 말인가?”

“쯧쯧쯧···. 같은 로마인들끼리 너무하는구먼.”

“마음 같아서는 죄다 쑤셔버리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전하께 혼날 테니 참아야겠지.”

“혼나건 말건 어차피 할 생가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 히히히···.”

“끝나고 전하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맥주인가 머시긴가나 한잔하러 가자고.”

“그거 좋지! 맥주인지 뭔지, 입에 착착 감기는 게 아주 좋더라고.”

“거기에 소시지까지 곁들이면 딱 맞지!”

물론 마리우스가 그런 불만을 누그러트리고자, 혼자 마시려고 아끼고 아껴둔 맥주를 전부 풀어버리니, 불만이 사그라들긴 했다.

다만, 이는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 제대로 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같은 나날이 지나가고 있을 때쯤.

“전하!”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이냐.”

론디니움에 쌓여있던 수많은 행정업무로 골머리를 썩이는 와중에 알레피우스가 황급히 달려왔다.

알레피우스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면서 말하길···.

“성밖에 병사들이 왔습니다!”

“누구? 본대인가?”

“어···. 그건 아니고, 처음 보는 깃발을 가진 로마 병사들이었습니다.”

“로마 병사···? 아, 그럼 콘스탄티누스겠군.”

“지금 문을 열어달라고···.”

“열어줘, 그리고 콘스탄티누스는 내 집무실로 데려오고 말이야.”

“예, 전하.”

콘스탄티누스에게 전부 뒤집어씌우고, 나는 아칸의 목만 챙겨서 도망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아칸의 목을 베고, 브리타니아의 재건 같은 골치 아픈 일들은 그에게 떠맡기고 나를 게르마니아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

“게르마니아의 총독이신 마리우스 각하를 뵙습니다. 저는 브리타니아에 주둔 중이던 6군단의 군영장을 맡았던 콘스탄티누스라고 합니다.”

“그래, 그동안 고생이 많았어.”

“아닙니다.”

“지금 데리고 온 병사들이 6군단의 잔존 병들인가?”

“예, 아칸에 넘어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저를 따랐던 이들입니다.”

“그렇군. 먼 길 와서 피곤할 테니,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도록 하게나.”

“예, 각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서는 집무실을 벗어났다.

이에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알레피우스가 조심스럽게 마리우스에게 물었다.

“전하, 저놈을 저렇게 보내도 되겠습니까? 전부 떠넘기고 우리는 게르마니아로 돌아가려던 게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그럼 당장에 일을 전부 맡기는 게···.”

“아니지, 아니야···. 알레피우스. 모든 일에는 과정이라는 게 있다. 이 과정이란 건 도로를 달리는 수레 같은 거라 조금만 잘못되어도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거든.”

“음··· 수레라···. 그렇군요.”

알레피우스는 마리우스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리고 마리우스의 계획대로(?) 콘스탄티누스는 론디니움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진정한 로마인이신 콘스탄티누스 장군께서 오셨으니, 이제 우리는 안전해!”

“이제 야만인 놈들도 우릴 어쩌지는 못하겠지!”

“매일같이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억압하고 괴롭히던 야만인들아! 이제는 안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민들의 호응이 커지면 커질수록 콘스탄티누스의 입지는 불안해져만 갔다.

그를 양한 시민들의 지지가 커져만 갈수록 론디니움에 주둔 중인 마리우스의 병사들은 콘스탄티누스를 고깝게 바라봤다.

“우리가 죽을 둥 살 둥 싸워서 얻은 게, 전부 저놈의 입으로 들어가려고 하네.”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동안 빌빌거리면서 우리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놈이, 우리가 일을 전부 끝내놓으니까 자기가 주워 먹으려고 하네?”

“어휴···. 우리 전하께서 마음이 넓으셨으니 망정이지, 나였으면 진즉에 들이받았어!”

“우리 전하께서 참을성이 강하신 것인지···. 호구인지 원···.”

“뭐?! 호구? 너 이새끼 말 다 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새끼 말하는 것 좀 보게? 전하가 네 친구야?”

“안 되겠다. 넌 오늘 좀 맞자.”

매일같이 병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던 콘스탄티누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마리우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각하! 아니, 전하! 저 좀 살려주십시오!”

“아,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일단은 이것 좀 놓고 말씀하시지요.”

“전하께서 저를 살려주신다고 하기 전까지는 못 놓습니다!”

“아니, 내가 왜 장군을 죽이겠습니까?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놓으세요!”

마리우스가 힘으로 콘스탄티누스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목숨이 걸린 일인지라 절박한 콘스탄티누스를 쉽게 떼어낼 수가 없었다.

질척하게 달라붙은 콘스탄티누스는 눈물을 보이면서 말했다.

“론디니움 시민들의 지지는 제가 시킨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떠드는 소리이니, 제가 부담되신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목숨만은···.”

“아니, 그게 무슨···.”

“전하! 목숨만을 살려주십시오!”

마리우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보시오 콘스탄티누스 경.”

“예, 전하!”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지는 말해줘야, 내가 도울 수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것이···.”

한참 콘스탄티누스의 설명을 들은 마리우스는 얼빠진 얼굴로 콘스탄티누스를 보더니, 이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허, 참···. 고작 그런 이유로 절 찾아온 겁니까?”

“그런 이유라니요. 저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아니, 제가 이런 별 볼 일 없는 땅에 왜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저는 게르마니아로 만족합니다.”

“전하···.”

마리우스를 바라보는 콘스탄티누스의 두 눈에는 불신만이 가득했다.

마리우스가 자신을 시험한다고 생각한 콘스탄티누스는 살기 위해서 발악했다.

“그 넓은 게르마니아에 비하면 브리타니아는 작은 땅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용맹하고 드넓은 평야에서 자라는 곡물들이 제법 알찹니다.”

“아니, 필요 없다니까 자꾸 그러네.”

“그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북쪽 바다를 손에 넣으실 수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로마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마리우스는 질렸다는 얼굴로 말했다.

“애초에 로마의 모든 땅이 황제 폐하의 것인데, 누구의 것을 따지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중앙의 힘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스틸리코 장군께서 안간힘을 쓰면서 갈리아와 히스파니아를 붙잡고는 있지만···.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고요?”

마리우스의 말에 콘스탄티누스가 쩔쩔매며 말했다.

“그, 그게 아니라 현실이···.”

“잘 알겠습니다. 저와 제 병사들은 브리타니아를 떠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브리타니아에 남아 계십시오.”

“예? 떠나신다고요?”

“그동안 게르마니아를 너무 오랫동안 비워뒀습니다. 슬슬 돌아가야지요.”

“아, 그러셨었지요···.”

콘스탄티누스는 그제야 살았다는 듯이 안도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리우스의 말에 다시금 얼굴이 굳어버렸는데···.

“대신에 아칸을 좀 죽여주셔야겠습니다. 저는 그놈의 목이 꼭 필요합니다.”

“뭐 그 정도쯤이야···. 말 나온 김에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울상을 지으면서 빌빌 기어를 때와는 다르게, 호탕하게 웃으면서 당당하게 걸어서 방을 빼져 나갔다.

곁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알레피우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놈은 저보다도 단순한 놈인 것 같습니다.”

“단순하기는 해도 론디니움의 시민들과 부하들의 신임이 두터운 녀석이야. 아니, 어쩌면 단순한 것도 연기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에이···. 이 작디작은 도시의 지지와 한 줌뿐인 병사들의 지지가 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수많은 게르마니아의 시민들과 부족민, 그리고 병사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는 전하가 더 대단하지요.”

“좀···.”

“전하!!”

콘스탄티누스가 지나가니, 이번에는 새로운 골칫거리가 마리우스를 괴롭혔다.

******

“이게 웬 거지떼인고···.”

“각하!”

“전하!”

마리우스의 앞에는 너덜너덜해진 갑옷과 수염이 덥수룩해진 털보 세 마리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들의 뒤로는 연극에서나 봤던 털이 덥수룩하고 끔찍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게르만 병사들과 금방 동굴에서 나온 것 같은 원시인들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전하, 제가 설명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게지카? 그래 한번 말해봐.”

게지카의 설명은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만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길을 잃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넘어서 칼레도니아를 정복했다는 거네.”

“바로 그겁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마리우스의 갑작스러운 고함에 그의 말이 깜짝 놀라서 발버둥 쳤지만, 마리우스는 주먹으로 말의 머리를 후려쳐서 진정시키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 넓은 마음으로 다 이해한다고 치자고, 너희들이 칼레도니아에서 픽트족을 개박살 낸 건 그렇다고 치자고···. 그런데 무슨 짓을 했기에 로마라면 이를 가는 녀석들이 거지꼴로 따라온 거야!”

“그게···. 자꾸 길을 막기에···.”

“크흠···. 험험···.”

“길을 막기에 뭐?”

게지카와 브레누스는 마리우스의 시선을 피하면서 사루스의 옆구리를 쿡쿡 쑤셨다.

그러자 사루스가 헛기침하면서 말했다.

“흠흠···. 아무래도 저와 동포들이 제일 잘하는 게 다른 부족들을 털어먹는 것인지라···. 그게···.”

“거참, 뭐 그리 말끝을 흐리십니까!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 당당하게 말씀하시지요!”

브레누스가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냥 보이는 대로 전부 때려 부수고, 혼내줬습니다. 우리의 길을 막아서는 이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부···. 전부···. 크흠···.”

“크흠···.”

“뭐, 그건 그렇지요···.”

“때려 부쉈다고···? 얼마나 심하게 혼내줬으면 자네들과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떤다는 말인가.”

“그거야 뭐···.”

브레누스도 말을 얼버무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칼레도니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그동안 내 밑에서 얌전히 지내던 게르만족이 오랜만에 내가 없는 환경에서 만만한 픽트족들을 상대로 마음껏 날뛰었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물론 이들을 혼낼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 해도 다행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내 뒤에 서 있던 콘스탄티누스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들판을 가득 메운 픽트족의 모습에 콘스탄티누스가 경악하면서 말했다.

“픽트족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입니까?”

브레누스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칼레도니아에서 싸우던 중에 고향이 불타버린 이들입니다. 남쪽에서 살고 싶다 해서 데려왔습니다.”

“부족을 불태운 건 너희들이고?”

“크흠···.”

“안됩니다. 저놈들은 본성이 사악하고 거친 자들인지라 시민들과 같이 뒤섞여서 살기가 어려운 놈들입니다!”

콘스탄티누스의 말에 마리우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네 사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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