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79/187)

하이아 사파리 - 1

또 거리에 포고문이 내걸리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대부분 사람은 포고문의 내용을 보더니 싱숭생숭한 얼굴이었다.

“이봐, 무슨 일이야?”

“총독께서 새로 명령을 내리셨는데,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말라는군···. 이를 어기면 무거운 벌금과 노역 형을 내린다고도 하셨네.”

“뭐? 자식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우리는 뭘 먹고 살라는 말인가!”

“대신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은 아이 한 명당 은화 스무 닢을 매달 지급하겠다고 하던데.”

“스, 스무 닢?!”

은화 스무 닢이면 모래가 안 섞인 밀 포대를 두 개, 어쩌면 세 개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밀 포대가 세 개면, 온 가족이 배를 곯지 않고 매끼를 챙겨 먹어도 2주 정도는 거뜬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잠깐···. 한 놈에 스무 닢이라고···?”

“그렇다니까? 총독께서 이번에 통 크게 베푸실 모양이야.”

“아아···.”

알버스는 자신에게 딸린 자식들을 손가락으로 되짚어봤지만, 3명이 끝이었다.

반면에 눈앞에 있는 아퀼리우스는 자식만 여덟이었으니, 한 달마다 금화 한 닢에 은화가 예순 닢이었다.

“크으으으···.”

“이야···. 그동안에는 자식을 많이 낳아서 뼈 빠지게 힘들었는데···. 덕을 보는 날도 오긴 오는구먼!”

“끄으응···. 부럽네그려···.”

“에이, 뭘 그러나? 포고문을 보니 자식의 성적이 우수한 경우에는 추가로 장학금이라는 것도 준다던데?”

“장학금···? 돈을 더 준다는 말인가?”

“그렇지, 그런데 어지간히 잘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더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아퀼리우스가 손을 펼치며 말했다.

“아그리피넨시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야 장학금인지 뭔지 하는 놈을 받을 수 있고, 게르마니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면 집과 땅을 준다더군.”

“지, 집과 땅?!”

알버스의 이성이 점점 마비되고 있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많은 것이 바뀌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과 자식들에게 기회가 찾아왔음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

“내 잠시 집에 다녀와야겠네!!”

“어? 그러시게, 너무 늦지는 말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알버스는 아직 자는 아이들을 황급히 깨웠다.

“으음···. 아버지 오셨어요···.”

“애, 애들과 오늘부터 너희가 학교에 갈 수 있다는구나!”

“학교가 뭔데요?”

“으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만, 글을 가르쳐주는 곳일 것이다.”

항상 우중충하게 죽어있던 알버스의 두 눈이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

“각하, 교회가 미어터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난동을 피우는 학부모들 때문에 경비대에서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지급할 돈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집무실에 앉아서 혼란을 즐겼다.

수많은 행정관과 필경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보리차를 홀짝였다.

“음─ 이 구수한 향과 맛··· 어머니가 매일같이 타주시던 보리차 맛 그대로야.”

“각하!”

“오, 데키무스 자네도 왔군.”

“지, 지금 거리가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겠다면서···.”

“그래? 아주 성공적이군.”

“교회 측에서도 이들을 전부 받아줄 수가 없다고 아우성칩니다.”

새로운 교육정책은 내가 생각했던 정도보다 훨씬 잘돼서 문제였다.

이 세상에 자식 잘되는 걸 막을 부모는 없었다.

거기에 돈을 받지도 않고 아이들을 가르쳐주는 데다가 돈을 준다고.?

이건 아무리 악독한 부모라도 침을 줄줄 흘리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들이밀 만한 일이었다.

재정적인 부분이야 그동안 준비해둔 게 있어서 당분간은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장소가 모자란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아무래도 게르마니아는 다른 지역들과는 다르게 기존의 전통종교에 밀려서 기독교의 세가 조금 약한 편이었고, 교회의 수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드니, 교회가 미어터지려고 하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다가···.

“그러니까 라인강 너머의 족장들도 부족의 아이들을 보내오고 있다고?”

“예, 자신들도 각하의 백성들이라고 배움을 원하고 있다고는 말하지만···.”

“하긴, 공짜로 가르쳐주고 돈도 준다는데 안 오는 게 멍청한 거지.”

“각하, 일이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이제 어쩌면 좋겠습니까?”

잠시 머리를 굴려봤다.

게르마니아 구석구석까지 행정력이 미치는 것은 아니었고, 새롭게 편입된 게르만 부족들의 인구조사가 제대도 이루어진 건 아니었지만, 행정관들과 게르마니아 의회를 갈궈대면서 파악한 결과.

현재 게르마니아의 인구는 대략 육백만에서 칠백만 사이였다.

이들 중에 집에 아이가 없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니, 모두 학교에 보낸다면 좀 더 세밀한 인구표본이 나올 것이었다.

다만, 그동안 어떻게든 시민들의 경제활동을 독려하고자 시중에 돈을 너무 풀어버린 게 문제였다.

파탄 나버린 게르마니아 경제를 살리겠다고, 내 개인재산을 털어서 시장에 쏟아부어서 어느 정도 재정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시장은 몇 년이 지나도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지역과 교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긴 했다.

“흠···. 어쩔 수 없군.”

“취소하시는 겁니까?”

“아니, 난 내가 한 말은 지킨다. 총독관저에 남는 방들을 학교로 쓰라고 해.”

“그렇게 되면···. 각하의 안전에 문제가···.”

“애들이 뭐가 위험하다고.”

“아무리 그래도···.”

“전쟁터에서 날아오는 화살들도 날 헤치지 못했고, 그동안 날 죽이려고 수많은 이들이 덤볐지만 난 이렇게 멀쩡하다네.”

“으음···.”

“진행하게.”

******

북아프리카의 키레네.

그리스인들이 처음 발견하여 식민지를 세운 이후로 수천 년이나 이어져 내려온 이 도시는 북아프리카 속주와 아이깁토스 속주를 잇는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도시였다.

자연스럽게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려면 이 도시를 손에 넣어야 했고, 반대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서쪽으로 나오려고 해도 이 도시가 필요했다.

길도는 그 도시를 넘어서지 못했고 말이다.

“오늘은 성과가 있었나?”

“남문을 잠깐 점거했습니다.”

“결국엔 밀려났고, 말이지.”

“죄송합니다.”

길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자신의 잘못이기에 부하들을 혼내거나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보급을 소홀히 했고, 병사들의 무장상태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탓에 성을 공격하던 중에 화살이 떨어지고, 갑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병사들이 맨몸으로 성벽을 기어오르다가 큰 피해를 보았다.

반면, 키레네를 지키는 로마군은 인근의 용병들까지 긁어모아서 결사 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시민들 중에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무장시켰고, 도시 내에 있는 집을 해체해서 부족한 방어물자를 보충했다.

부하들 역시 슬슬 퇴각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섣불리 잘못 말했다가 자신의 명예에 먹칠하는 건 아닌지 두려워해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길도 또한 이 전투가 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알렉산드리아 원정을 반대하던 형까지 죽인 뒤에 나선 원정이었건만, 고작 성 하나에 쩔쩔매고 있는 꼴을 보니 참으로 답답했다.

“내일은 성벽을 넘을 수 있겠지?”

“......”

“왜 대답들이 없는 것이야. 오늘은 성벽을 점령했으니, 내일이면 성벽을 넘을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예, 곧 적들이 장군의 발아래에 무릎 꿇게 될 것입니다.”

“키레네가 함락된다면, 병사들에게 일주일간의 약탈을 허용하겠다.”

“역시 장군이십니다. 병사들이 좋아하겠군요.”

길도는 고개를 돌려 키레네의 성벽을 바라봤다.

성벽 위에서는 불에 그을린 노란 독수리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바람 앞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키레네가 길도에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 드디어 바다를 건너온 콘스탄티우스는 병사들을 독촉하면서 카르타고로 빠르게 진격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카르타고의 민병대는 로마군을 보자마자 백기를 내걸었고, 콘스탄티우스의 부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카르타고에 입성할 수 있었다.

“길도가 알렉산드리아로 쳐들어갔다고?”

“몇 주 전에 떠났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라···. 왜 알렉산드리아를 노린 거지?”

“로마의 식량 줄을 틀어막으려 한 게 아니겠습니까? 북아프리카에 알렉산드리아까지 빼앗긴다면, 큰 혼란이 찾아올 게 뻔하잖습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자기들의 거점을 이렇게 버려두고 간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아.”

콘스탄티우스는 꿇어앉아 있는 민병대를 둘러봤다.

한눈에 봐도 자신의 부대보다는 몇 배는 많아 보이는 숫자였지만, 그들은 로마군을 보고는 싸움 한 번 없이 항복했다.

뭔가 다른 수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그들을 심문해본 콘스탄티우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그러니까, 마르켈은 원래부터 로마에 항복하려고 했었다는 말인가?”

“예, 장군께서는 도시 내의 로마군에게 항복할 생각이셨는데···. 일이 꼬이는 바람에 그만···.”

“그럼 마르켈이 로마군에게 살해당했다는 것도 거짓이겠군.”

“진작 도망간 녀석들인데 어떻게 장군을 해칠 수가 있겠습니까? 카르타고의 시민들도 믿지 않는 말입니다.”

“으음···.”

콘스탄티우스는 침음성을 흘렸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운 좋게 텅 비어버린 카르타고를 점령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알렉산드리아로 떠난 수십만의 대군을 막아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스틸리코 장군께 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 같은데···.”

“그때까지 알렉산드리아가 버틸 수 있을까요? 우선 전령이라도 보내서 그들에게 위험을 알려야 하는 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콘스탄티우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령은 보내지 마.”

“장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들에게 우리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알려야 하지 않겠나? 저들이 요구할 때 우리가 나타나 준다면, 그 빳빳한 머리가 절로 숙어지겠지.”

“장군···. 그러다가 알렉산드리아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은···.”

콘스탄티우스는 부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알지?”

******

비디메르의 패잔병들은 먼 길을 돌아서야 알라리크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그동안 자신들이 짓밟았던 부족의 생존자들이나, 자신들을 털어먹으려는 적대적인 부족들의 습격에 동료들을 많이 잃었지만, 그들은 결국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디메르가 죽었다고.”

“장군께서는 도망가실 수 있었음에도 저희를 살리고자 뒤에 남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있었나.”

알라리크는 전에 없이 냉철한 모습이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의 모습에 패잔병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모,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니 책임을 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알라리크는 병사들이 회수해온 양날도끼를 받아들고는 잠시 둘러보고는 다시 병사들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아말리에게 전해주도록.”

“예, 장군···.”

알라리크는 눈물을 흘리는 병사들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눈물을 그쳐라. 비디메르는 전사답게 싸웠고, 전사답게 죽었다.”

“주군···.”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서서 대열로 돌아가라.”

“예···?”

알라리크의 얼굴은 어느샌가 무서울 정도로 굳어있었다. 그의 얼굴을 본 병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런 병사를 뒤로한 채 알라리크는 부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모든 군사 활동을 중단하고 병사들을 긁어모아라.”

“예? 병사들을 벌써 불러들였다가는···.”

“불러들이라고 했다.”

알라리크는 무심한 얼굴로 부관을 돌아봤다.

알라리크의 무서울 정도로 차분한 모습에 부관이 몸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며, 명을 따르겠습니다!”

“병사를 모으고, 무기를 챙겨라···. 가서 비디메르의 시체를 되찾아 와야 한다.”

알라리크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주군.”

“반대의견은 받지 않겠다.”

“주군!”

“그만, 더 말하면 목을 베겠다.”

“주군···! 아니, 형님! 제 목을 걸고 형님께 간청하겠습니다. 지금 병사들을 움직이면 그동안 우리 형제가 쌓아온 모든 게 무너져 버립니다!”

“아타울프, 비디메르는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내 형제나 다름없는 부하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형님이 가시는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아타울프는 눈물을 보이며 알라리크를 말렸다.

“형님, 지금 우리 부족이 몇 년만의 판노니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라다가이수스 그놈이 로마놈들의 시선을 분산시켜준 덕분입니다.”

“본론만 말해라. 당장 널 베어내고 지나가고 싶은걸 참고 있으니 말이야.”

“지금은 치고 나갈 때가 아니라 몸을 낮추고 기회를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참으라는 건가! 내 휘하에 있는 병사들은 용맹하고 잘 조련되어있고,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어!”

“형님, 기회는 반드시 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으시면 됩니다.”

알라리크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며 주변 물건을 때려 부쉈지만, 결국 군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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