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7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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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이렇게 말도 없이 본토로 돌아가도 되는 것입니까?”

“적의 수가 압도적인데 어찌하겠느냐?. 최대한 건질 수 있는 건 챙겨서 본토로 돌아가야지.”

“그래도···. 스틸리코 장군께서 많이 질책하지 않겠습니까?”

“스틸리코? 그자가 잠시 쓴소리를 한다고 내가 눈 하나 깜빡할 것 같나?”

“병사들은 고향을 버리고 왔다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지···.”

하지만, 겨우 돌아온 총독을 기다린 건 스틸리코의 차가운 말뿐이었다.

“그것참 자랑이시군요.”

“크흠···. 말이 심하시군요. 합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정치라는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닙니다. 북아프리카의 거친 속주민들을 수년간 다스려온 제 노고를···.”

“유언은 그게 전부인가?”

“유언이라니요···?”

“콘스탄티우스, 죄인을 끌고 가서 모든 시민이 볼 수 있게 광장의 한가운데에 높이 매달아라.”

“그게 무슨 소 리습니까! 저는 로마시민이고 정당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스틸리코는 그런 총독을 비웃었다.

“자네의 잘못된 명령으로 수천만 로마시민들이 굶주리게 생겼는데, 재판은 무슨 놈의 재판이란 말인가?”

“지금 장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서 하는 말입니까?! 자네가 지금 로마의 근본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야!”

“그럼 이렇게 하지, 자네는 현 시간부로 자네 소유의 시민권을 말소하겠네.”

“궤변이야!”

“그건 사후에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게나.”

“스틸리코! 네놈의 자리가 얼마나 갈 것 같으냐! 로마의 귀족들과 원로원을 적대하는 네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 것 같냐 이 말이다···!”

총독은 거칠게 저항했지만, 이내 검은색의 갑옷으로 무장한 친위대가 그를 밖으로 끌고 갔다.

그는 끌려가는 동안에도 궁이 떠나갈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스틸리코와 그 가족들을 저주했다.

“쯧···. 북아프리카가 떨어져 나가게 생겼군.”

“합하, 군대를 보내서 진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지금의 재정상태로는 빠듯해.”

“세금을 조금 더 걷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번 분기 세금을 걷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세금을 걷겠는가.”

스틸리코의 고민은 깊어졌다.

북아프리카가 떨어지면, 당장 로마로 들어오는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고, 이를 막아야 했다.

다행히도 스틸리코의 휘하에는 어느 정도 훈련된 여유 군단이 있었지만, 이를 움직이는 데는 돈이 필요했다.

그동안은 귀족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이나, 노예들을 대대적으로 해방하는 등의 방법으로 세금을 확보해왔지만, 결국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제국 내에 산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 그때그때 당면한 문제들만 해결하다 보니 생긴 문제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리우스가 안정시켜놓은 국경선 덕분에 내부에서의 소소한 반란을 제외하고는 제국이 안정화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새로운 군단을 양성할 수 있었고, 지난 프리기두스 전투 이후로 무너진 서로마 군대를 어느 정도 재건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스틸리코의 능력으로는 현재 당면한 로마의 문제를 수습하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당장 무언가를 건드려 보려고만 하면, 밑에서 잠자코 불만을 쌓아가던 귀족이나 기득권들이 들고 일어나 스틸리코를 공격해대는 통에 스틸리코의 전공인 군사 분야에만 관심을 쏟은 것이었다.

“심마쿠스···. 그 친구만 멀쩡했더라면···.”

심마쿠스가 과로로 쓰러져서 와병 중인 것도 스틸리코의 행보를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동안 귀족들과 스틸리코 간의 불편한 관계를 잘 조율해주던 심마쿠스가 없으니, 귀족들에게 강경한 정책을 유지하던 스틸리코에 대한 반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대신에 암브로시우스가 시민들을 잘 다독이면서 스틸리코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적은 수의 병력이라도 보내신 후에, 현지에서 조력자를 찾아보심이 어떻습니까?”

“조력자?”

“예, 듣자 하니 마리우스 경과 폐하께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 정기적으로 후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건 몰랐군···. 그런데 그게 이 일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간단합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인근의 유지들과 유력자들의 자녀들이 배움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네 말은 그들을 이용해서 지원을 받아내자는 말이로군.”

“예, 거기에 알렉산드리아에 배치된 동로마 해군과 연합해서 카르타고를 봉쇄하고, 군대와 자금을 빌려서 동과 서에서 카르타고를 압박하는 겁니다.”

콘스탄티우스의 대전략은 실현 가능성도 컸고, 꽤 그럴듯했기에 스틸리코는 그의 제안을 승인했다.

“자네에게 전권을 맡기지. 이번 북아프리카 원정은 자네가 책임지고 끝내게.”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일이 잘 풀리나 싶었지만,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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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누구 마음대로 마음대로 쓰겠다는 거야?”

“아버지께서 하신다는데,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지 않겠어요?”

“평소에는 그 많던 재산을 한 푼 안 내놓던 사람이 필요하니까 내걸 쓰겠다는 거 아니야?”

도통 잠을 자지 않는 바루스를 재우려고 안고, 업고 등을 두드려주고 온갖 짓을 다하던 차에 이런 편지를 받으니 굉장히 열 받았다.

“그러니까 장인어른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통보하듯이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요···.”

“아니긴, 정말 너무하시는군.”

가장 화가 나는 점은 그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이런 일이 생겨서 내 권위를 잠깐 빌리겠다고 편지 한 통을 보내면서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점이었다.

“제가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 볼게요.”

“흥.”

“에이, 그러시지 말고요.”

“확 반란 일으켜? 게르마니아도 내 땅이겠다. 나를 따르는 놈들도 많겠다. 확 반란 일으켜버려?”

“괜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신다.”

테르만티아가 부드러운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버지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아버지께서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그렇지 당신을 누구보다 아끼고 있다고요.”

“아끼기는 무슨! 그렇지 바루스?”

바루스를 내려다봤지만, 어느샌가 잠이 든 모양인지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왜 자는 애를 깨우려고 그래요.”

“으음···. 원래 애들은 잠이 많은 건가?”

애는 처음 키워봐서 잘 모르겠다.

“아빠!”

생각해보니 처음도 아니었구나.

안토니나는 나를 부르더니 그대로 달려와서 내 품에 안겼다.

안토니나의 돌진에 화들짝 놀라, 바루스를 높이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아이 깜짝이야. 동생 다칠 뻔했잖아.”

“씨이···. 아빠는 맨날 바루스만 이뻐하고!”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놀아조!”

간신히 잠들었던 바루스가 눈을 뜨더니, 이내 게르마니아에 울려 퍼질 만큼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로마의 휴일 - 3

로마의 남쪽이 한창 시끄러울 때, 게르마니아를 방랑하는 한 무리가 있었다.

모두가 말을 타고 다니는 이 무리는 이동 중에 만나는 게르만 부족들을 공격해서 복속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비디메르의 침공에도 부족을 지켰던 이들도, 차원이 다른 기마술로 무장한 이들의 침공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장군, 이곳 사람들의 말로는 로마인들이 머나먼 서쪽에 있다고 합니다.”

“머나먼 서쪽? 그게 어디지.”

“큰 강을 세 번쯤 건너면 나온다고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어.”

“그냥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거기다가 솔직히 그놈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우르겐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라고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왕께서도 그들의 존재 같은 건 잊어버리셨을 겁니다.”

“그래도 안 돼. 우리는 명령을 받았고, 그걸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지.”

이미 사라진 지도 모르는 가니우스의 부대를 찾기 위해서 우르겐 휘하의 훈족 병사들은 머나먼 여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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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돈이 모자라.”

요즘 들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였다.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러 곳에서 받은 뇌물들과 귀족들에게서 뜯어낸 수입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꼬맹이가 자기 멋대로 도서관에 후원하는 금액과 게르마니아에 와서 물 쓰듯이 써버린 탓에 이제는 슬슬 지갑 사정이 아슬아슬했다.

그 덕분에 게르마니아의 시장들이 활기를 찾기는 했지만, 내 지갑은 얄팍해져만 가고 있었다.

이제는 돈을 벌만 한 수단을 궁리해야 했다.

“돈을 벌만 한 방법이 뭐 업을까?”

“가장 확실한 건 대규모의 농장을 가꾸시고, 그곳을 운영하시는 것입니다.”

“각하께서 사탕무로 설탕을 만드실 줄 아시니, 이번 기회에 사탕무를 대량으로 재배해서 설탕 장사나 해보시지요.”

“설탕 장사라···. 괜찮긴 한데···. 지금 게르마니아에는 대농장이 얼마나 있지?”

“확인된 것만 수십 개입니다.”

“수십 개?”

“예, 지주들 밑에서 일하는 소작농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세밀하게 조사하다 보니 알게 된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질문에 데키무스는 세상 떠나가라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각하도 아시겠지만, 오래전부터 노예의 가격이 크게 올랐던지라 기존의 노예농장을 경영하던 이들이 노예의 자리를 빈민으로 대체하여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콜로누스. 그러니까 소작농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지주들에게 소작료만을 내는 탓에 세금을 걷기가 힘이 듭니다.”

“이런 고얀 놈들을 보았나.”

“그뿐이 아닙니다. 터무니없이 높은 소작료를 걷어가는 지주들 때문에 소작농들이 허약해지고, 이런 이들을 병역에 동원할 수가 없습니다.”

“으음···. 잘 들었네.”

아무래도 특별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자기 밑의 사람들을 쥐어짜겠다는데 말리지야 않겠지만, 어느 정도의 선은 필요해 보였다.

“선넘네.”

“예?”

“지금부터 특별명령을 내리겠다. 게르마니아 전역에 있는 대농장의 소작료를 내리고, 농부들의 소작권을 보장해주라고 해.”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소작농들이야 좋아하겠지만···. 지주들의 반발이 심할 겁니다.”

“자기들이 반발하면 어찌할 건데? 내가 돈 좀 벌겠다는데, 알아서 자진 납세도 안 했으면 눈치껏 몸 사려야지! 반항하는 놈들은 깡그리 잡아들여.”

“각하! 그건 너무 과격한 게 아닐는지···.”

“그동안 외부 일들에 너무 신경 쓴다고 내부일 적에 무심했다. 이제는 내부에서 돈을 긁···. 아니 문제를 해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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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 총독의 명령이 떨어지고, 게르마니아 전역에 큰 혼란이 뒤따랐다.

라인강 너머의 게르만 부족들이야 애초에 자기들끼리 알아서 살던 이들이 대부분인지라 마리우스의 명령에 시큰둥했지만.

라인강 서부에 살던 로마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었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소작료가 내려갔다는 소식?”

“그래! 듣자 하니, 말을 듣지 않는 지주를 신고하면 땅을 포상으로 준다더군.”

“꼴좋다 이거야. 지난겨울에 그놈들 때문에 우리 막내가 굶어 죽은 걸 생각하면···.”

쟁기를 든 농민은 눈물을 보였다.

“그래도 걱정이야.”

“뭐가 말인가?”

“아니, 지주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대놓고 자기들을 견제하는 이런 명령을 내리는데 누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겠느냐 이 말이야.”

“가만히 안 있으면 뭐 어찌할 건데?”

“이건 자네만 알고 있게···.”

빈민들이 대부분이던 소작농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지만, 지주들은 그렇지 못했다.

다들 겉으로는 마리우스의 통제에 잘 따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다.

“에잉···. 어린놈의 자식이 총독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꼴을 더는 못 봐주겠습니다.”

“군인이면, 국경의 경비나 제대로 할 것이지···. 쓸데없이 우리의 일에 끼어들려 하다니요?”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굴러갈는지 원···.”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중앙에 건의합시다. 저 버르장머리없는 총독 놈을 보내고 새로운 총독을 모셔오는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요. 마침 제 사촌 동생의 사돈이 원로원에서 치안 관을 맡고 있습니다.”

“오오···.”

“게르마니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겠···.”

그때, 문이 열리면서 수십 명의 병사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동작 그만! 이곳에 모인 이들에 대해 체포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그 자리에 가만히 있도록!”

“이게 무슨 짓이오!”

“이건 또 무슨 횡포란 말이오!”

지주들은 끌려가며 돼지 멱따는 소리 같은 찢어지는 비명을 내며 거칠게 항의했지만, 병사들은 묵묵히 끌고 갈 뿐이었다.

백인대장의 곁에 있던 농부가 슬그머니 다가와 웃으면서 물었다.

“제가 뭐랬습니까, 헤헤···.”

“모두 자네의 덕분이네.”

“그럼 약속대로···?”

“저들의 죄가 확실하다면, 자네에게도 곧 땅이 생기겠지.”

“가, 감사합니다!”

지주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꾸미려고만 하면, 소작농들의 밀고로 발각되기 일쑤였고, 그렇게 잡혀간 지주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렸다.

“작년에 소작농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그림자를 밟았다는 이유만으로 때려죽였다고? 허···. 이거 완전 개새끼가 따로 없구먼.”

“가, 각하!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신데···.”

“오해? 무슨 오해 말인가.”

“그, 그건···.”

“길게 말하지 않겠네, 자네 소속의 땅들은 국가에 환속 되고 재산들은 자네의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내가 잘 보관하겠네.”

“아이고···. 난 망했다···.”

“다음!”

마리우스의 일 처리는 빠르고도 확실했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고, 저마다 꺼림칙한 일들이 수두룩해서 오히려 패는 재미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데키무스! 개작두를 대령하라!”

“개작두는 뭡니까?”

“농담이네, 광장에 데려가서 매달아버리게.”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길 정도로 죄질이 나빴다.

아무래도 중앙정부와 멀리 떨어진 지역인 데다가, 그 관심이 다른 지역들보다 덜하니 그러려니 했지만, 이건 너무했다.

“다섯 살짜리 애를 그냥 마차로 뭉개고 갔다고?”

“씨발, 이제 막 열 살 된 애를 소작료 대신에 노예로 데려갔다고?”

“자네는 뭘 믿고 서류에도 없는 군단을 만들어내서 급료를 타간 건가?”

역시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이었다.

물론 그런 어설픈 도둑놈들은 내 공적으로 변해버렸고, 말이다.

하루가 멀다고 사람이 매달리자, 광장에 심어진 거대한 나무에는 더 사람을 매달 장소가 모자랄 정도였다.

“역시 중앙에서 오신 분은 달라도 다르구먼.”

“여태까지 총독들은 뭘 자꾸 뜯어가기만 했는데, 이번 총독은 우리한테 뭘 자꾸 쥐여주지 않는가?”

“아무렴 그뿐인가? 매번 야만인 놈들 때문에 벌벌 떨었는데, 이제는 그 녀석들이 우리 상점의 단골이라네!”

“하루하루가 요즘처럼만 같으면 얼마나 좋겠나.”

매일같이 유력자들이 매달리다 보니, 처음에는 시민들도 겁에 질려서 마리우스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뺏은 재산과 토지 중에서 쓸모없거나, 써먹기 힘든 것들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나눠줘 버리니 마리우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아그리피넨시스에 있는 황제 동상 바로 옆에 시민들이 돈을 모아서 마리우스의 동상이 세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끔찍하군.”

“음···. 안 닮긴 했군요.”

시민들은 좋은 취지로 만든 동상이었지만, 그 모습은 마리우스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는 갈색의 곱슬머리에 붉은 눈과 부리부리한 코에다가 특유의 검은색 갑옷까지 어우러지니,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와 같은 형상이 돼버렸다.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시민들은 이 모습에 만족했고, 아그리피넨시스를 방문하는 게르만족도 크게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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