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36/187)

늑대와 개의 시간 - 6

올리브리우스를 중심으로 뭉친 로마 원로원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스틸리코 지지파를 쳐내는 일이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이러고도 당신들이 무사하실 것 같소이까!!”

“스틸리코는 자기가 편안하게 침대에서 죽을 거라고 했겠지.”

올리브리우스는 스틸리코를 지지하던 의원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마 당신들과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군요. 스틸리코가 이기던지, 우리가 이기던지 어느 쪽이건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

올리브리우스가 웃으며 말했다.

“예의가 없어.”

“예의···?”

“전부 가둬두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해.”

병사들이 의원들을 데리고 나가자, 올리브리우스는 남은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군요.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널 때와 비슷하겠습니다.”

“카이사르가 성공했듯이, 우리도 성공할 겁니다!”

“이번 기회에 스틸리코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겁니다!”

다들 열의에 차서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고, 원로원은 잔뜩 흥분한 의원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올리브리우스는 그런 의원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우선은 다들 진정부터 하시고, 잠시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겠습니까?”

“크흠···.”

“험험···.”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의원들의 모습에 올리브리우스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어찌 되었건, 스틸리코는 돌아올 테고 우리는 그를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 막으신다는 겁니까?”

“스틸리코의 병사들은 최근에 갈리아에서 징집한 이들이기는 하지만, 그가 직접 훈련한 이들입니다.”

“거기에 숫자도 제법 되지요.”

올리브리우스는 동료의원들의 걱정에 그들을 불안감을 한 번에 날려주려 말했다.

“야만인들을 끌어들이는 겁니다.”

“......?”

“이민족···. 말씀입니까?”

“야만인들 또한 게르마니아의 마리우스가 전부 휘어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은 넓고 야만인들은 많습니다.”

올리브리우스는 지도로 성큼성큼 걸어가 판노니아에 있는 다누비우스강 너머를 가르치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예전의 테살로니키 일을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군요.”

“테살로니키라면···. 알라리크 말입니까?”

“그놈은 스틸리코에게 패배하고 은거했던 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올리브리우스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하기를···.

“알라리크는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그의 휘하에는 수십 개의 부족이 있고, 수십만의 대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스틸리코를 막자고 알라리크를 끌어들이자는 겁니까? 그건 조금 위험한 게 아닐는지요···.”

“알라리크는 동방을 약탈했던 이가 아닙니까? 그런 이를 뭘 믿고서···.”

“그럼 이대로 가만있다가 스틸리코에게 당할 생각입니까?”

올리브리우스의 말에 의원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대부분 꺼림칙하다거나 기분 나쁘다는 얼굴이었지만,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동의하는 기색은 아닌, 뭔가 매우 꺼림칙한 반응들에 올리브리우스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팼다.

“다들 다른 대책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시려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야만인은 쉽사리 믿기가 힘듭니다.”

“더군다나 그자는 동부의 테살로니키를 약탈했던 전적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는 스틸리코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한 게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제 의견이 싫으시다면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십시오. 다른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원로원이 적막에 잠겼다.

누구도 올리브리우스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들도 스틸리코가 로마의 모든 군권을 움켜쥐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지방의 총독들과 군단장들을 설득한다고 쳐봐도, 도중에 스틸리코가 돌아오면 죽 쒀서 개 준 꼴이 돼버리는 상황에서 알라리크는 원로원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마침 알라리크가 부족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서 판노니아에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

마치 신께서 등 떠밀어주는 듯한 이런 상황이었지만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럼 그렇게 결정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알라리크는 누가 만나는 겁니까?”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단다는 방법을 떠올렸지만, 정작 그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는 게 문제였다.

******

“이 길이 맞긴 한 겁니까?”

“아무리 가도 가도 도시는커녕, 오히려 험악한 산지들만 나오고 있질 않습니까!”

“으음···.”

한편, 사루스와 게지카 그리고 브레누스가 이끄는 브리타니아 원정군 본대는 길을 잃고 브리타니아의 이름 모를 산지를 헤매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이름 모를 산지를 헤매다 보니, 아무리 지도를 살펴봐도 어디쯤을 행군 중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 산이 아닌가···.”

“이곳으로 가는 게 맞긴 한 겁니까?”

“크흠···.”

이산 저산을 옮겨 다니던 본대는 늦은 저녁쯤이 되어서야 멀쩡한 부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에 단숨에 산에서 내려간 이들이 만난 것은 한창 야영 중이던 픽트족 병사들이었다.

“어···. 음···. 안녕 하쇼···?”

“적이다!!!”

“적습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도 모르오!!”

“일단 싸웁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른하게 쉬고 있던 픽트족 연합은 날벼락 같은 로마군의 습격에 와장창 무너졌다.

마리우스 휘하로 들어오기 전에도 자기들끼리 치고받았고, 그의 휘하에서 몇 번의 실전을 거치면서 정예병으로 거듭난 게르만 병사들을 픽트족이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몇 분간의 짧은 교전이 벌어졌지만, 픽트족 연합을 이끌고 있던 에노가 전사함으로써 승리는 게르만 부족연합에 돌아갔다.

에보라쿰을 향해서 진군하던 픽트족 연합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버렸지만, 정작 일을 벌인 당사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픽트족이 남기고 간 식량과 잠자리를 차지하고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마침 이런 곳에 야만인들의 부족이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건 이런 상황에서 하는 거로군요···.”

“그래서 이곳이 정확히 어디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길이라도 나오면 어디인 줄 알겠지만, 도로가 보이질 않으니 원···.”

셋은 머리를 맞대봤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게르마니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제대로 된 독도법도 알지 못했고, 손에 쥔 지도라고는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부정확한 지도뿐이었다.

그렇다고 길잡이를 고용하자니, 이곳의 주민들과는 말이 잘 통하질 않았다.

“얌전히 배를 타고 갔다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을···.”

“일단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봐서 뭐하겠습니까,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온통 산과 나무들뿐입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이대로 가만있다가 전부 굶어 죽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배 타고 갔으면 문제없었다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이이이···!!”

“아닛···!”

셋은 한참을 다투더니, 이윽고 군을 셋으로 나누는 것으로 결론을 봤다.

부대를 셋으로 나눈 게지카와 사루스 그리고 브레누스는 저마다 길을 나섰다.

“누가 먼저 각하께 도착하는지 내기하는 거요!”

“다들 뭘 내놓을지나 고민해보시지요!”

“누가 할 소리!”

그렇게 세 갈래 길을 따라서 길을 떠난 이들은 점점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드리아누스 이후로 그 누구의 침입을 허용치 않은 칼레도니아로 로마군이 다시금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

마리우스는 지원군으로 온 이들의 말을 듣고서는 본대와의 합류를 완전히 포기했다.

도저히 연락할 수도 없었고, 병사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 현 상황에서 마리우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선발대로 데려온 오천 명의 병사들에 카물로두눔 공방전으로 천 명가량의 사상자가 나왔지만, 사루스가 보내준 천이백 명가량의 병사들 덕분에 오천 명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알레피우스, 자네는 콘스탄티누스인가 하는 사람한테 적의 주력군은 박살 났으니 당장 남하하라고 전령을 보내.”

“예, 전하.”

“그리고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을 준비시켜.”

“당장 말입니까? 전투가 끝난 지 한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습니다.”

“아칸이 도망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론디니움으로 진격해야 해.”

“그럼 배로 이동하시지요. 가는 길에 병사들이 그럭저럭 쉴 수도 있고, 육로보다 두 배는 빠릅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준비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투가 끝나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소집에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배에 올랐다.

이 상황에서 노까지 저으라고 하면 선상 반란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제군들!”

출항하기에 앞서 선미에서 병사들에게 말했다.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짜증과 원망 가득한 시선은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그동안 잘 따라와 줬다. 이 브레토니아에서···.”

“브리타니아입니다. 전하.”

“......브리타니아에서! 우리는 승리했고, 또 승리했다! 이제 이 브리타니아에서의 최후의 전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말을 뭘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대충 남쪽을 가르치며 생각나는 대로 소리쳤다.

“게르마니아가 로마의 제일임을 보여주러 가자!”

“와아아아아아-!”

“게르마니아! 게르마니아! 게르마니아!”

“마리우스! 마리우스! 마리우스!”

다행히도 병사들은 내 어리숙한 연설에도 호응해주면서 환호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쳐져 있던 병사들이 활기를 되찾았으니, 이제는 론디니움으로 출발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칸과의 기나긴 원한을 끝낼 시간인 것이다.

******

“우리보고 당신네를 위해서 대신 싸워달라···. 뭐 이런 겁니까?”

“예, 어쨌거나 장군의 현재 직책은 로마의 국경을 수호하는 포이데라티가 아닙니까?”

“흠···.”

“장군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 겁니다. 스틸리코만 제치면, 장군께서 로마의 권력층으로 단숨에 도약하는 셈이니까요.”

알라리크는 검지로 머리를 두들기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난 수년의 세월 동안 자신을 담금질해가면서 다시금 세력을 재건하고 더 크게 만들었다.

그동안 오랜 고통의 시간 끝에 다시금 날아오를 때가 찾아온 이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아타울프, 네 생각은 어떻냐.”

“좋은 제안인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건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으니 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알라리크의 말에 올리브리우스가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진 알라리크의 말에 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져 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안이라고 해도 우리가 그걸 꼭 따라야 하는 이유는 없지.”

“그, 그게 무슨···.”

“먼 곳에서 찾아온 낯선이여, 네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놓아봐라. 너는 네 나라를 팔아서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나.”

알라리크는 한껏 오만한 얼굴로 올리브리우스를 내려다봤고, 올리브리우스는 생각지 못한 알라리크의 태도에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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