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 (77/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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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아,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형님, 그냥 밀어붙이시지요. 지금이라도 알렉산드리아로 쳐들어가서 로마를 협상장으로 끌어내리는 겁니다.”

“알렉산드리아를 치자고? 에라 미친 새끼야! 거기가 어딘 줄 알고서 입에 올리는 것이야!”

“아군의 수가 많고, 적은 예전의 로마가 아닙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가능은 무슨···. 로마가 약해졌다고 우리가 강해지기라도 했느냐? 아무리 로마가 비실비실해 보여도, 놈들이 분노해서 병사들을 보내면 막을 수가 있느냐 이 말이다.”

메르켈의 말에 길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 그러니까 놈들이 눈이 뒤집혀서 병사들을 보내기 전에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협상은 무슨! 놈들이 우리와 협상을 하려 들겠느냐, 아니면 병사들부터 보내겠느냐? 생각이란 걸 좀 해봐!”

“형님! 아칸 님께서 하신 말을 잊으셨습니까?”

“그 반역자 새끼 이름은 꺼내지도 말아! 그놈만 아니었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틀어질 일은 없었어!”

“아무래도 안 되겠군요. 말이 통하질 않으니···.”

“나도 마찬가지다.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로마를 이길 수는 없어.”

“그럴지도 모르죠.”

길도가 신호를 보내니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들어와 마르켈을 끌어냈다.

“이게 무슨 짓이냐!”

“형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녕···. 이렇게까지 나오겠다는 것이냐.”

“형님, 우리가 로마를 이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로마도 강대했던 삼니움과 에트루리아, 카르타고 등을 무찌르면서 대제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로마가 아니다.”

“로마처럼은 될 수 있겠지요.”

길도는 천천히 마르켈에 다 가더니, 곁에 있던 병사에게서 검을 건네받아 마르켈을 찔렀다.

고통으로 마르켈이 몸부림치자, 길도는 검을 뽑고서는 다시금 검을 찔러넣었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이는 형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형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너, 너···.”

길도가 검을 뽑아내자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던 마르켈의 움직임이 멈췄다.

곁에 있던 시중이 가져다준 수건으로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낸 길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형님은 로마인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이 소식을 카르타고의 시민들과 북아프리카 모든 속 주민들에게 알려라.”

“뭐라고 말입니까?”

부하의 말에 멈칫한 길도는 부하를 돌아봤다.

잔뜩 긴장한 얼굴의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잠시 고개를 떨군 길도가 다시금 머리를 치켰다.

“카르타고의 후예들이 수백 년 전 로마인들의 은원을 갚으러 다시금 일어섰다고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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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우스는 골치 아픈 상황에 빠져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 협력을 요청해서 동로마의 지원을 받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기 생각과는 달리 유력자 중에서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왜 못 도와주시겠다는 겁니까?”

“크흠···. 우리도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길도가 호시탐탐 알렉산드리아를 노리는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서 병사들을 데려가시면,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콘스탄티우스 장군께서는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우리는 콘스탄티우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소, 그런 애송이를 믿고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맡긴다는 말입니까.”

알렉산드리아 의회 또한 이런 유력자들의 의견에 동조했다.

“해군도 반환해주시오.”

“아니, 그건 동부의 황제 폐하도 동의하신 것인데, 당신네가 무슨 권한으로 돌려달라 말라 합니까!”

“우리는 우리끼리 잘 지내왔네, 황제 폐하께서 명령하셨다지만, 그건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폐하의 잘못된 명령이야.”

“지금 폐하의 명령을 거부하시겠다는 겁니까?”

“크흠···. 황도에 사람을 보냈으니, 재촉하지 말게 다시 명령이 떨어진다면 우리도 병사를 내어주겠네.”

일이 그렇게 돌아가자, 막상 시칠리아까지 내려온 콘스탄티우스의 휘하에는 수만의 대군 대신에 고작 1만의 병사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런 씨발!!”

로마의 휴일 - 지토의 이야기.

광장에 포고문이 걸리고, 수많은 시민이 구름같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커스! 무슨 일이야?”

“지토, 어서 오고.”

“일하러 안 가? 늦으면 또 사장이 지랄할 텐데.”

“자네 오늘 나온 포고문 봤나?”

“포고문?”

“그래, 이번에 총독이 병역법을 살짝 고쳤다던데.”

“그래? 무슨 내용이길래 사람들이 많은 거야.”

마커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총독은 다를 줄 알았는데···.”

“왜? 뭐길래 그래?”

“병사들을 모집할 때, 돈을 내면은 병역을 면하게 해준다더군.”

“뭐? 그럼 돈 좀 있는 놈들은 다 빠지는 거 아니야?”

“그렇지 뭐···. 옆 동네 마르크스는 아버지가 땅을 팔아서 돈을 낸다던데?”

“뭐 이런···.”

지토는 허탈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 남으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도자기 공장에서 허리 한번 못 펴고 일했는데, 그런 그가 군대로 끌려가면 남은 가족들은 먹고살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 총독이 나누어준 자그마한 땅이라도 얻어서 살아갈 희망이 보였는데, 다시 진창으로 처박힌 우울한 기분이었다.

“마커스, 인제 어쩌지? 빠질 놈들이 다 빠져버리면, 우리는 군대에 끌려갈 거 아니야.”

“우리라니 지토, 나는 삼촌이 내주신댔어.”

“뭐?!”

“저기 강 건너에 있는 마을에서 삼촌이 양목장을 하시는데, 나를 좀 이뻐하시거든.”

“와···. 부럽다.”

“부럽긴···. 그나저나 너는 어쩌냐.”

“몰라···. 나도 그냥 엄지손가락 잘라버릴까?”

지토의 말에 마커스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말렸다.

“야! 그런 것도 돈 많은 녀석이나 그랬던 거지, 너 같은 놈이 그런다고 다른 일터에서 널 써줄 것 같아?”

“그래도···. 내가 군대에 가버리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라고?”

“포고문에 뭐라고 더 적혀있긴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못 읽겠다.”

“별 내용 없겠지···.”

“야 인마, 너무 기죽지 말고 힘내.”

“그래···. 일이나 하러 가자.”

지토는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일터로 향했다.

그 때문에 일터에 조금 늦어서 조금 혼나기는 했지만, 지토의 마음속에는 군대 생각만이 가득했다.

‘인제 어쩌지.’

‘그냥 게르마니아로 도망가버릴까?’

‘아니면 브리타니아?’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을 뒤로한 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고, 징병관이 찾아왔을 때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어머니, 다녀올게요.”

“그래, 우리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밥 잘 먹고, 몸 건강히 돌아와야 한다.”

지토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매일같이 바느질하시느라 퉁퉁 부은 손이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었다.

“시간 없으니 빨리 가지.”

냉정한 징병관의 말에 지토는 그를 한번 노려봤지만, 징병관은 신경도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뒤로한 채 지토는 마차에 올랐다.

“마차···?”

“각하께서 신병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하신 물건이니 다들 감사히 여기도록.”

“쳇··· 퍽이나 고맙네···.”

“방금 뭐라고 했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차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반가운 얼굴도 있었으니···.

“마커스?”

“지토! 여기야!”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남자로 태어났으면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봐야 하지 않겠어?”

“뭐?”

마커스는 씩 웃었다.

지토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써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저 옆에 앉아서 고마움을 표현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앞으로는 병사들한테 장비값을 청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그게 왜?”

“멍청아, 네가 분기마다 받는 돈에서 더는 장비값을 제하지 않겠다는 거잖아.”

“아···. 그럼 집으로 돈을 많이 보낼 수 있겠네?”

“그렇지, 들어보니까 급료도 조금 오른다더라고.”

“그건 다행이긴 하네···.”

지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험난한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급료를 받기 전까지는 집에 돈을 보낼 수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너무 걱정하지마, 우리 삼촌이 너희 가족들을 잘 돌봐주시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말이야.”

“너희 삼촌이 왜?”

“너 몰랐구나, 우리 삼촌이 너희 어머니 좋아하잖아. 매일같이 먹을 거 가져다주는 걸 보고도 모르겠냐?”

“뭐?!”

지토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차는 아그리피넨시스의 외곽에 있는 훈련장으로 향했고, 게르마니아 전역에서 모인 마차들이 한곳에 모이고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절름발이 새끼들만 모아놨어? 빨리 움직이라고!”

난생 처음 보는 검은색의 제복을 차려입은 이들의 고함에 지토와 마커스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내달렸다.

단상 앞까지 빠르게 뛰어온 마커스와 지토의 앞에는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제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환영한다 제군들. 나는 앞으로 여러분의 훈련 전반을 책임질 훈련대대의 대대장 파라몬드 백작이라고 한다.”

“게르만···?”

“프랑크 놈 아니야?”

몇몇 훈련병들이 교관의 모습을 보고서 중얼거리자, 이를 본 파라몬드가 나지막이 말했다.

“누가 입을 열어도 좋다고 했지.”

파라몬드의 말에 훈련병들의 입이 다물어졌고, 파라몬드는 피식 웃더니 손에 든 지휘봉으로 마차를 가르치면서 말했다.

“저 마차까지 뛰어갔다오는 스무 명만 봐주겠다.”

“빨리 뛰어!”

“안 뛰고 뭐 하나! 다 죽고 싶어!”

파라몬드의 말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훈련병들을 걷어차고, 밀쳐버리니 훈련병들은 당황하면서도 일단 달리기 시작했다.

멍하니 서 있던 지토와 마커스도 온 힘을 다해서 내달렸고,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들어올 수 있었다.

“훌륭하군. 먼저 온 스무 명은 그늘에서 쉬게 해.”

“예, 장군.”

지토와 마커스 그리고 몇몇 훈련병들은 병사들의 인도에 따라서 울창한 나무 밑으로 향했고, 시원한 물까지 마시면서 느긋하게 쉴 수 있었다.

반면에 스무 명에 해당하지 못한 병사들은 파라몬드의 명령에 따라 바닥을 구르면서 고생 중이었다.

“큰일 날 뻔했네.”

“그러게···. 군대가 원래 이런 곳인가?”

“아버지는 이런 말씀 없으셨는데···.”

그때, 가만히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병사가 넌지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기수들부터 많은 게 바뀌었다. 전부 총독께서 손수 설계하신 거야.”

병사는 손가락으로 건물과 마차, 그리고 열심히 구르고 있는 병사들을 차례로 가르치며 말했다.

“너희가 살게 될 저 건물, 그리고 너희가 타고 온 마차, 마지막으로 너희의 훈련방식까지···. 전부 총독께서 만드신 거야. 물론 그 비용은 다른 사람들이 낸 세금이지만.”

“저희 아버지가 그랬는데, 저희는 제식훈련만 하고 최전선으로 배치되는 건가요?”

“제식훈련 말고도 간단한 전술훈련도 하게 될 거다. 그리고 모든 훈련이 끝나면, 너희 중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인 사람은 교관으로 뽑히게 될 거고, 아니면 대부분은 새롭게 편성될 군단이나 최전선으로 가게 될 거야.”

“최전선에서는 야만인들이 매일같이 쳐들어온다는데···. 맞나요?”

“내가 근무하던 알비스 쪽은 괜찮았어. 해안경비대 쪽도 지루한 것 빼고는 괜찮다고 하더군.”

그렇게 한참이나 훈련병들의 궁금한 점에 답해주던 병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투구를 고쳐 쓰면서 말했다.

“다들 일어나, 슬슬 점심 먹으러 합류해야 해.”

병사의 안내에 따라 대열에 합류한 지토와 마커스는 식당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군대 음식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뭐야?”

“하얀 빵···. 나 이런 거 처음보다!”

“이 고기는 뭐지···? 누린내가 안나!”

훈련소에서 처음 먹는 밥은 굉장히 맛있었다.

식사 전에 식당에 걸려있는 총독의 그림 앞에서 경례를 해야 한다는 건 조금 귀찮았지만, 밥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절로 사라졌다.

밖에서도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흰 빵과 맞들어지는 수프, 그리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고기가 지급된다는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식사 후에는 앞으로 군 생활을 함께할 장비들을 받고 두 달 동안 머물게 될 막사로 향했다.

막사의 내부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부터 식당에서 보았던 커다란 총독의 그림이 훈련병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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