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개의 시간 - 3
“지체할 시간이 없다. 빨리빨리 움직이도록!”
아비투스는 다급하게 하인들을 재촉했다.
다른 의원들의 식솔들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수백이나 되는 무리가 성문으로 가까이 다가오니, 병사들과 백부장도 의아함을 느끼며 그들을 막아섰다.
“멈추십시오! 이곳은 전투 구역이라 위험하니 어서들 돌아가십시오.”
“우리는 총독 각하의 명령을 받고 온 이들이다. 썩 길을 비키도록 해라!”
“백부장님, 총독의 명령이라고 하는데···?”
“난 들은 적이 없습니다! 빨리 물러나시오!”
아비투스는 완고하게 나오는 백부장을 노려보며, 조심스럽게 하인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피를 봐야 할 것 같구나···.”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신속하게 제압해야 하느니라.”
“어서 물러나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게요!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병사들을 부르겠습니다!”
아비투스는 손짓으로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한편으로는 백부장을 달랬다.
“알겠습니다. 물러날 테니 진정하시오!”
“물러나랬는데, 왜 다가오는···. 헉!”
병사하나가 다가오는 하인들을 막아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품속에서 검을 뽑아 든 하인들이 순식간에 검을 찔러넣으며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라!”
“반란이다! 반란이다! 반란군을 막아라!”
“저, 저 미친놈들!”
“모두 죽이고 성문을 열어라! 저들이 총독에게 알리기 전에 문을 열어야 한다!”
“이놈들···!”
아비투스의 부하들이 백부장에게 덤벼들었지만, 일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노련한 백부장을 막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했다.
백부장은 바람같이 움직이며 벼락같이 검을 휘둘렀고, 단숨에 여럿을 베어내고는 다급하게 경종을 울리면서 소리쳤다.
“적이다! 반란이다! 반란군이 성문을 열려고 한다.!”
성문에서 일어난 소란은 금세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병사들을 이끌고 같이 간다.”
병사들을 이끌고서 아비투스의 저택으로 향하던 알렉산드리아의 총독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그곳으로 향하고서는 매우 놀랐다.
“이게 무슨···.”
“각하!”
“이런 젠장···. 성문이다. 성문부터 열어라!”
“저저저···.”
“각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저들이 성문을 열려 하고 있습니다!”
총독은 크게 분노하면서 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저 망할 반역자들을 모두 죽여라!”
“성문을 지켜라!”
성문 앞에서 수백의 병사들이 뒤엉키며 싸우기 시작하자 성내에는 금세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죽어라!”
“성문을 열어야 한다.!”
“막아라! 성문이 열려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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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너머에서 소란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자네의 작전대로구먼.”
“이제 슬슬 병사들을 움직여서 성벽을 넘을 때입니다.”
“그래, 병사들은 준비되었나?”
“예, 며칠을 푹 쉬면서 기력을 보충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여, 그동안 모아뒀던 물자도 전부 풀었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돌아갈 수조차 없겠군.”
길도는 몇 년 동안 자신과 함께했던 말의 갈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렸네, 로마놈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것 말이야.”
“잘 알고 있습니다.”
“단숨에 몰아쳐서 도시를 장악한다. 단숨에 도시 중앙까지 장악해야 한다.”
“목표는 알렉산드리아다. 전군 진군하라!”
길도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병사들이 북과 나팔소리에 맞춰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 소리는 알렉산드리아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런! 적들이 몰려온다.!”
“모두 성벽으로 가라!”
“자는 동료들을 깨워서 성벽으로 보내!”
갑작스러운 적의 공세에 알렉산드리아의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무슨 일이야?”
“적이···. 쳐들어왔다는데?”
“아까는 성문으로 모이라고 했잖아.”
“그거 말하는 거 아니야?”
“조금 전부터 북소리 같은 게 들려오는 것 같은데···. 성벽밖에 있던 놈들이 쳐들어온 건가?”
병사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일단은 한창 시끄러운 성문 쪽으로 향했다.
아비투스는 점점 몰려드는 병사들의 모습에 다급히 부하들을 끌어모으며 소리쳤다.
“다른 건 필요 없다! 살고 싶으면 성문부터 열어!”
일을 그르쳤다는 걸 깨달은 아비투스의 부하들이 다급하게 성문에 달라붙어서 빗장을 풀기 시작하자, 알렉산드리아 총독이 검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재촉했다.
“각하! 저놈들이 성문으로 향···.”
“일일이 보고할 필요 없으니까 우선 막기나 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아비투스와 그의 부하들은 성문 근처에서 끝까지 저항하면서 결국 성문의 빗장을 벗겨내고 성문을 활짝 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성벽 근처까지 다가온 길도의 부대가 파도처럼 알렉산드리아로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각하, 이곳은 제게 맡기시고 자리를 피하시지요.”
“피한다니, 도대체 어디로 피한다는 말이냐! 도망치기는 어려워도 죽기는 쉽다.”
“각하, 여기서 전부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곧 로마에서 엄청난 대군이 도우러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될 것입니다!”
“대군? 후우···. 아직도 그것을 믿고 있었느냐, 로마는 이미 우리를 버린 지 오래다. 지원군을 보낼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보냈겠지.”
알렉산드리아의 총독은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오른손에 쥔 검과 왼손에 쥔 방패를 굳게 움켜쥐면서 말했다.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다. 병사들을 불러모아라! 이대로 적을 몰아내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전부 죽을 수밖에···!”
“각하···. 예, 알겠습니다.”
밤늦게 시작된 전투는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아직 도시에 남아있던 시민들도 전투에 가세해서 건물의 높은 곳에서 화분이나 돌을 던지면서 길도의 군대에 저항했다.
의원에서 골골대던 병사들도 걸어 다닐 수 있는 이들은 무기를 들고서 적에 맞섰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길도의 병사들은 하나가 죽으면 둘과 셋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전진하고 있었다.
거리 곳곳이 피로 물들었고, 수많은 이들이 살해당하고 있었다.
히파티아와 그의 아버지인 테온은 동료 학자들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의 어린이와 노약자들을 도서관으로 데려가서 문을 걸어 잠갔다.
몇 명의 병사들도 그들을 뒤따라서 도서관 안으로 도망쳐올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예정된 종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있었고, 히파티아를 비롯한 학자들은 최대한 많은 장서를 건지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천문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모름지기 모든 것에는 기본이 가장 중요한 법이오! 수학이야말로 지식의 뼈대라고 할 수 있지요.”
“전투가 끝난다면, 사람들이 많이 다쳤을 것입니다. 그들을 살리려면 의학이 중요합니다!”
“일단 되는대로 챙겨요!”
학자들이 열심히 장서를 긁어모을 동안, 누군가가 연신 문을 두들겨댔다.
“문을 열어라!”
“이곳은 신성한 배움의 터전입니다. 무기를 들고 들어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목소리 괜찮은데? 저년은 내 것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다들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이곳에 비밀 통로 같은 건 없습니까?”
“고작해야 도서관일 뿐입니다···.”
“이런···.”
“빨리 문 열어!”
도서관에 모인 모든 이들이 저마다 믿고 있는 신에게 기도하면서 마지막을 준비할 때.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수백, 수천 마리의 독수리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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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이미 넘어간 듯싶습니다.”
“아무래도 도시는 포기하고 인근에 상륙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떠오르는 태양 빛이 비춰주는 알렉산드리아의 모습은 기억 속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인근의 강과 바다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스틸리코의 부관들은 좁은 항구로 밀고 들어가기보다. 인근에 상륙해서 도시를 되찾고자 했다.
“아니, 이대로 돌입한다.”
하지만, 스틸리코는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합하! 이미 도시는 넘어갔습니다. 저 좁은 항구에 병사들을 들이밀었다가는 각개격파 당할 뿐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이 위험하다.”
“아무리 그래도 병사들을 사지로 밀어 넣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겉보기에는 좁아 보이지만, 그 입구가 좁을 뿐이야. 안쪽은 훨씬 넓으니 함선들을 넉넉히 수용할 수가 있지.”
부관들이 뭐라고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스틸리코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돛을 활짝 펴라! 이제부터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을 구하러 갈 것이다!”
“와 아아아아-!”
스틸리코의 기함이 선두로 나서자 그의 함대는 하나의 화살처럼 알렉산드리아로 쏘아져 들어갔다.
한편, 수평선 너머로 등장한 대규모 부대의 모습에 길도는 크게 당황했다.
“저게 다 무엇이냐!”
“로, 로마의 지원군인 것 같습니다.”
“적의 지원군은 없다고 확신하지 않았더냐!”
“아니, 몇 달 동안 소식도 없이 내버려 두고서는 이제야 지원군을 보낼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끄응···. 일단은 병사들을 불러모아! 항구에서 적들을 요격한다.”
길도는 다급하게 병사들을 불러모으려 했지만, 넓디넓은 알렉산드리아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 병사들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별다른 명령 없이도 전투의 열기에 눈이 돌아간 채로 약탈에 집중하는 병사들에게 길도의 명령 따위는 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병사들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목에 칼이라도 들이밀고 데려와!”
애초에 태생부터 민병대에서 출발한 병사들은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로마에 대한 분노와 길도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달씩의 전쟁에서 길도를 향한 충성심과 로마를 향한 분노는 나날이 무뎌져만 갔고···. 그런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한몫 단단히 챙기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길도가 애타게 병사들을 끌어모아 봤지만, 모인 병사들은 수만 명 중에서 고작 수 천 명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오합지졸들에게 숫자라는 이점까지 사라져버리니, 스틸리코의 정예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갈리아 군단이 차례대로 항구에 발을 붙이고 있었음에도 길도의 병사들은 배에서 쏘아진 위협 사격에 겁을 먹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합하, 도착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로마의 병사들은 도시가 불타고 시민들이 유린당하는 참혹한 현장에 분노를 금치 못했고, 스틸리코의 입에서 떨어질 명령을 기다렸다.
“수괴를 제외하고는 전부 죽여도 좋다.”
“명을 받듭니다!”
스틸리코가 데려온 3만 명가량의 로마군은 사냥터에 풀어놓은 사냥개처럼 피 냄새를 쫓아 길도의 병사들을 사냥했다.
약탈에 정신이 팔려있던 반란군은 변변찮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로 쓸려나갔고, 눈치 빠른 몇몇이 도시를 빠져나가기는 했으나 멀리 가지 못하고 기병대의 창에 꿰뚫렸다.
“사, 살려주세요···.”
“내 칼 맞고 살아있으면 살려줄게.”
“저는 집에 늙으신 어머니와···.”
“누구는 엄마 없이 태어났나?”
두 시간.
스틸리코의 병사들이 알렉산드리아를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곳곳에서 저항을 이어가던 극소수의 알렉산드리아 수비대와 시민들은 로마군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새벽이 지나고, 태양이 완전히 떠오를 때쯤.
길도가 개처럼 끌려와서 스틸리코의 앞에 내던져졌다.
“네가 이번 일을 꾸민 자인가.”
“죽여라.”
“죽일 거다. 하지만 그냥은 안 죽일 테니 안심하게, 최소한 자네가 저지른 짓은 수습해야지.”
“너희 같은 로···. 읍읍!”
길도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병사들은 그의 입을 틀어막고서는 무지막지하게 패기 시작했다.
스틸리코는 덤덤한 눈빛으로 그런 길도를 내려다보더니, 곁에 있던 부관에게 물었다.
“총독은 어디 있나.”
“골목 한구석에서 죽어있었습니다.”
“콘스탄티우스는.”
“모르겠습니다.”
스틸리코는 완전히 파괴된 알렉산드리아를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이 모든 일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