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아 사파리 - 3
스틸리코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들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장 북아프리카만 하더라도 자신만만하게 계획을 늘어놓던 콘스탄티우스에게 전권을 맡겼지만, 그의 계획은 시작하기도 전에 턱 하니 막혀버렸다.
다행히도 일이 잘 풀려서 카르타고를 수복하기는 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콘스탄티우스는 매일같이 전령을 보내면서 애타게 지원을 요청하며 스틸리코의 심기를 어지럽게 할 뿐이었다.
“못난 놈···.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그래도 카르타고를 수복했다니 다행입니다.”
“다행이긴 하지···. 콘스탄티우스의 한계는 카르타고 하나를 수복하는 게 한계인가 보군.”
“고작 1만의 병사로 그 대도시를 점령했으니, 그것도 능력이지요.”
폴로의 말에 스틸리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우스는 고작 4만이 좀 안되는 병력으로 게르마니아를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정복했어.”
“그건 뭐···. 게르마니아가 적성에 맞았겠지요.”
“슬슬···. 마리우스를 불러들일 때가 되긴 했지.”
“장군께서 드디어 복귀 하는 겁니까?”
“으음···. 그런데 마리우스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단 말이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관식을 준비해달라고 한 것인지 원···.”
스틸리코의 말에 폴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외지에 처박아두고 필요할 때만 찾는 스틸리코 장군에게 단단히 삐진 모양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인가.”
“한창 잘나가던 마리우스 님을 게르마니아로 보내는 걸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겠지.”
“그렇죠. 별 시답잖은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만들려고 장군을 게르마니아로 보내신 게 아니었습니까?”
스틸리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가기 전에 충분히 설명했네만.”
“충분히 설명했다고 끝날 일이 아니지요. 합하께서 지속해서 장군을 잊지 않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셨어야지요.”
“허···. 지금 자네가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건가?”
“뭐, 그렇게 들으신다면 옳게 들으신 겁니다. 막말로 마리우스 장군께서 진짜로 반란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이탈리아로 몰려오는 수십만 게르만 대군을 막아낼 수 있으시겠습니까?”
폴로의 말에 스틸리코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서류를 정리하는 척 고개를 돌려버렸고, 폴로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장군의 성격상 그럴 일은 없겠지요···. 세상일에 만일이라는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절대라는 것도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그까짓 대관식 시켜주시라는 겁니다. 어차피 마리우스 장군께서는 외지에서 온 이민족이라 황제에 오를 수도 없는 몸이 아닙니까.”
“흐음···.”
“이번 기회에 게르마니아에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포교할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금 게르마니아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땅만 강제로 부쳐놓은 상태가 아니겠습니까?”
폴로의 말에 스틸리코의 고민이 점점 깊어져만 갔고, 폴로는 고민하는 스틸리코를 몰아붙이려 입을 열려는 그 순간.
“숙부, 저 왔어요.”
호노리우스가 스틸리코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이제 열여섯이 된 호노리우스는 제법 의젓해진 모습으로 당당하게 스틸리코의 앞에 섰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오셨습니까? 폐하.”
“밖에서 언뜻 듣기로는 마리우스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던데···. 맞아요?”
“으음···. 폐하께서 신경 쓰실만한 일은 아닙니다.”
스틸리코의 말에 호노리우스는 웃으며 말했다.
“마리우스의 일이 곧 제 일이잖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언성을 높이셨던 거에요?”
“으음···.”
“마리우스 님을 불러와서 북아프리카로 보낼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폴로!”
“폐하께서도 이제 슬슬 국정을 볼 줄 아셔야죠.”
스틸리코는 못마땅한 얼굴로 폴로를 바라봤지만, 폴로는 딴청을 치우며 스틸리코의 따가운 시선을 회피했다.
“마리우스가 돌아온다고.?”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더 필요한 거라도 있어요?”
호노리우스의 말에 스틸리코가 대답했다.
“충성심.”
“마리우스의 충성심이야 이미 유명하잖아요.”
“폐하, 알려진 것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아셔야 합니다.”
“제가 몇 년 동안 같이 지낸 마리우스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폐하, 사람의 일이란 것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갯속과 같다. 몇 번을 듣는지 원···.”
“몇 번이고 중요하니까 하는 말입니다. 마리우스의 충성심은 충분히 의심할 만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폴로가 말했다.
“그럼 이번 기회에 충성심을 확인해보시지요.”
“무슨 말인가.”
“장군께서 원하시는 대관식을 열어주는 겁니다.”
“대관식?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폐하께서도 이참에 새로 얻은 영토를 시찰하신다는 명분으로 게르마니아에 다녀오시면 되겠군요.”
“으음···.”
“합하, 나쁠 게 없는 일입니다. 마리우스 장군의 수하들은 몰라도, 장군은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스틸리코의 고민은 깊었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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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고 폐하의 호위를 맡으라고요?”
“친위대 기병대장인 마요리아누스가 그만 배탈이 나버렸지 뭡니까.”
“제 부대는 북아프리카로 투입된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습니까?”
폴로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조금 뒤로 미뤄졌습니다.”
“미뤄지다니요. 그보다 중요한일이 또 어디 있다고 미룬다는 말입니까?”
“그럴만한 일이 있습니다. 합하께서 믿을만한 사람들 위주로 뽑고 계신다는 것만 알아두십시오.”
가우덴티우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폴로의 제의에 수락했다.
“위험한 일입니까?”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들어보니 생각보다 게르마니아가 많이 안정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게르마니아라···. 긴 여정이 되겠군요.”
“그렇죠. 뭐···.”
“제 아들을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어린 녀석을 홀로 남겨두려니 마음이 영 불편해서 말입니다.”
순간 반대하려던 폴로는 최근에 가우덴티우스의 부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그의 다리에 착 달라붙어 있는 소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버지를 빼닮았군요.”
“그런 소리를 많이들 하십니다. 아에티우스, 이분이 황제 폐하를 가까이서 모시는 폴로 경이다.”
“안녕하세요···.”
아에티우스는 공손하게 인사하고서는 다시금 아버지의 다리 뒤에 몸을 숨기고는 머리를 빼꼼 내밀어 폴로의 반응을 살폈다.
그 모습에 폴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의 행렬은 늦어도 이틀 뒤에는 도착할 테니, 그때까지 준비를 마치시면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휘하의 병사들은 언제든지 출격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럼 며칠 뒤에 뵙겠습니다.”
가우덴티우스와 아에티우스.
두 부자는 점점 멀어지는 폴로의 등을 향해서 손을 흔들며 그를 배웅했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저도 게르마니아에 가면, 마리우스라는 분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한번 보고 싶으냐.”
가우덴티우스는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에티우스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네! 그분은 로마의 영웅이시잖아요! 저도 언젠가는 그분처럼 되고 싶어요.”
“으음···. 마리우스라···.”
“아버지는 마리우스 장군이랑 친하다고 하셨죠?”
“그렇지···?”
“저도 그분 밑에서 배우고 싶어요.”
“뭐!? 절대 안 된다.”
아에티우스의 말에 가우덴티우스가 화들짝 놀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과 멀리 떨어진다는 생각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그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 너 혼자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
“아버지, 저는 꼭 성공할 거예요. 로마에서 성공하려면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마리우스 장군과 친해지면 아는 사람이 많아질 거예요.”
아에티우스는 조그마한 입으로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그 모습에 가우덴티우스는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그렇다고 자식과 멀리 떨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건은 마리우스의 허락이 필요한일이니, 나중에 또 논의해보자꾸나.”
“예, 아버지.”
아에티우스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어린 아에티우스의 손이 아버지의 손에 닿자, 가우덴티우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린 아들을 어깨에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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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리피넨시스를 떠나는 병사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절로 울적해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들을 보고는 더더욱 울적해졌다.
“각하, 이번 분기의 세금징수가 얼추 끝났습니다.”
“그래···. 이번에 좀 걷혔나?”
“얼추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네 입에서는 매번 그 소리만 나오는군.”
데키무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쩌겠습니까, 시민들이 돈을 쓰려고 해고 쓸만한 곳이 없으니, 시장에 돈이 돌지를 않습니다.”
“도박장이라도 열어볼까?”
“게르마니아에 도박꾼들이 넘쳐나겠군요. 부자건 빈민이건 가리지 않고 돈을 탕진할 테니, 모두 평등해지겠고요.”
“끄응···.”
지금 할 방법은 전부 동원했지만, 세금이 늘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돈도 여기저기 뿌려봤고, 사탕무를 재배하는 내 소유의 대농장을 제외하고서 대부분 대농장을 해체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해봤다.
그런데 세수는 쥐뿔만큼만 오르고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방법이 없겠나?”
“다른 속주들과 거래라도 터 볼까요?”
“게르마니아에 팔만한 물건이 남아있나?”
“각하, 지난번에 사탕을 내다 파신다고 제게 상단을 알아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맞다. 그게 있었지!”
“갈리아 쪽과 이탈리아 쪽에 괜찮은 상단을 알아봐 뒀습니다. 요청하면 금방이라도 달려올 기세더군요.”
역시 데키무스였다.
필요한 게 있으면, 자판기처럼 누르기만 하면 어떻게든 구해오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성능 확실하구먼.”
“뭐가 말입니까?”
“아닐세, 기왕 상단을 부르는 거면 새로운 기술자들도 모집해오라고 해.”
데키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갑자기 기술자는 왜 찾으십니까?”
“게르마니아에 잠들어있는 광산이 얼마나 많겠나, 뒤져보다가 은 광산이나 금 광산, 하다못해 품질 좋은 철광만 나와도 재정에 큰 보탬이 되지 않겠어?”
“광산이라···. 하긴, 뒤져보면 하나쯤은 튀어나올 것 같긴 합니다만···. 게르만족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괜찮아. 적당히 이권을 떼주면···.”
그때, 머릿속에 강렬한 충격이 찾아왔다.
금, 금, 금···.
광산···.
그동안 죽어있던 뇌가 오랜만에 숨을 쉬면서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한 이 감각···.
금 광산 하니 단번에 떠올랐다.
“왜 그러십니까?”
“데키무스.”
“예, 각하.”
“아예, 로마 전역에 소문을 뿌리는 거야.”
“예? 무슨 소문 말입니까.”
“게르마니아에는 기회가 있다고 말이야.”
데키무스는 영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각하, 저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솔직히 각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도 이해 못 했습니다.”
“게르마니아 여기저기에서 금맥이 터져 나온다고 마구마구 소문을 내란 말이야!”
“예?!”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리는 팽팽 돌아가면서 다음 할 말을 뽑아내고 있었다.
“대충 게르만족들이 황금을 쌓아두고 산다고 소문을 내는 거지.”
“각하,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데키무스, 로마 전역의 시민 중에 십 분의 일만 이 사실을 믿고 게르마니아로 온다면···.”
“시, 십 분의 일···.”
대충 손가락으로 숫자를 가늠하던 데키무스가 입을 떡 벌리고는 감탄했다.
그들이 와서 돈을 쓰기만 해도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게르마니아의 경제가 요동치면서 살아날 게 분명했다.
거기다가 그중에서 절반, 아니 반의반만 이곳에 정착한다면···. 추가적인 세수의 증대도 노려볼 만했다.
“각하, 게르만족의 젊은 청년들에게 돈을 잔뜩 쥐여줘서 제국 전역에 퍼뜨리시죠.”
“사람들이 그걸 보고 몰려오게?”
“거기에 그 게르만 청년이 가족들에게 전해달라고, 편지와 노잣돈까지 쥐여주면 빈민들도 대거 유입될 겁니다.”
“역시 데키무스야.”
성능 확실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